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 그걸 보자마자 주술사가 외쳤다. 여태까지 없던 격렬한 감정 표현이 깃든 환호였다.
“빛이다!!! 빛이 나타났다! 빛! 빛! 빛!”
샤를은 손에 기이한 부담이 느껴지는 걸 느꼈다. 마치 수백 개의 영혼을 손에 쥐고 있는 듯한 감각. 그리고 그의 영성이 그 판단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말했다.
“이건 너희 종족들의 영혼이 담겨 있군.”
“멸망한 우리 종족들은 그 빛을 찾아서 헤맸다. 그러나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지. 함 내부에 빛이 있다고 믿는 자도 없어져 스러졌을 무렵, 길 잃은 새가 찾아냈구나. 너의 행운에 감사한다.”
“난 의뢰를 달성했다.”
“보수는 주어졌다. 넌 이제 운명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주술사의 앙크 끝에서 나온 기이한 빛이 샤를을 휘감았다. 그때 몸속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어서 상태창을 열었다.
〔잔상의 점술〕 - 우르그 고원의 주술사가 건네준 이능. 아무 도구를 이용해 남는 잔상으로 점을 칠 수 있다. 상대의 영성이 너무 강하거나 점술에 대한 방어를 갖추고 있다면 점술에 관한 결과가 방해받을 수 있다.
정확한 보수가 입금되었음을 느끼자 샤를은 그 동그란 구체를 건네줬다. 이 안에는 수많은 종족의 영혼이 있었다. 샤를은 그가 무엇을 할지 짐작했다.
“주술사, 넌 너의 종족들을 되살리려 하는군.”
“빛이 있다면……가능하다.”
샤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수를 건네줬으니 샤를이 할 일은 끝마쳤다. 일이 성공하건 실패하건 주술사의 몫이었다.
주술사는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 나타났을 때의 유령 같은 모습처럼 다시 사라진다.
“고맙군. 이제 나의 소임을 다할 수 있겠어.”
그가 사라지자마자 샤를은 자신의 내면에서 열정의 불길이 꺼져가는 것을 느꼈다. 이계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카운트다운 끝에 샤를은 누군가 집어던진 것처럼 순식간에 현실로 내팽개쳐졌다.
* * *
이 도시에는 몇 개의 세력이 있다.
제일 큰 세력.
광명교회. 이쪽은 기존부터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던 교회였다. 광명자라는 이계의 신이 주신이다. 지금 광명자는 모종의 이유로 치명상을 입고 있어, 나머지 사악한 4명의 신이 깨어났다.
광명교회의 주 세력은 비밀 세계에서의 일을 거행하는 성기사단이다.
이 네 개의 신이 지배하는 교단에서는 암흑성도회가 가장 크다. 이쪽은 도시 동부에 상당한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암흑성도회는 초반에 아무런 일을 벌이지 않지만, 차근차근 교세를 확장해 나간다. 마치 불도저가 천천히 밭을 밀어버리는 것처럼 거대한 힘으로 짓누르는 식으로.
아무도 막지 않는다면 암흑성도회는 계속 자라나게 될 것이었다.
초반에 활개를 치는 것은 조각구원회 쪽이었다. 샤를이 본 단면만으로도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심상찮은 일이 근래에 벌어질 것이 느껴졌다.
중립적인 세력도 있다.
봉인 재단은 굉장한 힘을 가진 유물을 관리하는 재단이었다. 유물 중에서도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위험한 유물을 발견하면 그 즉시 봉인물로 지정하고 모든 역량과 재력을 이용해 봉인한다.
그것만을 목적으로 하고 그것을 위하는 기관. 비밀 세계와 물리 세계의 모든 부분에서 뛰어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암흑성도회나 광명교회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세력도 등장한다. 오컬트를 담당하는 오컬트 전문 형사. 이쪽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등장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어떤 형사가 오게 될지는 모른다. 매 게임 오는 형사는 달랐지만 하나같이 위험한 존재였다. 예외적으로 ‘한 명’만 빼고는 다 위험한 존재가 맞다. 그 한 명을 이번에 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자체 하드코어 상태가 된 샤를은 당장 세력이랄 것도 작은 교회 수준이었고 가진 것은 일신의 주문 몇 개 정도와 유물 하나.
이 게임, 아니, 이제는 이 세계가 되어버린 곳은 복잡한 상황이 섞이고 맞물리면서 진행된다. 그는 게임 시절부터 스토리 분기의 다양성에 혀를 찼다.
타 게임이 그렇듯 2~3개 정도일 줄 알았으나 수백 개도 넘는 분기가 있다. 그러나 모든 게임의 스토리가 그렇듯, 하나의 거대한 수렴이 곳곳에 있었다.
이 수렴은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고정된 역사라고 부른다.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일. 그 마지막에 ‘엔딩’이라고 불리는 고정된 역사가 있고 엔딩의 끝에는 멸망이다.
인류가 몰살당하거나, 이형의 것으로 바뀌거나 식민지가 되거나 등등. 그래서 샤를은 해피 엔딩을 찾는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당장 누군가 목숨을 위협하는 게 아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지금 샤를의 목구멍에는 항상 칼이 들어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장 안락하다고 해서 엔딩을 바꾸지 못한다면 죽음의 미래는 확정되어 있다.
‘가장 첫 번째 고정된 역사는 정해져 있지.’
칼튼 교수의 차원문 열기였다. 이건 어떤 세계에서도 무조건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고정된 역사만을 주시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건 일어날 일이기에, 그냥 그렇다 치고 뒤처리를 생각하는 것이 편했다. 지금 샤를이 이곳에 떨어지고 난 이후에 생길 가장 첫 번째 위험한 일은 바로 조각구원회의 발호였다.
‘조각구원회가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어. 내 예상보다 빨라. 교주는 분명 잠들어있을 텐데 이렇게 빨리 움직이다니. 분명 변인이 있다.’
지금 당장은 샤를만이 움직여야만 했다. 그런데도 조각구원회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가장 큰 변수. 샤를의 가장 첫 번째 목적은 인형사를 찾아내고 그를 죽이는 것이었다.
아마 지금쯤, 인형사도 샤를의 존재에 대해 인식했을 것이 분명했다. 샤를은 그를 끌어내 없애버리기 위해서 자신의 신분을 노출할 생각은 없었다.
당자의 전력 차를 모르는 이상 상대에게도 샤를은 강대한 위협일 것이 분명했으므로 몸을 사리고 있겠지.
* * *
빈스의 지하실 사건 이후 경찰국 내부에 변한 것이 있었다. 첫 번째는 바로 루돌프를 비롯한 경찰들의 유급 휴가였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그 지하실을 발견한 사람들로 하나같이 정신적인 후유증을 얻었다.
하지만 루돌프는 꿋꿋하게 나오겠다고 했으며 기어코 나왔다.
“나오지 말라니까.”
“아뇨. 전 괜찮습니다. 그냥 지하실 몇 번 수색한 정도인데요.”
“버나드는 괜찮다고 하던? 교회에도 안 간다면서.”
제일 상태가 안 좋은 것이 버나드 힙슨이었다. 독실한 광명교 신자였던 버나드는 평소 가던 교회조차 가지 않는다고 했다.
“……네 괜찮을 겁니다.”
루돌프는 버나드가 교회에 가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평소 가던 광명 교회가 아니라 좀 다른 교회일 뿐이지. 그러면서 샤를 헥센에 대해 떠올랐다.
그 반짝이는 빛. 루돌프는 그를 생각하면서 종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나드 힙슨처럼 그에게 심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샤를의 이적은 말로 설명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동료들에게도 숨겼다.
루이스와 루돌프가 대화하는 도중 옆을 한 경찰이 걸어갔다. 콧수염을 기른 중년 경찰이었는데 배가 좀 튀어나왔다. 루돌프가 처음 보는 경찰이었다.
“저 사람은 누구죠?”
“응? 저 사람? 됐어. 잊어버려.”
“예?”
루이스가 얼버무리자 루돌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이렇게 말을 흐린 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부서 사람도 아니야. 새로 부임한 친구인데 별 의욕이 없어 보이네.”
“그렇군요.”
루돌프도 루이스의 말을 따라 신경을 껐다.
* * *
그들의 옆으로 스쳐 지나간 경찰관의 이름은 더글라스 헨치였다. 그리고 그는 부임한 지 이제 하루. 어제는 케인 치안청장과 만나서 긴 얘기를 나눴다.
“흠…….”
그의 뚱뚱한 몸매는 40대 중년인의 전형적인 몸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었고 특이하다고 하면 좀 길게 기른 프링글스 수염이었는데 그것 말고는 특별한 것도 없었다.
단지 그가 특별할 게 있다면 바로 그가 특이한 부서에 발령받았다는 점일 것이었다.
“여긴가.”
-오컬트 범죄 수사 본부-
지하실에, 그것도 마치 급조된 듯한 책상을 보니 더글라스는 한숨부터 나왔다. 어제 케인 청장과 만나서 얘기를 나눈 결과 얻은 것이 이것이었다.
“의욕 떨어지네.”
사실 그는 평범한 경찰처럼 보이지만 MI7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실력 좋은 수사관이었다. 과거 젊었을 적, 굵직한 살인사건을 수십 차례나 해결한 결과 MI7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진짜 ‘천재’들을 만나버렸다. 같은 수사관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기상천외한 실력을 갖춘 탈(脫)인간들.
그래서일까. 더글라스는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MI7에서도 곤욕일 것이다. 들어오기 전에는 날아다녔던 수사관이 들어오고 나서 실력이 오히려 퇴보했으니까.
한동안 벤치만 지키고 있다가, 인사 대기 발령이 나길래 ‘아 이제 진짜 모가지로군 MI7에서 나온 다음에는 빵집이나 열까’하고 생각하고 있었을 차에 루미너스를 만났다.
루미너스 팀장은 부국장 라인에 있는 진짜 ‘천재’ 중에 하나였다. 더글라스는 자신에게 좌절감을 안겨준 사람 중 하나가 그를 쓰겠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으나 그게 지방으로 발령이 나는 것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물론 메트로폴은 제2의 수도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경제가 활성화된 곳이지만 그래도 수도 인시그니아에 비하면 끗발이 밀리지 않는가.
“오컬트 부서? 지랄.”
그리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 오컬트 부. 루미너스에게 이 일을 왜 자신에게 맡기냐고 물었더니 그녀의 말이 가관이었다.
-당신은 기회를 얻은 거예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당신의 손에 달렸죠. 자, 이 자료는 그곳에 가서 살펴보세요.
-그, 그게 무슨 소립니까 팀장님.
-후후. 부디 살아남길 바라요.
어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런 불길한 말을 흘리는 루미너스를 보면서 더글라스는 진짜 좆됐구나라고 생각했다.
“토끼 같은 마누라와 여우같은 자식들이 없었다면 MI7은 진작 때려치웠을 텐데. 하아.”
더글라스는 자신의 짐을 내려놓으면서 책상을 정리했다. 열어둔 사무실 옆으로 분주하게 전신국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다. 지하라서 장점 하나는 있다. 전신국이 근처라 전보를 보내기 편하다는 점일까.
의욕 제로인 더글라스는 어제 케인 청장이 넘겨준 자료를 건네받았다. 그는 사진을 바라보면서 약간 놀랐지만 그뿐이었다.
“원래 있던 동굴에 지하실을 연결해 개조한 게 뻔해 보이는구만. 이게 무슨 오컬트라고. 아니 그리고 내가 무슨 초능력이 있어서 그런 걸 수사하나? 루미너스 개년!”
상사를 욕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허했다. 그러니 더글라스는 사진을 들고 수사에 나서기로 했다. 일단 루미너스에게 받은 자료를 꺼냈다.
“음. 메트로폴 주변에서 은밀하게 퍼지고 있는 ‘사교’에 관한 내용인가. 이 도시 놈들도 할 것도 없나 보구만.”
흔히 사이비교라고 불리는 종교가 메트로폴 주변에서 퍼지고 있다는 것. 더글라스는 받은 돈이 있으니 일은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먼저 지하실부터 조사하기로 했다. 지하실을 우선으로 사이비교도 겸사겸사 조사해야겠다.
“하아. 의욕이 안나.”
움직이면서도 혼잣말로 꼭 그렇게 한마디 덧붙였다.
* * *
“그어어어. 의욕이 안 나네.”
이계에서 복귀한 이후 샤를은 의욕 상실에 시달렸다. 마치 좀비가 된 것처럼 한동안은 누워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계에서 ‘열정’을 소진한 결과 현실에서도 대마초라도 핀 것처럼 무기력해져 버렸다.
한동안 몸을 추스른 이후에 비틀거리면서 돌아다니니 곧 괜찮아졌지만, 이 끔찍한 탈력감은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몸이 좀 괜찮아진 이후 샤를은 서재에 앉아서 할 것을 정리했다. 오라클 경매장을 발견한 이후 샤를은 비합법적(절대 불법이 아니다.)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손에 넣을 방법을 얻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그런 돈을 손에 넣게 된다면 세금 냄새를 맡는 하이에나들에게 걸릴 수가 있다. 교수의 연봉으로는 턱도 없는 금액이 들어오니까.
왜 세금과 죽음은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메트로폴의 공무원들은 일을 잘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그래서 이런 비합법적인 자금을 어떻게 세탁하고 운용할지 생각을 했다.
“일단 회사를 차려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