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198화 (198/200)

198.슈퍼히어로 랜딩(3)

미국으로 가기 전.

도윤은 드라마 촬영을 마친 뒤 이어서 영화 <너를 추억하며>까지 거의 다 촬영을 마친 상태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일본에서 촬영이 이어지는 몇 개월 동안 벌써 수십 번씩 드나든 한국.

도윤은.

일본에 가 있는 동안에도 한국에 자주 들러 일을 살피겠다는 약속을 지킨 셈.

CEO가 무척이나 신경 쓴 덕일까.

도엔터는 현재 쭉쭉 성장하는 중이었고.

도엔터가 처음으로 받아들인 세 배우 지망생은 이제 제법 태가 나고 있었다.

데뷔할 준비를 갖춘, 배우의 태 말이다.

“그래도 아직 조금은 부족해. 그나마 한영이 녀석은 거의 준비가 된 것 같은데…… 내 판단에 나머지 둘은 조금 더 필요해.”

“선생님이 판단하기에 준비가 완벽히 됐다 싶으면 말씀해 주세요.”

“이거 참, 누가 보면 나 혼자 가르치는 줄 알겠어. 허허.”

“처음에 모실 때 말씀드렸잖아요. 데뷔는 최종적으로 선생님 컨펌받고 진행하겠다고.”

“그랬었지.”

물론 광섭은 아직까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세 배우에 대해 이야기하는 광섭의 표정은 사뭇 부드러웠고.

몇 달이 지나면.

카메라 앞에 선 그 셋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모르긴 몰라도.

도윤이 직접 고른 배우들이니까.

“일본 촬영은 좀 어떠니?”

“좋아요. 이제 영화도 마무리 단계고, 끝나는 대로 다시 한국 들렀다가 바로 미국 가려구요.”

“할리우드라. 아주 좋은 기회지. 이런 말은 좀 그렇다만, 그래도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되기 위해선 드라마보다는 영화가 제격이야. 특히…… 그 슈퍼히어로라는 장르라면 더더욱 그렇지.”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광섭의 말에 빙긋 웃는 도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기대된다.

슈퍼히어로 장르.

비록 커다란 녹색 천 앞에서 연기하는 게 대부분일 테지만.

결국 배우가 보여주는 건 완성된 결과물.

“부럽구나, 부러워. 좋은 시대야. 흑백필름에 내 모습을 담아내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때의 선생님 연기는 최고였지.”

“무슨 소리야? 지금도 최곤데.”

껄껄 웃음을 터뜨린 광섭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이제 슬슬 가 봐야겠구나. 참, 한국에는 얼마나 있을 예정이니?”

“아마 일주일 정도는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촬영이라 일정이 조금 덜 빡빡하네요.”

“그래? 그럼 이번에도 영주에 가는 거니?”

“아, 이번에는 서울에 계속 있을 것 같습니다. 촬영이 있어서요.”

“촬영? 무슨 촬영?”

“예능 촬영이요.”

도윤은.

곧 시작될 촬영을 떠올리며 씩 웃었다.

* * *

<너를 뒤돌아봐>.

사뭇 이상한, 어떻게 보면 갱생 프로그램을 연상시키는 제목이지만.

다소 독특한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

스타와 매니저가 함께 출연, 스타는 매니저의 일상을 패널들과 함께 지켜보며 매니저와 함께했던 지금까지의 일상들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는 의미로 쓰인 제목인 셈.

도윤은.

오늘부터 5일 동안 이 프로그램을 촬영하게 된다.

당연히 성호와 함께.

“형, 저 너무 흥분되는 거 있죠? 저 3일 동안 야식 입에도 안 댔어요!”

“티 안 나는데.”

“까비.”

참고로 민주와 두칠도 출연한다.

성호처럼.

메인은 아니지만.

“성호 소원 성취했네요. 드디어 대중 앞에 자기 모습을 딱 드러냈어요.”

“전국이 아주 들썩이겠어.”

민주와 두칠이 들으라는 듯이 한마디씩 농담을 던졌지만.

성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자신이 도윤의 매니저 자격으로 최고로 인기 높은 예능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기쁜 모양.

“응, 엄마! 어유, 아들 말을 뭘로 들었어. 아직 촬영 중이고, 방송은 다음 달. 응응. 아들 미국 간 사이에 아들 TV에서 나오는 거야. 엄마, 촬영 잘하고 올 테니까 이따 밤에 봐요.”

어지간해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머니와 통화하지 않는 성호였지만.

오늘만큼은 어지간히도 기쁜지 누가 있든 신경도 쓰지 않고 통화를 이어갔고.

그 모습을 보던 도윤을 피식거리게 만들었다.

‘속 깊은 녀석.’

통화하는 모습을 매일 본 건 아니지만.

도윤은 안다.

성호가 하루에도 몇 번씩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심심하지 않게 해드리고 있다는 것을.

결혼은 하려나 싶다가도.

저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간다.

“응, 응. 엄마 나 끊어요! 이제 촬영 들어가. 응. 밥 꼭 챙겨 먹고. 알았죠? 이따 봐요!”

그렇게 전화가 끊김과 동시에.

타이밍 좋게 스태프가 도윤 일행을 찾아왔고.

“안녕하세요, 최도윤 배우님! 오늘 촬영 일정 안내해드리러 왔어요! 말씀드린 것처럼 스튜디오 촬영은 4일 후, 상암 스튜디오에 진행하구요! 이제부터는…….”

이제부터 4일 동안 스태프들이 도윤을 쫓아다니면서 촬영함을 알려왔다.

이미 카니발 내에는 소형 카메라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유사시를 대비해 몸집 작은 막내작가가 카니발 3열에 몸을 납작하게 붙일 채비를 마친 상태.

“헤헤,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기왕지사 나흘 동안 같이할 거, 편하게 있으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조금만 움직여도 카메라 각도에 잡히니, 이건 뭐 고문이 따로 없을 것 같았다.

“저 이거 되게 잘해요! 보세요! 납작!”

“…….”

본인은 즐기는 건지, 아니면 도윤 앞에서 자신을 어필할 수 있어서 기쁜 건지.

뭐.

당장 표정은 밝으니 저대로 둬도 될 것 같았다.

이런 가운데.

“최도윤 배우님,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대본은 기획 단계부터 제외했어요. 그…… 좋은 그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스태프에 이어서 찾아온 메인 작가의 부탁에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한 진실.

예능에도 대본이 존재한다.

리얼, 리얼 하면서 출연자들의 솔직한 모습을 담아낸다고 표방하는 프로그램이 많지만.

대부분의 예능에는 대본이 존재한다.

디테일하게는 리액션과 리액션에서 칠 대사까지.

하지만.

“PD님은 조금 걱정하셨는데…… 제가 잘 설득했으니까 걱정 마세요! 사실 도윤 배우님 나오는 것만으로도 시청률 보장이니까!”

도윤은 일종의 특혜를 받았다.

대본 없이도.

그냥 자연스럽게 스케줄을 소화하고, 그 과정에 <너를 뒤돌아봐> 출연진이 따라붙는 형식.

일종의 다큐멘터리라고 해야 할까.

다큐멘터리치고는 다소 요란하고 번쩍거리는 자막이 따라붙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자, 그럼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성호를 카메라가 비추기 시작하면서.

촬영이 시작되었다.

“성호야, 제발 그만 좀 떨어.”

“누나, 저 방송 출연이 처음이라.”

예상대로 성호는 무척이나 떨었다.

카메라가 앞에 있어서 그런지.

모든 행동이 어색하고 삐걱거리기 일쑤다.

평소에는 척척 해내는 일들을 하는 데 엄청나게 애를 먹고 있었다.

“얘 지금 방송 출연한다고 떠는 거 봐.”

민주가 적당히 환기해 준 덕에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혀, 형. 이거…….”

“왜 이렇게 떨어?”

“카, 카메라 앞이라서요?”

다시 원점이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이야, 좋네.”

PD와 메인 작가는 좋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매니저가 떨면 가급적 자르고 다시 가는 쪽으로 했는데.

최도윤이 출연해서 그런가.

은근히 신선해 보였다.

거기에 저 덩치에 안 어울리게 떠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흥미도 동하고 말이다.

“자르지 말고 계속 갈까요?”

“어. 그대로 가자고. 일단 쭉 지켜보고, 영 아닌 상황은 나중에 컷하면 되니까.”

“네.”

그렇게 촬영이 이어지면서-

성호는.

긴장은 했지만, 그럭저럭 연예인을 위해 세심하게 챙기는 매니저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평소 하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너무 당연한 나머지 도윤이나 민주, 두칠은 별달리 이상하게 느끼지 못했지만.

“이야, 세심하네. 저거, 저기 신발 꺼내는 거 체크해.”

“시계는 스타일리스트분이 챙겨주시는 것 같고…… 디테일이 상당한데요?”

그리고 이어지는 성호의 모습들.

성호에게는 당연하지만.

성호도 잘 모르는 자신의 세심함이 제작진들에게는 꽤 신선하게 비춰진 모양.

이어서.

차에 올라 시동을 걸 때도.

현장에 도착해 문을 열고 짐을 옮길 때도.

현장에 도착해 도윤이 촬영에 집중하는 동안에도-

모두 돋보였다.

특히.

도윤이 촬영하는 사이 제작진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고 민주, 두칠과 함께 음료를 돌리는 장면은 단순히 이번 촬영을 위해 억지로 하는 게 아님을 증명했다.

“또? 우리 맨날 받아먹기만 하는데.”

“어유, 오실 때마다 커피네. 우리가 쏴야 할 판인데.”

“잘 먹을게요, 성호 씨. 매번 고마워요.”

“저번 현장에서 우리 봤었죠? 그때 열심히 뛰던 거 기억나는데.”

카메라는 놓치지 않고 성호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냈으며-

제작진은 슬슬 성호가 왜 최도윤이라는 톱스타가 데뷔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여기에.

늘 그렇듯 시큰둥한 표정이 프로페셔널함을 배가시켜주는 민주.

서 있기만 해도 누군가 도저히 다가올 엄두를 못 내는 두칠의 모습은 덤.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하네.”

“섭외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러니까 소고기 좀 쏴라. 이거 시청률 터지면 인센 나올 텐데 그때도 가만히 있을래?”

“아니, 인센은 저보다 PD님이 더 받을 텐데 제가 왜요? 법카 있잖아요, 법카.”

덕분에 첫날, 제작진의 표정은 밝았고.

이어서 둘째 날.

도윤이 특별 출연을 위해 백제운 PD의 드라마 촬영 현장에 들렀을 땐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최근에는 SNS나 매체의 발달, 그리고 더더욱 겸손을 요구하는 분위기 탓에 그러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여전히 매니저의 위상은 담당하는 연예인의 위상을 따라가는 편이다.

즉.

담당하는 연예인의 위상이 높을수록.

매니저의 ‘위상’도 알게 모르게 높아진다는 것.

그래서 몇몇 매니저들은 연예인을 믿고 안하무인으로 구는 경우가 많았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연차가 쌓이고 담당하는 연예인의 명성이 높을 경우 은근히 건방지게 구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성호는 아니었다.

“이야, 성호. 살아 있었네? 일본 가서 죽은 줄 알았는데.”

“우리 형 모시느라 쌔가 빠졌다. 잘 지냈냐? 진우 형은 잘 있고?”

“우리 오진우 배우님, 드라마 하나 출연 쫑 나서 요새 예민해. 이번 드라마도 운 좋게 들어간 거라서 빡세게 하고 있고.”

“야, 성호야. 언제 또 출국하냐? 이거 해외 물 좀 먹더니 살이 더 쪘네.”

“닥쳐. 빼고 있으니까.”

평소 알고 지내는 매니저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며 낄낄대는가 하면.

“오, 성호 씨!”

“안녕하십니까, 조감독님!”

“허허, 누가 보면 신인 배운 줄 알겠어. 어떻게, 나중에 배우 데뷔할 생각 있으면 말해요. 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성호 씨는 딱 써줄 테니까.”

스태프들에게도 늘 그래왔듯 칭찬을 듣는다.

이어서.

셋째 날.

넷째 날.

성호를 중심으로 톱스타 최도윤을 조명한다는 제작진의 의도는 생각 이상으로 잘 먹혀 들어갔고.

“이거, 역대급 될 수도 있겠는데?”

제작진은.

편집본에서 도출된.

생각 이상의 결과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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