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49화 (49/221)

제49화 - “뭐, 뭐지?”

“이거 장난이 아닌 것 같군. 제프리가 우릴 가둔 걸지도 몰라.”

“설마…….”

“일단 사람들에게 알리세.”

피터와 앨런이 사색이 된 채 사람들에게 다가와 그간의 일을 말하자 다들 놀란 기색이었다. 샤를은 올 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너무 빠르다.

그는 추측했다. 이제 로렌이 보이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그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일단 사람들을 보아보게. 난 솔로를 데리러 갈 테니, 로렌은 어디 갔지?”

피터의 말에 메리가 손을 들었다.

“아까 나랑 담배 피우고 있었어. 한 대 더 피고 온다고 했었는데, 아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있을 거야.”

그때 수색을 마친 피터의 지인 작가 둘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창문이 다 철창 같은 거로 봉쇄되어 있어! 누군가 막아둔 게 분명해.”

“로렌을 본 적은 있습니까?”

“아니,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도 방문을 두들겨 봤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었고요.”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때, 리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꽤 날카로운 통찰이었다.

“혹시, 로렌 씨는 지하 3층으로 내려간 거 아닐까요?”

그 말에 사람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 그럴 리가…….”

“설마 정말로 그 열쇠로 문을 열어보겠다고 한 거야? 그건 소설에 불과하다고!”

“일단 제가 가보겠습니다.”

샤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봤자 아무것도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그러자 앨런과 리카가 따라붙었다.

“나도 가보겠네.”

“저도 가볼게요.”

“그렇게 하게. 그럼 일단 난 올라가서 솔로의 방문을 부숴보겠네.”

피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사람들은 정문을 혹시 부술 수 있는지 찾아보기로 하고 근처에서 무기가 될 만한 물건들을 들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몽둥이 같은 것들을 손에 들었지만, 그들은 영 불안한 기색이었다.

샤를은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 1층은 이런저런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뒀고 지하 2층 전체는 와인 저장고였다. 그리고 와인 저장고 옆에 선반으로 가려진 특이한 장소가 있었을 터였다. 앨런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열고 들어갔군.”

문에는 솔로가 보여줬던 그 보라색 키가 꽂혀 있었고 훤히 열려 있었다. 시선을 돌려서 안을 쳐다보았는데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깊고 어두운 공허처럼 느껴졌다.

이야기로 들을 때는 실감 나지 않았지만 이 아래로 내려갈 생각을 했다는 게 보통 담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일 테지만 로렌은 강심장이었다.

“내려갈까요?”

“내려간다고 여길?! 그만두게.”

앨런은 샤를을 만류했다.

“혹시 오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오는 게 어떤가.”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저 아래에 괴물이 있다고 했잖습니까.”

“솔로의 소설을 믿는다고? 정말로?”

샤를은 허리춤에서 리볼버를 꺼내 들어서 앨런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소설은 보통 소설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모르고 있던 정보조차 솔로는 알고 있었죠.”

“지, 지, 진짜 총이?!”

“앨런, 당신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 번 생각했을 텐데요. 대체 솔로가 그 일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그는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조차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걸리는 게 있군. 애니는 내 어릴 적 보모이자 첫사랑이었지. 솔로에게는 한 번도 얘기해준 적이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그는 알고 있었어.”

“그렇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소설이 아닙니다. 실현 가능성이 높은 미래 일지도 모릅니다.”

“그럼 괴물이 나오고 여러 사람이 살해당한다는 게 진짜로 있을 일이란 말인가? 당신 진짜로 미쳐버린 건가? 그런 게 이 세상에 가능할 리가 없어.”

“당신이 알고 있는 세상이 진짜라고 어떻게 믿습니까?”

그 말에 앨런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는 샤를의 말에 너무도 두려워진 나머지 손까지 떨고 있었다. 샤를은 이제 고개를 돌렸다. 설득은 여기까지였다. 샤를은 리카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가자.”

“네 교수님.”

리카는 언제 들었는지 쇠 지렛대를 손에 들고 있었다. 와인 창고를 지나면서 손에 든 모양이었다. 샤를은 씨익 웃었다. 리카는 그냥 평범한 소녀가 아니었다. 이런 비현실적인 사건을 마주했을 때 가장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사람이었다.

‘역시 웹스 가문의 사람이라 이건가.’

샤를과 리카가 그냥 들어가려고 하자 앨런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샤를은 총을 들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저 여자는 대체 무슨 깡으로 저런 거지?

앨런은 그들이 들어가기 전에 크게 소리질렀다.

“잠깐 기다리게! 이 사람들아! 어둠 속에서 뭘 볼 생각이란 말인가? 가만 보자, 이 근처에 막대기가 있었는데. 아, 찾았다.”

“헝겊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뭐, 샤를은 원래부터 횃불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는 와인 저장고를 걸어오면서 헝겊을 보자마자 슬쩍 들어서 손에 쥐고 있었다. 이 헝겊에는 이런저런 기름이 묻어있었다.

품에서 성냥을 꺼내서 헝겊에 불을 붙였다. 사실 이런 헝겊으로 급조한 횃불은 오래 지속되지는 않지만 단지 타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불길이 보이자 차가운 냉기가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횃불은 앨런이 손에 들었다.

“최대한 빨리 내려가서 로렌을 찾아서 올라오는 걸 목표로 하지. 그 이상한 계단 같은 거 아래로는 가고 싶지도 않아!”

“그러죠. 저도 괴물을 만나고 싶지는 않으니까.”

앨런이 앞, 리카가 중간, 샤를은 제일 뒤에 섰다. 셋은 깊고 깊은 지하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퀴퀴한 냄새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소설 속 묘사에서 누군가 헛구역질을 했다는데 정말 참기 힘들 정도였다.

후각이 적응하자마자 그들은 정육점 비슷한 장소를 발견했다.

“완전히 녹이 슬어버렸군.”

천장에 걸린 갈고리나 바닥에 놓인 칼들은 하나같이 녹이 슬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앨런은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것을 하나 골랐다. 고기 썰 때 사용하는 사각형 식칼이었다.

“이거라도 들고 있어야겠군. 젠장.”

그들은 주변을 수색했다. 솔로의 묘사가 너무 정확한 것은 긍정적이었지만 부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그들이 빨리 움직일 수 있었지만 그만큼 앞서 움직였던 로렌도 빨리 움직였던 것.

그러나 도망자보다는 추격자가 훨씬 빨랐다. 어느새 그들은 랜턴을 들고 있는 로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로렌의 앞에는 더 아래로 내려가는 다락방 계단 같은 것이 내려져 있었다. 앨런이 반색하면서 외쳤다.

“로렌!”

로렌이 검지로 입을 가리는 제스쳐를 취했지만, 밤눈이 어두운 앨런은 그걸 전혀 보지 못했다.

샤를은 로렌의 제스쳐를 멀리서 읽고 나서 앨런을 제지하려고 손을 뻗었는데 앨런이 떠드는 소리가 더 빨랐다.

“대체 여길 왜 내려온 거야?!”

처음부터 느꼈지만, 그의 목소리는 말 그대로 우렁찼다. 평범하게 말하는 게 이런 소리를 내다니.

평소에 그렇게 떠드는 건 별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괴물이 있을지도 모르는 이 장소에서는 아주 부주의한 행동이었다.

당연하게도 앨런은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것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캬아아아아아아!”

“우아아아아아악!”

광원의 맹점 속에서 무시무시하게 빠른 형체가 나타나며 빛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앨런을 향해 덮쳐온 그것은 앨런의 횃불을 무시하고 달려든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든 앨런이 운이 좋게도 횃불로 놈의 머리를 가격했던 것. 불꽃이 넘실거리면서 구역질 나는 피부에 옮겨붙는다.

“키에에에엑!”

얼굴에 횃불을 얻어맞은 구울은 얼굴이 불타오르는 걸 느끼자 양손으로 얼굴을 어떻게든 긁어내면서 바닥을 굴렀다.

그 사이 앨런은 자신의 손에 남은 얼얼한 타격감을 느끼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송진을 사용하지 않고 급조한 횃불은 앨런을 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처음부터 내구도가 그리 좋지 않아서인지 차가운 어둠 속으로 꺼져버렸다.

“저, 저, 저게 왜 여기 올라와 있어!?”

“조용히 하세요. 앨런. 그렇게 저 괴물의 주의를 끌고 싶은 겁니까?”

앨런은 히끅, 딸꾹질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샤를은 리카의 손에 들려 있던 쇠 지렛대를 빼앗듯이 낚아채 누구보다 빨리 움직였다.

구울은 한바탕 땅바닥을 구른 뒤에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구울의 시야는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고 명암을 구분하지도 못했다. 대신 소리는 엄청나게 민감했는데 조그마한 소리가 들려도 알 수 있었다.

샤를의 발바닥 소리를 알아챈 것은 당연한 절차였다. 하지만 구울이 덤비기 전에 샤를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는 재빨리 쇠 지렛대를 이용해서 놈의 가슴에 박아넣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밀어버렸다.

구울은 어떻게든 샤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쇠 지렛대의 갈고리처럼 된 끝부분이 가슴에 걸려서 파닥거리는 낚시감이 된 신세였다. 빠르게 밀자 비교적 손쉽게 밀린다.

놈은 계단 뒤로 몇 번이고 덤블링을 하면서 굴러댔다.

쿵. 쿵. 쿵. 덜컥.

그러자 로렌이 아주 기민하게 움직여 계단 손잡이를 위로 잡아당겼다. 구울은 넘어져서 충격을 받았지만 재빠르게 계단을 올라올 생각은 하지 못했는지 위로 손톱을 휘둘렀다.

놈이 허공을 베는 동안 앨런이 다가와 로렌과 함께 계단을 잡아당겨서 결국 계단을 닫아버렸다. 기진맥진한 앨런이 욕설을 내뱉으면서 중얼거리는 동안 샤를이 물었다.

“로렌, 왜 여기까지 온 겁니까?”

“내가 아니야…….”

“네?”

로렌은 조명을 잃어버린 샤를 일행 대신 불을 비추듯 랜턴을 높이 들고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나는 지하 3층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이 있긴 했어. 그런데 와인 저장고로 내려가보니 이미 지하 3층으로 가는 문이 이미 열려 있었어.”

앨런이 기겁하듯이 말했다.

“문이 열렸다고 따라 들어온 건 자네가 아닌가? 로렌! 자네가 사라져서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데!”

“미안해 앨런. 하지만 진짜 괴물이 있을 줄은 몰랐어. 그냥 소설 속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호기심이 많은 로렌은 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 홀린 것처럼 아래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누군가 그녀보다 먼저 내려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내려간 그녀가 마치 다락방 계단과도 같은 지하 계단을 내렸을 때, 구울이 눈앞에 나타났고 로렌은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계단을 천천히 걸어오는 구울을 보면서 로렌은 공포에 질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운이 좋게도 그 덕에 구울의 감지에서 피할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로렌은 뚜벅뚜벅 구울이 자신을 지나쳐서 걸어가기를 기다렸던 거다. 그리고 그 순간, 우연하게도 로렌을 찾아 내려온 일행이 나타났던 것이었다.

샤를이 기민하게 대응하게 구울을 아래로 던져버리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정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특히, 직접적으로 죽을 뻔한 앨런은 더욱 더 그랬다.

샤를은 로렌의 이야기를 듣다가 물었다.

“그런데 지하 3층으로 가는 문은 열렸는데, 계단은 닫혀 있었단 말인가요?”

“……!”

샤를의 질문에 로렌이 무언가 깨달은 듯 놀란 눈초리를 했다. 추측하건대, 그들이 지나왔거나 혹은 숨겨진 장소 어딘가에, 이 아래로 향하는 계단의 문을 연 사람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단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샤를은 들고 있던 쇠 지렛대를 리카에게 넘겨주면서 잘 썼다고 말했다. 리카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카는 구울이 나타났을 때부터 얼어붙어서 그걸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샤를은 너무도 침착하게 행동했다. 그의 행동력을 보면서 리카는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점점 더 샤를에 대한 믿음이 커지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느끼고 있었다.

그때였다.

덜커덩.

뒤로 되돌아 올라가는 도중에, 아래쪽 땅이 덜컹거렸다. 지진은 아니었다. 그저 바닥의 뼛조각들을 헤집고 흙더미가 파헤쳐지고 있었다.

무언가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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