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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28화 (28/221)

제28화 - 그 고대의 존재는 문명이 탄생하던 시절부터 우리와 함께해 오던 존재였다. 발전하고 이전보다 더 나아진 형태의 진화를 추구하는 존재.

기이한 환청이 귀를 파고들었다.

-머리는 여섯 개요 팔은 열둘이니, 그가 보지 못 하는 것은 없고 그가 만들 수 없는 조각품은 없노라. 이 세상에 진리와 문명은 그의 조각품일지니. 그리고 그가 가로되,

더 들어서는 안 된다. 샤를은 혀를 깨물면서 머릿속을 파고드는 기이한 환각에 저항했다. 그덕에 엄청난 고통과 함께 샤를은 환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방금 그건 조각 기계였다.

이계 상층에서 고고히 존재하는 사악한 신이 하는 말을 계속 듣고 있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정신이 들자, 주변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사방은 피분수가 치솟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의 것인지, 아니면 인형의 것인지 모를 신체의 토막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고 살아있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움직이는 것은 허공을 부유하고 있는 그의 커틀러스 뿐이었다. 마치 지옥의 입구에라도 온 것 같은 풍경을 보면서 샤를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주인. 정신차려.

파기나레코르의 말에 샤를은 곧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는 천으로 감싼 성배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일어섰다. 고개를 돌려보니 요나스 샤프트는 피에 파묻혀 익사한 것으로 보였다.

땡땡땡땡땡땡!

누군가 밖에서 미친 듯이 철을 두들기는 소리를 들었다. 이건 메트로폴 경찰국의 신호다. 그들의 종을 마구 두들겨서 주변에 이상을 알리는 것이었다.

총격전이 계속해서 벌어졌으니 이렇게 고립된 항구에서도 당연히 소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 샤를은 이곳에서 뭔가 더 챙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지 않고 즉시 이 창고를 탈출했다.

탈출하는 김에 주변에 무존자의 창을 날리는 걸 잊지는 않았다. 폭발보다는 불태우기 위한 일이었다. 불이 잘 붙을 법한 물건을 찾아서 쏴버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잠시 뒤, 조각구원회가 보관 중인 화약을 건드렸는지 유폭이 일어났다. 그때는 샤를도 떠난 상태였고 경찰들도 불길 때문에 다가오지 못한 상태였다.

유폭으로 인해 경찰관 한 명이 경미한 부상을 입었지만, 그쯤에서 이 일은 마무리되었다. 화학 약품과 결합 된 불꽃은 동틀 녘에도 가라앉지 않았고 해질녘이 되어야 가라앉았다.

* * *

온종일 불타올랐던 창고는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경찰들은 이곳에서 격렬한 총격전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무언가 조사해보려고 했지만 죄다 불타버려서 건질만 한 게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은 경찰국 내에서 마피아끼리의 격렬한 총격전 끝에 창고가 불타올랐다고 단정 지어졌다. 뭐 조사를 해보려고 해도 나오는 게 없었으니까.

이상한 것은, 그 불꽃 속에서 시체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총소리를 들었고, 이곳저곳이 불타올랐는데 시체는 하나도 없다. 분명 불꽃에 타오르더라도 시체는 남아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곳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메트로폴 경찰국 제복을 입은 남자였는데 계급을 나타내는 마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프링글스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불타버린 창고에 발을 디뎠다.

“온통 잿더미뿐이군. 시체가 하나도 없으면 그냥 평범하게 누군가 불을 지른 거 아냐?”

지금은 피폐해지고 배나온 중년 남성이 되었지만, 그도 예전에 한가락 하던 무시무시한 수사관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라도 증거가 나올 곳이 이렇게 불타버리면 건질만 한 게 없었다.

비밀경찰국의 그 ‘천재’ 놈들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저어서 자신의 내면에서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존재들에 대해서 잊어버리기 위해 애를 썼다.

더글라스는 재에 손을 대기 싫어서 삼단봉을 꺼내서 이리저리 휘저으면서 돌아다녔다. 아직 다 타오르지 않은 게 있나 싶어서였다.

“여긴 대체 무슨 창고였던 거야? 정말 마피아 창고였던 건가.”

화약인지 뭔지 모를 것이 유폭해서 창고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마피아들이 화약을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다면 말이 되긴 하다만. 그는 폭발물전문가는 아니었다.

더글라스는 별 소득이 없다는 걸 깨닫고 배를 긁으면서 오늘은 어느 집 도넛을 먹으러 갈까 생각하던 차에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 걸 깨달았다.

나이 어린 소녀였다. 이제 15살쯤 되었을까? 아마도 집시라고 생각했다. 집시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더글라스는 최대한 마음씨 고운 남자의 표정을 지으면서 다가갔다.

“얘.”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얼굴에 긴장감을 푼 모양인지 집시 꼬마는 도망가지 않고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고놈 참 눈동자가 올망똘망하군. 우리 집 딸내미같애, 그렇게 생각하던 더글라스는 부드럽게 말했다.

“여기서 혹시 뭔가 본 적 없니? 수상한 사람이라던가.”

말하면서도 더글라스는 별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냥 보이길래 뭔가 말을 걸고 싶어서 한 것이었다. 집시 소녀가 말했다.

“등에 검은색 그림자가 있는 남자.”

“응?”

“가면을 썼어. 그를 봤어.”

“음 그렇단 말이지.”

더글라스는 메모장에다가 그 정보를 적었다. 그리고는 우울한 표정으로 펜을 내려놨다. 지금 그에게는 상관이 따로 없지만, 만약 상관이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딴 잡쓰레기 같은 정보를 메모해서 뭐해!?’

그렇게 말하면서 꾸중을 들었겠지. 더글라스는 쓸데없는 정보라고 생각하면서 펜을 내려놨다.

“하아.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루미너스의 의미심장한 말이 아니었으면 더글라스는 지금쯤 농땡이를 부리고 있었을 것이었다. 더글라스가 흐느적거리면서 걸어가자 집시, 샨티가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 움직였다.

둘은 기이한 이끌림에 의해 만나게 되었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 * *

시간을 돌려서, 샤를이 주변을 불태운 다음 떠나고 난 뒤.

요나스 샤프트의 관은 들썩거렸다. 피분수가 넘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연결할 곳을 잃은 기이한 혈관들이 허공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마치 해를 보고 자라는 식물류처럼.

허공을 파고든 혈관들은 비릿한 피냄새에 이끌려 방향을 선회했다. 가장 첫 번째 목표는 바닥에 누워있는 시체들이었다.

조각구원회의 신도들은 대부분 인형에게 죽었는데 인형들은 모두 전원이라도 나간 것처럼 쓰러진 상태였다.

신도들의 시체에 혈관이 꽂히자 피를 빨아먹기 시작했다. 쭉쭉 빨아먹기 시작한 혈관은 그 기세를 늘려서 피는 물론이고 내장이나 뼈 같은 단단한 물질조차 먹어치웠다.

꿀렁꿀렁 넘어가는 혈관은 자신이 흡수할 수 있는 구멍 이상의 크기로 시체를 흡수하느라 커졌지만 뱀이 사냥감을 잡아먹듯이 꿀꺽 삼켰다.

혈관은 하나도 남김없이. 시체들을 전부 흡수했다. 신도들뿐만 아니라 인형들의 신체도 모조리 흡수했다. 그리고 거대한 관에 누워있던 그들의 주인에게 그 정수를 전달했다.

잠시 뒤 그가 깨어난다. 이미 그때쯤, 주변은 활활 불타고 있었다. 요나스 샤프트는 신체를 벌떡 일으키자마자 거대한 관도, 주변의 상태도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나갔다.

알몸으로 전력 질주하는 그가 공장을 빠져 나왔을 때쯤에는, 화마가 기어코 조각구원회에서 모으던 화학 약품에 선을 끼쳤고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나서 공장이 엄청난 속도로 타올랐다.

이 폭발에 경찰들은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그사이 빠르게 움직여 요나스 샤프트는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는 자신이 입은 손해를 계산해보았다. 인형사 하레. 신도들 서른 남짓. 인형 50구. 그리고 성물을 빼앗겼다. 거기다 가장 중요한 ‘씨앗’을 받는 순간까지 방해받았기 때문에 그는 힘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

이미 한번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으로 씨앗의 힘을 소모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했다.

인형이야 다시 모으면 된다. 씨앗은 이미 절반 정도 흡수했었고,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신께 공물을 바치면 나머지 절반을 내려받을 수 있다.

인형사? 그런 추종자 녀석들은 한둘이 아니다. 제자급 정도 되는 존재가 죽었으니 조금 더 자원을 투자하면 또 다른 제자쯤은 들일 수 있다.

거기다 지금은 다른 도시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의 또 다른 제자가 있다. 그를 불러올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가 잠든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인지 알아내야 했다. 나중에 조각 기계에게 제물을 바치고 그동안의 정보를 찾아낼 생각이었다.

요나스 샤프트는 근처 빈민가에서 널려 있는 빨래를 하나 꺼내서 아무렇게나 걸쳤다. 더러운 헝겊조각으로 보일 정도로 낡은 것이었지만 별로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긴다.

* * *

샤를은 피범벅이 된 채 교단으로 돌아왔다. 닦는다고 닦았지만, 샤워하지 않는 이상 묻은 피를 다 닦아낼 수는 없을 것 같다.

교단으로 돌아오자마자 이 주변도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못 보던 인형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하나같이 너덜너덜하게 걸레짝이 되어있었다.

‘인형이 무명교단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구나!’

정황상 하레가 정신을 잃으면서 영성을 널리 퍼뜨린 학살 명령을 내리면서 폭주시킨 것 같다. 하지만 쓰러져 있는 건 인형뿐이고 사람은 없었다. 에세나가 샤를이 온 것을 느끼고 마중 나와 있었다.

“교주님!”

“에세나? 무슨 일이냐?”

에세나는 울먹거릴 만도 했지만 침착하게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눈이 붉어진 것이 확실히 뭔가 있는 것 같다.

“플로나 언니가 다쳤어요.”

“다쳤다고? 얼마나?!”

“걱정할 것 없어요 교주님. 그렇게 많이 다치지는 않았어요.”

플로나는 한쪽 팔에 부목을 대고 교단 밖으로 걸어 나왔다. 기이하게도 그녀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은 것은 부끄러움 이었다. 다친 것을 감추고 싶어하는 감정이 얼굴에서 드러난다.

“샤를님 몸에 피는 어떻게 된 건가요? 그자들이 습격했어요?”

“아냐, 이건 내 피가 아니다.”

다행히도 플로나는 많이 다치진 않은 것 같았다. 그녀 혼자서 이 인형들을 전부 정리한 듯했다.

“샤를님, 신도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들은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도록 해라. 새벽에 갑자기 오게 되었으니 당황했을 것이다. 에세나, 괜찮니?”

에세나는 샤를의 목소리에 뭔가 마음속이 녹아내리는 것 같음을 느꼈다. 신기하게도 샤를은 에세나처럼 다른 사람의 감정에 간섭할 수 있는 걸까?

“괜찮아요!”

양손을 불끈 쥐면서 에세나가 말하자 샤를은 희미하게 웃었다.

“오늘 사람들이 돌아가기 전에 다독이도록 해라. 그리고 그들과 함께 돌아가라.”

“네.”

“위협의 근원은 제거되었다. 그러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교단의 일을 마무리하고 샤를과 플로나는 저택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샤를은 돌아오면서 오늘의 전투를 복기했다. 점술을 이용해 적을 단번에 습격했고 곧바로 인형사 하레를 제거함으로써 적들의 머리를 끊었다.

사실상 조각구원회의 중심부를 타격해서 괴멸시킨 것이었다. 물론 이건 샤를 혼자 한 일이라기보다는 하레의 트롤링이 더 컸다.

샤를은 이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선제공격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정보를 얻자마자 폭풍처럼 움직여서 돌격한 게 주요한 것 같다.

‘먼저 공격한 게 컸어. 적이 점술에 대해 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쳤기 때문에 단박에 인형사를 제거했던 거야.’

샤를은 적의 점술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샤를이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난 뒤에 무명교단의 집회 장소나, 샤를의 저택같은 경우는 철저하게 점술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었다.

빙의되기 이전의 샤를이 했던 일로, 집단의 세력이 한미한 샤를의 무명교단이 적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 듯했다.

‘빙의에 대한 건 문제가 없을 것 같네.’

플로나와 함께 저택으로 돌아오니 벌써 이른 새벽이었다. 샤를은 당장 샤워를 하러 가기 전에 플로나부터 치료하려고 했다.

“플로나, 팔에 부상을 입었지?”

샤를이 손을 대려고 하자 플로나가 화들짝 놀라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샤, 샤를님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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