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46화 (46/221)

제46화 - “종이의 내용을 읽은 나는 매우 불쾌해져서 그 종이를 태워버렸어. 그래서 그 종이는 가져올 수 없어.”

“아하하! 당장 그걸 만들 수는 없단 말이지?”

로렌이 박수를 치면서 솔로의 생각을 번역하듯 말했다.

“어쨌든, 당장 종이는 보여줄 수 없지만, 내용은 대충 기억하고 있어. 이 건물이 발목 전쟁 이전에도 지어졌던 건물이라는 거 알지? 우리 작가 클럽에 매번 나왔던 사람들은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초대된 사람 중에는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서.”

피터의 지인 작가 중 한 명이 그건 처음 들었다고 했다. 솔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상자가 7만이 나온 치열한 전쟁이라고 말했다.

샤를은 현대의 역사를 떠올렸다. 핀란드와 소련이 치열하게 싸웠던 겨울 전쟁 때 양측 합쳐 사상자가 약 40만 정도 되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7만이나 40만이나, 무자비한 숫자임에는 분명했다. 특히 그것이 사람의 목숨임에는.

“그간 클럽을 왔다갔다 하면서 나는 이 산장에 관해서 여러 번 조사를 해왔는데 이 산장은 재미있게도 맨 처음에 정육점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하더군.”

“응? 정육점? 뜬금없네.”

“이건 설정에 오류가 있군.”

그렇게 지적한 피터가 말을 이었다.

“이렇게 거대한 산장이 정육점이라니 뭔가 이상해. 그리고, 왜 이런 산골짜기에 정육점이 있지? 근방에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야.”

“맞아. 이상해. 뭘 도축하는데. 주변에 소나 돼지를 기를 곳도 없잖아?”

여러 지적을 받은 솔로가 입을 열었다.

“나도 좀 뜬금없긴 했어. 근데 좀 찾아보니까 알겠더군. 이 산에는 원래 염소가 엄청나게 많았다고 해. 절벽을 타는 염소를 키워서 도축해서 산 아래로 내려가 팔았지. 일종의 농가를 겸하는 정육점이었던 거지. 원래는 이렇게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건물도 아니었어. 증축에 증축을 거듭한 결과지.”

“흠. 알겠어. 일단 설정은 이상하지 않네.”

피터가 말하자 솔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에는 지하 3층 이하에 관한 내용이 있었어. 이건 발목 전쟁과도 연관이 있으므로 여태까지 설정을 나열했다고 생각해주길 바라. 발목 전쟁 때 이 근방에서 전투가 벌어진 적이 있었어. 꽤 큰 규모의 전투였지.”

“그래서?”

“그 전투를 치르는 동안 병사들은 식량이 떨어질 정도로 치열하게 싸웠어. 결국 이 근처에서 기르고 있던 염소들을 보고 병사들이 눈이 돌아간 나머지 먹어치웠어. 그렇게 양측 군대의 병사들은 염소를 징발하기 시작했어. 매일같이 염소를 먹어치우니 정육점 주인은 답이 없어졌지.”

“잠깐, 그런 내용이 종이에 적혀 있었다고?”

“그래.”

솔로는 처음으로 궐련을 꺼내서 입에 물었다.

“정육점 사장은 이대로 가면 파산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전쟁 때문에 일이 잘 안 됐거든. 양측 군대는 전시 채권을 주긴 했지만, 어느 쪽이 이기건 한쪽의 채권은 휴지 조각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 그런데 어느날 격렬한 전투 이후 양측에 어마어마한 사상자가 발생했던 거야. 그날은 폭풍우도 치고 시야도 좋지 않아서 사람들은 시체를 수습할 생각도 하지 못했지. 설상가상으로 야생동물들이 돌아다니면서 시체를 먹어치웠대.”

“잠깐, 내가 예측한 대로라면 매우 기분 나쁜 결론이 나오는데.”

앨런이 손을 들어서 말하자 솔로가 그를 바라봤다. 앨런은 인상을 구기면서 말할까 하다가 솔로의 답을 기다렸다. 솔로는 말했다.

“한 달 정도 뒤에, 정육점 사장은 자신이 파는 고기가 뭔지 모르고 있었어.”

“우.”

여러 사람이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유독 앨런의 지인인 커플은 환장하겠다는 듯 눈을 반짝이면서 보고 있었다. 카니발리즘. 공포 소설의 단골 소재였다.

샤를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묘사가 이상해. 왜 정육점 사장의 이야기는 3인칭처럼 얘기하는 걸까. 마치 전지적 작가 시점인 것처럼…….’

“종이에는 성 케르베로스 회합의 사람들이, 이곳 지하 3층에 100년 전 발목 전쟁으로 인해 나왔던 시체들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적어뒀어.”

앨런이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조금 설명을 보충해둬야 할 필요가 있군. 성 케르베로스 회합의 사람들과 100년 전 발목 전쟁의 시체들이 무슨 연관이지?”

“이 산장의 주인은 여러 번 바뀌었어. 처음에는 정육점 집 사장. 그리고 성 케르베로스 회합의 사람들이 이 건물을 인수해서 증축했지. 그리고 어떤 부호에게 팔아넘겼어. 그게 지금 산장의 주인일 거야.”

제프리는 산장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인이었다. 그렇다면 주인이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서 메리를 바라보았다.

“메리. 너 이 산장의 주인이랑 아는 사이 아니야? 클럽의 모임을 열 때마다 네가 산장을 대여하잖아?”

“어, 그렇긴 한데. 부자인 것도 맞고. 그런 뒷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말했잖나……. 소설, 이라고.”

켈록, 하고 잔기침을 한 솔로는 다시 말을 이었다. 솔로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부분은 교묘하게 배제해 나가면서 비밀에 관해서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지하 3층에 시체가 보관되었다는 말을 이렇게 여기 모임의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어. 우리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지하실 3층의 문을 열어보기로 했어.”

“아, 여태까지는 프롤로그였군!”

누군가 그렇게 말하자 솔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솔로가 여태까지 일어났던 일을 얘기하자, 작가 클럽의 사람들은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지하실의 문을 열기로 했지. 초대받은 손님들도 흥겨웠을 거야. 몇몇은 기괴하다는 생각에 우려하고 있지만 몇몇은 흥미진진한 상태야.”

“그래서?”

“로렌은 지하 3층에 관한 비밀을 제일 궁금해하는 사람이야. 그녀는 지하실로 가는 열쇠를 솔로에게서 받아서 내려가겠다고 했지. 솔로의 소설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궁금해 했거든.”

로렌은 이번에는 활짝 웃고 있었다. 안의 사람들은 진짜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지하실 3층의 앞에 섰어. 다른 사람들도 궁금해서 로렌을 따라왔지. 몇몇은 유흥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이 열쇠를, 지하 3층으로 향하는 문에 꽂자. 정말로 잠금장치가 풀렸어.”

그리고 솔로는 찰칵, 이라는 효과음을 입으로 냈다. 그건 사람의 입으로 낸 소리 같지 않았으며 정말로 열쇠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처럼 들렸다.

“계단 아래는 매우 퀴퀴한 냄새가 났어. 수십 년 동안 관리하지 않은 모양인지 계단 옆에 있는 철 지지대는 녹이 슬어있었지. 안에서 이상한 곰팡이의 냄새가 났기 때문에 비위가 약한 작가 중 한 명은 헛구역질까지 할 정도였지. 열쇠를 꽂은 진짜 문이 돌아가자 로렌의 정신도 돌아버린 것 같았어. 그녀는 당장 랜턴을 꺼내서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거든.”

로렌은 본인이 돌아버렸단 말에 낄낄 웃었다. 괴기스럽긴 해도 어쨌든, 흥미로운 주제였다.

“뚜벅. 뚜벅. 사람들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어. 정말로 이곳이 정육점이었는지, 100년 전 전쟁에서 남은 시체들이 있었는지 궁금했거든. 그리고 그들은 솔로의 말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정육점이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를 찾아냈거든.”

고기를 걸 수 있는 갈고리, 여기저기 녹이 슬어있는 사각 식칼. 발골용 칼, 회칼 등등 여러 종류의 칼들이 놓인 정육점이 연상되었다.

“물건들은 전부 녹이 슬어있었고 하나같이 오래되어 보였어. 적어도 몇십 년은 쓰지 않은 것 같았지.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갔어. 퀴퀴한 냄새는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적응이 된 모양인지 코는 괜찮아졌어. 여기저기 수색하다가 메리가 무언가 발견했어. 바닥에 아래로 향하는 비밀 문 같은 게 있었던 거야.”

“오, 그러니까, 지하 4층?”

메리가 묻자 솔로가 대답했다.

“문을 열자 다락방 계단처럼 생긴 접이식 문이 나왔어.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어.”

“음. 제먼 공화국에서 만들었나 보지? 신뢰성 있는 제품이라는 걸 보면.”

피터가 묻자 솔로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아마 성 케르베로스 회합이 건물을 증축할 때 만들었을 테니. 최소 50년은 이전으로 잡아야 하니까.”

“그럼 제먼 왕국 시절이군.”

“계단이 멀쩡한 거야 어쨌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처음 내려간 건 로렌이었어. 로렌은 랜턴을 들어서 내부를 비췄지. 이곳은 정육점에서 고기를 저장하던 장소처럼 보였어. 오직 갈고리뿐이었거든. 로렌을 뒤따라 내려간 것은 메리의 지인 샤를 교수과 리카였어.”

‘응? 갑자기?’

갑자기 등장한 샤를과 리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설정상 그들은 그냥 ‘어떤 커플’이나 ‘피터의 지인 작가’ 정도로 등장할 줄 알았다. 그대로 갔으면 ‘메리의 지인 대학 교수와 그 제자.’ 정도로 등장할 줄 알았는데 솔로는 정확하게 그들의 이름을 말했다.

뭐 통성명 정도는 하긴 했지만, 솔로가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는 건 의외였다. 켈록, 솔로가 잔기침을 하고 말했다.

“샤를 헥센 교수님. 당신에 대해 궁금하군요.”

“탐사학부입니다. 고 헤르메스 어를 가르치고 있지요.”

“아, 그래요. 그럼 다른 직업도 있습니까?”

샤를은 잠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탐정 자격증이 있긴 합니다.”

“오, 탐정이라고?”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이건 함께 왔던 리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리카는 지금 샤를이 탐정이라고 밝히는 것을 보고 좀 놀랐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단순히 지식만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다른 기술도 익히고 있겠군요. 격투술이나 사격술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샤를 헥센이라는 인간은 격투술의 재능과 사격술의 재능 모두 가지고 있었다. 김연수는 거기 빙의해서 적응이 끝난 상태고.

“그렇죠?”

그때 솔로가 입을 열었다.

“샤를은 사실 허리춤에 리볼버를 숨기고 있었어.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해서 항상 들고 다녔거든.”

“하하. 너무 막 나가는 설정이군.”

“그래. 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다 정도니까. 인정할 게 솔로.”

다른 사람들이 농담을 듣고 웃었으나 샤를은 조금 늦게 따라 웃었다.

갑작스럽게 훅 치고 들어온 말에 샤를은 자신의 표정을 관리하려고 애를 써야만 했다. 무표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샤를은 해냈다. 어떻게 솔로가 샤를이 리볼버를 들고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냥 해본 말일지도 모르지. 내 외투에는 널찍한 부분이 있었으니 정말로 리볼버같은 것이 들어있다고 생각해봤을 수도 있어. 거기다가 탐정이라고 미리 말했으니까.’

“샤를은 혹시 모르니 로렌을 뒤따라 가면서 남들 모르게 리볼버를 언제든 발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어. 리카는 믿음직한 교수의 뒤를 무작정 따라갔지.”

리카가 약간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면서 힐끗 샤를을 바라봤다. 샤를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리카가 소리를 살짝 질렀어. 발에 무언가 걸렸거든.”

“사람들이 살짝 놀라서 그녀를 돌아보자 리카가 무안하게 말했어. 발에 무언가 걸렸다고 말이지. 로렌이 랜턴을 들어서 비춰보자 그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어. 바닥에 해골 더미들이 놓여 있었거든. 그것도 무수하게 많은 해골이.”

“와. 제발.”

피터의 지인 작가 중 한 명이 소름 돋는다는 듯 자신의 팔을 쓸었다. 그는 비위가 좀 약한 모양인지 무섭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로렌이 낄낄거리면서 말했다.

“해골이 일어난다거나 하진 않겠지?”

“물론이지. 해골은 그냥 해골이야. 로렌은 물론이고 지하 4층으로 내려갔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밟고 서 있는 곳이 해골로 이뤄진 바닥이라는 걸 드디어 깨닫게 되었어. 워낙 평평해서 몇몇은 몰랐던 거지. 이쯤에서 피터의 지인 작가 중 한 명이 말했어. 위로 돌아가자고 말이지.”

방금 반응했던 작가를 겨냥한 말이었다. 아까 팔을 쓸어내렸던 지인 작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이 그 상황에 부닥쳐있었다면 무조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칠 확률이 100%라고 얘기했다.

“만약 그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래?”

로렌은 잠깐 말하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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