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 “뭘 사고 싶은데. 포션?”
“물건이 아니라 정보다.”
파테스트로피는 흐트러진 자신의 가운을 정리하면서 일어섰다. 샤를이랑 비슷한 장신이었다. 180은 되어 보일 법한 키다.
“헤헤. 정보? 나야 그런 걸 거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지. 내 공방에 가서 얘기할까? 저 문만 지나면 돼.”
“그러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공방이 나왔다. 기이한 화학 실험을 위한 비커들과 무언가 알 수 없는 재료를 담아둔 유리병. 바닥에는 푹신푹신한 공작 깃털로 만든 카펫이 깔려 있었다.
“신발 벗고 들어오라고.”
그러는 파테스트로피는 아까부터 맨발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말을 잘 듣네. 난 예의 바른 사람이 좋아.”
“…….”
샤를은 연금술사를 읽었다. 그녀는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사람마다 각자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파테스트로피에게서는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관찰’의 결과.
‘그녀는 돈을 좋아하지. 쾌락과 사치에 대해서 아무런 불안감이 없어. 공작 깃털처럼 사치스러운 카펫을 바닥에 두고 짓밟는 것에서 알 수 있어. 어느 정도는 즐기는군. 그리고 또 무지한 자들에 대한 경멸이 얼핏 보여. 방금 옆에 누워있던 여자들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그랬지.’
그리고 빈스의 지하실에서 본 쪽지에는 연금술사를 경계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약한 점을 보이지 말라고 했었지.
‘빈스는 조각구원회의 하수인이었어. 그런데 빈스의 주인이 경계해야 할 상대라면 분명히 조각구원회에 호의적인 입장은 아니야. 하지만 물건을 거래하는 정도니 서로가 중립적인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당장 연금술사와 적대할 필요는 없어. 그녀가 다른 교단과 연관되어있다는 확증이 없다면 말이지.’
“그래. 원하는 게 뭐야?”
“내가 가진 이 메달의 주인에 대한 정보.”
파테스트로피는 샤를을 돌아보면서 이상하다는 듯 웃었다. 그 미소가 굉장히 매혹적이었다.
“고객님이 메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 설마 강탈이라도 한 거야?”
“그래. 정확히는, 주웠다.”
“음. 그런 경우도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정말로 분실하는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네.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신기해하면서 파테스트로피가 말했다.
“정확히 누가 메달을 가졌는지는 몰라. 나는 그저 메달을 가진 사람을 손님으로 대할 뿐이지. 만약 고객님이 그냥 맨손으로 찾아왔으면 아마 지금쯤 입구에서 얻어맞고 있던가 혹은 안 좋은 꼴을 당하지 않았을까?”
“누군가 불특정 다수에게 뿌린 건가?”
“그래. 그 메달은 특별한 방법으로 제조되어서 아는 사람만 알고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전달했거든. 내 영성이 깃들어 있어서 난 그 메달이 옆에 있기만 해도 느낄 수 있지.”
“특정한 사람이라면 누굴 말하는 거지?”
파테스트로피는 곰방대 대신에 이번에는 시샤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어지간한 골초인 건지 또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말이 짧은 오빠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어? 우리 같은 야생의 영성자들은 서로 모여서 거래할만한 장소 같은 게 필요하지. 정체가 까발려지면 위험하잖아?”
야생의 영성자란, 아무 데도 소속되지 않고 홀로 비술을 익히는 영성자들을 말했다. 이런 야생의 영성자들은 대개 한미한 능력을 갖고 있어 서로 뭉치기 마련이었는데 그렇게 뭉쳐서 커뮤니티가 된 것이 모임이었다.
이런 모임에서는 서로 신비학 재료들을 주고받거나 서로 정보를 모아 공유하곤 했다. 샤를은 그런 종류의 모임이라는 걸 간파하고 말했다.
“야생의 영성자 모임이 있는가 보군.”
“그래 맞아. 그 메달은 영성자 모임의 사람들에게 나눠줬지. 그 사람들은 고객님처럼 따로 내게 와서 물건을 거래할 자격이 있어. 왜 관심이라도 있어?”
샤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샤를의 주변 인맥에는 이런 영성자끼리 모이는 곳이 없었다. 이런 곳이 있다면 경매장에서 팔지 않는 물건들이나 혹은 정보들을 교환할 수 있을 거다.
“물론이지. 영성자끼리 모이는 클럽 같아 보이는데.”
“뭐, 비슷해. 대신 다른 클럽과는 달리 비밀을 지킬 이유가 필요하지. 댁도 영성자라면 알다시피 우리는 별로 좋은 취급을 받고 있지는 못하니까.”
비밀 세계의 사람들은 물리 세계 사람들과 어느 정도 연이 있지만, 전면으로 나서지는 못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광명교회의 영향력과 영성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영성은 굉장한 힘을 주지만 만능이 아니었다. 너무 영성에 노출되면 이성이 버티지 못하고 정신병자가 되어버린다.
또,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면 괴물이 되어버리는 영성자들은 이계의 영향에 너무 쉽게 노출되기도 했다. 일종의, 걸어 다니는 폭탄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광명교회에서는 성기사들을 파견해 야생의 영성자들을 잡아가서 투옥시키곤 했다. 설정상으로 광명자가 취약해졌다곤 해도 아직까지 물리 세계에서 광명교회는 팔팔 날아다닌다.
“음. 소개장을 써줄게. 그곳이라면 메달의 주인을 알아볼 수 있지도 않을까?”
“대가는?”
“후후. 그게 말인데. 나랑 하룻밤 놀래?”
엥? 샤를은 그 말에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미안하지만 거절한다.”
그녀는 슬림한 몸매를 가진 고혹적인 미녀가 맞지만, 샤를은 연금술사라는 족속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대충 알고 있었다. 약물을 취급하는 연금술사에게 무방비하게 몸을 맡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자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샤를은 그녀의 말을 들어줄 수는 없으니 다른 조건을 걸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파테스트로피가 담배의 입구로 자신의 이마를 긁어댔다.
“흐응. 하지만 소개장을 써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걸? 그래, 나중에 물건이나 잔뜩 사러 와. 고객의 호의를 사는 것도 영업의 일환이라고 그랬지.”
“좋아. 빚은 나중에 물건으로 갚겠다.”
“까칠한 남자네. 난 그런 것도 좋아.”
파테스트로피가 추천장을 넘겨주자 샤를은 뒤를 볼 것도 없이 몸을 돌려서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뭔가 생소하지만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런 느낌 어디서 느껴본 적이 있는데.”
그때, 파테스트로피의 실험실 뒤쪽에서 누군가 책장을 열고 나왔다. 문이 아니라 책장인 이유는 그 안이 비밀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방금 나간 남자 누군지 알겠어? 셀린?”
“아니, 처음 보는 사람이야. 적어도 내 가게에 오지는 않았네.”
셀린이라고 불린 여자는 밝게 빛나는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미녀였다. 그녀가 비밀 공간에서 나온 이유는 파테스트로피의 ‘동업자’이기 때문이었다.
“흐음. 그래? 가게에 오는 사람은 다 알아?”
“물론이지. 적어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
야시시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셀린은 ‘잭&셀린’ 주점의 마담이었다. 말이 주점이지 파테스트로피가 소유한 이곳과 마찬가지로 창녀를 사고파는 홍등가였다.
그리고 낮에는 그 포주 일을 했지만, 밤에는 따로 역할이 있었다.
“헤에. 그렇구나. 마녀는 기억력이 좋네.”
“너는 약을 너무 많이 먹으니까 기억력이 나빠지는 거야. 담배를 줄이는 게 어때?”
“히잉. 싫어. 이렇게 좋은 걸 어떻게 줄여.”
파테스트로피가 히죽거리면서 말하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작업 치던 그 남자는 어떻게 됐어?”
“아, 그 루이스라는 이름의 형사? 일단 쓰러트리긴 했는데.”
“했는데?”
셀린은 기억을 떠올렸다. 주점에 온 형사를 단번에 알아챈 건 아니었다. 파테스트로피가 넌지시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갔겠지. 그리고 메트로폴의 경찰국은 상당한 파워를 지닌 기관이었고 셀린은 그자를 낚아채기로 했었다.
“근데 그 이후로 영 신통찮네.”
“왜?”
“부인한테 걸렸나봐.”
“우리 셀린이가 평범한 여자 하나를 못 이기는 거야?”
“그건 아냐.”
셀린은 자신의 매력에 꽤 자신이 있었다. 마녀라는 그녀의 직업 특성상 매혹은 식은 죽 먹기 였고. 그녀는 영성자가 되기 전에도 이미 남자를 홀리고 다니던 매력있는 여자였다.
“영성자도 아니고 주변에 마도구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매혹이 안 통한단 말이지. 꼭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매혹을 당한 것처럼.”
“주변에 여자가 있어?”
“그건 아니란 말이지. 아무래도 어떤 영성자와 접촉이 있었던 것 같아.”
파테스트로피는 담배에서 연기를 훅 뿜어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졌다는 뜻이네?”
“아냐!”
셀린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외쳤다.
* * *
-그 여자랑 왜 안 잤어?
-미쳤냐? 저 여자의 눈에 기이한 광기가 어려 있었다고. 저런 여자랑 가까이하면 끝에 별로 안 좋아.
-헤헤. 그럼 됐어.
샤를은 파기나레코르의 미묘한 말투를 듣고 갸웃했으나 그냥 입을 다물었다.
대화를 끝마친 뒤 샤를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비밀 서재로 들어간 다음 방금 얻은 추천권을 사용해 점을 치기로 했다. 이게 위험한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고급스러운 종이에 적힌 연락처를 중앙에 두고 샤를은 점을 치기 위해 준비를 했다. 필요한 준비물은 딱히 없다. 이 점술 능력은 이능력에 속해있기 때문에 마도구나 유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점술은 이 세계의 영성자라면 누구나 원하는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상대의 영성에 가로막히거나 혹은 특별한 방법으로 점술이 부정될 수는 있지만, 기존의 상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악한 신이 있다면 그의 권능을 이용해서 더 자세한 점술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나는 나의 영성에 의존해서 점을 쳐야만 해. 꽤 어려운 일이군.’
샤를은 자신의 점술을 사용하기 위해 향초를 사용하기로 했다. 보티브 초는 집에 몇 개 있었으므로 서재에 가져오는 건 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세 개의 초 사이에 앉아서 정신을 집중했다. 밝은 빛을 보고 눈을 감았을 때는 잔상이 남는다. 이 잔상은 빛이 사라진 뒤에 잠깐 남아있지만, 곧 사라지게 된다.
샤를이 점을 치는 방법은 이 잔상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정신을 집중하며 초를 보다가 눈을 감았다.
어두운 검은 바탕이 보인다.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것. 그리고 그것 앞에 빛나는 불빛이 있었다. 샤를의 영성이 밝게 빛나면서 원하는 것을 이르라 외치고 있었다.
‘이 추천권이 가리키는 곳으로 갔을 때 내가 위험에 처하겠는가?’
그는 속으로 외쳤다. 초의 불꽃에서 나온 잔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O표시였다. 더 자세한 정보를 알아보면 좋겠지만 이곳으로 간다면 별로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 같다.
눈을 뜬 샤를은 역시 자신의 영성을 이용하면 이 정도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샤를은 문득 심상 세계에 생각이 미쳤다. 그곳에서 점을 치면 무존자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지 않을까?
무존자의 힘을 끌어다 점을 친다면 웬만한 점술 방벽은 전부 깨버릴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 맞다. 근데 심상 세계에 물건을 들고 들어갈 수가 있나?”
샤를은 일단 시도해보기로 했다. 추천권을 손에 쥐고 심상 세계로 들어갔다. 물건을 가져가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더니 샤를은 심상 세계에 와서도 자신의 손에 추천권이 들려 있는 것을 확인했다.
‘성공이야!’
이건 엄청난 쾌거였다. 샤를은 심상 세계로 가져온 물건이 현실에서 없어졌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다는 건 위험한 물건이나 권총, 소총 따위를 심상 세계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인벤토리 역할도 되겠네.’
게임에선 있었지만, 현실이 되면서 사라졌던 인벤토리 기능을 되찾은 기분이 들었다. 싱글벙글한 건 제쳐두고 그다음 할 일을 해야 할 때다.
샤를은 다시 현실로 나가서 초를 들고 가져왔다. 그리고 점술을 행했다. 잔상이 커지면서 이번에도 똑같이 같은 질문을 했다.
‘이 추천권이 가리키는 곳으로 갔을 때 내가 위험에 처하겠는가?’
그러자 이번에는 O나 X로 표시되는 것이 아니라 잔상의 불길이 엄청난 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