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184화 (184/200)

184.이 바닥의 소문이란

소문은 금방이었다.

톱스타 하나가 회사를 차린다더라.

그 회사가 대기업의 투자를 유치했다더라.

배우 엔터가 아니라 아이돌이랑 가수들도 키우는 종합 엔터라더라-

이런저런 소문들.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그래서 그 회사를 차리는 사람이 누구냐, 라는 것이었다.

정보를 물어다 준 사람이나, 정보를 받은 사람이나 온갖 수를 쓰며 찾아보려 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연예인들 중에서 법인을 세우는 사람은 수두룩하고 그들 중 누구의 법인이 저렇게 엔터 회사로 바뀔지 알 수 없었기 때문.

물론.

소문을 듣자마자 짐작한 사람도 있었다.

“도윤이 너 진짜 열심히 준비하는구나. 작품에 회사 준비에…… 미팅도 자주 다닌다고 들었는데.”

동민의 말에 도윤은 슬쩍, 미소를 흘렸다.

“할 거면 제대로 해야죠. 여기 나가면서까지 하는 건데.”

“그렇긴 한데…… 이러다 들키는 건 시간 문젠데?”

“그러라고 흘린 건데요 뭘.”

도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차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고.

“많이 도와주세요. 저 아직 잘 몰라요.”

“엄살은.”

동민은 도윤의 반응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몇 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던, 전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대학생이었던 녀석이.

이제는 곧 한 소속사를 떠나 자기가 직접 회사를 차린다니.

이미 톱스타인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그래도 뭐…….’

도와줄 게 있으면.

도와줘야겠지.

아끼던 서강호 실장을 도엔터로 흔쾌히 보내준 것 역시.

그런 도움의 일환.

여기에…….

“일 잘하는 사람 하나 더 안 필요하냐?”

“사람이야 항상 필요하겠죠.”

“그럼 한 명 더 보내줄게. 아, 우리 회사 기둥뿌리 또 뽑는다는 소리는 아니야.”

“서 실장님 다시 돌려 보내드려요?”

“날 뭘로 보고.”

투덜대던 동민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어, 나야. 잘 지냈지? 그래. 나도 뭐, 항상 같지. 다른 건 아니고, 지금 회사 아직 다니나? 이직할 생각은 없고? 응. 좋은 자리가 나서 말이야.”

거의 3분도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끊었다.

“됐다. 의향 있는 것 같은데.”

“누군데요?”

“영화감독 출신인데, 지금은 엔터 회사에서 배우들 골라내는 일 하고 있어. 숨 엔터 알지?”

“아, 거기라면…….”

“그래. 거기. 서태주 있던 곳.”

숨 엔터.

예전에는 한 가락 했는데.

몇 년 사이 빠르게 기울더니 지금은 그저 그런 엔터 회사가 된 곳.

“원래 침몰하는 배에는 탈출하려는 사람이 많지. 얘도 고민하고 있었는데, 내 이야기 듣더니 관심 있는 것 같더라고. 조만간 자리 마련해 볼게. 일본 가기 전에.”

“네, 감사해요.”

“물론 내가 말했다고 무조건 채용하고 그럴 필요는 없어. 그냥 편하게 생각해. 보고, 네 마음에 들면 함께하는 거지.”

도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기야.

도윤은 동민을 믿는 거지.

동민이 소개시켜 준 사람을 믿는 건.

다른 문제라 생각했다.

서강호를 채용한 것 역시 그런 마인드로 한 셈.

“아무튼 뭐, 딱히 걱정할 건 없어 보여서 좋네. 잘하고 있어서 보기 좋다. 속은 좀 쓰리지만.”

“아직도 쓰리세요?”

“야 인마, 그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나가는데?”

“그래도 다른 엔터로 이적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 그건 다행이지. 에휴.”

동민은 못내 아쉽다는 걸 드러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휴, 아쉬워해서 뭐 하냐.”

“그러니까요. 잘 부탁드려요.”

“나중에 너희 도엔터한테 추월 안 당하려면 열심히 해야지. 안 그러냐?”

추월이라.

이엔 엔터는 지금 이미 엔터 회사들 중에서도 10위권 안에 진입할 만큼 고속 성장을 거듭 중이다.

도윤이 나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일시적으로 부침을 겪겠지만.

도윤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 여겼다.

동민과 경후 등.

수많은 실력자들이 이 회사에 있었고.

수철, 한올, 석준 등 실력 좋은 배우들이 회사를 지탱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금방 따라갈게요.”

도윤은 이엔 엔터를 따라잡아 볼 생각이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회사를 세우는 취지는 연기를 갈망하지만, 여건상 그럴 수 없는 배우들을 위한다는 거였지만…….

언젠가는.

그들과 함께 도약해야 할 날이 오겠지.

“그래. 기왕 마음먹은 거, 1위 먹어라.”

“네, 그럴게요.”

“됐다, 말한 내가 잘못이지.”

투덜거리던 동민이 그때 문득 물었다.

“근데 촬영 끝나는 날이 언제라고 했었지?”

“이제 한 달 남았어요.”

“아이고, 끝나자마자 바로 일본…… 안 힘들겠냐?”

“별로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도윤은 시계를 보더니.

아예 한술 더 떴다.

“저 이제 갈 시간 됐어요.”

“응? 아아. 첫방이었지?”

“네. 주연 배우가 늦으면 안 되죠.”

“같이 가자. 오랜만에 홍 작가도 보고, 너 한국에서 하는 마지막 작품인데 내가 얼굴은 비추고 싶어서.”

“배우 영입하러 가는 건 아니고요?”

“야 인마! 내가 무슨…… 아니, 꼭 그런 의도가 없다는 건 아니고…….”

도윤은 솔직하게 실토하는 동민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요, 가요.”

* * *

<미래의 너에게>는.

아주, 아주 당연하게도.

첫방부터 엄청난 관심을 끌어모으며 시청률 21%를 달성했다.

유튜브.

지플릭스.

그 외 기타 온갖 서비스들이 범람하며 TV를 보지 않는 시청자들이 급속도로 늘고, 더 이상 TV라는 매체의 경쟁력은 발전하기 힘들다고 평가받는 상황에서-

이런 시청률을 달성한 건.

그야말로 엄청난 일.

특히, 최근 지상파 드라마들이 케이블에도 시청률이 밀리는 굴욕적인 일을 겪고 있었던 데다.

어지간해서는 10%대의 시청률조차 나오지 않아 존폐 위기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던 와중이었는데.

[‘시작부터 초대박’, <미래의 너에게>!]

[최도윤 파워 또 한 번 통했다…… 첫방 최고시청률 25% 달성!]

[지상파, 죽지 않은 저력을 보여주다!]

최도윤의 존재 하나로.

어쩌면 기억에 남지도 않았을 드라마가 엄청난 기록을 세워버린 것.

덕분에 <미래의 너에게>를 편성한 ZBS는 그야말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특히.

단순히 최도윤이 출연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런 호평을 받는다는 게 아님을 바로 다음 날 직감해 버렸다.

[2화도 통했다…… 시청률 23%!]

[<미래의 너에게>, 시청률 30% 고지 곧 돌파하나?]

[최도윤으로 시작되어 각본으로 마무리한 2화!]

톱스타의 존재는 시청자를 끌어모으고.

좋은 연출과 각본의 존재는 시청자를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지금.

<미래의 너에게>는 이것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최도윤의 엄청난 연기력과 캐릭터성에.

좋은 연출, 각본이 더해지며.

시청자들을 완벽히 사로잡은 것.

“오늘도 아침을 여는 <드라마가 좋다>. 자, 이번 시간에는 당연히 다뤄봐야 할 드라마가 있죠? 아, 요새는 말입니다. 지플릭스랑 케이블에서 드라마가 워낙 잘 나와서 지상파 드라마 리뷰할 시간이 없었는데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요새 시청자들의 니즈가 많이 달라지면서 지상파 드라마는 고리타분하다, 맨날 러브라인만 나온다, 심의가 너무 빡빡하다, 그런 평가만 받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된, 웰메이드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 드라마가 하나 나왔습니다. 바로 최도윤 주연의 <미래의 너에게>죠.”

고작 한 주밖에 방송하지 않았음에도.

연일 화제가 되었고.

아주 당연하게도.

뒤늦은 광고 문의와 PPL 문의까지 쏟아진 데다-

“이게 다 중국 업체에서 들어온 PPL이라고?”

“아예 정부 차원에서 주도하는 모양이던데요. 벌써 ZBS랑 판권 및 배급 협상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최근 한국 드라마를 눈여겨보던 중국 쪽의 어마어마한 제안까지 온 상태.

“무슨 중국 라면에 중국 우동에 중국 의상에…… 이거 다 넣으면 중국 드라마 되는 거 아닌가?”

물론 이미 자리도 꽉 찬 데다, 아무리 높은 금액을 제시했다고 한들 이제 와서 분위기를 바꾸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지라 대부분 거절했지만.

<미래의 너에게>가 지금 어떤 관심을 받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여하튼.

2화까지 이렇게 끝난 마당에 3화에 대한 관심을 더더욱 높아졌고.

주연 배우 도윤은.

“네, 그럼 다음 질문드리겠습니다. 국내 복귀에 대해서 없을 거라 말씀하신 바 있었는데, 혹시 복귀하신 이유가 있었을까요?”

“익숙한 곳에서 다시 연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한국에서의 작품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말씀이실까요?”

“제가 연기를 시작한 곳은 바로 이곳입니다. 당연한 답변일 것 같습니다.”

촬영은 물론, 각종 행사에 참여하며.

일본에 가기 전.

아주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어우, 일본 가기도 전에 진 빠지시겠네.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무슨.”

도윤은 호들갑을 떠는 성호를 진정시키는 한편, 다음 스케줄을 확인했다.

공식 스케줄은 아닌데.

아주 중요한 스케줄이었다.

-아, 네. 최도윤 배우님, 출발하셨나요?

“네, 지금 출발합니다.”

-아아, 그렇군요. 그럼 저희도 준비해 놓겠습니다.

“거창하게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그냥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뿐입니다.”

-아무렴요. 근데 그래도 최도윤 배우님이 직접 오시는 건데. 아니다, 이제는 대표님이라 불러야 하나요? 하하하.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도윤은 전화를 끊은 뒤 옷매무시를 만졌고.

옆에 있던 두칠이 물었다.

“오늘이 거기 가는 날이었죠.”

“응. 연기 아카데미. 실력 좋은 친구들이 꽤 있다고 해서.”

연기 아카데미.

그래, 오늘은 드디어 본격적인 청사진의 첫발을 내딛는 날이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도엔터가 출범한 건 아니지만.

그 전에 좋은 포텐을 지닌 배우들을 미리 확보하기 위한 도윤의 방법.

“몇 명 데려오실 생각이세요?”

“가능성이 보인다면야, 얼마든지.”

“본격적이시네요.”

“이러려고 시작한 회사니까.”

도윤은 아카데미에서 미리 넘겨받은 리스트를 꺼낸 뒤, 기억을 더듬어 자신이 아는 이름이 있는가를 먼저 골똘히 생각해 보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신경 안 쓰고 뽑으면 되는 거지.’

얼굴을 알아보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이름부터 먼저 보고 확보하는 건 이제 더 이상 마음에 안 든다.

이들 모두 데뷔 경험이 없는 배우들이다.

가능성이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열정을 지닌 이들도 데려가고 싶은데.

시작부터 몇몇을 정해놓고 간다면…….

‘편견에 빠지겠지.’

모두를.

같은 선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도윤은 스스로를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이들의 생각은 다를 테니까.

지금 당장 도윤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모두가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을 텐데.

이건.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때문에 도윤은 리스트를 도로 집어넣은 뒤.

눈을 감았다.

민주는 눈치 좋게 목베개를 건네주었고.

“고마워.”

도윤은 곧 편안한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의.

휴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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