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 렘 노인의 첫째 제자는 에이브라함. 그는 대제자라고 불렸으며 렘 노인에게서 가장 많은 비술을 배운 초월자였다.
그 힘은 실로 거대해서 홀로 거대한 사막을 비옥한 옥토로 바꿀 수 있을 정도였다. 석판을 얻기 전에도 그랬으니 석판을 얻고 난 뒤에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녔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두 번째 제자의 이름은 마쉬.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죽을 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거대한 배를 타고 돌아다니기를 즐겼으며 심해 깊은 곳까지 잠수해 바다 속의 문명을 건설한다.
세 번째 제자의 이름은 오스굿. 그녀는 남대륙에 도착해 미개한 원시인이었던 인간들에게 문명을 나눠주고 자신만의 세력을 건설했다.
그리고 네 번째 제자는 사이먼. 사이먼은 매우 교활한 속내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렘에게 순종하는 듯했으나 이윽고 마지막 승천의 날에 렘의 뒤를 찌르고 이계 저 너머로 도망쳤다.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다섯 번째 제자는 크래프트. 이 남자는 평소에도 말이 없으며 조용히 사색에 잠기는 학자 타입의 남자였다. 별의 운행을 읽거나 수학에 대해 공부하는 등 세계의 진리를 파악하고 싶어 했다.
여섯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직 석판 조각의 개수가 모자란 듯했다.
노인이 계시의 석판으로 양손을 뻗자 계시의 석판은 엄청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때, 예정대로 사이먼이 노인에게 다가와 단검으로 그를 찔렀다.
노인은 그 배신에 무어라 말했는데 자세한 것은 들리지 않았다. 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름 뿐이었다.
“사이먼!”
사이먼라고 불린 제자의 눈에는 거대하고 이질적인 어둠이 서려 있었다. 그가 말했다.
“너희 멍청이들은 정말 그딴 식으로 이 석판을 사용할 생각인가? 스승부터 시작해서 하나같이 정신머리가 빠졌군! 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이런 식으로 날려버린다고?”
나머지 제자들은 사이먼이라고 불린 남자를 막으려 했지만, 사이먼이 더 빨랐다. 그가 손을 뻗자 계시의 석판이 산산조각 났다.
이때 샤를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정보를 얻었는데 사이먼이 손을 뻗자 아주 사악하고 검고 어두운 기운이 뿜어져 나와서 위대한 석판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그리고 그 석판 조각 중 하나를 낼름 집어삼키는 것이 보였다.
‘사이먼의 손에는 사이먼조차 통제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깃들어 있었어. 어쩌면 사이먼은 그것에 조종당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알고서 이용하는 걸까?’
샤를은 이후 진행되는 전개를 살폈다. 나머지 전개는 똑같았으나 샤를은 마쉬의 흔적을 알 수 있었다.
에이브라함과 가장 가까웠던 사람은 마쉬였다. 그리고 그는 대양을 떠돌아다니면서 살았는데 여기 있던 여섯 제자 중 그 누구보다 육욕에 충실한 사내였다.
그래서 여기저기 씨를 뿌리고는 책임도 지지 않고 그냥 나 몰라라 했던 것 같다. 모든 대양과 모든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씨를 뿌렸으니 어디에도 그의 후손이 있을 수도 있다. 환장할 노릇이다.
‘추적 자체가 어렵겠는데. 마쉬의 본가가 아니더라도, 길 가던 주정뱅이의 정신에도 석판이 있을 수 있으니까. 아, 아니지. 석판이 정신에 깃들면 적어도 평범한 인간은 아닐 거야.’
환상에서 별 소득을 얻지 못한 샤를은 깨어난 뒤에 혀를 찼다.
마쉬의 석판은 어디서 회수할 수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사이먼은 이계로 달아나버려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또 한 명의 제자 오스굿은 남대륙에 있다.
크래프트에 관해서는 이 게임의 고인물이었던 샤를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고, 여섯째 제자는 어둠 속에 파묻혀서 정보가 없다.
‘당장 얻을 만한 석판이 안 보이잖아!’
마쉬의 정보는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마쉬의 자식 중 누군가가 석판 조각을 계승했는지 확인하려면 샤를이 직접 대면하는 수밖에 없다. 나중에 석판 조각이 여럿 더 모여서 샤를의 능력이 더 강해 진다면 다른 방법도 생길 것 같지만 지금으로선 그 수밖에 없다.
혹시 마쉬가 건설했다던 심해 속의 문명을 찾을 수 있게 된다면 혹시 또 모를지도. 하지만 메트로폴 밖으로 나가는 건 어렵다.
샤를은 수많은 게임 동안 메트로폴 내부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메트로폴 이외의 지역은 그냥 대략적인 정보로만 알고 있었다. 실제 가본 적은 없다는 것.
나간 도중에 메트로폴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컨트롤도 해야 했으니까.
샤를은 앞으로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했다.
첫 번째, 이제 곧 있으면 깨어날 나머지 교주들에 대한 2차 봉인. 그리고 메트로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수단.
‘역시 그것밖에 없겠지.’
샤를은 이 도시의 지하에 있는 그 유적을 떠올리고 있었다. 다만 아직은 문제가 좀 있다. 실 소유주와 단판을 내야 한다는 점일까.
샤를은 손을 들었다. 방금까지 봤던 건 석판을 얻을 때 봣었던 과거의 환상을 재탕한 것에 불과했고 지금부터 사용할 것은 샤를이 얻은 능력이었다.
“오너라.”
샤를의 손끝에 심상 세계 한쪽을 갈랐다. 공간이 갈라져 나간 듯한 그 어마어마한 흔적을 통해 상처가 드러나면서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무언가가 열렸다.
두 번째 석판을 얻으면서 샤를은 자율적으로 심상 세계를 가를 수 있게 되었다. 무슨 말이냐면, 심상 세계를 통해서 이계나 현실과 부분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샤를은 이계에서 정신체로 이뤄진 무언가를 심상 세계에 소환할 생각이었다. 이계에서 신앙 보조를 업으로 삼는 회사다. 좀 표현이 이상한데. 신앙을 보조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니?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이계는 엄청나게 넓고 현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미치광이들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샤를처럼 신의 힘을 손에 넣고 싶어 하는 괴물들도 많다.
그런 괴물들을 ‘보조 및 지원’하면서 그 콩고물을 얻어먹으려 하는 존재가 모여서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지금 샤를이 부르려는 건 그런 존재들이었다.
일전에 이 세계가 게임이었을 때도 샤를은 그런 존재들과 하나하나 계약을 맺었었다. 그중에 마음에 드는 회사를 찾기 위해 여러 번 갈아치우기도 했었다.
샤를은 공간 저 너머에서 샤를의 부름을 받고 응하는 존재를 느꼈다. 그 존재는 육체를 이계에 내버려두고 정신만 이쪽으로 향했다.
‘음. 정확히는 정신을 옮기는 게 아니라 정보를 옮기고 있군. 머리가 좋아.’
상대가 누군지 모르니 일종의 메시지만 주고 받을 수 있는 영역을 연 것이었다. 아무 대비 없이 영혼만 딸랑 갔다가는 그 존재에게 영혼을 저당잡힐 지도 모르니까.
어쨌든 그 메시지가 샤를의 시스템과 연동되더니 아예 그의 눈앞으로 시스템 창이 떴다.
[신도 관리 시스템]
[교주님! 우리 ‘신도 관리 시스템 AAA’를 불러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요!]
웃기는 이름이었지만 샤를은 일부러 이 녀석들을 골랐다. 이놈들은 일 잘하기로 이계에서 꽤 유명했다. 그리고 게임이던 시절 다른 회사들과도 계약해봤는데 이 녀석들이 제일 나았다.
[저희 시스템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동적인 신도 관리 시스템이 있습니다요. 신도 하나하나를 케어해주는 능력이죠. 거기다 확실한 신도 착취시스템을 보유! 신도에게 어떤 우연적인 일들을 통해서 깊은 신앙심을 얻게 될 확률을 대폭 상승시키며 원하는 방식으로 신도를 갈갈해 버릴 수도 있게 해드리는 만능 엔터테인먼트입니다요! 채용 보너스 기간으로 행운 수치를 1 증가시켜드립니다요. 찡긋.]
“가격.”
[매달 50테트라에 해당하는 영성…….]
음? 애초에 샤를과 같은 신위를 가지고 있는 존재와 계약만 하더라도 오고 가는 신앙의 수수료를 통해서 어마어마한 이득을 볼 놈들이 매달 영성까지 받아 처먹어?
“잘 가.”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농담이었죠. 회원님 같은 분은 수백 년 만에 처음이라 말이 헛나왔군요! 당연히 계약에 관해서는 가격이 필요 없습니다.]
“당연하지 계약하면서 수수료로 받아먹을 게 얼만데 그치?”
[그 수수료는…….]
“그치?”
[수, 수수료는 10%로…….]
“아 혹시 너희 경쟁사…….”
[물론 1%로 해드리겠습니다.]
“음. 생각해보니 너희를 고용하는 게 좋은 것 같네.”
[정말 훌륭한 선택이십니다. 저 아브카한 부장은 고객님의 편안한 신앙 라이프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이 한 몸을 바치겠습니다. 자, 여기 계약서가 있습니다요.]
‘부장급이었군…….’
어찌 됐건, 샤를은 AAA사와 계약을 맺었다. 별건 없었다. 샤를이 가진 신앙을 수집, 이송, 보관, 가공을 위탁하여 일하게 대체하는 시스템이었다. 샤를이 제대로 된 신으로 성장하면 놈들도 어마어마한 이득을 얻게 된다.
계약 내용은 이렇다. 샤를은 자신의 신앙을 이동할 수 있는 권한을 AAA사에게 준다. 그리고 AAA사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샤를이 하는 대신 그들이 잘 처리한다. 당연하게도 이들을 이용하는 게 앞으로의 관리를 위해서 더 편하다.
“자, 그럼 도표 좀 보여줄래.”
[물론이지요! 현재 샤를님의 신앙을 인수 받아서 정보를 정리 중입니다.]
잠시 뒤에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시스템 창이 늘어났다.
[현재 신앙심 : 1333테트라]
[내정(13/100) 현재 집회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도들에게 더 다양한 영적 서비스를 제공(?)하여 교주님의 위엄을 널리 알리세요!]
[내정 기술 – 숨막히는 십일조(비활성화),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비활성화),]
[인사(人士)(10/100) 교단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뭘까요? 바로 신도입니다! 그러나 저런. 상당한 인력 손실이 보입니다. 어서 보충하세요! 신도가 모일수록 교주님은 더 강해집니다!]
[인사 기술 – 계몽의 빛, 교단의 소문, 신도의 제자 승급, 뒷동산 제자 모임(비활성화),]
[신위(神威)(10/100) 위엄은 바로 교주님의 모든 것입니다! 교주님이야말로 살아있는 신 그 자체! 이것을 믿지 않은 자는 모두 잿더미가 되리라! 불신자에게 회개를! 이단자에게 죽음을!]
[신위 기술 – 그분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셨어!(비활성화), 참회의 채찍(비활성화), 교주님 축지법 쓰신다!(비활성화), 신앙의 힘을 쬐끔만 맛봐라(비활성화)]
[지금 제공해드릴 수 있는 서비스는 이 정도군요!]
“서비스의 이름이 하나같이 나사가 빠진 것 같다만.”
[어떻게 그렇게 섭섭하신 소리를. 신앙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은 우리 회사만큼 정통한 곳이 또 없습니다요.]
“비활성화된 것들은 뭐지?”
[신앙심 수치가 모자랍니다요. 쬐끔만 올리면 될 것 같슴다.]
잡다한 기술들에 관해서는 나중에 토글해서 읽어보도록 하고 샤를은 일단 아브카한 부장의 정보체를 이계로 돌려보냈다. 이걸로 신앙을 컨트롤할 기틀이 마련된 셈이었다.
아직도 밤하늘의 별들은 매일매일 반짝이고 있었다. 언젠가 저걸 제대로 활용할 날이 올 거다. 샤를은 눈을 떠서 심상 세계를 빠져 나왔다.
*
샤를은 에세나의 수업을 거의 끝냈다. 제자로써의 생각이나 능력을 개화하는 법 등이라고 할까.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네, 감사합니다. 교주님.”
“후후. 오늘은 플로나가 쿠키를 좀 구웠어.”
“정말요? 언니의 쿠키는 언제나 맛있어요.”
샤를의 강의가 끝난 뒤에 에세나는 플로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첫 번째 제자였지만 그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고 따뜻하게 대해줬기 때문에 에세나는 플로나를 상당히 좋아했다.
샤를은 쿠키를 가져온 플로나를 보면서 헤실헤실 웃는 에세나를 보면서 그녀의 내면의 위험함을 주시하고 있었다. 에세나는 본능적으로 위험한 것에 끌렸다. 그래서 더욱 잘 제어해야했다.
에세나의 특수 능력인 심리의 씨앗은 그녀의 영성을 이용하는 능력이었다. 아직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것 같지만 샤를이 없는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단단히 주의하고 있었다.
“네가 제일 먼저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다.”
“누구에요?”
“버나드 힙슨. 경찰국에 있는 경사지. 이전까지는 광명교를 믿고 있었다.”
“네.”
“그의 마음에 있는 불안감을 덜어주는 것을 도와주도록 해라. 그게 네가 맡을 첫 번째 임무란다.”
“재밌겠네요! 제가 해볼게요.”
팔뚝을 걷어붙이면서 말하는 에세나는 꽤 믿음직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