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41화 (41/221)

제41화 - 에세나는 샤를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녀가 가진 힘이 상대의 정신을 깊게 살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해주는 것도, 혹은 그들을 파멸시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느낀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샤를의 지시대로 그녀가 맡게 된 첫 번째 신도이자 환자는 버나드 힙슨이었다. 20대 초중반, 덩치가 좀 컸고 인상이 강해 보였다.

버나드는 그 끔찍한 지하실에서의 일 이후 정신이 많이 망가진 상태였다. 충혈된 눈동자와 정리되지 않은 수염은 버나드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에세나는 그 외모에서 살짝 겁을 먹었다만 내색하지 않고 느긋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 그 듣자 하니 샤를님의 제자라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에세나는 자신이 몇 초전까지 그를 두려워하던 게 바보 같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맞아요. 저는 버나드의 마음에 있는 어둠을 없애주기 위해 왔어요.”

“아……. 그렇군요.”

“책은 들고 계신가요?”

“예. 있습니다.”

샤를이 새로 지었던 ‘존엄의 서’. 버나드는 이제 광명교의 성서 대신 존엄의 서를 항상 옆구리에 끼고 살았다. 거기 적힌 말은 하나같이 버나드의 마음을 치유해주었다.

“오늘은 같이 교리를 읽도록 해요.”

“어……. 그것만 해도 되는 건가요?”

“물론이죠.”

에세나는 단지 옆에서 그 남자와 함께 존엄의 서를 읽는 것밖에 하지 않았다. 특별히 초능력을 쓴 것도 아니었고 단지 같이 교서를 읽을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버나드는 치유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에세나는 그와 함께 교리를 읽으면서 자신의 영성이 버나드의 깨진 영혼을 조금씩 수복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힘을 새삼 다시 체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영적인 힘만을 사용하는 것보다 추가적으로 무언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저번에 저택에서 만났던 사람이 정신과 의사라고 했었지.’

메리 웰로드. 그녀는 지금 샤를의 저택에 사는 아이를 치료하고 있었다.

나중에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상담능력을 얻게 된다면 또 하나의 도약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샤를은 눈을 뜨자마자 먹을 것을 들고 온 플로나와 마주쳤다.

“어? 안녕하세요.”

“플로나. 좋은 아침이네.”

그러다가 샤를은 문득 플로나의 기도가 떠올랐다. 그때 아마 샤를의 머리를 달라고 했었지. 보통 사람이라면 섬뜩함을 느끼고 샤를의 내면의 김연수도 섬뜩함을 느낀다.

플로나의 일그러진 부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중증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샤를은 플로나를 더 살갑게 대해야 한다. 그게 샤를의 성격이니까.

플로나가 그간의 재무 재표를 가져왔다. 신도의 관리 내역 등등. 샤를이 AAA사와 거래를 했더라도 이런 현실적인 부분의 지표는 알고 있어야 했다. 별로 문제는 없다.

신도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하면서 재무 상태도 괜찮아 보인다.

“오늘도 강의가 있으세요?”

“음. 아니. 오늘은 제자와 만나기로 했어.”

“제자요?”

“응. 같이 고서점에 들러서 책을 사기도 할 겸?”

샤를은 재무재표를 바라보면서 말했으므로 플로나의 눈에 어리는 기이한 안광을 눈치채지 못했다. 너무 짧게 나타났다가 사라져서 사실 주의깊게 보고 있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다.

‘제자? 남자겠지? 그래 남자여야만 해.’

플로나는 마른 입술에 혀를 가져갔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플로나의 감각 필터에 이상한 게 걸렸다. 그렇기에, 평소에는 하지 않던 스토킹을 하기로 했다. 그간 제지당해왔지만, 오늘만은 리미터를 풀어버렸다.

샤를은 아침을 먹고 나서 그대로 저택 밖으로 나갔다. 제대로 은신한 플로나는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마차를 따라가는 건 보통 인간은 불가능하지만 플로나의 각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렇게 따라가던 도중 플로나는 샤를이 만나는 사람을 멀리서 지켜봤다.

“!!”

나왔다! 미스트위버 학교 교복을 입고 있다. 여자였고 거기다 왜인지 모르게 수줍게 얼굴을 붉히고 있다. 결정적으로 혼자였다.

‘데, 데, 데, 데이트?’

심장이 벌컥거리는 그때, 샤를이 만난 사람은 그의 제자인 리카 웹스였다. 그녀도 샤를이 공을 들여서 친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미안하네, 리카. 오늘 이렇게 나와달라고 해서.”

“아뇨 교수님! 사실 제가 가고 싶었거든요.”

리카 웹스는 국문학부에 다니고 있다. 샤를의 탐사학부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고 헤르메스 어에 흥미를 느껴서 샤를의 수업을 듣고 있었다.

샤를은 친해지기도 할 겸 고서점에 들리자고 말했었다. 리카는 흔쾌히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나오기로 했다.

“사실 말씀드리는 건데 이번에 가려던 블루홀 고서점은 저희 삼촌이 얼마 전에 매입한 건물이거든요.”

“아 그랬어?”

리처드 웹스의 웹스 상단은 메트로폴 내부에서 거미줄처럼 많은 영역에 뻗어 있다. 그래서 그 고서점을 인수했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네. 사실 저 혼자 가보려고 했었는데 시간이 안 나서 좀 미루고 있었는데 마침 교수님이 가자고 하셨으니 저야 좋죠.”

블루홀 고서점은 신비학에 관련된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있는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다. 샤를의 초반 단골 파밍 루트로 그곳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그 책들의 가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방치해 둔 상태다.

그래서 소소하게 용돈도 벌 겸 주문서도 찾을 겸 고서점에 들릴 생각이었다.

블루홀 고서점은 대학에서 조금 떨어진 라페르테 거리에 있었다. 라페르테 거리는 도시 북동쪽의 학술의 거리였다.

미스트위버 대학은 라페르테 거리에서도 살짝 치우친 서쪽에 언덕처럼 올라온 곳에 있어서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다.

대학 입구에서 부터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여서 둘은 마차를 타지 않고 걷기로 했다.

리카 웹스는 발랄한 성격이었다. 대학을 나와서 함께 걷는 중에 그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합치자면 A4용지 5장은 할애해야 할 것이었다. 말소리가 빨랐지만 보통 그런 것은 아닌 듯했다.

그 둘이 나란히 걸으면서 얘기를 하고 있는 도중 샤를은 넓어진 영적 감각으로 그 뒤를 쫓아오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누구지? 내 모습을 들킨 적이 없는데. 점술 방비도 제대로 하고 있……. 아.’

이 서늘한 감각. 샤를은 상대가 플로나라는 것을 알아챘다.

‘뭐, 뭐야? 스토킹이야? 쉣.’

플로나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조심하지 않으면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샤를이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 동안 리카 웹스는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오늘은 교수님하고 좀 더 진전이 있을 것 같아. 일단 고서점에서 얘기하다가 디저트 카페에 가자고 해야지. 교수님은 단 음식을 좋아하신다고 했으니까. 그런 다음 공원을 산책하는 거야. 그리고 기회를 틈타 스킨 십을…….’

라페르테 거리 10호부터 20호는 도서관이나 서점등이 있는 거리였다. 블루홀 고서점은 이곳에 있었다.

눈앞에 고서점이 보이자 리카는 아쉬운 마음이 든 상태로 안에 들어갔다. 좀 더 걸으면서 얘기하고 싶었는데.

고서점 내부는 텁텁하고 퀴퀴한 오래 묵은 책 특유의 공기를 내뿜었다. 책들은 창고처럼 놓여있지는 않았고 마치 평범한 서점처럼 정리되어 있었다.

완벽한 정리는 아닌 듯 살짝 눈을 돌려서 책장들 사이를 살펴보자 목차별로 정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구난방으로 들어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게 최선이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역력하게 든다.

“안녕하세요. 모이크씨.”

“아, 어서오세요. 아가씨.”

리카는 파이프를 물고 있는 뚱뚱한 한 노인과 인사를 나누었다. 노인의 외모는 추레했지만 학자 특유의 현묘함이 깃들어 있었다.

“고서를 구경하러 왔는데요.”

“예. 원하시는 걸 찾아보시죠, 아가씨.”

“딱히 원하는 건 없는데 그냥 둘러봐도 되나요?”

“그럼요.”

리카와 샤를은 그때부터 고서점을 뒤지기 시작했다. 리카는 오늘의 데이트를 진전시키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고서의 바다를 보자마자 어느새 고서적에 빠져버렸다. 이런저런 책들이 보인다.

“와 이 책은 17세기에 쓰였던 앙뜨 모르와의 수필 ‘북풍의 언덕’이잖아……?”

샤를에게 더 질척대면 얌전히 사양하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고서점에 들어오자마자 리카가 책의 세계에 푹 빠진 것이 느껴졌다.

샤를의 영성이 근처에 무언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깊은 책의 바다 속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가로수처럼 자라 있는 책장은 각자 동떨어진 채 조각난 파편의 형식이더라도 하나하나가 질곡의 역사의 증인이었다.

정돈되지 않은 수많은 문학 서적과 수필, 역사서들 사이로 지나가자 책을 갉아 먹는 한 마리 책벌레가 된 것 같았다.

여기 있는 모든 책 하나하나가 읽어보면 대량의 정보를 포함하고 있었다. 아무 책이나 하나 꺼내서 읽어보자 글을 쓴 글쓴이의 의도와 시대 상황, 생각과 철학까지 느낄 수 있었다.

작은 종이 뭉치들이 가진 시간의 흐름에 압도된 샤를은 여기저기를 뒤지면서 책 몇 가지를 꺼내 서간하다가 드디어 원하던 것을 발견했다.

붉은색 가름끈 말고는 별 특징 없는 책.

[혈주찬상(血珠讚賞)의 가호]

주문서였다. 이건 헬파이어 클럽이 믿고 있는 신, 혈주찬상의 것이다.

‘4대 악신의 주문이잖아. 내가 썼다간 큰일이 나겠지.’

4대 악신은 지금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악한 신들이었다. 그들은 깨어나 있고 물리 세계에 현신하지는 못하지만 물리 세계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샤를이 그들의 주문을 쓰게 되면 이목을 끌게 된다. 교단의 교주인 그가 이목을 끈다는 건 결코 원치 않는 일이니 이 물건은 판매용으로 넣어야 했다.

그렇다고 이게 구린 물건은 아니다. 경매장에 팔아치우면 뭣해도 저택만큼의 대금을 받을 수 있을 거다.

헐값에 사서 비싸게 파는 것. 그게 보물 찾기지.

일단 책 하나를 고른 것에 만족한 샤를은 시간이 꽤 지난 걸 깨달았다. 영적인 감각을 따라서 물건을 찾는 건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쯤에서 만족하고 계산하려고 조금 전에 봤던 파이프를 물고 있는 노인, 모이크에게 다가갔다.

모이크의 앞에는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놓여있었다.

“오, 아가씨의 친구분. 당신도 계산하시겠습니까?”

“샤를 헥센입니다. 샤를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이 책 하나면 충분할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샤를 씨. 가격은 5파운드입니다.”

“모이크 아저씨 여기 책 더 있어요!”

발랄한 목소리는 리카인데 둔중한 발걸음이 나무 바닥에 부딪히는 게 느껴져서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리던 차, 리카가 책을 무슨 산더미처럼 쌓아서 가져오고 있었다.

샤를이 당황해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계산대 앞에 쿵 하고 책을 놓았다. 자연스럽게 모이크의 앞에 있던 많은 책은 전부 리카가 가져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친구가 아니라 교수님이에요.”

“아. 이거 실례 했습니다. 너무 젊어보이셔서 그만. 허허.”

모이크는 눈짓으로 바라보는 게 도둑놈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아니, 그다지 나이 차이는 안 나는데.

“교수님은 무슨 책을 사셨어요?”

“그냥 문학 서적을 하나.”

리카는 샤를의 혈주찬상을 보고도 그냥 고개만 갸웃할 뿐이었다. 이것으로 그녀가 신비학과 전혀 연관되지 않은 게 밝혀졌다.

‘음. 역시 그렇군. 리카 웹스는 일반인이야.’

웹스 가문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지만 리카만큼은 일반인인 것 같다. 그녀는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모이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언부 배달해주세요!”

“하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빠르게 리카가 놓은 책들을 살폈다. 영성이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주문서는 하나도 없었다. 주문을 끝내고 나가려는 차에, 리카가 고서점 입구 문턱을 넘다가 발이 걸려 넘어졌다.

“아앗.”

샤를은 빠르게 넘어지는 리카를 부축해줬다.

“조심해. 문턱이 조금 높네.”

“네에…….”

이 순간 리카는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샤를만큼은 어디선가 날아오는 서늘한 살기를 느끼고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아직도 스토킹 중인 거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