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 “이 세상에는 비밀 세계라는 곳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비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죠. 움직이는 시체. 괴물들…….”
“맙소사. 그게 농담이 아니라는 겁니까?”
루돌프는 여태까지 그런 유령이라든가 고블린 같은 것들을 동화에서나 나오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다른 경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은 실존합니다. 그리고 현실에 위협이 되고 있죠.”
“마, 마, 맙소사.”
“이 일은 그냥 평범하게 처리했으면 좋겠지만 아마 상부에 보고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 이야기에 내가 했던 것은 빼주는 것을 부탁합니다.”
“왜, 왜 그래야 하죠? 당신 같은 대단한 사람이 있다면 모두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제가 한 것은 놈의 이름을 부른 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비밀은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힘이 적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부탁드리죠.”
“그, 그러겠습니다. 헥센 교수님.”
샤를이 눈에서 반짝거리는 희미한 빛을 본 루돌프는 자신도 모르게 샤를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혹시 모를 증거를 찾기 위해 이 근방을 수색해보죠.”
경찰들은 한동안은 천으로 감싼 시체에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을 탐사하면서 범행 도구라던가 그런 것들을 찾았고 그건 성공적이었다.
범행에 쓰인 것은 거대한 공작 기계, 그것도 정육점에서 사용할 법한 물건이었다. 이걸 어떻게 빼돌려서 자신의 지하에 가져다 둔 것인지는 나중에 수사하면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걸로 신체를 깔끔하게 토막 냈다. 다만 얼굴을 조각했던 흉기는 찾지 못했다. 샤를은 그 흉기는 조각칼이고 아마 조각구원회의 누군가가 가지고 있을 거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
그동안 샤를은 영성을 이용해 주변을 둘러보았고 그 사이에서 무언가를 찾아냈다. 어떤 보따리였는데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볼트’를 찾아냈다.
마법적으로 재가공된 볼트였다. 인형이나 인간을 조종하는 세뇌를 사용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재료였다. 샤를은 이걸 이용해서 놈을 추적할 수 있음을 깨닫고 몰래 챙겼다.
그리고 볼트 아래에는 어떤 종이쪽지가 놓여 있었는데 비밀스럽게 바위틈에 숨겨져 있었다.
-하늘에 붉은 달이 뜰 것이다. 준비되면 의식을 거행하도록. 이 의식을 거행한 이후에는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된다.
‘빈스는 흔적을 남겼지만.’
아마도 하수인을 잘못 고른 듯했다. 하긴, 대부분의 영성자들이 제대로 된 하수인을 고르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곤 했다. 비밀 세계에서는 이상하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계속 읽다가 다음 구절이 눈에 띄었다.
-너와 함께 있던 자들도 각자의 자리로 가서 의식을 거행할 것이다. 새로이 만들어질 다른 인형들을 기대하도록 해라.
‘인형은 하나가 아니었어. 여러 개였던 거야.’
샤를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보지 못한 다른 곳에서도 살인이 일어났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경찰국은 감도 못 잡았고 기자들도 반응이 없다. 십중팔구 빈민가에서 벌어진 사건일 것이 분명했다.
‘마피아를 털어봐야 하나? 지금 당장은 무리일 것 같은데.’
샤를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점술이 필요해. 점술을 사용했으면 마피아를 털려는 생각도 안했겠지.’
점술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샤를은 계속해서 쪽지를 읽었다. 쪽지의 다음 내용이 영성으로만 볼 수 있는 잉크로 적혀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데이크 거리 99호에 연금술사가 있다. 연금술사에게서 의식에 필요한 비밀 재료들을 구입해라. 명심할 것은 정체가 밝혀지면 안 된다는 것. 약점을 보여주지 마라. 그리고 펜타클이 그려진 메달을 꼭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거래의 징표다.
‘……연금술사?’
그리고 쪽지 아래에서 메달을 찾아냈다. 황색 동판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는데 특별한 방법으로 제조되었다는 것 말고는 더 특이한 것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샤를은 곧장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나서 루돌프를 불러서 이 쪽지를 찾았다고 말했다. 나머지 살인에 대한 것은 루이스가 어떻게 할 것이었다.
경찰들과 샤를의 지하 탐방은 여기서 끝이 났다. 경찰들은 한동안 잠들지 못할 거라 말했으며 한 경찰은 샤를에게 다가와 따로 말을 걸었다.
광명교의 교리를 읊던 신실한 신도인 버나드 힙슨이었다.
“저, 헥센님.”
“버나드 힙슨?”
“당신을 따르고 싶습니다. 그 빛……. 그 빛이 저를 인도하리라 믿습니다.”
버나드 힙슨은 평범한 경찰처럼 보였다. 그러나 샤를은 그의 언행을 보면서 일찍이 그가 상당히 불안정하고 마음의 안정을 원하는 존재라는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의 계몽 수치는 크게 증가했을 터, 불안감도 심해졌을 것이었다.
빛은 불안정한 날벌레들을 홀린다. 그 거미줄에 갇힌 한 남자가 스스로 빛을 향해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
“빛을 이해하고 싶습니까?”
“그렇습니다. 이해하고 싶습니다. 부디 제게 그 빛을…….”
“버나드. 당신은 아직 빛을 이해하기에는 이릅니다. 그러니 집회에 와서 먼저 빛을 들여다보는 게 어떨까요?”
“아! 알겠습니다. 제가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샤를은 나긋나긋하게 말하면서 버나드를 끌어들였다. 광명교단의 신자였지만 그는 샤를의 주문을 보고 단단히 홀린 것 같았다.
경찰국의 경찰 하나가 무명교에 입교하는 순간이었다. 지금을 바탕 삼아 무명교는 메트로폴 전역으로 확장해 나가면서 모든 장소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영성을 가진 루돌프를 원했지만 그래도 출발이 좋아. 버나드는 자기 동료들을 데리고 무명교의 집회에 올 확률이 농후하지. 그를 시작으로 말단 경찰들부터 끌어들여 보자.’
* * *
이번 일로 인해 경찰국 내부는 쑥대밭이 되었다. 단순한 시체 발견 작업일 거라고 예상했으나 갔던 경사들 여럿이 같은 증언을 하고 있었고 다시 방문했을 때 보았던 그 기괴한 풍경들은 거짓이 아니었다.
쏘아낸 탄환, 마치 별세계처럼 변해버린 빈스의 지하실 내부는 살펴만 봐도 끔찍해 보였다.
“그 기자 놈! 다가오면 무조건 없애버려.”
루이스가 분통을 터뜨리면서 미리 닥쳐올 하이에나를 예고했다. 기자 벡토는 분명히 이 사건에 냄새를 맡고 찾아올 것이 분명했으므로 오면 삼단봉으로 때려버리라는(?) 루이스의 명령이 이어졌다.
“형사님……. 벡토 기자는 못 건드리는 거 아시면서 말입니다.”
“닥쳐! 이번 사건은 무조건 입 다물어야 해.”
루이스는 자신의 비밀 연줄을 써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메트로폴 지부에 있는 경찰국이 아니라 수도 인시그니아에 있는 경찰국 본국에 전보를 넣었다.
전보를 넣고 케인 청장과 면담을 하러 갔는데 그곳에는 불쾌한 인상이 앉아 있었다. 페도라 모자를 벗고 2대 8 가르마를 한 멀쩡한 얼굴의 기자였다.
“후후. 이미 늦었습니다.”
“뭐? 설마 청장님?”
일그러진 루이스가 벡토 기자 앞에 앉아 있는 케인 청장을 바라봤다. 청장은 근엄한 표정으로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었다.
“내가 아니야. 그 집 주인인 노인이 미리 연락했다더군. 방을 이 잡듯이 수색하고 그 아래에 있는 비밀 문까지 발견했으니 집주인이 못 알아볼 수가 있는가.”
“후후. 선데이크 거리 출신이라 그런지 조금의 사례금 덕분에 기사거리를 듣게 되었지 뭡니까. 지금 그 이야기 중이었습니다.”
“벡토!”
“진정해, 루이스.”
케인 청장은 자신의 모노클을 내려놓고 눈 주변을 주물렀다. 노안이 있는 그는 안경이 없으면 글자를 읽는 것을 힘들어했다. 이런 노인이 메트로폴의 청장이라는 게 줄곧 루이스의 불만이었다.
‘연줄로 들어온 낙하산 놈!’
‘건방진 형사 놈. 핑계 거리만 있으면 이미 넌 잘렸어.’
케인은 사춘기 반항아처럼 구는 루이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적이 없었으면 진작 잘려나갔을 바람둥이 놈.
“아무튼 이 사건은 내일 자로 신문에 날 거다.”
“아뇨! 그런…….”
길고 긴 언쟁이 시작되려는 그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케인은 무심하게 전화를 들어서 받았다.
“네. 메트로폴 경찰국 케인 청장입니다. 네. 누구시라고요?”
케인의 눈동자가 갑자기 커졌다. 그러면서 그는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루이스의 덤덤한 표정을 볼 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알겠습니다. 이 건은 더 크게 부풀리지 않고 마무리 짓겠습니다. 예. 그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벡토가 당황해져서 묻자 케인 청장은 전화를 내려놓고 파이프에 다시 담배를 쑤셔 넣었다. 줄담배였다. 이렇게 줄담배를 필 때 케인 청장의 기분이 나빠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벡토는 항의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위에서의 지시야.”
“위라면……. 수도 인시그니아의……?”
“그래. 자넨 나가보게 루이스.”
“예. 그럼.”
루이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나가자 케인은 담담하게 그를 무시했다. 루이스가 나가고 난 뒤에 벡토가 물었다.
“인시그니아의 누굽니까?”
“MI7. 이 사건에 대한 담당 조사관을 파견한다는군.”
“비밀 경찰국까지 간섭할 일이라니 보통 일이 아니군요. 따로 담당 조사관까지 필요한 일입니까?”
“그게 좀 애매해.”
“예?”
“국장급도 아니고 팀장급에서 걸려온 전화란 말이지. 기사는 내지 마. 하지만 따로 조사해 보는 게 어떤가.”
비밀 경찰국인 MI7의 팀장도 다른 지역의 청장보다 권한이 높긴 했다. 하지만 묘하게 냄새가 났다. 그다지 큰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케인은 그쪽에 연관되어서 좋은 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하죠. 백작님과의 약속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건 나중에 내가 따로 사람을 보내도록 하지.”
“예. 그럼 알겠습니다.”
케인은 벡토가 나가는 걸 문득 바라보았다. 요즘 시대에 백작의 사생아라. 뭐 저 녀석 덕분에 백작이랑 친해졌기 때문에 그는 별 불만은 없었다.
벡토에 대한 생각은 그만두고 케인 청장은 담배를 내려놓았다. 루이스에게 발톱이 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소득은 있는 셈이었지만 뭔가 마음에 걸린다.
‘그놈이 왜 MI7에 연줄이 있지? 이건 좀 알아봐야겠는데.’
* * *
샤를이 시체를 찾았다는 것을 명기한 편지를 보낸 이튿날, 곧바로 에브렌 린덴이 찾아왔다. 이미 시체는 경찰에서 찾았으니 에브렌 린덴이 회수해갔을 것이다.
“아, 린덴 부인.”
가볍게 목례를 한 에브렌 린덴은 감사의 뜻과 함께 10만 파운드 어치의 무기명 수표를 건넸다.
“감사드려요. 헥센 교수님. 덕분에 딸 아이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어요.”
“의뢰니까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샤를은 에브렌 린덴이 찾아온 게 이상하다고 느꼈다. 하인을 시켜서 그냥 돈만 보내도 되었을 텐데.
“혹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제 저택으로 초대해서 감사를 드리고 싶군요.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
“……그걸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죠. 이번 주 일요일 날 뵙겠습니다.”
인사를 한 에브렌 린덴은 고개를 숙였다. 샤를은 해야 할 일이 많은데도 에브렌 린덴의 초대를 받아들인 이유는 에브렌에게서 언뜻언뜻 보이는 기이한 광기 때문이었다.
사실 원작에서 에브렌 린덴은 그렇게까지 주요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샤를이 모르고 있던 물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저 여자 위험한 것 같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내 안의 사이코패스 감지기가 작동하고 있어.
-…….
이번에는 파기나레코르의 말을 무시하기로 했다.
어쨌든 이제 샤를은 점술 능력부터 얻을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재료가 필요했다.
‘10만 파운드가 들어왔으니 이걸로 경매장에 들러서 남은 재료를 사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