제51화 - 한 남자가 시계를 들어서 가만히 바라보다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를 항상 괴롭혀왔던 불면증 때문에 머리가 아직도 띵 하지만 잠시 고개를 털면 금세 사라진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의뢰가 들어왔다.
“VIP 가족의 신변에 위협이 생겼다. 출발 준비를 하자.”
“누구랍니까?”
“따님.”
두 남성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제식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이 나라의 군대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면서 라쿤 가면을 머리에 착용했다.
얼핏 귀여워 보이지만 이건 그들의 주요 무장 중의 하나였다. 이 가면은 인외의 존재에게 대응하기 위해서 특수 개발된 물건이다.
“위치는 현재 메트로폴 밖, 로이스 산 근처 어딘가에 있는 산장이다.”
“호위는 뭐하고요?”
“그 호위에게서 연락이 왔다. 저택 내부로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더군. 주문이나 유물로 봉쇄된 것 같다고 한다. 신비학 전문가가 필요하다더군.”
“에이스랑 헤일로를 합류시키겠습니다. 그리고 몇 번 봉인물을 사용할까요?”
“봉쇄 해제라……. D-63을 사용한다. 그리고 마차로 4시간 거리니까 메트로 23층을 이용할 생각이다. 다른 놈들에게도 알려둬.”
“방금 해산했는데 다시 모아요?”
“꼬우면 월급 반납하라고 해.”
리더는 라쿤 가면을 조정하고는 자신의 손목에 달린 시계를 조정했다. 라쿤 가면을 쓰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정확히 2시간이었다. 타이머를 맞춰두고 나서 다른 동료들이 모인 것을 확인한 리더가 말했다.
“라쿤 팀 출발한다.”
곧이어 그들이 있던 승강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메트로 깊은 곳까지 향했다.
*
창고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총구로 인해서 구울의 이목이 끌리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더 구울이 없던가. 하지만 혹시 모르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창고에 있을 생각이었다.
여기에는 음식도 있었고 꽤 버틸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확히는 모르겠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그들은 대체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느냐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나선 건 리카였다. 그녀가 앨런에게 물었다.
“앨런씨, 이 산장에서 몇 번이나 작가 클럽이 열렸죠?”
“음. 내가 초대니까 7회네. 로렌이 3번째인가 그럴 거고. 메리도 그쯤 비슷할 거고.”
“이전에도 다른 작가들이 왔나요?”
“그렇네. 어디 보자, 피터가 6번 왔고. 아, 그러고보니 솔로 그 친구도 7번은 왔을 거야. 근데 횟수가 중요한가?”
“아뇨 그렇진 않지만, 솔로 씨가 정말 이 이야기의 주범일까 싶어서요.”
“범인이라고?”
갑작스러운 범인 지목에 사람들이 눈을 깜빡였다.
“솔로 씨의 이야기에는 맹점이 있었어요. 작품 내용 중에 솔로라는 사람이 프롤로그에서만 등장했을 뿐이지 본편에서는 한 번도 안 나와요.”
“어? 그러고보니.”
“정말 그렇네. 일행이라고 뭉뚱그려서 말하긴 했는데 그 안에 솔로가 있다는 언급도 없었지.”
그건 샤를도 생각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리카가 먼저 말하는 것을 보니 그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로렌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그럼 생각해보면 범인이 솔로가 맞지 않아?”
“혹시 솔로 씨와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분 계세요?”
“피터가 그렇다네. 그 친구는 솔로의 이야기의 광팬이거든.”
“아, 그리고 나도 가끔 편지를 주고받아.”
로렌이 손을 들었다. 리카가 고개를 돌려서 로렌에게 물었다.
“그간 솔로 씨에게 무슨 일은 없었나요? 변고라던지.”
“흠. 글쎄 그런 건 없었다는 것 같은데. 별 시답잖은 내용만 적혀 있었고.”
그때 샤를이 끼어들어서 물었다.
“시답잖은 내용이라면, 예를 들어서 뭐죠?”
“음. 뭐였더라. 무슨 골동품을 발견했다고 하던데. 고 헤르메스 시대에 만들어졌던 물건이라나. 그런 걸 어디서 손에 넣었다고 했어.”
그게 바로 만년필의 정체다. 예상대로 유물이 확실해 보인다. 로렌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더 자세한 얘기는 없습니까?”
“기억이 안 나.”
“푸하하. 역시 남자에게는 싸늘한 로렌답군.”
앨런이 말하자 로렌이 그를 째려보았다. 앨런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왜? 솔로가 자네를 좋아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잖나.”
“그 얘기가 왜 나와?”
“어쩌면 솔로가 복수심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게 아닐까? 로렌 여사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괴물을 풀어서 우리를 공격한 거지.”
앨런의 황당할 정도로 비약적인 추측에 로렌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동성애자라는 건 솔로도 알고 있었어.”
“응? 그렇다고?”
조심스러운 비밀을 당당하게 꺼내자 앨런이 오히려 당황하면서 사람들의 눈치를 봤다. 그냥 골려주려고 한 건데 왠지 미안해지는 앨런이었다.
샤를은 그런 부분을 눈치챘지만, 말을 돌려서 환기했다. 지금 커밍아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리카, 그럼 솔로가 주범이 아니라면 뭘 것 같나?”
“공범 같은 게 아닐까요? 주범은 제프리씨 같아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리카가 잠깐 고민하더니 말했다.
“제프리씨는 이곳에 오래 있었어요. 그리고 이 산장에서 부인과 함께 살았다고 했잖아요? 혹시 제프리씨에 대해 더 잘 아시는 분 있나요?”
그 말에 로렌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나. 집사로 몇 번 초대해보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고. 이 산장이 좋다고 하던가. 나는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닌 것 같아.”
“그럼 범인은 제프리가 맞네, 잘 보게. 제프리가 식기를 회수해가자마자 곧바로 문이 잠겼잖나? 타이밍이 너무 딱 맞아 떨어져. 그리고 솔로의 소설 말이야. 그 소설에서 이런 문구가 있었지. 제프리의 관리실에서 비밀스러운 열쇠를 찾았다고.”
앨런이 한 추측에 메리가 이야기를 넘겨받듯이 말을 이었다.
“솔로가 관리실을 뒤져서 발견한 게 아니라 제프리가 아예 솔로에게 준 거라면 말이 되긴 해…….”
샤를은 그들의 추리에 구멍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짜 맞춘다고 하면 얼추 맞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그래서 입을 열었다.
“모든 살인범에게는 동기가 있죠. 그럼 제프리나 솔로에게는 무슨 동기가 있나요?”
“…….”
“흠.”
샤를이 계속 말했다. 그는 이미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대충 추측하고 있지만 추리의 형태를 들어서 좀 더 생각해볼 생각이었다.
“애초에 솔로의 소설이 사실이라면 왜 굳이 우리에게 이런 정보를 줬습니까? 그냥 처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으면 우리는 괴물에게 무방비하게 잡아먹혔을 텐데요. 직접 보지 못했으니 괴물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테고.”
“앞뒤가 안 맞는다는 거군. 자네는 제프리나 솔로를 변호하는 겐가?”
“제프리나 솔로나 둘 다 의심스러운 건 확실합니다. 단지 우리를 괴물에게 잡아먹히도록,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아닌 것 같다는 것뿐이죠.”
잠깐 생각하는 사이, 큰 소음이 들렸다. 무언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였다.
“거실에서 난 소리야.”
“나가서 살펴보죠. 여기 가만히 있어봤자 소용없으니.”
“뭐라고? 뭐가 있을 줄 알고! 밖은 위험하네!”
샤를은 담담하게 말하자 앨런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앨런은, 벌써 두 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겪었다. 두려움에 떨만 했다.
앨런은 진짜 이 앞에 있는 놈이 미친놈인지 아닌지 생각해봐야만 했다. 총을 들고 있으면 인간이 담대해지는 건가? 그럴 리가.
“혼자 나갈 겁니다.”
“아니, 나도 같이 가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도 알아야겠어요.”
메리가 말했다. 샤를은 잠깐 그녀를 바라보았다. 샤를은 메리에게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 케르베로스 회합이라는 신비학적 지식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구울을 보고 켄터베리의 악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미 어느 곳에서 한 번 구울을 마주 쳤을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메리는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으므로 고려의 시간은 짧았다. 샤를이 고개를 끄덕이자 메리가 창고에서 찾은 마체테를 들었다. 리카가 말했다.
“그럼 저도 갈게요 교수님.”
“아니, 넌 남아 있어. 앨런과 로렌도 여기 있으세요. 둘이면 충분하니까.”
사람들을 창고에 놔둔 샤를은 문을 두들기는 것으로 암구호를 정했다. 제대로 된 암구호가 아니면 아무에게도 열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샤를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창문을 살며시 열자 침묵이 가득한 복도가 보였다.
응접실로 향하자 아까 커다란 소리가 났던 것의 정체를 알아챘다. 샹들리에였다. 아름다운 유리 장식이 가득했던 샹들리에는 지면과의 충돌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샹들리에 옆에는 시체가 누워있었다. 피터의 지인 작가 중 하나였다. 꽤 두려움이 많은 그 남자다.
소설 속에서는 지하로 내려가는 일행들에게 그냥 돌아가자고 사람들을 선동했으나 혼자만 돌아가게 되자 두려워서 일행에 합류했었지.
그는 목이 꺾여 있었는데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가슴에 있는 자상에 의한 과다출혈로 보였다. 응접실 바닥이 피바다가 될 정도로 많은 피가 흘러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무언가 쭈그려 앉아서 게걸스럽게 우적거리고 있었다. 구울이었다. 뒤를 바라보고 있는데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마리뿐.’
그 큰 권총의 소음에 달려온 것이 한 마리뿐이라. 근방에 구울이 적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를은 손에 방망이를 세게 쥐었다. 플로나처럼 엄청난 괴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구울 한 마리 정도는 처리할 만했다.
퍽!
샤를이 내리친 몽둥이가 뒤를 바라보고 있는 구울의 뒤통수를 그대로 후려쳤다. 구울은 입에서 먹던 내장을 뱉으면서 고개를 돌려봤다. 위력이 약했나? 되도록 권총을 사용하고 싶진 않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퍽!
그때, 메리가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서 들고 있던 마체테를 휘둘렀다. 고기 써는 소리와 함께 놈의 이마에 정확하게 마체테가 들어맞았다.
“구울은 한 방에 잡아야 합니다.”
“구울?”
“놈들의 정체요. 이제 떠올랐거든요. 아니 사실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말하기가 꺼려져서요.”
메리는 심호흡을 하면서 말했다.
“저는 사립 켄터베리 박물관에서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에야 작가가 됐지만. 그때는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었죠. 저는 그 박물관에서 이 괴물의 그림이 그려진 고대 화석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대에도 있었단 겁니까?”
“네.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은 되었을 법한 화석에 피가 튀자 피가 저절로 흡수되더군요. 그리고 그날 구울이 움직였습니다. 화석에서 튀어나와서 사람을 공격했습니다.”
역시 그녀는 신비학에 연관된 사람이 맞다. 영성자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비밀 세계에 알고 있을 것이다.
구울은 오랫동안 멈춰있으면 자신의 생명 기능을 정지한다. 그대로 너무 오래되면 화석처럼 신체의 일부가 변하게 된다. 하지만 피 한 방울이라도 있으면 흡혈귀처럼 소생한다.
메리의 경험을 왜 이제야 말하나 의아했지만 샤를은 메리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기이할 정도의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저렇게 무서워하는데 밖으로 나올 용기가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그때, 번뜩이는 불꽃이 쏘아지기도 전에 강렬한 직감이 들어 샤를이 메리를 밀쳐버렸다.
“무슨?”
탕! 피융.
샤를은 자신의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탄환의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산장의 응접실은 2층이 훤히 보이는 구조였기 때문에, 샤를은 상대의 위치를 볼 수 있었다.
고개를 올려다보니 샹들리에가 박살 난 이후 조명이 완전히 사라진 2층 난간 옆에 검은 형체가 서 있었다. 붉은색 안광이 한쪽에서 번뜩인다.
그는 볼트 액션 소총을 들고 있었는데 샤를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상대는 노리쇠를 당기면서 재장전을 하고 있었다.
재장전 속도가 심상찮다. 분명히 소총을 다뤄본 사람일 것이었다. 샤를은 그대로 텀블링하듯이 굴러서 응접실 옆의 기둥에 몸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