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 흐릿한 어둠 속에서 샤를의 신체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찾았어.”
샤를이 조용히 속삭이자 드레이크는 몸을 낮추면서 움직였다. 그리고 안개 너머에 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횃불을 장대에 매달아서 높이 달아놨다.
그 불빛 아래에는 마치 사형이라도 집행하듯 높은 장대에 매달린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크크크크.”
그리고 중앙에서 웃고 있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지라 앳된 듯한 외모였지만 눈에는 기이한 광기가 흐르고 있었다. 댈러웨이였다.
퍽. 퍽.
그는 라인배커인 피터를 발로 걷어차고 있었다. 쓰러진 피터가 신음을 흘렸다. 그는 얻어맞기 전에도 피투성이인 상태였다. 그러나 정황상 덩치도 작은 댈러웨이가 그랬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 새끼야. 어때? 무시하던 놈한테 처맞는 기분이? 이 개자식아.”
보통이라면, 피터는 댈러웨이를 가볍게 제압해야만 했다. 그러나 피터의 눈에는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댈러웨이를 향한 공포는 아니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댈러웨이의 말을 듣는 그 괴물을 향한 공포였다.
때리다 보니 자신의 몸이 더 아프단 것을 깨달은 댈러웨이는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허억. 허억. 네가 도망쳐서 너의 친구들이 아직도 저기 매달려 있잖아.”
댈러웨이가 손으로 장대를 가리켰다. 그곳에 거미줄에 둘둘 묶여서 매달린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얼굴만 쏙 내밀고 있어서 마치 침낭 속에 들어간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대부분 피터의 패거리였지만 피터 패거리가 아닌 사람도 있었다. 전부 댈러웨이를 깔보고 무시했던 사람들이었다. 속이 좁은 댈러웨이는 그들을 기억해뒀다. 사소한 원한 하나하나 기억한다.
지나가다가 어깨로 치고 가면서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뭘 꼬라보냐고 말하던 놈.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니 그제야 떠났다. 기억해뒀다.
친구와 인사하는 도중에 그의 발목을 걸어서 넘어뜨린 놈. 친구들과 함께 낄낄거리면서 그를 비웃었지.
피터? 피터는 댈러웨이의 증오심의 근원이었다. 언제나 자신이 갑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양아치.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댈러웨이는 쭈그려 앉아서 피터의 뺨을 툭툭 쳤다. 희열감이 치솟았다. 힘을 가진 존재는 이렇게나 짜릿하다. 그는 킥킥대면서 웃다가 자신에게 어떻게 이런 행운이 오게 되었는지를 떠올렸다.
양아치들이 부숴버린 안경 때문에 기숙사 밖으로 나와서 새 안경을 맞추려고 가는 도중, 한 남자를 만났다. 기이하게 생긴 노점을 운영하던 그 남자는 운명을 바꿀 방법을 제의했었다.
그리고 그 보라색 책을 건넸다. 정식 명칭은 아라네아의 서. 이 마도서의 명칭이었다. 수많은 주문이 깃들어 있는 이 책에는 마치 누군가 ‘번역’해놓은 것 같았다.
맨 처음에는, 마도서를 봐도 하나도 알아볼 수 없었다. 마치 두꺼운 타 학부의 전공서적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런 비밀을 파헤치는 것을 즐기는 성향을 지닌 댈러웨이는 도서관을 전전하면서 신비학 지식을 익혔다.
신비학 지식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고서야, 댈러웨이는 마도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라네아의 서는 ‘암격사’의 힘을 빌려 어둠에 속한 생물을 소환하는 소환서였다.
어떻게 계약해야 하고, 무슨 제물이 필요한지, 의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적혀 있었다. 첫 번째 챕터인 아라크네 편을 완벽히 습득한 댈러웨이는 며칠 전 소환을 시도했고, 성공했다.
댈러웨이는 자신의 망상에 빠져서 실실 웃었다. 이 힘으로 그는 위대한 존재가 될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저 괴물은 왜 저 소년을 공격하지 않는 거지?”
댈러웨이는 왜소해서 소년이라고 오해할 만했다. 그들과 살짝 떨어진 덤불 사이에서 드레이크가 중얼거렸다. 샤를은 대충 어떻게 되어 가는지 양상을 눈치 챘다. 이해할 수 있는 전개였다.
멸시 당하던 약한 소년이 초월적인 힘을 손에 넣어서 자신을 깔보던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흔히 말하는 사이다물이다.
다만 이 전개대로라면, 댈러웨이는 소년 만화의 히어로가 아니라 빌런이 될 것이다. 아라크네는 인육을 그리워하면서 항상 배고파하는 괴물이었다. 운 좋게 마도서를 얻은 소년이 통제할 수 있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드레이크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자네의 지식 속에 저 괴물을 처치할 방법은 없는 건가?”
“드레이크. 선택지가 두 개 있어.”
“두 개?”
“하난 네가 미끼가 되는 것. 샷건으로 저 괴물을 날려버려. 그동안 나는 뒤로 우회해서 저 학생이 들고 있는 책을 빼앗을 거야. 그럼 저 괴물은 멈추게 되겠지.”
“…….”
드레이크는 입을 다물었다. 샤를은 두 번째 안을 말했다.
“두 번째는 이대로 도망쳐서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리는 거지. 다만 저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을 거야.”
솔직히 말하면 샤를은 두 번째 안이 좋았다. 준비가 미흡한 지금 저 괴물과 싸우는 건 위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샤를의 생각보다 올곧은 인간이었다.
“첫 번째로.”
망설임 없이 드레이크가 말하자 샤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괴물과 싸워야 하는 운명이었다.
게임에서는, 몇 번이고 싸워봤다. 아라크네 정도면 초반에 나오는 괴물치고는 강한 편이었지만 샤를은 이미 몇 번이고 아라크네를 해체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이었다. 실수하면 죽는다. 샤를은 잠깐 심호흡을 했다. 공포가 가라앉고 이성적인 판단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드레이크에게 넌지시 말했다.
“오늘 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될 거야. 스스로 믿던 것보다 더 이상한 것을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지.”
“그 거미를 봤을 때부터 이미 이상한 세계에 끼어든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샤를과 드레이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호수 쪽에서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댈러웨이가 멍하게 망상에 빠져있는 동안 피터의 눈이 댈러웨이의 왼손에 있는 보라색 책으로 향했다.
피터는 의심하고 있었다. 어째서 댈러웨이가 저 거대한 거미 인간을 불러서 마치 애완동물처럼 다루는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뛰어난 통찰이 튀어나왔다. 평소의 댈러웨이와 달라진 점이라곤 저 책이 손에 들려 있다는 점뿐이었다. 혹시라도 저 책을 빼앗는다면……. 그 괴물을 없애버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눈치를 보던 피터가 움직였다.
“흐읍!”
재빠르게 손을 뻗었지만 기이하고 검은 물체가 더 빨리 날아와서 피터의 손목을 꿰뚫는 것이 먼저였다. 손목이 꿰뚫려서 피가 분수처럼 튀어나왔다.
“끄아아아아아악!”
피터를 꿰뚫은 것은 거미의 다리였다. 어둠 속에서 은신하며 그림자처럼 댈러웨이의 주변에 머무르던 아라크네의 발끝은 창촉처럼 날카로웠다.
“하, 이거 안 되겠네.”
댈러웨이가 손짓하자 아라크네는 다리로 피터를 찍어서 들어 올린 다음에 기이하게 검은 손으로 피터를 집었다. 그러자 검은색 손목에서 하얀색 실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실로 둘둘 감기는 도중에도 피터는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잠시 뒤 고치에 갇힌 피터는 그대로 장대에 묶였다.
“엘리자베스는 지금 배가 고파.”
“우웁! 우우우우욱!”
“너 같은 놈은 거미 먹이다!”
댈러웨이의 신호를 받은 아라크네가 입을 벌렸다. 본래 미녀였던 아라크네는 끔찍한 형태로 입이 벌려졌다. 턱이 옆으로 벌려지는 구조. 그 안에 이빨은 마치 칠성장어의 이빨처럼 되어 있었다.
“사, 살려줘. 제발! 내가 잘못했어.”
“후후. 늦었어. 너무 억울해할 거 없어. 저기 있는 쓰레기들도 전부 아라크네의 뱃속으로 들어갈 테니까.”
천천히 입이 다가온다. 패닉에 질린 피터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굉음이 울려 퍼졌다.
타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