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 “어서 오세요.”
에브렌 린덴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기이할 정도로 감정이 결여되어 있었다. 자신의 것인데도 마치 남의 근육을 쥐어 짜내는 듯한 모습.
“다른 영성자가 우리 집안의 일에 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하군요.”
“댁에겐 여러모로 구린 부분이 많아서 말이지.”
“어디서부터 눈치챘습니까?”
샤를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첫째. 제임스 린덴, 프랑코 왕국으로 유학 중. 둘째 에반 린덴, 인시그니아에 거주. 셋째 도노반 린덴, 시뮬리아 공화국으로 이민……. 넷째 세릴다 린덴이 끔찍한 형태로 죽었는데 다른 형제자매는 별로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의심해볼 만하지.”
“…….”
“아이들을 자기 자식으로 입양한 다음……. 대체 뭘 하는 거지?”
“그게 궁금한가요? 당신과는 아무 상관 없잖아요?”
샤를은 한숨을 쉬었다.
“댁이 사악한 의식을 벌이면 수습하는 건 나란 말이지.”
“호호. 이 세계의 수호자라도 되나요? 내가 내 돈 주고 산 내 저택에서 내가 기른 아이들로 무슨 짓을 벌이든 당신과는 관계가 없어요.”
“그거 학대하는 엄마의 전형적인 패턴 아니야? 인간은 물건이 아니라고.”
“말이 안 통하네요. 자, 모리. 저 이상한 아저씨한테서 벗어나렴.”
모리라는 아이는 거의 백치였는데 움직일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던 때 에브렌 린덴의 뒤에서 기이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바이올린 소리가 울리자 모리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샤를의 품에서 벗어나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제지하려다가, 샤를은 멈췄다.
입구에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미친 듯이 들렸다. 거기다 바닥으로 쥐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쥐와 까마귀 들은 각자 앞뒤에서 샤를을 포위했다.
-와! 주인 이거, 전부 사역마야?
-그건 아닌 것 같아.
자세히 보니 쥐 중에 덩치가 큰 놈들이 하나씩 보였다. 그놈들이 일종의 리더 역할을 해서 나머지 쥐들을 통솔하는 것이었다. 그놈만 처리하면 된다.
샤를의 손끝에서 불길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이제 곧……이야. 이제 곧.”
지하로 내려가던 에브렌 린덴이 모리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래, 너무 오래 걸렸다. 그녀의 남편, 도어 린덴이 지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붕대로 전신을 칭칭 감고 있었다. 그는 모리와 에브렌 린덴을 보자마자 켜고 있던 바이올린을 내려놓았다. 모리가 웅얼거리면서 바이올린에 손을 뻗자 도어 린덴은 바이올린을 건네주었지만, 활은 본인이 가지고 있었다.
“이 아이도 소중한가?”
“물론이죠. 세릴다 만큼이나 소중한 아이에요.”
“……그렇군.”
도어 린덴은 자신의 얼굴에 감았던 붕대를 벗었다. 그러자 기이한 외모가 드러났다. 평범한 중년인이었던 도어 린덴의 얼굴은 보라색과 진갈색이 섞인 피부층으로 나뉘어 있었고 눈은 여덟 개에 입은 없었다.
아무리봐도 인간과 닮은 부분은 없었다. 에브렌은 남편의 진면목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가 린덴 가에 데릴사위로 들어올 때부터 그가 이계에서 온, 메시에 인(人)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니까. 모리는 도어 린덴의 얼굴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고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혐오도 증오도 보이지 않는군.”
“깨끗한 아이니까요.”
“애석하구나. 내 진짜 모습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는 드문데. 대신 네가 좋아하는 바이올린은 항상 옆에 두마.”
도어 린덴은 모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리는 현을 달라고 손짓을 했지만 도어는 일부러 무시하면서 모리를 데리고 뒤쪽의 제단으로 향했다. 제단에는 다섯 개의 간이식 침상이 있었고 그 위에 사람들이 놓여 있었다.
그곳의 한 곳에 눕혀둔 다음 도어 린덴은 그대로 모리를 눕혔다. 움직이려고 하는 모리의 눈을 마주쳐서 그의 몸을 마비시키자 모리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정신에 간섭해 신체의 속박하는 간단한 능력이었다.
나중에 그의 정신 세계에 접속해서 가장 잔혹하고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면서 죽일 셈이었다. 의식에서 요구하는 부정적 에너지를 뽑아내려면 어쩔 수가 없다.
죽은 모리의 옆에 누워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들이 자식처럼 길렀던 아이들로 샤를이 말했던 모든 인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에브렌 린덴은 그들의 중앙에 있는 작은 상자를 향해 다가간 다음. 아주 조심스럽게 상자를 끌어안았다. 그 안에는 신생아의 백골이 들어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도어 린덴은 의식 집전을 위해 마도서를 꺼냈다. ‘사자소생의 서 1권.’ 조각구원회라는 조직과 거래한 끝에 아주 어렵게 얻은 물건이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준비해왔던 모든 희귀하고 값비싼 비밀 세계의 재료들을 꺼내서 정확히 배치했다.
도어 린덴이 집전을 준비하는 동안 그녀는 과거를 회상했다.
그날도 비가 오는 날이었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전이었다. 원치 않은 아이를 가졌다. 남편은 누구인지도 모른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었으니까.
에브렌은 자신이 낳은 아이를 싫어했다. 그녀의 부모처럼 자식을 학대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막 태어난 그 아이의 얼굴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누구보다 더 알뜰하게 보살피려고 했다. 하지만 에브렌은 절망했다. 아이는 오래 살지 못했다. 선천적으로 항문이 없이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의사를 불러서 엉덩이를 째는 수술을 해봤지만 끝내 아이는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다.
3일 만에 아이가 죽자 에브렌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매일매일 미쳐가면서 세월을 보냈다. 단 3일이었지만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에브렌이 살아있다고 느끼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부모는 그 절망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는 또 낳으면 된다는……식의 충고를 저질렀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에게 부모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별개의 짐승이었으니까.
그리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부모는 에브렌의 결혼 상대를 잡았다. 그가 바로 유능한 사업가였던 도어 린덴이었다.
도어 린덴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내면은 완전히 다른 생물이었다. 그걸 알아챈 것은 선을 볼 때 도어 린덴이 미리 말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이성인(異星人)이라는 것을 밝혔다. 처음에 에브렌 린덴은 상당히 놀랐다. 이계의 바다를 건너서 수만 광년 너머의 다른 은하에서 왔다고 하니 자신이 점점 더 미쳐가는 줄 알았다.
도어 린덴이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메시에 인들은 선천적으로 감정을 잘 느끼는지라, 에브렌의 절망을 느꼈다. 도어 린덴은 에브렌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 뒤에 에브렌은 이윽고 도어를 받아들였다. 지금은 형태 변환을 사용해 인간처럼 위장하고 있더라도 완전히 다른 생물이라는 걸 이해한 것이다.
그래서 둘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맨 처음에는 도어 린덴의 형태 변환이 뭔가 잘못되었나 싶었다.
그런데 다른 남자를 불러서 잠자리를 같이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문제는 에브렌 린덴이라는 걸 깨달았다. 첫째 아이 이후로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그 다음부터는 임신을 할 수 없었던 것.
그 뒤로 극적인 일이 시작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도어 린덴은 다재다능하고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고 또 이 세계의 문화를 탐식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 그가 비밀 세계를 알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비밀 세계에서 죽은 자를 되돌리는 사자소생 의식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 문제였다. 소중한 사람을 제물로 바쳐서 다른 생명을 되살려내는 의식.
도어 린덴은 이 비밀을 에브렌과 공유했고 둘이 함께 계획을 세웠다. 소중한 아이를 입양하고 길러서 그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것.
죽은 자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동등한 만큼의 소중함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 소중함을 절망으로 바꾸는 것이 의식의 제일 중요한 요소였다.
처음에는 하나면 되는 줄 알았다. 마치 등가 교환의 법칙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 피가 전혀 이어져 있지 않은 고아원 아이의 가치는 이름도 없는 신생아의 가치에 턱없이 모자랐다.
그래서 또 길렀다. 소중하게 기르고, 단호하게 죽이고, 소중하게 기르고, 단호하게 죽이고, 이미 망가진 에브렌 린덴은 자신이 광기에 가득 차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
눈을 감고 회상에 빠진 에브렌 린덴을 보면서 도어 린덴은 흥미롭게 관찰했다. 그에게도 일말의 자비나 윤리관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메시에 인으로서의 윤리관일 뿐 인간의 윤리관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수십 년을 사용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미친 짓’이라고 할 법한 계획에 찬성했다.
에브렌 린덴은 그가 바라보는 인간 중에서 제일 ‘메시에 인’다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형태를 바꾼 채 에브렌 린덴과 함께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곧 끝나겠군.”
주문이 거의 완성되어 간다. 이 주문의 끝에 도어는 강력한 정신적 압제를 모리에게 가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아주 서서히 끝없는 정신세계에서 고통을 받다가 사망하게 된다.
본래는 시간을 더 들여서 ‘작업’을 해야 하지만, 지금 외부에 침입자가 있는 이상 의식을 서두를 생각이기 때문에 이렇게 순서를 배치했다.
도어 린덴은 사실 에브렌 린덴에 대한 동정 만으로 그 계획을 따르고 의식을 집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이었다.
이 머나먼 행성의 마법에 죽은 생물을 되살릴 수 있는 의식이 정말로 가능한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그의 호기심을 이끄는 것은 에브렌 린덴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였다.
에브렌 린덴이 아이를 잃고 절망에 빠진 채 살아가던 나날. 도어 린덴은 에브렌과 감응하기 위해 정신을 활짝 열어 재끼고 에브렌과 정신을 연결했다.
그녀의 내면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발견한 건 그때였다. 너무 깊은 심층에 파묻혀 있지만 의식의 겉표면에서 보기만 해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힘의 파동을.
그가 살던 메시에 행성에서도 그런 물건은 본 적이 없었다. 그건 필시 위대한 존재가 만들어낸 물건일 것이다.
사자소생의 의식에도 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시전자의 모든 정신을 파헤쳐서 부활시키려는 대상에 대한 정신을 파헤치는 것.
바로 이때 도어 린덴은 사자소생의 의식을 통해서 에브렌의 내면에 숨겨진 그 무언가를 꺼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주문이 거의 완성되었을 찰나에, 누군가 벌컥 문을 열며 나타났다. 오늘 침입했던 영성자였다. 그의 정장 여기저기 불에 그을린 것처럼 보이지만 멀쩡한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그 쥐들은 도어 린덴의 비술로 강화된 상태였다. 단순한 쥐 이상의 살육병기다. 만약 평범한 인간이 그 쥐와 마주쳤다면 5초도 지나지 않아서 뼈만 남은 백골이 되었을 터였다.
“쥐불놀이라고 알아?”
“뭐?”
샤를은 씨익 웃었다.
*
이 모든 쥐들은 쥐들은 보통의 쥐가 아니었다.
영성으로 강화된 쥐들로 항상 허기에 굶주린 쥐 떼였다. 마(魔)가 깃든 생물. 그러나 샤를은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번에 화로 주문을 얻으면서 여러 가지 응용법을 얻었다.
쥐를 불태우는데 얼마의 고온이 필요할까? 수천 도의 고온을 허공에 형성해 내는 무존자의 화로 주문은 몇 도가 필요하든 상관없을 터였다.
미리부터 화로 주문을 캐스팅해두고 있었으므로 펼치는 데는 문제가 없다. ‘긴 준비시간’이라는 것도 약 5분에서 10분가량 필요했을 뿐이니.
샤를은 화로를 들어서 선을 그리듯 방향을 지정했다. 둥둥 떠오른 화염 화로가 바닥에 반원을 그리자 곧바로 화염의 장벽이 펼쳐졌다. 그러자 쥐들은 멈칫하면서 그 불길에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 쥐들을 통제하는 사역마 쥐가 돌격 명령을 내린 순간부터 쥐들의 몰살은 정해져 있었다. 일반 쥐들은 화염 장벽에 달려들다가 타올랐고 나머지 사역마 쥐들은 전부 무존자의 창에 꿰어 죽였다.
불꽃 계열의 주문을 연사하느라 꽤 진이 빠진 상태지만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 그래 봤자 겨우 쥐를 죽이는 수준의 영성을 소모한 것뿐이다.
지하로 내려와서 주변을 둘러보자마자 샤를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았다. 눈앞의 메시에 인과 에브렌 린덴이 작당해서 이 모든 일을 벌여왔던 것 같다.
들고 있는 마도서는 사자소생의 서 1권. 저런 희귀한 마도서는 어떻게 얻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그가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는지 스스로도 알아야 했다.
샤를은 쥐불놀이를 언급한 다음 걸어가면서 말했다.
“대충 어떻게 된 건지 알 것 같은데.”
샤를의 손끝에서 불꽃의 창이 형상화된다. 무엇이든 태울 수 있을 법한 불길이 치솟자 도어 린덴은 상대가 마법사인 것을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