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마음에 담아둔 걱정이 존재한다.
세상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에게조차.
예외는 없다.
애써 잊고 살거나.
아니면 지금 더 큰 걱정이 있거나.
그도 아니면-
당장은 걱정할 필요가 없거나.
여러 이유로.
그런 걱정들을 품고, 잠시 한구석에 밀어두고 살아가는데…….
도윤은.
오늘 그 걱정을 해소하러 가고 있었다.
“형이 병원 가는 건 그때 수철 형님한테 찔렸을 때 이후로 처음 아니에요?”
“말 이상하게 한다?”
“사실이 그런데요, 뭘.”
도윤은 운전하는 성호의 말에 어이가 없어 피식거렸다.
하기야.
틀린 말은 아니다.
<협조>를 촬영할 때.
여러 우연들이 겹쳐 그런 일이 생기긴 했으니까.
물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외려 도윤은 그때 찔린 김에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좋다고까지 생각했었으니.
여하튼.
부우우웅.
도윤이 유일하게 자기 명의로 보유하고 있는 국산 SUV가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병원 주차장에 멈춰 섰고.
도윤은 성호를 차 안에 둔 채 내렸다.
“근데 진짜 혼자 가셔도 돼요?”
“너 같이 가면 무조건 들켜.”
“제가 유명하다는 뜻?”
“아니. 요새 살 더 찐 것 같아서.”
“…….”
저놈은 언제쯤 슬림해지려나.
도윤은 요즘 들어 살이 또 붙기 시작한 성호의 모습에 혀를 찼다.
“건강 관리해라. 그러다 진짜 너 불효한다.”
“아니, 형. 무슨 말씀을 그렇게.”
“걱정해 줄 때 좀 들어. 안 빼려고 머리 쓰지 말고.”
“무슨 20대가 벌써부터…….”
도윤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맨날 저럴 것 같았지만.
어쩌겠나.
제일 아끼는 동생인데.
“말 들어라. 제발. 나 어디 간 사이에 콜라 사 먹지 말고. 어제도 카니발에서 콜라캔 나왔더라?”
“……형 귀신이네요.”
“알면 좀 들어. 갔다 온다. 저녁 알아서 사 먹고, 이따 전화하면 주차장으로 와.”
도윤은 성호를 한번 쏘아본 뒤 몸을 돌렸고.
병원 로비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성호는 오늘따라 유독 도윤이 이상하게 느껴지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무슨 일 있나?”
참고로 성호는 도윤이 오늘 병원에 온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
그저.
일본에 가기 전 어디 이상이 없나 한번 검진받으러 온 걸로 알고 있을 뿐.
그래서.
도윤의 저런 모습을 아주 특별하게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진짜…… 찌긴 했구나.”
핸들에 거의 닿을락 말락 한 뱃살을 보며.
조금은 느끼는 바가 있긴 한 모양.
“에휴.”
긴 한숨이 이어졌고.
그사이.
도윤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 *
누구나 걱정은 품지만.
대개-
그 걱정은 남한테 이야기하지 못한다.
도윤도 그랬다.
옆에서 보면 모든 일이 잘되고 있고,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데다 힘든 일 하나 없어 보이지만…….
도윤도.
회귀 직후부터 지금까지.
딱 하나의 걱정만큼은 떨쳐내지 못한 채 살아왔다.
물론 성격상 그걸 누구에게 드러내거나 그 걱정으로 주변에 영향을 끼친 건 아니라고 할지언정.
지난 몇 년 동안.
도윤의 뇌리에 남아 잊을 만하면 떠오른 것도 사실.
그래서 도윤은.
오늘 그 걱정을 해소하기 위해.
큰마음을 먹고 여기에 왔다.
병원.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큰 병원.
“긴장 푸셔도 됩니다. 아마 별일 없을 거고, 발견되더라도 조기의 경우 금방 치유 가능합니다.”
“처음 연기할 때보다 더 떨리는 것 같은데요.”
“병원이 그런 공간이죠.”
의사.
회귀 후 의사와 친해질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이렇게 다시 오게 되었다.
회귀 전.
밑바닥까지 내려간 도윤이 기회를 잡고도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바로.
암.
도윤은.
오늘 그 폐암이 지금 자신의 몸속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다.
그럴 확률은 낮지만.
정말.
만에 하나라도 모를 일이니까.
그리고 이걸 해결해야.
앞으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CT 촬영부터 시작하시죠.”
그렇게 도윤은 자신의 마지막 불안을 벗어버리기 위한 첫발을 디뎠다.
CT 촬영을 시작으로.
각종 검사들.
검사 하나하나가 진행될 때마다 전에 없던 불안이 치솟고, 긴장감이 몰려들었지만.
도윤은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
설사.
발견된다 하더라도…….
치료하면 그만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오셨어요? 요새 병원에 기자들 꽤 많이 돌아다니던데.”
“그냥 자차 타고요.”
“아! 저번에 기사에서 봤어요. 국산 SUV 타고 다니신다고. 하하, 검소하시네요.”
그리고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의사가 넉살 좋게 말을 걸어주며 어느 정도 긴장감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친 긴 검사가 마무리되고.
도윤은 며칠 뒤.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의사의 밝은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네. 의심 소견 없습니다. 여기 보시면…… 네, 몇 번을 봐도 소견은 동일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마음고생 많으셨을 것 같은데.”
“아…….”
도윤은.
결국 고개를 떨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인데.
오늘만큼은.
이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회귀 후의 모든 것들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을 얻은 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관리 잘하셔야 합니다. 폐암이라는 건 발생 원인도 다양하고, 실제로 평생 담배 한 번 입에 문 적 없는 분들이 걸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흡연은 안 하시죠?”
“아, 네. 몇 년 전에 끊었습니다.”
“다행이네요. 개인적으로 저도 최도윤 씨…… 아니, 최도윤 배우 연기 오래오래 보고 싶어서요.”
도윤은 의사의 그 말에.
씩 웃었다.
“그러실 수 있을 겁니다.”
이제는.
더 이상 걱정할 게 없으니까.
이제는.
계속 앞으로 나갈 일만 남았으니까.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 * *
도윤은.
정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돌아와 일을 마무리했다.
응어리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찝찝함이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문제가 해결되니.
마음은 조금 더 편해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고-
“네, 그럼 이렇게 가시죠. 인력 문제는 대체로 해결된 것 같고……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 채용 건도 제 선에서 해결 가능할 것 같습니다. 매니저는 다른 엔터에서 하나씩 이직시키기로 했고, 스타일리스트는 저희 스타일리스트한테 소개받기로 했습니다.”
“좋네요. 하나씩 해결되는군요.”
일은 여전히 차근차근.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또한 도윤은.
자신으로 손으로 뽑은 도엔터 최초의 배우 세 명에게도 공을 들였다.
“여기서는 조금 더 깊게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해영과 광섭에 이어.
자신의 손으로 뽑은 배우들을 트레이닝하는 것.
“1993년에 나온 영환데, <룩 에브리띵>에서 주인공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간수에게 호소하는 장면이 있죠. 거기서 주인공이…….”
그리고 트레이닝은 광섭과 해영 못지않게 커다란 효과를 발휘했다.
도윤이 누군가를 가르칠 때 선보이는 장점은 비단 연기하는 방법뿐만이 아니다.
풍부한 지식.
회귀 전.
다시 배우로 설 날만을 기다리며 수없이 봐 왔던 작품에 대한 데이터.
그 모든 것들은 도윤의 머릿속에 그대로 있었고.
회귀 후에도 꾸준히 쌓여 왔다.
그래서 수많은 배우와 감독의 연기법, 그리고 연출법을 이들에게 전수할 수 있는 것.
그것도 아주 적재적소에 말이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다 아시는 거지?’
어떤 상황이든 적절한 예시를 제시하고.
심지어 딱딱 들어맞는다.
지금 도윤에게 트레이닝 받는 서강우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심지어-
혹시나 싶어서 도윤이 말한 작품과 배우, 그리고 씬을 기억한 뒤 집에 가서 찾아봤는데.
정말이었다.
도윤이 예시로 든 대사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쯤 되면 배우가 아니라 무슨 괴물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
덩달아.
도윤에 대한 존경심이 더더욱 올라간 건 덤.
“여기 이 연기는…… 2010년에 나온 <그대와의 연가>에서 여주인공이 한 연기를 참고해 보면 좋을 것 같네요. 아, 윤아 씨가 그 이미지를 카피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톤이에요. 덤덤하게, 읊조리듯 이어가는 톤을 확인해 보면 좋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보죠. 여기 이 대사 해볼까요?”
여하튼.
해영과 광섭의 중간쯤에 있는 듯한 도윤의 트레이닝은 아주 잘 먹혀들어 가고 있었고.
세 배우 지망생의 실력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사실.
지금도 이 셋에 대한 문의는 꾸준히 들어온다.
도엔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엔터가 최초로 영입한 배우 지망생 3인에 대한 관심도 줄을 이었고.
당연하게도, 이들이 누구인지 알려지면서 ‘최도윤이 뽑았으니까’라는 이유로 미리 출연을 타진하는 쪽도 있었다.
아직 보여준 것도 없는데.
단지.
선구안 좋은 최도윤이 뽑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물론 당장 출연시키기보다는 미리 관계를 만들어두겠다는 의도 쪽이 좀 더 정확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도엔터는 도윤과 전문경영인이 의도한 것처럼 초반부터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셈.
여기에 청진의 지분 투자와 관련된 사실들까지 알음알음 퍼지고 있었으니.
이 세 배우 지망생이 세상으로 발을 디디는 날엔-
이전에 없던 파란이 일 거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세 분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렇게 오늘의 트레이닝을 마무리한 도윤은.
마침 들어온 주섭에게 말했다.
“이제 곧 일본 갈 텐데, 저 없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어유, 가셨다가 또 중간중간 들어오신다면서요?”
“촬영 없는 날에는 아마 한국에 있지 않을까요?”
“그러다 몸 상합니다. 살살하세요.”
몸 상한다.
도윤은 그 말에 얼마 전 병원을 다녀왔던 걸 떠올리며 씩 웃었다.
“저 멀쩡합니다.”
“젊으니까 그렇죠. 나이 들어 보세요. 골병 들어요. 저처럼. 이게 사람이 신기한 게, 체력이 딸려서 이제 애들이랑 못 놀아줄 것 같으니까 애들이 저랑 안 놀더라구요. 사춘기가 와서. 대표님은 결혼하지 마세요.”
그리고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하는 주섭.
도윤은 웃음을 터뜨렸고.
슬슬.
일본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영화 하나, 드라마 하나.’
작품을 하나씩 해결하고.
그사이에 수시로 한국에 들른다.
사실.
아마 한국에 머무르면서 일본으로 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그쪽에서 숙박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해 주기로 했고.
도윤은 때맞춰 촬영장에 가기만 하면 그만.
그래서.
앞으로 트레이닝을 시키는 데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모든 게.
잘될 일만 남은 것이다.
“일본 가시거든 괜찮은 그쪽 배우 있나 한번 찾아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국내에서 수요는 항상 있으니까요. 아니면…… 이참에 우리도 가수 쪽도 한번 시작해 볼까요?”
도윤은 주섭의 농담에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으시겠어요?”
“아뇨. 사실 안 괜찮습니다. 하하.”
뭐.
나쁘진 않을 것 같긴 하다.
가수 엔터 쪽도 흥미가 동하니까.
하지만 흥미가 동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건 별개의 문제.
도윤은 적어도-
도엔터가 배우 엔터로서 한 획을 긋고 시장에 완벽히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다른 사업 쪽엔 눈도 안 줄 생각이었다.
그게 맞기도 하고 말이다.
“출국이 모레셨죠?”
“네. 아마 한동안은 있을 겁니다. 가서 세팅도 해야 하고, 만날 사람도 많고.”
“잘될 겁니다. 모든 게요.”
이런 와중.
도윤은 주섭의 주문과도 같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될 겁니다. 모든 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