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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47화 (47/221)

제47화 - “올라갈 사람은 올려보내고 좀 더 내려가 볼래. 이런 기회가 흔치는 않잖아? 이 아래에 뭐가 있을지도 궁금하고.”

“올라갈 또 다른 사람 있어?”

느긋하게 말하는 솔로의 말에 사람들은 고민하더니 좀 더 아래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피터의 남은 지인 작가는 피터와 함께 아래로 내려가고 싶어 했고 앨런의 지인 커플은 이런 무서운 사건에 환장하는 타입이었다.

그러자 졸지에 혼자 올라가게 되어버린 그는 오히려 그 상황이 더 무섭다면서 같이 내려가기로 했다.

“뭐, 그렇게 하도록 하지. 사람들은 점점 아래로 내려갔어. 무수한 뼛조각들 사이로 누군가 길을 낸 것 같은 곳이 보였거든. 집으로 따지면 여기는 복도였던 거야. 복도에 난 길로 걸어가자 구조상 거실이라고 할 것 같은 공간이 나왔어. 거실에는 여러 가구가 있었지만 전부 박살나거나 훼손된 상태였어. 그곳에서 쪽지를 발견했지.”

“쪽지라고?”

“그래. 기이한 것은, 거실의 다른 곳은 엉망이었는데 그 탁자 위만 멀쩡했다는 점이야. 아주 깨끗한 탁자 위에 종이가 놓여 있었는데 알 수 없는 재질이었어. 마치 무언가의 가죽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 가죽 위에는 피로 글씨가 그려져 있었어.”

“와 소름이.”

리카는 무의식적으로 샤를을 보면서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샤를이 살짝 웃으면서 마주 바라봐 주자 그녀는 왠지 괜찮아진 듯 손을 내리고 부끄러워진 듯 자신의 양손을 꾹 마주 잡았다.

솔로는 쪽지를 읽기 위해 약간 목소리를 큼큼, 하고 다듬었는데 마치 전문 성우처럼 목소리를 변형했는데, 솔로의 목소리 같으면서도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1854년 8월――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곳에 갇힌 지 벌써 30년째. 내가 계산한 날짜에 따르면 그렇다. 이 안에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을 기준으로 계산했으나 내 정신이 온전치 못할 때가 많아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40년이나, 혹은 50년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 이 안에 갇혀 살았던 거구나! 점점 흥미진진해지는데.”

로렌이 박수를 짝하고 쳤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나는 모른다. 난 단지 살아남으려고 했을 뿐이었다. 살아남고 살아남아서 끝내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한 나는 내가 살아있는 것인지 정말로 궁금해졌다. 이렇게 사는 것이 삶이라는 것인가?”

서두를 그렇게 읊은 솔로는 와인으로 목을 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뱃속에 아직도 더부룩함이 남아 있다. 필시 굶주렸기 때문이지. 먹고, 먹고 또 먹어도 근처에 먹을 것이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지나갔고 지금은 굶주린 채 먹을 것을 찾아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가끔 들어오는 먹이를 빼면 먹을 것이 없었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파서 잠을 자기로 했다. 자고 있으면 배가 고프지 않았으니까.”

“와. 뭐야. 뭔데?”

“쪽지는 여기서 끝이었어. 쪽지 내용 때문에 더욱 흥미로워진 사람들은 주변을 수색해보기로 했지. 혹시 모르니까 3인 1조로 말이야. 그러다가 로렌과 샤를, 리카는 무언가를 발견했어. 꽤 큰 석관 비슷한 것이었어. 겉에는 기이한 문양으로 그려진 장식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들은 석관의 틈이 미세하게 열린 것을 알아챘어.”

“석관 안에 뭐가 있었지? 미이라?”

“아니. 힘을 합쳐서 석관의 문을 열었던 그들은 석관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만 깨닫게 되었지. 그들은 석관 뒤쪽의 어둠을 보면서 그쪽에도 공간이 있다는 걸 알고 그곳으로 가려고 했지.”

“에이. 조금 김이 빠지는데.”

로렌은 소파 뒤로 몸을 뉘면서 말했다. 뭔가 있을 것처럼 얘기했다만 별 건 없었나. 솔로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 비명이 들렸어. 로렌이 랜턴을 들고 비명이 들린 곳으로 달려가자 복도 저 너머의 서재에서 무언가 검은 형체가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지. 로렌이 달려간 곳에 끔찍한 형태로 살해당한 시체가 있었어. 앨런의 지인 커플이었지. 그들은 목과 가슴 부분을 물어뜯긴 것처럼 보였고 날카로운 칼 같은 거로 마구 베인 자상이 있었어.”

“예헤!”

처음으로 살해당한 커플은 싱글거리면서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왜 이렇게 즐거워하는지 샤를은 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할 생각도 없었다.

괴기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하나같이 괴짜들이겠지. 말이 끝나고 피터가 진지하게 물었다.

“또 한 사람은 메리가 아닌가?”

“메리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보이지 않았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수색할 때, 서재의 벽면에 있는 피아노 옆에서 메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 나타났어. 그녀는 여기저기 긁히고 베였지만 죽진 않았지. 메리가 횡설수설하듯이 중얼거렸어.”

피터가 다시 질문했다.

“메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까?”

솔로는 성대모사를 했다. 메리의 목소리와 흡사해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어째서 이곳에……. 켄터베리의 악몽이……이건 대체……. 말도 안 돼…….”

그런 목소리를 듣자마자 메리는 벌떡 일어섰다.

“잠깐만,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랬지.”

메리는 뭔가 홀린 듯한 표정이었다. 전혀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것을 보면서 샤를은 그녀도 뭔가 정곡이 찔렸다는 걸 알았다.

샤를이 감추고 있는 리볼버를 들킨 것처럼 메리도 뭔가 들켜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들킨 모양이었다.

솔로가 메리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는 샤를은 모른다. 하지만 메리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소파에 다시 앉는 걸 보면서 도저히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비밀을 알아낸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켄터베리의 악몽이 뭔데?”

“아냐, 아무것도.”

누군가 묻자 그렇게 얼버무린다.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인다. 딱 봐도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더 캐묻지 않았다. 다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샤를은 그 상황을 보고 추리를 했지. 첫 번째는 메리가 미쳐서 두 커플을 살해할 가능성. 이건 굉장히 낮아 보였어. 메리도 상처를 입었는데 칼로 싸운 상처가 아니었어. 결과적으로 두 커플도, 메리도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고. 그걸 본 그는 범인이 이 지하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지. 샤를은 곧바로 리볼버를 꺼냈어. 주변을 경계하면서 범인을 찾으려고 했지.”

“오오. 멋있어.”

“진짜?”

갑자기 주목받게 된 샤를은 쑥스럽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시점이 로렌에서 샤를로 바뀐 다음 샤를이 해낼 추리까지 맞춘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마치 그 상황을 직접 보고 온 사람처럼 얘기하는 게? 이건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이야기가 아니야.’

무언가 알 수 없는 직감이 그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그 사이, 리카는 메리를 도와서 일으켰어. 그런데 또다시 비명이 들리자 로렌과 샤를이 달려갔어. 그러자 이번에는 습격자의 정체를 볼 수 있었지. 습격자는 앨런과 싸우고 있었는데 앨런은 피투성이가 된 채 거칠게 달려드는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어.”

거한인 앨런이 상대와 격렬하게 레슬링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앨런이 흠칫하면서 어깨를 긴장시켰다.

“로렌이 랜턴을 들어서 어둠 속에서 격투를 벌이는 둘을 비췄어. 상대는 기이하게 생긴 괴물이었어. 여기저기 흉측하게 살이 일그러졌고 손톱은 짐승의 것처럼 길어져 있었지. 그 손톱은 사람의 것으로 생각하기는 무리가 있는 게, 손톱이 가로로 난 게 아니라 세로로 자라 있었어. 이빨은 상어의 것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는데 이미 그곳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 앨런은 안간힘을 쓰면서 상대의 손목을 잡아서 막고 있었지.”

‘구울이잖아?’

샤를은 묘사된 모습을 보면서 순식간에 구울을 떠올렸다.

드디어 추리가 완성되었다. 시체를 먹고 사는 괴물. 100년 전의 전쟁 때 시체가 가득했다는 묘사…….

쪽지를 보면 누군가 갇히게 된 이후로 이곳에서 무언가를 먹었다고 되어있는데 먹을 것이라고는 시체밖에 없었다. 이곳에 갇힌 사람은 시체를 먹으면서 구울로 변해갔다!

복도에서 밟은 뼛조각은 그 흔적이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석관에서 잠들어있던 구울이 마침내 깨어나 사람을 공격하게 된 거다.

‘다만 이상한 것은 먹이를 누군가 넣어줬다는 것……. 성 케르베로스 회합의 소행인가.’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래서?”

“샤를이 괴물에게 총을 발사했지만 약간 늦고 말았어. 앨런의 가슴에 날카로운 손톱이 꽂힌 이후였거든. 앨런은 심장에 손톱이 꽂히자 절명하고 말았어.”

“어, 음. 여태까지는 재밌었는데, 내가 죽는다니 이거 기분이 뒤숭숭한데.”

앨런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그는 대담한 척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한 군데가 떨리는 목소리였다. 필시 그도 이 분위기에 휩쓸린 것.

“괴물은 총알에 얻어맞고 나자 잠깐 괴성을 지르더니 상처를 입은 채 어디론가 도망쳤어. 죽어가는 앨런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지. 애니…….”

앨런은 순식간에 이상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혼잣말을 했다. 내가 애니라고 말했다고? 정곡을 찔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눈동자도 떨렸다.

“두 번이나 비명이 들리고 총이 발사되는 소리까지 들리니까 사람들은 순식간에 그곳으로 모였어. 여럿이 모여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봤지.”

“빠진 사람은?”

“아직까진 아무도 없었어. 로렌이 여태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사람들에게 말하니 다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어. 그냥 솔로가 말했던 소설일 줄 알았는데 여기 진짜 무언가가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거지. 그들은 어서 빨리 도망치기로 했어. 샤를이 총을 쏴서 괴물에게 상처를 입혔지만, 괴물이 얼마나 더 있을지, 혹은 괴물에게 총알이 효과가 있을지는 몰랐거든.”

“그래서 그들은 도망쳤나?”

“아니, 도망치지 못했어. 그들이 들어왔던 입구로 들어가자, 입구가 막혀 있었거든. 복도에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누군가 일부러 끌어올린 것처럼 사라졌어.”

“누군가 더 있었구나!”

“생각해보면 그렇지. 아까 석관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고 했잖아? 석관 안에 있던 괴물이 자체적으로 문을 열고 올라온 것보다는 누군가 문을 열어줬다는 게 더 맞는 추리 같은데.”

피터가 흥분해서 얘기하자 그럴듯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음. 나머지……이야기는 내일, 하도록 할까?”

“뭐어!?”

“여기서 끊는 게 어딨어?”

“시계를 보라고……벌써 새벽 5시야. 그리고 이 뒤의 내용은. 아직……생각 안 해뒀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느새 새벽이 다가와 있었다.

“아, 맞다.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였지.”

너무 스무스하게 말해서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소설 같았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이 두려운 이야기를 더 듣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솔로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동안 와인을 꽤 마셔서 그런지 휘청거렸다. 조금 전의 또렷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개하던 사람과는 마치 다른 사람 같이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앨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많은 의문을 집어넣기로 했다. 대신 쾌활한 목소리로 피터에게 말했다.

“이대로가면 솔로가 1등은 확정 같은데.”

“그러게. 저걸 이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앨런 우리는 잠깐 모여서 네 소설을 가다듬어 볼까?”

“그거 괜찮지. 샴페인을 좀 더 들고 가야겠네.”

앨런과 피터가 그렇게 서로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자신들의 방으로 올라갔다. 아마 둘은 이렇게 마시고도 더 마실 생각인 듯했다. 두 커플도 올라가자 샤를도 곧 올라가기로 했다.

그때 리카가 샤를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 교수님. 저랑 어디 가주실래요?”

“아! 그래 문 앞까지만 가주겠네.”

샤를은 여기서 눈치 없게 빼진 않았다. 리카의 표정만 봐도 화장실이 가고 싶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보니 리카는 얘기를 들으면서 와인을 홀짝홀짝 몇 병이나 비운 것 같았다.

그녀는 취한 표정으로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좀 무서웠거든요. 진짜 그런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어떻게 될지 말에요. 근데 샤를 교수님이 있으면 왠지 괜찮을 것 같아요.”

샤를은 대답 없이 희미하게 웃었다. 실제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샤를은 모두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리카 하나 정도는 충분히 지켜 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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