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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38화 (38/221)

제38화 - 메리 웰로드는 핸섬 마차를 타고 처음 보는 저택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가는 길에 린덴 가문의 저택 앞에 마차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녀가 항상 가던 린덴 가문은 가주 내외가 실종되면서 집안이 풍비박살 났다.

꽤 유명한 독지가이기도 했던 린덴 가문의 사람들이 실종되자마자 그 머나먼 친척들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찾아와서, 벌떼같이 달려들어 유산 상속에 관해서 이리저리 떠들어댔다.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드는 기자들, 변호사 수십 명이 저택을 돌아다니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그중 누가 유산을 상속하더라도 저택에 있는 고아원에 아이들은 죄다 내쫓겨질 운명은 자명했다.

메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그 저택에 딸린 고아원에 가서 일하는 건 자원봉사가 아니었다. 일단 임금을 받기도 했고 아이들의 정신병에 관해서 더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마도 고아원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일 뻔했다. 그래도 중요 연구대상인 한 아이는 좋은 곳으로 가서 다행이었다. 그쪽 저택의 주인은 아이의 정신적인 치료에 충분히 돈을 낼 수 있는 재력을 갖고 있었다.

저택 앞에서 마차를 내렸다. 메트로폴 교외에 있어서 그런지 꽤 큰 집이었다. 도시 내부에 있는 저택은 사실 고급스럽고 비싸긴 해도 이 집보단 작았다.

문 앞에 웬 소녀와 마주친 것은 그때였다. 아직 성인은 아니거나 갓 성인이 된 것 같은 외모였다. 소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인사를 걸어오자 메리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소녀는 친근하게 웃으면서 물어봤다.

“저택에는 무슨 일이세요?”

“아, 저택의 주인과 만나려고 왔는데 실례지만 그쪽은 누구시죠?”

“아, 제 이름을 말씀 안 드렸네요. 저는 에세나 플라크에요. 에세나라고 불러주세요.”

희미하게 웃고 있는 에세나를 보면서 메리는 이유 모를 안심이 들었다. 가볍게 악수하자 에세나가 말을 이었다.

“이 저택의 주인님이 제 스승님이거든요.”

“아, 스승……?”

메리는 저택의 주인이 꽤나 젊지만, 직업이 교수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도 명문 미스트위버 대학의. 젊은데도 벌써 교수라니, 메리는 자신이 그 나이 때에는 뭘 하고 있었는지 생각했다.

집사 제이큰이 다가와서 두 여성을 저택으로 안내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두 분이 한꺼번에 오셨군요.”

제이큰은 능숙하게 우선순위를 생각했다. 에세나를 응접실 앞 대기실에 잠시 앉혀두고는 메리부터 안으로 들여보냈다.

샤를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는 신사였다. 메리는 자신의 살인적인 업무량이 없었다면 데이트를 신청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왠지 어디선가 오한이 느껴져서 눈동자를 돌려 주변을 돌아봤지만, 이상한 건 찾을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저번에 뵙고 처음 뵙네요.”

“어서오세요.”

정확히 말하면 세 번째 만남이었다.

샤를은 싱긋 웃었다. 저택에서 메리와 마주쳤을 때의 기억은 최면으로 지웠기 때문에 그 다음번에 모리의 정신과 치료를 위해서 한 번 만나서 인사를 한 적이 있었다.

“모리는 잘 있나요?”

“네. 여전히 밥도 안 먹고 하루의 대부분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데 쏟고 있지만요.”

샤를은 모리에게는 최면을 걸지 않았다. 대신 그 아이에게 선택권을 줬다. 그대로 계속 이 저택에 남아있겠느냐, 아니면 샤를 자신을 따라서 가겠느냐고 물었을 때, 모리는 바이올린의 현을 왼손에 잡고는 오른손으로 샤를의 손을 잡았다.

그 뒤로 샤를은 이 아이를 자신의 저택으로 데려와서 기르기로 했다. 양아들로 입양한 건 아니었고 일종의 대부(代父) 역할을 하기로 했다. 후견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이의 치료는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음번에는 저택에 제가 없더라도 모리의 치료를 맡아 주세요.”

“물론이죠.”

봉급이라던가 얼마의 주기로 와서 진료하느냐 등등의 세부 사항을 메리와 논의 했다. 메리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가자 에세나가 들어왔다.

“저 여자는 누구에요?”

“모리의 치료를 도와줄 정신과 의사야.”

“헤에. 정신과 의사구나. 그런 건 처음 들어봐요.”

“너도 할 수 있어. 오히려 저 의사보다 더 잘하게 될 거야.”

상태창으로 봤을 때, 에세나는 강한 정신적 능력을 보유한 데다가 이능력 계열도 정신 쪽으로 발달했다. 그러다가 문득 에세나가 메리에게서 상담과 같은 능력을 배운다면 어떨까 싶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상담이라. 음. 괜찮은 것 같은데요.”

“그건 조금 있다가 생각하자 꾸나. 떠나기 전에 잠깐 만나서 내가 얘기를 전달해줄 테니. 오늘은 영성의 수업이 있다.”

“네!”

에세나는 양손으로 주먹을 쥐면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이 수업에 제일 신이 난 것은 바로 에세나였다. 세례를 받은 이후로 영성을 각성한 에세나는 이제 초보 영성자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직 플로나의 수준에 도달하는 것도 한참 멀었지만 에세나는 굉장한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오늘은 주문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드디어 군요!”

상태창이 있어서 제자의 잠재성이 어느 방향으로 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샤를은 그쪽의 특화를 위해서 가르칠 수 있었다.

“주문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고 헤르메스 어에 관해서 통달해야 한다. 대부분의 주문은 고 헤르메스 어로 이뤄져 있으니까.”

“네에?”

“고 헤르메스 어로 이뤄지지 않은 주문이라도 고 헤르메스 어로 번역해서 쓸 수 있기도 하지.”

“그럼 거의 무조건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샤를이 씨익 웃었다. 당연한 소릴. 그는 톨키니스트들이 반지의 제X에 나오는 엘프어를 직접 익힌다고 하듯이 고 헤르메스어를 완전히 익혀버렸다. 그것도 아주 능숙해서 현실에 있었을 때도 종종 사용하곤 했다.

영어도 완벽하게 할 줄 모르는데 제2외국어로 고 헤르메스어를 통달한 셈. 그 덕에 교수가 되어서 마치 게임 언어 가르친다는 느낌으로 학생들에게 가리키곤 했다.

샤를은 그 뒤로 에세나를 가르쳤다. 제자를 쓸만하게 가르치는 건 여러 번 해본 일이었다. 차라리 에세나를 그의 대학에 입학시킬까 생각하던 중에 또 새로운 방문객이 왔다.

“주인님, 새로운 손님이 오셨습니다. 저번에 말씀 드렸던 와인 사업에 관해서입니다.”

“그래? 응접실로 보내줘.”

“알겠습니다.”

“에세나,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인 것 같구나.”

“네에.”

에세나와 헤어진 샤를은 응접실로 향했다. 제이큰의 소개로 와인 전문가가 왔다. 응접실에 앉자 처음 보는 사람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베르나르도 프로벤짜노라고 합니다. 이탈리 왕국에서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샤를 헥센입니다.”

자색 줄무늬가 인상적인 검은 정장을 걸친 멀끔하게 생긴 남자였다. 덩치가 크고 근육이 잘 발달한 게 어디 가서 레슬링 선수라고 해도 믿을 법했다. 외국인인 것이 확실한 듯 피부가 갈색이었고 머리카락은 곱슬이었다.

“하하. 디노라고 불러주십시오. 와인 사업에 관심이 많으시다고 하시던데 맞습니까?”

“그렇죠. 저는 많지는 않지만, 포도밭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태까지는 그냥 팔아왔지만 그걸 와인으로 만들어 팔 생각입니다.”

“많지 않다뇨. 후후. 메트로폴 교외에 상당한 양의 포도밭을 가진 분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이번에 사업을 기획하면서 샤를도 몇 가지 제이큰에게 배웠는데 샤를의 포도밭에서 나는 1년 순수익만 해도 연 100만 파운드 정도 된다고 했다. 저택을 유지하고 꽤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 만큼은 받는다.

그런데도 샤를은 진짜 부자들에게는 명함도 못내미는 수준이었다. 선데이크 거리의 빈민 노동자들이 주급 5~7파운드를 받는 걸 생각하면 이 시대의 빈부격차는 끔찍하게 컸다.

……이러니 공산주의가 생기지.

“겸손한 척하시는 겁니까? 다른 농장주들이 웃겠습니다. 하하하!”

목소리의 내면에는 날카로운 냉소가 깃들어 있었다. 샤를이 눈을 잠깐 미묘하게 뜨자 디노는 곧 표정을 바꾸면서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좀 말투가 날카로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겁을 내는데? 뭐지? 뭘 두려워하는 거지?’

샤를은 상대의 말투에서 미묘함을 느끼고 물었다.

“사업가라고 들었습니다만?”

“예. 주로 와이너리를 설립하는데, 영향을 끼치고 있죠. 저희 본토 이탈리를 비롯해 여러 나라의 포도들과 그 기후에 맞는 새로운 와인을 제조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죠. 마침 투자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메트로폴에서는 샤를님을 처음 만나는군요.”

샤를은 그를 탐색했다. 그가 사기꾼일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였다.

‘눈동자에는 단호함이 보여.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군. 그리고 부자에 관해서 기본적인 혐오감이 얼마 있어. 그리고 그의 표정에서 미약한 불안감이 보여. 이게 먹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 거짓말일까? 아냐.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군. 사기꾼은 아니지만 뭔가 감추고 있어.’

샤를은 그를 더 파악하기 위해 물었다.

“외국에서 투자자를 찾습니까?”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저는 수완이 좋아, 여러 곳에서 와이너리 사업을 합니다. 각국에서 따로 투자자를 받아서…….”

“메트로폴에서 처음 나를 만났다는 말은 거짓말이군요.”

그의 말을 끊고 샤를이 얘기하자 디노는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알고 계셨던 겁니까?”

“아니요. 당신의 표정에서 알았습니다.”

디노는 당황스럽게 자신의 얼굴을 만져댔지만 뭐 그런 것 가지고 해결할 수는 없었다. 샤를의 꿰뚫어 보는 눈빛은 신체와 모든 움직임에서 그 뜻을 읽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채취나 옷에 묻은 미묘한 흙에서도 단서를 얻는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저는 메트로폴에서 여러 포도 농장주를 찾아가 봤지만 하나같이 거절하더군요. 제가 외국인인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몇몇 메트로폴의 와이너리들은 제가 이곳에 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더군요.”

“왜 그렇습니까?”

“제가 좀 척을 진 사람이 많습니다.”

거짓말을 못 하는 걸 보니 알 것 같았다. 디노는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화법 때문에 와인 업계의 여러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것 같다.

“구체적으론, 메트로폴의 와인 업계를 꽉 잡고 있는 리처드 웹스 때문입니다.”

“웹스?”

웹스? 리카의 삼촌인 리처드 웹스를 말하는 건가. 웹스 상단의 주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와인 업계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

그와 대화를 마치고 나서 디노에게는 며칠 뒤에 다시 오라고 전했다. 그가 떠난 뒤에 제이큰과 대화를 했다.

“저 사람 어때?”

“꽤 유명한 와인 업계의 사업가입니다. 본인의 양조 실력도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죠. 이탈리 일대에서는 굉장한 실적을 달성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외국으로 왔다? 짐작이 가네.”

이유는 뻔했다. 동종 업계에서 배척당했거나 혹은 믿던 사람에게 발등이 찍혔거나.

“같이 사업을 하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하더군요. 가진 걸 모두 잃고 여태 키워왔던 와이너리의 소유권까지 모두 빼앗겼다고 합니다. 디노의 화법 때문에 평소부터 감정이 안 좋았다고 합니다.”

“그럴 것 같더군.”

디노는 본국에서 자신의 화법에 크게 데인 적이 있다. 맨 처음에 샤를의 표정이 달라진 것에 사과한 것은 디노의 내면에 있는 어떤 두려움이 현실화된 것의 결과일 것이다.

‘스스로도 자신을 고치려고 하고 싶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아 두려운 거였군.’

그의 두려움을 알았으니 상대하는 건 편하다. 거기다 웹스의 경우 어쩌면 상대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카 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물론 설득할 다른 비책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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