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그의 복귀(1)
최도윤.
그 이름 석 자를 가진 배우가 다른 배우들에게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정확히는.
젊거나 신인인 배우들에게 미친 영향 말이다.
마스크로 뜬 줄 알았는데.
제대로 보니 연기가 미쳤다더라.
어느 한 연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맡는 배역마다 완벽히 소화하더라.
심지어.
선구안까지 좋아 고르는 작품마다 대박을 치더라.
‘마지막은 오히려 좀 의미가 달라졌지만.’
성공할 작품만 고르는 게 아니라.
골라서 성공시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들어가는 작품마다 모두 대박을 치니.
이제는 그렇게 평가가 바뀌어 버린 셈.
여하튼.
도윤은 이제 막 연기를 시작했거나, 시작하려 하거나, 꿈을 꾸는 배우들에겐 선망의 대상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하는 배우들은 도윤의 두 가지 면을 동경한다.
하나는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다채로운 마스크.
또 하나는-
도윤이 걸어온 탄탄대로의 길.
그야말로 실패 하나 없는 ‘로열 로드’ 말이다.
데뷔작에서 주목을 받고, 그다음 <그대 내 품에>에서 대중을 조금씩 사로잡더니 <알고 있는가>를 통해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하는 작품마다 빵빵 터뜨린 전무후무한 배우.
물론 여전히 ‘마스크빨’이라 외치는 일부 안티들이 있긴 해도-
도윤의 연기력은 말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인성도 좋고.
깨끗한 사생활은 덤이다.
모든 기획사 사장이나 연기 아카데미 선생들이 ‘롤모델을 삼을 거면 최도윤으로 삼아라’라고 괜히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까 내릴 구석이 안 보이는 배우.
그 배우가 바로.
지금 차에서 내려 강미나와 포옹한 뒤.
마주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하는 최도윤이라는 배우였다.
“오, 도윤아. 네가 여기 어쩐 일이냐?”
그리고 이전에 <그 남자의 메모리>에서 함께했던 ‘유종탁’은 도윤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유종탁 선배님, 이제야 여기서 뵙네요.”
“미안하다야. 촬영 들어가니까 정신이 없어서.”
“알아요. 선배님, 요새 날아다니시던데.”
“그게 다 <그 남자의 메모리> 덕분 아니겠냐. 하하.”
도윤과 반갑게 이야기하는 종탁의 모습에.
사방에서 부러움과 놀라움의 시선이 쏟아진다.
종탁은 최근에 꽤 주목받고 있다.
드라마, 영화, 예능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 중이며 씬 스틸러를 넘어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들 중 한 명이 되어가고 있었다.
연기 스타일이나 배역상 주연은 무리여도.
조연급으로는 톱급 대우를 받는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 모든 건.
<그 남자의 메모리>가 인기를 끌고, 덩달아 종탁이 맡은 배역도 주목을 받으면서부터다.
“그렇다고 제 덕이라 하시려는 거면 너무 멀리 나가셨는데요.”
“이렇게 말해둬야 나중에 할리우드에 한자리 준비해 주지 않겠냐?”
낄낄대며 이야기를 나누던 종탁은.
그제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촬영장에는 무슨 일? 강 작가님 보러?”
“그것도 있는데, 강 작가님한테 부탁받아서요.”
“부탁? 뭘? 신인들 연기 지도? 설마.”
“아뇨. 특별 출연이요.”
종탁이 입을 쩍 벌렸다.
“네가? 여기?”
“네.”
도윤은 왜 그렇게 놀라냐는 듯 손을 들어 보였고.
종탁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강 작가님 부탁이라 이거지?”
“네.”
“분위기 볼 만하겠네. 강 작가님도 가만 보면 너무 투명한 분이라니까?”
도윤은 대답하는 대신 씩 웃었다.
강미나 작가가 자신을 원하는 이유.
도윤이라는 배우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는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도윤은 이미 그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다거나 한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순수한 의도로 부탁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까.
다만.
강미나의 경우.
너무 투명할 정도로 속이 보여서.
오히려 속아주고 싶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특별 출연이면 얼마나? 한 회? 아니면 두 회?”
“5분이요. 톱스타 역할이고, 남주 질투 부르는 역할이라던데요. 대본 봤는데 뭐, 특별할 건 없는 역할이구요.”
“특별 출연이 다 그렇지. 아무튼 오늘 애들이랑 스태프들은 계 탔네. 너 왔으니까. 아니다, 스태프들은 사단장 방문하는 기분이려나?”
“그런 것치고는 다들 오는 거 모르던 눈치던데요. 아시잖아요, 사단장은 보통 예고하고 오는 거. 그리고 제가 뭐 온다고 청소하고 그런 사람도 아닌데요. 투자사 사장이면 또 몰라.”
“하긴.”
여하튼.
도윤은 잠깐이지만 특별 출연을 하러 왔다.
자신이 사단장 같은 사람은 아니라고 했지만.
몰고 온 폭풍은 부대를 방문한 사단장 그 이상이었다.
신인 배우들과 단역들은 도윤을 보며 언제 말을 걸까, 언제 사인을 받아야 할까, 언제 사진 같이 찍어달라고 해야 하나 싶어서 눈치를 보고 있었고.
주연 배우들은 ‘넘사벽’ 배우의 출연에 경계할 이유조차 느끼지 못한다.
거기에.
강미나의 어깨는 하늘로 승천할 지경.
“그러다 뼈 나가겠어. 그만 좀 으쓱거려.”
“이럴 때 으쓱거려야죠.”
“어휴, 한 씬 출연이라 다행이다, 다행이야. 한 화 출연이었으면 강 작가 어깨 탈골됐겠네.”
“그렇게 탈골되면 얼마나 기분 좋게요?”
“퍽이나.”
PD는 못 봐주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사실.
강미나 못지않게 그 역시 도윤의 특별출연을 기대하고 있었다.
지금 스태프나 다른 배우들이 아무도 몰랐던 만큼 기자들 역시 모르고 있었지만.
아마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화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돌아와서 국내 복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했던 배우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특별 출연이라니.
“아무튼 화면은 기깔나게 뽑아줄 테니까 대사 잘 줘. 강 작가니까 알아서 하겠지만.”
“안 그래도 어제 날밤 깠어요.”
“자랑이다.”
아무튼.
도윤은 샵에서 미리 세팅을 마친 헤어와 의상을 걸친 채 광채를 내뿜으며 민주의 디테일한 케어를 받고 있었고.
“……뭐가 이렇게 많아?”
“오늘 오빠 특별 출연한다는 소식에 협찬사에서 퀵으로 쏴 준 액세서리들이요.”
수십 개에 달하는 액세서리들을 보고 할 말을 잃은 채였다.
심지어 하나같이.
유명 브랜드들뿐이다.
“이게 다?”
“네.”
“한 씬 출연한다고 설명은 했고?”
“네. 1초 출연이라도 아마 그렇게 했을걸요.”
민주의 덤덤한 목소리.
하기야.
생각해 보면-
특별 출연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분명히 난리가 날 테고 이슈 1위는 아주 가볍게 차지할 텐데.
자신들의 브랜드를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난 회사들에게는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
물론.
굳이 알리지 않아도 이미 유명한 브랜드들 역시.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고 말이다.
최도윤이라는 배우를 통해.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
“안 그래도 요새 신생 브랜드라고 하는 곳에서 자주 연락 와요. 오빠 어디 기자회견이나 공할 갈 때 자기네 액세서리 하나만 차고 가주면 안 되냐고.”
“그래서?”
“저번에 오빠가 말한 대로 쭉 거절했죠.”
“잘했어.”
참고로 민주가 말한,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 생겨나는 신생 브랜드들은 이렇듯 연예인들에게 매번 제안한다.
자신들의 브랜드가 각인된 액세서리를 차고 어디든 나가 달라고.
그러다 카메라에 찍히고, 기사가 올라가고, 댓글에 그걸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물음이 줄을 잇는 순간부터-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가 확 뛰니까.
물론 도윤은 깔끔하게 거절했다.
예전도.
지금도.
뭐, 지금은 민주가 거절한 거지만.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걸로 갈게요. 헤어랑 메이크업은 마무리됐으니까 이제 살살 움직이시구요. 땀 흘리시면 알죠?”
“알지. 너한테 죽지.”
“죽이다뇨.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다만, 열심히 메이크업 다 해놨더니 땀을 흘리면 조금 거슬릴 것 같긴 해요.”
‘조금’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무섭게 사용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도윤은 오늘 격하게 움직이지 말아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런 가운데.
“역시 도윤이야. 캬, 톱스타 태가 쫙 살잖아?”
“이러다 주연 잡아먹겠다야.”
“이미 잡아먹혔어.”
강미나는 보란 듯이 이번 작품의 주연 배우, ‘하성철’을 슬쩍 힐끗거렸다.
이쪽을 보기 부담스러운지.
등을 돌린 채 대본에 시선을 집중시킨 상태.
하지만 안다.
자신을 향한 지금까지의 시선이 모두.
최도윤이라는 배우에게 몰려 있다는 걸.
물론 고작해야 특별출연이다.
정말 말 그대로 잠깐 나오는 것뿐이고, 그래서 자신의 비중이 줄어드는 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문제는.
강미나가 이제 다시 기세등등해졌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어쩐지 모르게 위축되는 느낌이라는 것.
이게 문제다.
‘도대체 왜 부른 거야…… 나 보라고 불렀나?’
정답이었지만, 설마 싶었다.
당연히 물어볼 수도 없었다.
물어봤다가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참 허망할 테니까.
하성철도-
도대체 작가랑 싸워서 뭐 얻을 게 있냐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차례 들어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존심이 이런 걸.
자신도 안다.
제작사와 투자사가 아니었으면 진작 터져도 크게 일이 터졌을 텐데.
여하튼.
강미나는 자신 나름대로 방법을 찾은 셈이고.
하성철 역시.
이제 방법을 찾아야 할 상황에 놓였다.
최도윤이라는 강미나의 든든한 우군을.
부술 방법을.
그런데.
그런 방법이 있기나 할까?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네, 네에!”
이런 와중.
자신 근처에 있던 또 다른 주연 배우 ‘유아라’에게 다가와 인사하는 최도윤의 모습이 보였다.
유아라는 그야말로 초롱초롱한 눈이다.
유아라 역시 최근 들어 뜨기 시작한 배우 중 한 명이고, 연차는 최도윤과 비슷하지만 필모그래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다.
당연히.
이렇게 선망 어린 시선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
반면.
하성철은…….
“아,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오늘 잘 부탁해요.”
도윤의 부드러운 목소리에도 그저 딱딱하게, 그리고 긴장 가득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강미나와의 냉전 때문이 아니다.
마주한 순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도저히 어떻게 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보다 조금 더 큰 키는 그렇다 치는데-
떡 벌어진 태평양 같은 어깨와 마스크에서 흘러나오는 아우라는.
그야말로 상대를 압도한다.
꿀꺽.
이건 뭐…….
사기캐라고 해야 할까.
하성철이 느끼기엔 그만한 표현도 없었다.
“저,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도윤은 이런 와중에도 하성철이 최대한 부담되지 않도록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쩌겠나.
하성철은 이미 잔뜩 긴장한 듯싶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도윤이 신경 쓸 사실은 아니다.
도윤은 강미나의 부탁을 받고 여기 왔으며.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건, 그 사람들의 몫이다.
그런 걸 하나하나 배려하려 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글쎄?
그렇게까지 이타적으로 살아야 할까?
“자, 이제 10분 뒤에 스탠바이 들어갑니다!”
도윤은 그런 생각 속에서 대본을 다시 한번 살폈고.
마침내.
특별 출연에서 맡게 된 배역, ‘톱스타 최도윤’의 감정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사실.
끌어올리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여기 대본에 적힌 ‘최도윤’은.
도윤 그 자체였으니까.
개과천선 배우님 17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