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 -여긴…….
샤를은 잔상이 커지더니 갑자기 거대한 화면을 형성하는 것을 느꼈다. 화면 밖으로 샤를이 3인칭으로 보였다. 그는 가면을 쓰고 있었으며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맞은 편에는 파테스트로피가 보였다. 그리고 특이하게 생긴 머리카락(모 카드만화에서 볼법한 폭탄머리였다.) 형태를 가진 한 노인이 있었다. 붉은색 주황색으로 염색한 것도 신기한데 반짝거리는 것도 웃기다.
그런 특이하게 생긴 영성자들이 꽤나 많이 모여있었다. 하나같이 어딘가에 소속된 것 같은 사람들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는데 린넨 로브를 걸치고 결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샤를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 영성자의 모임에는 처음인가보군.”
“그렇다.”
“흠. 우리는 이렇다 저렇다 할 건 없고 그냥 정보를 거래하거나 물건을 거래하곤 하지. 뭐 물어볼 건 없나? 우리들이 아는 거라면 서로 성실히 대답하는 것. 그게 우리 클럽의 규칙이야.”
“성실?”
그 샤를은 잠깐 입을 다물고는 턱을 괴고 말했다.
“조각구원회라는 사교를 아나?”
“아, 이번에 새로 발호했다던 사이비 종교 말이군. 뭐, 그네들의 신도들이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신비학 관련 물건을 사길래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조각구원회의 놈들과 척을 진 것 같아서 말이지.”
“저런……. 안 됐군.”
검은 린넨 로브를 걸친 사내가 말했다.
“뭐가 안 됐다는 거지?”
“지금 네가 클럽에서 노닥거리는 동안 네 신도들은 하나같이 학살당하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너도, 좋지 못한 타이밍에 클럽에 들어왔군.”
“……!”
샤를이 당황하자 로브를 걸친 사내가 자신의 후드를 걷었다. 눈 한쪽에 칼로 후벼판 듯한 상처가 보이는 남자였다.
“내 이름은 하레. 인형사지. 그리고 조각구원회의 독실한 신도기도 하고.”
샤를은 순식간에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러나 하레의 실에 걸려서 움직이지 못했다. 샤를이 대화하는 동안 어느새 그의 실이 샤를을 꽁꽁 묶어버렸던 것이었다.
“이봐! 같은 클럽원에 대한 적대는 금지되어 있다!”
폭탄 머리의 노인이 눈을 찡그리며 외치자 파테스트로피도 놀란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내가 추천해줬는데 여기서 싸움을 벌이겠다고?”
“그동안 너희들의 규칙대로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이제 그 야생의 영성자 놀이도 질렸다. 대어가 내 눈앞에 있는데 그런 하찮은 것에 신경을 쓰겠나?”
“즈카펠 클럽은 너의 독단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개소리지. 다 죽여.”
그때 어느 순간 갑자기 인형들이 나타났다. 구체관절인형처럼 손이나 팔에 금이 가 있는데 그것들은 놀라울 정도로 사람들을 닮아 있었다.
그것들은 준비되지 않은 야생의 영성자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각자 유물이나 무기들을 꺼내서 싸우기 시작했다.
“크크. 무명교단의 교주 샤를 헥센. 요나스 샤프트님의 대의에 네 자리는 없다. 이쯤에서 네 목숨을 가져가는 게 좋겠군.”
샤를은 빛의 창을 만들려고 했으나 그것보다 하레가 더 빨랐다. 묶여있던 실이 움직여서 그 샤를의 목을 깔끔하게 두동강나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여전히 아까 그 자신의 비밀 서재가 맞았다. 벌써 심상 세계에서 튕겨져 나온건가.
‘너무도 실감 나잖아!?’
샤를은 목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자신의 목이 멀쩡히 붙어 있는지 체크부터 했다. 그대로 있다. 놀랍게도 선명한 감각.
‘이게 심상 세계에서 점을 쳤을 때 증폭되는 점술의 효과인가? 너무 강해.’
이건 점술이 아니다. 예지였다. 샤를은 점술이라는 게 그렇게 확정적으로 미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 파워를 보면 마치 사악한 신에게서 힘을 빌려서 점술을 벌인 것 같은 느낌이야. 다시 심상 세계로 들어가서 제대로 확인해볼까?’
그런데 심상 세계로 들어갈 수 없었다. 무언가 힘의 반동으로 샤를이 밀려난 것 같았다. 심상 세계의 힘을 빌려서 점술 증폭을 하면 미래를 예지한다.
미래 예지의 대가란 것인가? 샤를은 섬뜩한 공포를 떠올렸다. 그 점술이 맞다면 지금 샤를은 위험한 것이었다.
‘조각구원회가 내 정체를 알아챌 거야. 어떻게 알아챘지? 가면을 쓰고 있었을 텐데. 젠장 이놈의 하드코어 모드.’
샤를의 플레이가 하드코어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위협이 이제 실시간으로 체감되자마자 공포에 질렸다.
선명해진 위협에 숨쉬기도 어려운 공포가 뇌리를 지배했지만, 샤를의 특성 덕에 심장 박동은 줄어들고 흥분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어떻게 알아챘는지부터 생각하자. 뒤통수를 칠 때, 그때는 아마 들키지 않았을 거야. 가면을 쓰고 있었으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샤를은 곧 과거에 생각이 미쳤다. 이미 샤를의 교단에, 루센이라는 이름의 조각구원회 신도가 끄나풀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끄나풀을 제거함으로써 정보를 완벽하게 차단했다고 생각했는데 루센 말고 다른 끄나풀이 있었거나, 혹은 조각구원회가 샤를의 정체를 어떻게 알아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속전속결로 가야겠어. 당하기 전에 먼저 친다.’
여태까지 벌여왔던 몇 가지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샤를은 전부 털어내고 조각구원회를 해체할 계획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첨단에서 드러난 끄나풀부터 배제하기로 했다. 샤를은 새벽에 곧장 문을 열고 움직였다.
“플로나!”
“샤를님!”
샤를이 외치자마자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 플로나가 나타났다. 그녀의 이런 스토커적 기질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된다니. 아이러니하군.
“긴급상황이다. 당장 신도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방어 준비를 해라.”
“누군가 적이 쳐들어오나요?”
“조각구원회의 누군가가 우리의 정체를 알아챈 모양이야. 난 지금 이대로 적의 끄나풀부터 시작해서 정보를 캐내어 반격을 가할 생각이다. 혹시 모르니 교단원들을 네가 지켜야만 해.”
샤를은 플로나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빨리 움직여야 한다. 먼저 에세나에게 가서 도움을 청해라 그녀라면 잠든 신도들에게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을 거다.”
에세나는 영성 수련을 상당히 했다. 꿈속으로 이야기를 날리는 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샤를은 저택에 있는 말 한 마리를 풀어서 올라탔다. 어둠 속에서 말은 꽤 두려워했지만, 샤를의 영성이 전해지자 그 말은 곧 온순해졌다.
샤를이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바로 경찰국의 교도소였다. 아직 긴 재판이 진행 중인 빈스는 난동이라도 부렸는지 독방에 갇혀 있었다.
그는 그림자처럼 움직여서 쇠창살 앞에 섰다. 무단으로 경찰서에 들어왔지만, 누구도 그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기이할 정도로 운이 좋게도 샤를은 홀로 그곳까지 들어왔다.
그때 빈스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뭐라고 하고 있었다.
“어디가 야! 어디가아아아! 야! 빈스!”
빈스라고? 샤를은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환각일지도 모르겠다. 빈스는 하루에 한 끼씩 배정받아서 비쩍 마른 상태였다.
그는 철창 앞에 나타난 샤를을 보고 말했다.
“너, 너, 넌 누구야?”
‘후우.’
속으로 한숨을 쉰 샤를은 손을 뻗었다. 지금 그가 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지배의 권능이었다. 보통 상대의 인형을 지배할 수는 없지만 부분 인형화된 빈스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지배의 권능에서 우선시 되는 건 상대의 계몽 수치 비교였다. 샤를보다 계몽 수치가 낮다면 상대는 손쉽게 걸려든다.
그리고 상대의 체력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도 영향을 끼친다.
메트로폴의 교도소는 범죄자들에 악명이 높기로 유명했다. 이런 곳에 오래 있었으니 그 체력은 한계까지 떨어졌을 터.
기진맥진한 상태로 쓰러져 있는 빈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태 꺼려왔던 이유는 지배의 권능을 굳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영성을 담은 물을 이용해 그를 조련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어디서 정보가 새었고 샤를은 상대를 먼저 쳐야 하는 상황에 도착해 있었다.
쇠창살 너머의 원거리지만 샤를은 아주 손쉽게 지배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때 자고 있던 빈스가 눈을 번쩍 뜨면서 일어났다.
“누구? 누구냐!?”
“시간이 좀 걸리는군.”
샤를의 냉혹한 목소리에 빈스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 머리에서 나가! 으아아아악!”
“내게 복종해라.”
“크르르르륵.”
빈스는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자신의 이마를 벅벅 긁기 시작하면서 입에서 게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정상이 아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빈스의 머리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렉!? 게레레레렉!?”
그의 이마 옆에 있는 상처가 부풀어 올랐다. 화성인의 머리만큼이나 거대해진 빈스의 머리는 얼마 있지 않아서 뻥 하고 터져버렸다.
뒤로 물러난 덕에 샤를은 그 피분수 세례를 맞지 않을 수 있었다. 이 기괴한 광경에도 샤를의 심장은 싸늘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될걸 예측하고 있었다.
샤를은 빈스의 뇌가 폭발하면서 그 안에 있던 튀어나온 것을 발견했다. 딱딱한 금속을 되어있었으니 눈에 띄었다. 바로 기계 장치에 사용하는 ‘볼트’였다.
이것은 여태까지 빈스를 괴롭혀 왔던 환상을 만들어내는 장치였다. 살아있는 인간이자 조각구원회의 인형으로 만들 수 있는 매개체이기도 했고.
아마도 외과적인 수술로 박혀 있었던 것이 이 볼트가 맞는 것 같다.
그걸 보면서 샤를은 무언가 번뜩였다. 손을 뻗어서 볼트를 주운 샤를은 그 즉시 소란이 일어난 곳을 떠나면서 품속의 헝겊을 열었다.
그간 모은 볼트들이 있었다. 이 정도 개수라면 이걸 토대로 점을 쳐서 상대의 정보를 알아볼 수 있을 터였다.
‘인형사 하레의 위치를 찾아내자.’
강한 점술 방비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샤를은 심상 세계로 곧 다시 출입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곧 심상 세계로 들어간 샤를은 다시 초를 켜고 잔상을 쳐다보았다.
‘이것의 주인의 위치와 그 정보.’
*
인형사 하레의 일상은 다음과 같다. 매일 정결히 신체를 유지하고 시간마다 부하들의 보고를 받는다. 조각구원회의 신도들과 다르게 그는 ‘양지’에서의 일이 없다.
오직 눈을 감고 인형들을 제련하는 일에 매진한다. 본디 사람이었던 시체가 인형이 되어 가는 과정은 꽤 지난했다.
피를 빼고, 장기를 제거한다. 그리고 그 형태를 유지하면서 썩지 않게 처리하되 내부에 영성으로 만든 특이한 부품들을 박아야 했다.
이렇게 완성된 인형들은 각자 본래의 성질에 따라서 다른 능력을 지니고 또 그 능력에는 차등을 두어야 할 만큼 격차가 있다.
“음.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하레는 요나스 샤프트가 잠들어있는 직사각형 형태의 무언가를 바라봤다. 녹색 유리창이 너무 짙어서 내부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관이 있다.
저곳에 요나스 샤프트가 잠들어있었다. 그분은 깨어나기 전에 자신에게 위험이 닥치지 않도록 하레에게 주의를 하고 잠들었다.
“이제 곧 그분이 깨어나실 거다. 느껴지는군.”
혼잣말하면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하레는 갑자기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건 그의 직감 때문이었다. 위협을 느낀 하레는 당장 분필을 꺼냈다.
그의 분필은 굉장한 점술 도구였다. 사악한 신, ‘조각 기계’의 가호를 받고 있는 물품이기도 했고. 그 분필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뭐지? 이런 떨림은…….”
이른 새벽까지 작업한 탓에 약간 감각이 둔해져 있던 하레는 분필의 진동이 자주,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체 언제부터 흔들리고 있던 걸까? 하레는 순간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면서 서둘러 밖에 있는 신도를 불렀다.
“이봐! 밖에 누구 없느냐!?”
“예, 하레님.”
얼굴에 긴 상처가 있는 덩치 큰 신도 하나가 나타났다.
“마침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저번에 말씀하시던 가면을 쓴 두 남녀에 대해서 말입니다. 저희 신도들이 적들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무명교단입니다.”
“뭐? 무명교단이 저지른 일이라고?”
하레는 놀라움을 느꼈다. 신도 없는 그런 나약한 교단의 교주가 이 일을 벌였단 말인가?
“놀라운 일이지만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당장 신도들에게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때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가면을 쓴 누군가가 폭발 사이로 나타났다.
‘여긴 창고 한복판일 텐데!?’
가면을 쓴 남자는 허리춤에는 권총을 차고 있었고 얼굴에는 모노클을 장착하고 있었다. 허리춤에는 두꺼운 마법서가 보였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