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185화 (185/200)

185.얘가 진짜 걔야?(1)

후(Hoo) 액터 아카데미는 지금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소문이라는 건 그렇다. 원래 ‘너만 알고 있어’라는 말이 가장 위험한 법이고.

액터 아카데미 원장이 가깝게 지내는 배우 한 명에게 저렇게 말하며 귀띔한 게 시작이었다.

소문은 마침내 또 한 번 ‘너만 알고 있어’라는 과정을 몇 번이고 거쳤고.

어느새 아카데미 내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오늘.

최도윤이 온다는 사실 말이다.

“진짜 올까? 거짓말 아니야? 최도윤이 도대체 여길 왜 와?”

“소문에는 이엔 엔터에 캐스팅할 배우를 직접 고른다던데.”

“진짜로? 대박. 이엔 거기 들어가면 완전 그냥 바로 앞길 열리는 거 아닌가?”

“정확히는 앞길 열린 배우들만 이엔에 들어가는 거지.”

“아, 제발. 안 뽑혀도 좋으니까 얼굴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진짜 존잘이라던데.”

“나도, 나도.”

덕분에 아카데미 전체는 흥분에 휩싸여 있었고.

오늘 연습 날이 아님에도 ‘특강’ 공지에 나온 배우 지망생들이 한가득이었다.

이런 가운데.

후 아카데미 원장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등록한 사람들 전원이 나왔다고?”

“네, 지금 한 명도 빠짐없이 나왔습니다.”

“허, 이거 원.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장소를 대관하는 건데.”

“최도윤이지 않습니까. 다른 배우였으면 이 정도는 아니죠.”

최도윤.

배우 지망생들의 롤모델.

특히, 남성 배우 지망생들에게는 워너비 그 자체다.

비주얼도 비주얼이지만.

연기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걸어온 이른바 ‘로열 로드’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

물론.

여자 배우 지망생들 중 상당수도 도윤을 롤모델로 삼고 있었다.

“뭐…… 와서 안녕하세요. 한마디만 해도 되겠는데?”

“그거만 해도 여기 온 이유는 충분해질 겁니다.”

여하튼.

소문이 퍼진 이상.

이 기대감을 충족시켜줘야 하긴 할 텐데.

‘잘하겠지. 사람 뽑으러 왔다니까.’

사실 여기 있는 아카데미생들은 오늘 도윤이 자신들에게 어떤 걸 요구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단 하나.

최도윤이 온다는 사실만 알 뿐.

덕분에 도윤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고 당황할 수강생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원장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 한편으로-

그걸 통과하는 수강생들이 얻을 ‘혜택’을 생각해 보면.

사실 그렇게 당황스러울 것도 없다.

따지고 보면 이건 오디션이고, 요새는 오디션이 다 정해진 대본만으로 하는 것도 아니니까.

심사위원에 따라 즉석 연기를 요구하는 경우 말이다.

물론.

눈치 빠른 수강생이라면 오늘을 위해서 나름대로 준비를 해 왔을 것이다.

굳이 ‘오디션’을 하지 않더라도.

톱스타의 눈에 들기 위해 몸을 던질 사람들은 꽤 있을 테니.

여하튼.

오늘은 그런 이유로 아주, 아주 중요하디 중요한 날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 있는 수강생들에게나.

원장에게나.

그리고.

도윤에게나 말이다.

“아, 지금 오셨답니다. 흰색 카니발이라고 하는데…… 지금 들어오네요.”

“오케이. 나가자.”

그러는 사이.

도윤이 도착했고.

원장과 부원장, 두 사람은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환한 미소를 머금고.

* * *

사람들은 어떤 작품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 배우는 뜨겠다.

저 배우 연기 괜찮더라.

그리고 대개 이 말은.

처음 본 배우에게 쓰는 말이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신인’ 배우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알지 못한다.

그 ‘신인’이라 불리는 배우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저 스크린에 데뷔하고, TV에 나오는지 말이다.

물론 사람들 입장에선 알 필요가 없다.

그 배우의 열렬한 팬이 될 게 아니라면.

여하튼.

그런 ‘신인 배우’라 대중들에게 불리기까지.

배우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이를 악물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단 한 번의 데뷔 기회도 갖지 못하거나.

단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진다.

때문에.

지금 막 강당으로 들어선 도윤을 바라보는 배우 지망생들의 눈빛은.

그야말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꼭, 내가 꼭 할 거야.’

‘진짜 왔구나.’

‘대박, 제발 이중인격자 연기 좋아해라.’

사방에서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오고.

심장이 쿵쾅대는 나머지 지진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이 강렬한 분위기.

쭉 빠진 핏과.

완벽하다는 말도 모자란 비주얼.

그리고 차근차근 쌓여 마침내 성을 이룬 필모그래피에서 흘러나오는.

보이지 않는 아우라까지.

“반갑습니다, 여러분. 최도윤입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매력적인 목소리에.

모두가 홀린 듯 박수를 치고.

박수를 치는 사람들 중 한 명은.

멍하니, 도윤을 바라보며 하얗게 변한 머릿속 탓에 아무런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를 만들어주신 후 액터 아카데미 원장님께 먼저 감사 인사를…….”

소개와 인사치레가 이어지는 사이.

마침내 정신이 번쩍 들며 오늘 아침에 했던 다짐을 떠올린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한영.

그가 어제 저녁 다른 수강생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내일 도윤이 온다는 소식을 접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지방, 그것도 도윤의 고향인 영주에서 올라온 이한영은.

성공의 꿈을 안고 상경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쉽지 않았다.

상위 1%만이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고.

그들조차 치고 올라오는 이들을 상대하느라 매일매일 치열하게 살아간다.

화려한 이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벽.

그 보이지 않는 벽을 내가 깨뜨릴 수 있을까.

그 고민이 몇 달 전부터 이어졌다.

그러다-

통장에 남은 돈이 고작 몇십만 원밖에 안 됐을 때.

이한영은 현실을 깨달았고.

이제 꿈을 접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의 일을 도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들은 것이다.

도윤이 온다는 소식을.

‘내 마지막 기회야.’

꾸욱.

말아쥔 주먹.

꿈도.

돈이 있어야 꿀 수 있고.

여유라는 게 있어야 꿀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런 기회를 위해.

이한영은 도윤을 바라봤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온 걸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러분들과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이런 가운데 도윤의 말이 이어지고.

“하지만 전 오늘 여러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연설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건 아닙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실 테고, 눈치채신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전 이 자리에 시작될 프로젝트에 참여시킬 사람을 데리러 왔습니다.”

드디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 말을 꺼냈다.

프로젝트.

조금은 이상한 단어였지만.

그 의문은 금세 풀렸다.

“저는 회사를 만들 겁니다.”

회사.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다.

최도윤 정도 되는 배우가 회사를 만든다는 건.

절대 가볍게 생각할 만한 말이 아니다.

“재능과 가능성을 지녔지만, 어쩔 수 없이 꿈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는 회사 말입니다.”

도윤은 자신을 바라보는 수십 명의 배우들과 천천히 시선을 맞췄고.

이내-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는, 제안을 위한 자리입니다.”

제안.

마침내 나온 본론에.

마른침이 사방에서 넘어간다.

여기 있는 몇몇은 딱히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데뷔가 확실시되거나 데뷔하지 않아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 배우 지망생이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간절하고.

또 그리 여유롭지 않고.

연기 하나만을 보고 살아왔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도엔터’는 바로 이런 회사이며, 이런 회사가 될 예정입니다. 현재 투자 유치가 확정되어 있으며…….”

이어지는 도윤의 회사에 대한 설명.

배우 지망생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지금 나오는 ‘도엔터’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분명히 신생 엔터지만.

듣는 사람들 모두가 가고 싶어 바라마지않을 회사.

특히.

여기 있는 배우 지망생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회사.

“……전 단순히 제 이름값만으로 회사를 운영할 생각은 없습니다. 현재 체계적인 시스템과 더불어 배우 한 명 한 명에 집중하는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도윤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고.

이는 지망생들의 활활 타오르는 열망에 불을 붙였다.

이건.

정말 큰 기회였다.

“그래서 오늘, 지원자에 한해 이 자리에서 가능성과 재능을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들려온 도윤의 선언에.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이, 이 자리에서?’

조금은 당황스러운 말이다.

별도의 장소에서 오디션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마련되지 않은 이곳에서 갑자기?

덕분에 이한영의 가슴은.

아예 터질 것처럼 쾅쾅거렸고.

‘어떻게 해야 하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가 무엇인지.

기억 저편을 필사적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다른 지망생들도 마찬가지.

가능성.

재능.

이 두 글자가 나온 순간.

그들은 자신이 지닌 가능성과 재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찾기 위해.

머릿속을 헤집는 것이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 자리에 조언이나 제 삶의 궤적에 대해 이야기하러 온 게 아닙니다.”

이런 와중, 이렇게 말한 도윤은-

막 손을 든 지망생 한 명을 바라봤다.

“그럼 바로 이 자리에서 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하면…….”

도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매번 갑작스러운 순간의 연속이죠. 카메라는 여러분을 그리 오래 기다려주지 않을 겁니다.”

“…….”

그 한마디에 질문한 지망생은 침묵을 삼켰고.

도윤은 원장과 잠시 시선을 맞춘 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그럼, 준비된 분들부터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주제는 자유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연기를 펼치시면 됩니다. 저를 향해서든, 아니면 여기 있는 수강생 중 한 명을 향해서든, 그도 아니면 허공을 향해서든 말이죠. 굳이 상황 설명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른바.

극한의 자유 연기.

상황 설명도 필요 없고.

따로 지정된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게 무슨 오디션이야…… 여기서 누가 어떻게 연기한다고.’

‘말도 안 돼, 이건.’

지망생들의 소리 없는 절규.

상황 자체가-

듣도 보도 못한 게 맞긴 하다.

대개의 오디션은 최소한 준비할 틈이라도 주니까.

하지만.

도윤은 이 모든 걸 이미 고려하고 왔다.

도윤은 완벽한 연기를 펼치는 사람을 데려가려고 온 게 아니다.

말 그대로.

가능성과.

재능.

이 두 가지를 갖춘 사람을 데려가려고 온 것.

그래서 설사 한두 마디로 연기가 끝난다고 할지언정.

마음에 든다면.

당장 뽑아갈 생각이다.

물론.

이 자리에서 통보하지는 않겠지만.

여하튼.

도윤의 선언 속에서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침묵을 삼켰고.

이윽고.

첫 타자가 나섰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한 남자 지망생이었는데-

꽤 큰 덩치가 성호를 연상시켰다.

덕분에 막 손을 들려던 이한영은 움찔하며 손을 내렸지만.

도윤은 이미 그 모습을 본 뒤였다.

하지만.

지금은 손을 든 사람에 집중할 차례.

“네, 앞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도윤은 마침내.

‘도엔터’의 배우를 모집하는 첫 오디션의.

포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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