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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9화 (19/221)

제19화 - 며칠 동안 샤를은 경매장을 들락날락하면서 여러 재료를 모으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현실의 일도 놓지 않고 잘하고 있었으며 매번 집회도 열었다. 근데 손님이 등장했다.

샤를은 탐정 사무소를 개업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따로 개업할 생각이 없었다. 단순히 경찰국과의 공조를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서 따둔 자격증 정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 첫 방문자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건 샤를에게 약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였다.

“안녕하십니까? 에브렌 린덴이라고 합니다.”

검은색 수의를 걸치고 챙이 넓은 모자에 면사포를 쓴 여인. 린덴……. 플로나가 처참하게 짓이겼던 인형, 그러니까 그 시체의 원주인의 이름이 린덴이었다. 그리고 이 여인의 나이는 중년대로 보인다.

세릴다 린덴의 어머니가 분명했다. 린덴이라는 이름을 듣고 나자 샤를은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루이스 형사님께 들었습니다. 탐정님께서 사라졌던 시체를 찾아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샤를은 한 번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맨 처음 수상쩍어 보이는 행세를 하던 그 남자를 끝까지 추격해서 잡았으면,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범인(凡人)은 알아채지 못하는 천재의 감각으로 샤를은 미리 살인을 예고했었다. 그럼에도 막지 못했다. 아니, 막지 않은 걸까?

다른 사람들은 샤를에게 책임이 없다고 말할 것이었다. 그는 경찰도 아니었고 단지 뛰어난 능력을 갖춘 평범한 교수……겸 사교의 교주니까.

하지만 샤를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 시점에서는 살인자가 단순한 살인범이 아니라 조각구원회의 사주를 받은 하수인이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아이의 남은 부분이라도 온전하게 되찾았다는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비록 그 시체는 알아보기 어려운 처참한 모습이었겠지만, 인형이 되어버린 세릴다의 시체는 이미 인간의 것이라고도 보기 어려웠다. 눈에서 피눈물을 총처럼 쏠 수 있는 게 사람이긴 하겠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인.”

“감사합니다. 살인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가 파멸시켜버릴 겁니다.”

그 말을 하는 에브렌의 눈에는 약간의 증오가 담겨 있었지만, 곧 사라져버렸다. 기이할 정도로 빠른 감정의 변화였지만 샤를은 그것에서 의문을 살짝 느꼈다. 이건 정상 범주를 넘어서 있었다.

“다만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 아이의 온전한 부분은 광명교단에 안치했습니다. 짓이겨진 상처를 꿰매고 의안도 만들었죠.”

그 말에서 샤를은 다음에 에브렌이 무슨 말을 할지 알아챘다.

“뛰어난 추리력을 갖고 계시다고, 루이스 형사님께 들었습니다. 그 아이의 남은 시체 부분이라도 되찾을 수 있겠습니까?”

“……남은 부분이라면 하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이미 죽은 아이는 돌려받을 수 없겠지만 되도록 남은 부분은 돌려받고 싶습니다.”

너무 슬퍼서 그 슬픔이 밖으로 흘러 넘쳐버린다. 에브렌의 그 눈은, 그 이후에 남은 텅 빈 부분이었다. 모든 것을 쏟아낸 자의 눈빛.

샤를은 일말의 책임을 느꼈지만, 그 책임에 함몰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의뢰는 의뢰.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지는 샤를의 선택이었다.

“린덴 가문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드리겠습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돈 말입니까?”

“네. 의뢰금은 10만 파운드면 될까요?”

샤를은 턱을 만지면서 생각했다. 린덴 가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미스트위버에 여러 자식들을 차례차례 대학생으로 보낼 정도로 부유한 가문이고 6채의 공장을 소유하고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되도록 이른 시일 내에 찾아주세요.”

“알겠습니다.”

“서두르세요. 그 아이가 그 아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도록 말이에요.”

샤를은 기묘함을 느꼈다. 문맥상 시체가 썩기 전에 찾으라는 말 같은데……. 에브렌 린덴의 정상을 벗어난 듯한 기묘한 감정 변화를 떠올리자 위화감이 든다.

“장담은 못 드립니다. 살인범이 남은 사체를 어떻게 했을지는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일이겠죠.”

에브렌 린덴은 냉정하게 말하고는 일어섰다. 우울한 백조처럼 보이는 여성은 검은색 수의를 펄럭이면서 떠났다.

샤를은 턱을 괴었다. 에브렌 린덴은 메인 시나리오에서 그다지 중요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에브렌 린덴에게서 뭔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진다.

그녀를 주의해서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의뢰는 받았으니 일에 착수할 시간이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살인자 탐문이었다. 그날 하루는 공강이었으므로 루이스 형사를 찾아갔다.

* * *

래보 거리에 있는 경찰국은 이제 좀 조용해졌다. 살인사건 이후로 범인도 잡혔겠다. 기자들의 수는 줄어들어 있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분주한 건 매한가지였다. 샤를은 그 길로 형사를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루이스 형사님.”

“오, 오셨습니까. 헥센 씨.”

루이스는 느슨하게 있다가 샤를을 만나자마자 자세를 고쳤다. 그의 눈에서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샤를은 희미한 희열감을 느꼈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가시화된 것, 이런 것은 김연수이던 시절에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것이기에.

“에브렌 린덴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저런, 미리 말씀드릴 것을 그랬습니다. 에브렌 린덴 부인이 그쪽으로 방문할 줄은 몰랐습니다. 단지 뛰어난 탐정이 시체를 찾아냈다고 말씀드렸을 뿐인데.”

“그것 때문에 말입니다. 부인께서는 나머지 시체도 찾아달라고 하시더군요.”

어느 문화권에서든 시체를 매장할 때, 모든 신체가 전부 있기를 원했다. 에브렌 린덴은 시체를 돌려받고 싶어 했고 그건 루이스의 도움이 필요했다.

“흠. 제가 뭘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루이스는 공손하게 말했다. 그의 앞에 있는 남자는 보기만 하더라도 남들과는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뛰어난 탐정이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도움을 주면서 나중에 도움을 받을 기회를 얻어두는 게 그에게도 좋았다.

“살인범과 만나고 싶습니다. 아직 재판장에 올라가진 않았지만, 곧 그렇게 될 거라더군요.”

“그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루돌프가 안내할 겁니다.”

루이스는 심플하게 답했다. 잠시 뒤에 샤를은 루돌프 경사를 따라서 구치소로 향할 수 있었다. 삼엄한 표정으로 소총을 들고 있는 거구의 남자들이 지키는 구치소로 들어갔다.

각 방마다 창살로 격리해둔다. 살인범의 위치는 구치소에서도 제일 끝쪽에 있었다. 루이스 형사 대신 따라온 루돌프 경사는 샤를을 안내하고 나서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뒤로 물러섰다.

“그럼 이야기 나누십시오.”

샤를은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마주쳤던 그 남자가 맞았다. 이름, 빈스 한델. 나이. 43세. 가족 없음. 젊었을 적에는 남부 전쟁에 참가했고 부상병이 되어 은퇴. 한동안 빈민가를 전전했으나 부상을 회복한 뒤에는 철강 공장에 취직했다…….

기구한 인생을 산 남자였지만 그게 살인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 않았다. 구치소에서 수십 차례 얻어맞은 듯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눈두덩이에서는 피와 진물이 흘러내렸고 입술은 파랗게 부풀어 올랐다.

샤를이 그의 앞에 섰다. 빈스 한델은 샤를을 보는 척 마는 척 계속 눈을 굴리면서 초조하다는 표정을 드러냈지만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관찰한 끝에, 그 이유가 공포 때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흐르는 식은땀. 이리저리 흔들리는 시선,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다는 절망감.

“한스 빈델이 맞죠? 저는 샤를 헥센이라고 합니다.”

“예, 예. 예.”

빈스는 대답 대신 예, 만을 반복했다. 그건 어떤 자기방어적인 부분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샤를은 눈을 가늘게 떴다. 몇 번의 대담을 한 결과, 이 자는 살인을 하기에는 너무 나약했다.

하지만 증거는 명확했다. 루이스가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급습된 현장에서 모든 증거가 나왔고 자백까지 했다고 한다. 샤를은 그를 떠보기로 했다.

“두렵습니까?”

그러자 빈스 한델이 눈을 들어 올리면서 처음으로 샤를 헥센과 마주했다. 그의 눈은 공포와 광기의 절반쯤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시체의 남은 부분을 찾고 있습니다. 날 좀 도와주시죠.”

“내, 내가 왜.”

“공포에서 해방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당신의 뒤에는 뭔가가 보이는군요.”

“뒤, 뒤에?”

빈스가 뒤를 돌아보는 동안 샤를은 영성을 이용해서 그의 내부를 파악했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냈다. 그의 머리 한쪽에 기이한 영성이 부분적으로 남아있었다.

전두엽 한쪽에 박혀 있는 것을 볼 때, 무언가 그의 머릿속에 심어진 것이 맞았다.

샤를은 그게 단순히 영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 섞여있다는 것과 이마 옆쪽의 길게 찢어진 상처를 발견했다. 외과적인 수술로 이뤄진 것.

‘누군가에게 뇌를 조작 당했군. 조각구원회가 분명해. 더 증거를 찾을 필요도 없겠어.’

이런 식의 신체 개조는 조각구원회의 전문이었다. 벌써 세 번째 봤으니 질리지도 않는다. 신체 일부를 ‘인형’으로 개조하는 것은 다른 교단은 따라 할 수도 없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빈스는 뒤에 무언가 보인다고 샤를이 겁을 주자마자 급작스럽게 돌아보더니 존재하지도 않는 무언가를 찾아낸 것처럼 화들짝 놀라고는 고개를 돌렸다.

쾅!

그리고는 경기를 일으키면서 위협적으로 창살에 붙어서 빈스가 소리쳤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루돌프 경사가 뒷짐 지고 보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달려들려는 빈스를 보고서는 삼단봉을 꺼내서 놈을 위협했다.

나이 지긋한 경찰들이라면 범죄자가 절대로 저 튼튼한 쇠창살을 통과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만, 루돌프 경사는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

“제게 협조하면, 그걸 가르쳐드리죠. 린덴 양의 신체 부분은 어떻게 됐습니까.”

빈스는 음울한 모습으로 말했다.

“그, 집에, 있어.”

“집?”

“선데이크 거리 27호…….”

“그렇군. 만약 당신의 말이 거짓이라고 판단된다면….”

“아니야! 진짜라고! 거기 있다. 이제 가르쳐줘. 어떻게 하면 그놈을 떼어낼 수 있지?”

그놈? 샤를은 이 살인범의 뇌를 엉망으로 만든 자에 대한 정보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선택의 기로였다. 이 괴물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정보를 더 캐내느냐, 아니면 내버려 두느냐.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리고 품에서 물병을 꺼냈다.

“광명자 교단의 성수입니다. 매일 마시고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면 두려움은 사라질 겁니다.”

사실 그건 샤를이 집에서 펀 물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효과가 없진 않을 것이었다. 영성을 살짝 깃들게 했으므로 전두엽에서 그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내뿜는 영성에 대항할 수 있게만 했을 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공포가 발작할 것이다.

“서, 성수라고? 그런 건 이미 시도해본 지 오래야!”

불신 깊은 눈동자를 보면서 샤를이 눈빛에 등불을 섞어서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이건 오랫동안 축성된 성수입니다. 단순히 교회에서 얻을 수 있는 물건과는 차원이 다르죠. 끊어서, 하루에 한 모금씩만 마십시오.”

“그, 그런가?”

매료 효과에 걸린 빈스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다 번뜩 정신이 들었는지 그만두었다. 그러나 물은 반 이상 사라진 상태였다.

그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지만 샤를은 고소를 지었다. 오히려 잘됐다. 마약 중독자를 마약으로 조련하듯이 빈스도 샤를의 영성을 담은 물로 조련하면 될 것이다.

고개를 돌려 루돌프 경사를 바라보자 그가 당황하듯 말했다.

“어, 어떻게 할까요?”

“그가 말한 곳으로 가죠.”

루이스 형사에게 경과보고를 하니 그는 경사 몇 명을 불러서 루돌프를 위시해 조사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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