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7화 (7/221)

제7화 - 그러나 에세나 만큼의 능력을 가진 존재는 없는 것 같다.

깜깜한 어둠 속에 그에게 다가오는 기도는 몇 안 되지만 샤를은 계시의 석판이 가진 힘으로 자신이 거의 신과 같은 힘을 흉내 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일종의 신성의 씨앗이 샤를의 내면에 심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힘을 키우고 더 강해진다면 지금처럼 그냥 이야기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영향력조차 행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신도들을 더 늘리거나, 심상 세계에 을 얻거나, 오늘처럼 주문에 무존자의 이름을 붙여서 생성하는 것.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떤 효과가 생겨날 지는 샤를조차 알 수 없었다.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어!’

129번의 엔딩을 보면서 신적인 힘을 발휘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어떤 특수한 초월적인 존재가 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것이 계시의 석판이 가진 힘일까?

‘앞으로 계시의 석판 조각을 계속 모으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거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샤를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심상 세계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는 심상 세계에 들어오기 전과 똑같은 장면을 보았다.

-음. 등록 완료. 무존자의 등불로 정해둘게.

눈앞에서 파기나레코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고 있었다. 샤를은 심상 세계에서 꽤 오랫동안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약 한순간도 지나지 않은 느낌이었다.

‘시간마저 지배할 수 있다니?’

심상 세계의 힘은 소름끼칠 정도로 강했다. 샤를이 심상 세계에 들어간다면, 순식간에 남들과는 다른 시간을 얻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샤를은 심상 세계의 장점을 알아냈다. 마치 시간과 정신의 방 같지 않은가.

-왜 그래? 뭔가 문제 있어?

-아, 아니야.

-킁킁. 뭔가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파기나레코르는 샤를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냄새를 맡았다. 샤를이 기겁해서 손을 흔들었다.

-변태야!!

-헛소리하지 마 임마!

그런데 샤를은 파기나레코르를 보니 그녀가 조금 커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번에는 엄지정도의 크기였는데 지금은 검지 크기 정도로 커져 있다.

-너 좀 커졌다?

-달란트를 먹어서 성장한 건데. 이 아바타 형태가 커지는 건 나도 처음 알았는데.

-너 혹시 계속 먹이다 보면 거인이……?

-그럴지도 모르지.

파기나레코르는 담담하게 말했다. 본인이 거인이 된다는 데 별 감흥이 없는 모습이었다. 하긴 파기나레코르는 일단 인간이 아니었다. 여성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일단 마도서의 자아였다.

-적당히 먹여야겠다.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파기나레코르의 말을 무시하고 샤를은 책을 덮었다. 어차피 달란트를 계속 먹일 여유도 없을지도 모른다.

파기나레코르에게 달란트를 먹이면 주문을 뱉어내는데 처음에는 하나가 들지만, 그다음부터는 점점 들어가는 달란트의 양이 많아진다. 돈 먹는 하마라는 뜻.

일단 오라클 경매장을 일단 찾아서 회원이 될 필요가 있었다. 비밀 세계의 경제 활동은 그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라클 경매장도 신경 써야겠네. 하지만 일단 대학부터 들려야겠어.’

슬슬 밖으로 나갈 시간이었다.

* * *

샤를은 마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메트로폴 중심지를 가르는 것은 거대한 강이었다. 윈즈강이라고 불리는 이 강은 도시 중앙을 가로지르면서 물류의 중심이 되었다.

윈즈강을 타고 계속 내려가면 부둣가가 보인다. 그곳 근처에서는 항만 노동자들이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동시에 어부형제단의 근거지이기도 했으며 어마어마한 수의 증기 범선들이 오가는 곳일 터였다.

그런 상념을 하는 도중에도 마차는 계속해서 움직였고 출근하는 중산층 노동자들이 보였다. 근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겠지.

메트로폴의 서쪽은 공업 구역이었으니까. 철강 공장, 고무 공장, 성냥 공장 등이 있었다. 간간이 여공들도 보였지만 많은 수는 아니었다.

이 세계관은 거의 지구의 20세기 초쯤의 서양이라고 보면 된다. 몇몇 더 발전된 부분과 몇몇 더 낙후된 지역들도 있었지만 대개 그런 정도의 발전 양식을 보였다.

“샤를 주인님. 곧 대학에 도착합니다.”

“알겠어 보니.”

마차를 모는 하인 보니가 말하자 샤를이 대답했다. 그가 탄 것은 이두 마차였다. 그리고 마차 앞에서 말을 보는 사람은 40대의 중년 흑인이었다.

그의 원래 이름은 머르보니 기븐픽맨이었다. 이상한 이름인 것은 원래 그의 아버지가 남양인 출신 노예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노예에서 해방된 이후 헥센 가문에서 아주 오랫동안 일했던 하인이었다. 머리에 새치가 날 때까지 아직 하인인 것은 저택의 집사가 아직 죽지 않았기도 했고 그 아버지가 노예였었다는 어떤 낙인 때문에 그렇기도 했다.

샤를의 어머니가 죽기 전까지 그를 수발들던 하인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이큰과 함께 샤를을 모시고 있었다.

음지에서 플로나가 그에게 충성한다면 보니는 양지에서 그에게 충성해온 하인이었다.

“보니, 오늘은 2시까지 오면 돼.”

“알겠습니다. 주인님.”

미스트위버 대학.

샤를이 일하고 있는 대학이자 이 나라에서 꽤나 명문대로 취급받고 있는 대학이었다.

100년 전부터 세워졌던 이 대학은 온갖 오컬트가 섞인 비밀스러운 일에 휘말린 경우가 특히 많았다.

그래서 게임을 플레이하던 사람들은 이 미스트위버 대학이 미스캐토닉이라는 가상의 대학에서 착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오마쥬 이론을 내세웠다. 그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만.

보니가 미스트위버 대학 앞에 그를 내려두고 떠나자 샤를은 회중시계를 꺼내 들어서 시계를 확인했다.

8시 반. 곧 교무처장과 면담할 시간이었다. 느긋하게 걸어가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대게 체크무늬가 섞인 재킷과 카디건을 입는 것이 명문대학 미스트위버의 교복이었다.

현대에 살던 사람들이 생각하면 대학에 와서 교복을 입는 게 이상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메트로폴에서는 그게 정상이었고 그 이전 교육 과정에서는 교복 자체가 없었다.

그러므로 신입생들은 이 미스트위버 대학의 교복을 입고 나서 감격하거나 자랑하는 경우도 흔했다. 엘리트라는 증거였으니까.

중앙 본관에 들러서 교무처장이 있는 곳을 들렀지만, 지금은 부재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대학의 총장도 교무처장도 부재중이라니……. 다음에 와야 하나 싶었는데 직원의 말을 듣고 탐사학관으로 향했다.

샤를은 고 헤르메스어의 전문가였지만 인문학관이 아니라 탐사학관으로 배정받는다. 고고학이라는 학과가 탐사학에 배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고 헤르메스어는, 게임상에서는 거의 현대의 라틴어 취급이었다. 없으면 고대 유물을 알아 볼 수 도 없는 수준이었달까.

똑똑.

“칼튼 교수님.”

“오! 자네, 드디어 다 나았나 보군.”

카이저수염을 기른 백발의 60대 노교수. 칼튼의 눈에 걸린 외알 안경이 지적인 외모와 어울렸다. 평범해 보이는 외모에 속으면 안 된다.

그는 메트로폴에 존재하는 5대 사교, 암흑성도회의 간부급 중 하나였다. 암흑성도회는 처음부터 가장 성대한 세력을 자랑하는 교단이었다. 다른 교단의 성장세가 가팔라서 금방 따라잡히지만, 지금은 암흑성도회를 뛰어넘는 교단이 없었다.

또 칼튼 교수는 첫 번째 차원문을 열어젖히는 사람으로도 유명했다.

어떤 캐릭터로 시작해서 어떤 루트를 타건 일단 칼튼 교수가 이계로의 차원문을 여는 사건은 빠지지 않는다. 그렇게 대학은 개판이 나고 사교도들이 그 사이에서 이득을 취하기 위해 난리를 치게 되지.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두라고 했지.’

모 마피아 보스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샤를은 칼튼과 친밀한 관계를 취하기로 했다.

간단히 악수를 끝마치고 얘기를 나눴다.

“총장님도 교무처장님도 부재중이라, 업무가 내게 인솔되었다네. 긴 공백이 있었지. 자네가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강의를 배정할 생각인데 괜찮겠나?”

“그렇게 하죠.”

“잘 생각했다네.”

힐끗 내려다보니 그렇게 빡빡한 강의 일정은 아니었다. 샤를은 시간제 강사니까. 칼튼 교수가 웃었다.

“허허. 여학생들이 좋아하겠군.”

“네?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가 입원한 이후에 수업이 취소돼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여학생들이 오죽 많았는가. 이제 그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겠어. 원래 수업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니.”

“…….”

맞다. 생각해보니 샤를 헥센은 김연수와는 다르게 슈퍼 인싸였다.

* * *

샤를이 강의할 탐사학부는 미스트위버 대학의 서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간단하게 요기나 때울 겸 학교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공원 벤치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대학 내부에서 주시해야 할 인물 몇 명을 설정했다. 아미티지 교수, 호레이쇼 사서, 칼튼 교수, 드레이크 박사. 아직 못 만난 사람들이 많지만 그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다.

샤를이 오랫동안 이 사이비 교주 시뮬레이터라는 게임을 하면서 느낀 것은 어떤 사건의 반향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혼돈으로 전개된다는 점이었다.

플레이어가 어떤 일을 벌이게 되면 그 반향으로 수많은 다른 사건들이 펼쳐진다.

예를 들어, 샤를은 미스트위버 대학 도서관의 비밀장서고 내부에 있는 마도서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것이 굉장한 능력을 갖췄다는 것과 누가 그 마도서를 가져갈지도 알고 있다.

샤를이 미리 그 마도서를 가로채버리면, 이야기가 변한다. 마도서를 얻어가야 할 사람은, 전날 플레이어가 마도서를 탈취했기 때문에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 마도서의 대용품을 찾는다.

그 대용품은 사실 또 다른 사람이 손에 넣기로 한 물건이었고 그 사건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은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사건이 연쇄된다.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 여러 대의 자동차가 충돌하듯, 공역을 누비는 우주 쓰레기가 연쇄적으로 위성을 박살 내버리는 것처럼 이러한 사건의 연쇄 때문에 플레이어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혼돈의 세계로 향하고 만다.

샤를은 그 과정을 수백 번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결과, 건드리지 않아야 하는 건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떤 역사적 분기를 뒤틀었을 때 그 반향의 여파로 지속적으로 엔딩이 바뀌었던 것. 그러므로 샤를은 아직 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타인에게 피해가 가는 일을 하지 않을 셈이었다.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렸더니, 여학생 몇몇이 샤를을 바라보고 있었다.

“꺄아아악!”

“이쪽 본 거 아니야?”

“자, 잠시만.”

-와, 인기 좋은데?

감탄하는 파기나레코르를 무시했다. 이 녀석, 샤를이 보기에는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가끔가다 샤를과 대화를 나누긴 하는데 아직 파기나레코르에는 샤를도 알지 못하는 여러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꺅꺅거리던 여학생 일행은 샤를에게 와서 인사를 했다. 대표로 지정되어서 등 떠밀린 소녀가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인사했다.

금발 머리카락에 수수한 푸른 눈동자를 갖고 있다.

“교, 교수님 안녕하세요.”

“내가 너희를 알던가?”

“저희는 고 헤르메스어 강의를 듣고 있어요.”

“미안하군. 내가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말이야. 이름은?”

“리, 리카 웹스에요.”

‘웹스?’

샤를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학생들은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그러나 샤를의 머릿속에 들어온 건 리카 웹스 뿐이었다.

“앞으로 고 헤르메스어 강의는 내가 맡게 될 것 같아. 강의는 자동으로 이전될 거다.”

“아! 정말요? 대박!”

여학생들 몇몇과 수다를 나눴다. 샤를은 김연수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능력을 사용해서 이 이제 막 성인이 된 소녀들을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교수를 향한,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법한 호감. 현실에서 연애경험 한 번도 없었던 김연수였지만, 이 여자애들은 정말 손쉽게 요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조차 들었다.

‘하. 다음 생에 태어나면 잘생긴 얼굴로 태어나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던 게 얼마였던가.’

아무래도 소원은 이 세계에서 이뤄진 듯하다. 이대로 노닥거리더라도 세상이 망하지만 않았으면 딱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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