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6화 (16/221)

제16화 - ‘X자 상흔이 난 여성은 하반신이 없었다. 상반신만 남아 있었다라. 사인은 과다출혈이었고.’

이건 조각구원회에서 인공 조각품을 만드는 과정과 유사했다. X자 상흔을 새기고, 그 대상에게서 무언가를 뜯어낸다. 이 경우에는 절반이나 뜯어냈다.

그들의 신, 조각 기계는 자신의 신도들에게 조각칼을 주면서 모든 것을 조각하게 했다. 그것이 일종의 그들의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였다. 그 의식의 대상에 인간이 끼어있어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들에겐 모든 게 조각품이니까.

스케줄을 보니 오늘 하루는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플로나, 잠깐 나갔다 올까?”

“네, 샤를 님. 보니 아저씨한테 마차를 준비하라고 이를까요?”

“그래. 오늘은 수업이 없는 것 같네.”

플로나는 아주 훌륭한 전투원이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그녀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나가기 전에 방에 들러서 리볼버를 꺼냈다. 여섯 발 탄창을 끝까지 장전하고 보이지 않게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혹시 몰라 가면을 준비했다. 정체를 들키면 안 되니까.

마차를 타고 도시로 향했다. 샤를은 검은색 넥타이를 매고 보울러햇에 타이트한 모닝코트. 헐렁한 바지를 입고 지팡이를 들었다. 이게 이 시대 남자의 표준 옷차림 비슷한 거였다.

플로나는 비숍 슬리브 형태의 소매가 달린 핀턱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머리에는 테가 빳빳한 클로슈를 썼다. 회색 치마 아래로 검은색 스타킹이 보였다.

샤를과 함께 외출하게 된 플로나는 언뜻 보기에도 굉장히 신나 보였다.

‘흠. 철퇴를 보관하고 있겠지?’

흉악한 가시가 잔뜩 달린 철퇴로 괴물을 망설임 없이 때려죽이는 플로나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치마 속에서 철퇴를 꺼낼 것이다.

“샤를 님? 어딜 보세요.”

“아무것도.”

치마에서 철퇴가 튀어나오는 걸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구차해보여서 일축하고는 마차에 먼저 올라탔다. 플로나는 싱긋 웃으면서 샤를의 앞자리에 탔다. 그녀는 요즘 현저하게 바뀐 샤를의 모습이 꽤 괜찮다고 느꼈다.

가까운 곳에서 샤를을 봐왔기에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한동안 잠들기 전에는 싸늘하기만 했던 그의 눈빛이 요즘에는 인간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 너무 빠지면 안 되는데.’

플로나는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샤를에게 더 빠지다간 그녀 자신이 불타버리고 말 것이었다. 누구든 태양에 가까워진 자는 죽으니까.

도심에 도착하자마자 샤를은 경찰서를 찾았다. 경찰서는 앞에서부터 두 경관이 있었다. 그들은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는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한 남자는 짜증 가득한 얼굴이었고 다른 남자는 순박한 인상의 남자였다.

“기자라면 들쑤시지 말고 돌아가쇼.”

짜증 가득한 얼굴의 남자가 말하자 샤를은 모자를 벗었다.

그는 등불 주문의 여러 사용방법에 대해 며칠간 숙련도를 올렸다. 이제는 바뀌어버린, ‘무존자의 등불’ 주문은 그간 며칠 동안 샤를이 파악한 결과, 특이한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아냈다.

눈 안에 등불을 미약하게 키면, 영성이 없거나 모자란 자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일종의 매료였다.

불만 가득한 경관은 이 능력과 샤를의 카리스마가 합쳐져 마치 범접할 수 없는 귀인(貴人)을 만나고 있다고 느꼈다.

“누, 누구십니까?”

“샤를 헥센. 미스트위버 대학 교수입니다. 학교 여학생이 무참히 살해당했다는 비보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더군요. 혹시나 제가 할 수 있는 증언이 있다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습니까?”

“아, 이쪽으로 오시죠. 루, 루돌프. 이분을 모시고 안으로 들어가라.”

“네.”

순박한 인상의 청년, 루돌프는 상관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샤를은 그가 매료에 전혀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플로나는 밖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루돌프? 이름은 못 들어본 것 같은데. 영성이 조금 있네.’

스토리에 중요한 역할을 미치지 않는 캐릭터들은 무작위로 생성된다.

이자는 영성이 있거나 혹은 타 교단의 끄나풀일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끄나풀일리는 없지. 이자에게선 어떤 사악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샤를은 영성으로 루돌프의 신체를 쭉 훑어봤으나 계몽 수치도 낮고 사악한 마(魔)에 휩싸여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보통 각 교단의 세례를 통해서 각성하지만, 야생에서도 이런 영성자들이 자연적으로 출몰하는 일도 있었다.

루돌프는 공손하게 샤를을 담당 형사에게 안내했다. 형사 루이스는 파이프 담배를 물고 경찰모를 썼다. 수염은 코와 턱 사이 동그랗게 난 고티 스타일이었다.

평범하게 배가 튀어나온 중년 형사처럼 보였지만 눈빛이 반짝거렸다. 이자는 날카로운 눈매와 높은 추리력을 가졌지만, 영성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미스트위버 교수시라고? 아니 교수가 대체 왜?”

시시콜콜한 인적사항을 적고는 이야기를 했다. 샤를과 대화하던 루이스는 맨 처음에는 심드렁했다가 점점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이건 샤를의 이야기가 그의 흥미를 끄는 부분도 있었지만 샤를의 목소리에 담긴 영성이 그를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존재처럼 느껴지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퇴교 중에 수상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봤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공장 노동자처럼 보였는데 정확히는 모르겠군요.”

“알겠소. 제보 감사하네.”

샤를은 대화하면서 루이스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시종일관 불안한 기색이었다. 조각구원회의 의식에 사용된 대상 조각품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샤를은 입을 열었다.

“형사님. 시체가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음? 재밌는 농담이군.”

루이스의 눈동자가 한순간 커졌다가 다시 줄어들었다. 짧은 순간 그걸 파악했던 샤를은 진지하게 말했다.

“농담하는 게 아닙니다. 시체가 안치실에서 사라진 게 맞습니까?”

평소에는 심드렁하게 대꾸하면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을 루이스는 샤를의 목소리를 보고 진실이 간파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자네. 그건 대체 어디서 들었지? 역시 벡토 녀석인가.”

“벡토?”

“벡토 기자가 말한 게 아니란 말인가? 다른 경찰인가? 루돌프?”

“아니요.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괴한 형식으로 살해되고, 또 그 시체가 움직였다는 사실이 중요한 일이죠.”

“시체가 움직였을 리는 없네. 분명 누군가 시체를 빼돌린 거야.”

감식반 팀은 지금 사라진 시체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었다. 루이스는 여전히 부인 중인 감식반 놈들을 어떻게 더 조질까 생각하고 있었으나, 샤를이 시체를 움직였다고 하자 정말로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그 시체를 찾아드리죠.”

“자네가? 무슨 수로?”

“부검실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해드리죠.”

샤를의 목소리에 담긴 힘이 루이스를 점점 매료시켰다. 그러나 매료가 걸려 있다고 해도 루이스는 자신의 원칙에 고지식한 남자여서 이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 샤를은 자신의 추리 능력을 어느 정도 보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의 눈앞에 루이스의 과거가 점점 드러났다. 루이스를 관찰하면 관찰할수록 그가 뭘 했는지 더 섬세하게 알 수 있어진다.

“형사님. 방금 전에 토마토 파스타를 드셨군요? 평소에는 잘 드시지 않는 음식이지만 부인께서 직장 근처에 왔기 때문에 드셨군요.”

“응? 그, 그렇소.”

루이스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부인은 심기가 불편합니다. 형사님은 그분을 위해서 근사한 점심 식사를 준비했죠. 왜 심기가 불편할까요? 그건 전날 형사님이 홍등가에 들렀기 때문입니다. 상대는 20대의 백인 여성. 머리카락은 환한 금발이군요. 초록색 눈동자가 마음에 드셨기 때문에 그분을 골랐습니다.”

“뭐, 뭐라!?”

“이번에는 용케도 부인께 그 사실을 숨겼지만 부인이 그걸 의심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군요.”

“그만, 그만 말하게.”

루이스가 당황하면서 입에 물고 있던 파이프를 내려놓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전부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샤를은 상대의 신체에서 모든 정보를 추출해내고 있었다.

입가에 묻은 토마토소스, 목에 희미하게 남은 키스마크와 옷에 남은 길쭉한 금발 머리카락. 이마에 늘어난 주름들이 마치 과거의 정보가 되어서 샤를의 눈앞에 재생되고 있었고 샤를은 그걸 읊은 것밖에 없었다.

당황한 루이스를 보면서 샤를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보통 이렇게 정곡을 찔리면 화내거나 부인하기 마련이지만 이미 미약한 등불의 효과로 인해 루이스는 그에게 매료되어 있는 상태였다.

“참고로 부인께 외도를 숨기고 싶다면 옷에 붙은 머리카락부터 떼셔야 합니다.”

화들짝 놀란 루이스는 당장 칼라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냈다. 이 여편네, 이걸 보고 눈치를 깐 건가? 그런데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은 걸 보면…….

“후. 알겠소. 자네의 추리력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것을 알겠네.”

루이스는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경찰국 내부로 샤를을 데리고 갔다.

“자 이곳이네.”

샤를의 높은 간파능력이 이 근방의 정보를 수집했다. 샤를의 머릿속에서 강화된 정보가 재조립되기 시작했다.

“감식반은 시체를 부검실에 두고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담배 냄새가 은은하게 나는 것을 보니 파이프 담배를 피우러 갔군요. 그 사이 시체가 움직입니다. 시체는 낮은 운동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부검실 위쪽의 환기구에는 손이 닿지 않자 바닥으로 기어서 저쪽 환기구로 향했군요.”

루이스는 샤를의 추리를 유심히 따라가면서 보다가 아래쪽 환기구가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보더니 소름이 돋았다.

아래쪽 환기구는 너무 작아서 어린아이들이나 들어갈 수 있을 법하게 작았는데 상반신밖에 없는 시체라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환기구 앞에 가득한 핏자국을 보고 그는 자신의 상식이 파괴되는 느낌을 받았다. 시체가 움직인다니? 여태까지 그를 감싸고 있던 세계가 파괴되자 그는 당황함에 어쩔 줄 몰랐다.

“이건, 대체. 시체가 움직인다니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런 그를 샤를이 부드럽게 다독이면서 말했다.

“이해합니다. 보고도 믿지 못할 일을 겪을 수도 있죠. 하지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이번 살인은 평범한 살인이 아니니까요. 환기구는 어디로 통해 있습니까?”

“음. 이곳은 아마 경찰국 내부 창고로 이어진 다음에 바깥으로 연결되어 있을 겁니다.”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겠지만 그의 말투마저도 공손하게 바뀐 상태였다.

“내부 창고로 가죠.”

루이스와 샤를은 창고 위쪽 환기구에서 핏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자국은 길게 쓸려서 환기구 바깥으로 향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저걸 보고 스트레스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샤를의 말이 사실이라면 누구도 옮기지 않은 시체가 스스로 탈출한 것이 틀림없었다.

“형사님. 형사님은 범인을 잡는 데 주력해주시죠. 저는 시체를 찾는 것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그게……. 민간인에게는 수사 권한이 없습니다. 헥센 교수님.”

“사립 탐정 정도라면 경찰의 도움 없이도 범인을 추적할 수 있겠죠? 루이스 형사님.”

“아, 알겠습니다. 탐정 자격증을 제가 발급해드리겠습니다.”

샤를의 미소는 냉철한 형사 루이스조차 홀리게 만들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연애의 대상이 아니라, 어떤 숭배의 대상이 되기 충분했다.

루이스는 홀린 것처럼 부하에게 탐정 자격증을 샤를에게 발급하게 하고는 자신은 샤를이 봤다는 공장 노동자를 수색하기 위해 출동했다.

샤를은 수수료를 내고는 탐정 자격증을 습득했다. 사무소는 개업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경찰국에 개입할 명분은 충분히 얻은 셈이었다.

보통 탐정 자격증은 대학에서 얻거나 혹은 경찰국에서 따로 발부하는 경우가 아니면 얻을 수 없지만 아주 손쉽게 손에 넣은 것이었다.

‘다른 교단보다 앞서가고 있어.’

현재 4대 교단의 교주들은 사악한 신에게 씨앗을 받아서 그 힘의 반동으로 모두 식물인간 상태였다.

하지만 샤를은 사악한 신을 모시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권능의 반동에서 자유로웠다. 경찰국에 연줄도 생겼고 탐정 자격증도 얻었으니 다른 교단이 경찰국에 간섭하는 것을 미리 알아챌 수 있을 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