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173화 (173/200)

173.귀국(2)

기자들은 욕을 해댔다.

자신들을 무시했다면서 말이다.

도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엔 엔터도 마찬가지.

연예부 기자들이 그러는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니고.

외려 도윤은 아주 친한 기자 몇몇에게 단독 인터뷰를 제공하는 식으로.

적당히 편을 갈라두었다.

이러면 일치단결해서 욕할 일도 없을 테고, 적당한 명분도 챙길 수 있을 테니.

[최도윤, 미국 생활 인터뷰 공개…… 안타깝게도 연애는 없었다?]

[최도윤, “여유 가지기 위해 사진 배웠죠.” 새로운 취미 공개]

[최도윤, 미국 생활 에피소드 공개…… “서부극 전설과 술 한잔했다.”]

그리고 어차피 도윤의 이미지는 이미 호감을 넘어 하늘을 뚫고 올라갈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자신이 세운 법인을 통해 계속하던 기부를 최근에 더 해버렸으니까.

아예 서울 쪽 영세한 보육원들을 돌며 물품을 후원한 것이다.

연기력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인성도 완벽한 배우.

차가운 마스크 때문에 종종 오해도 받는 배우라지만.

역시 이미지의 힘은 위대한지-

그런 차가운 마스크를 ‘따뜻하게 생겼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이제는 나오고 있었다.

“음, 콩깍지는 위대하네요.”

“콩깍지로 널 몇 대 때리면 기절할까?”

물론 성호는 인정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여하튼 도윤은 지금 한국에 온 김에 사무실을 돌아보고 있었다.

어차피 처음엔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분명히 커질 것이다.

그렇기에 도윤은 꽤 큰 사무실을…….

‘구매’하려 하고 있었다.

“여기가 아주 잘 나왔습니다. 역세권이라 직원분들 출근하기도 좋고, 지하주차장도 깨끗합니다. 아마 사무실별로 10대까지는 배정이 가능할 테니까…… 여기 자리 생각하면 넉넉한 편이죠?”

“네, 깔끔하네요.”

“인테리어는 새로 하셔도 되지만 화이트톤이라 나쁘지 않을 겁니다. 업종이…… 배우님이시니까 엔터?”

도윤은 대답하는 대신 씩 웃었고.

그 모습에 업자는 얼른 말을 이었다.

“하하, 걱정 마십시오. 제가 이 바닥에서만 30년 일하면서 대부분의 고객분들과 아주 오래도록 연락하고 있습니다.”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

기자들이 서울 부촌이나 사무실이 밀집한 지역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연예인의 건물 구매 혹은 임대 소식을 캐고 다니는 건 유명한 사실.

물론 도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음, 이제…… 여기가 마지막이네요. 다른 곳도 있긴 한데, 거기는 별로 추천 안 드립니다. 시설은 좋은데 너무 외지고 차량 이용도 좀 불편하거든요.”

“그럼 여기로 하죠. 매매로.”

중개사의 얼굴이 환해졌다.

“역시 깔끔하시네요. 그럼 계약서 돌아가서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30층 가까이 되는 오피스 건물을 구매하는 건 무리지만.

한 층 전체를 사는 건 전혀 문제가 없었다.

어디 가서 드러낸 적은 없지만.

도윤에겐 정말 많은 돈이 있었다.

도윤이 명품을 시즌별로 사들이는 것도 아니고, 차도 국산 중형 SUV에 적당히 만족하며 타고 다닌다.

오히려 자신보다 남에게 쓴 게 더 많을 지경.

물론 그렇다고 해도 계좌 잔고에 전혀 영향은 없었지만 말이다.

‘위랑 아래도 비었다고 했고…… 대부분 임대라고 하니까 거기도 한번 생각해 봐야겠구나.’

어쨌건.

이제 사무실 구매 준비는 마쳤다.

“자, 여기 찍으시면 됩니다. 여기도…….”

도윤은 법률대리인을 통해 매매계약서를 작성했고, 마침내 인감도장까지 쾅 찍으며 첫걸음을 내디뎠다.

“드디어 시작이네요.”

‘두엔터’ 설립의 첫걸음 말이다.

감격스러워하는 성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두(Do)엔터 이름 너무 좋지 않아요?”

“네가 생색 안 내도 다 알고 있어, 성호야.”

참고로 두(Do)엔터라는 이름은 성호의 아이디어였다.

도윤도 처음 성호가 이 아이디어를 꺼냈을 땐 네가 웬일이냐며 놀랐을 정도.

도윤의 영어 철자 도(Do)를 ‘하다’의 ‘Do’ 발음 ‘두’로 바꾼 것.

뭐, 아주 특별하거나 기발한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깔끔하고 무난했기에 채택된 셈.

여하튼.

다른 건 몰라도 사무실은 직접 고르고 싶다는 마음에 진행한 사무실 찾기는 생각보다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사업분석 좀 해야겠다.”

“사업분석이요?”

“미국에서 좀 하긴 했는데, 아직 좀 부족한 것 같아서. 컨설팅도 받고, 저번에 말한 전문경영인도 만나보고.”

도윤은 경영학과지만.

경영학과 출신이라고 운영과 영업을 잘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래서 겸허한 마음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 하는 것.

물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이제 그럼 사무실 구했으니까…… 인력이 문제겠는데.’

제안할 사람들의 후보는 이미 정해두었다.

문제는 그들이 오느냐 안 오느냐는 것.

도윤이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이상 자리를 비울 일이 종종 있을 것이고, 그때 자신이 없어도 제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치킨집도 사장이 직접 주방을 봐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어쩌겠나.

이미 시작한 일.

최대한 회사에 붙어 있으면서, 자리를 비웠을 때의 대책을 세워야겠지.

‘더 바빠지는 건 확실하겠지.’

그렇다고 막막한 건 아니다.

일단 믿을 만한 녀석 셋이 옆에 있으니까.

그중 한 명이.

바로 옆에서 운전하는 성호다.

“형 진짜 바쁘게 사는 것 같아요.”

“미국 다녀와서 쉬었으니까.”

“한 달도 안 쉬었는데 그걸 쉬었다고 해요? 하긴, 처음에는 하루도 안 쉬셨는데.”

“알면 잘해. 또 타이어 펑크내지 말고.”

“그럼요!”

참고로 성호는.

도윤이 미국에서 가져온 슈퍼카를 타고 다녔다.

그걸로 뭘 하고 다니는지는 상관할 바 아니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고민했다.

저 녀석 몸이 차 안에 들어가기나 할지 의문이라서.

그런데 의외로 잘 타고 다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애를 못 하는 걸 보면…….

역시.

사람을 결정하는 건 차나 명품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인 모양이다.

도윤이 10년도 넘은 그랜저나 소나타를 타도 도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검소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여하튼.

“사람이 문제지.”

“네?”

“아니야. 성호야, 힘내라.”

“요새 저한테 힘내라고 하는 사람이 늘어난 기분이에요.”

“착각이겠지.”

“그런가?”

도윤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어머니는 좀 어떠시냐?”

“정정하세요. 요새는 마실도 곧잘 나가시고, 뭉치…… 아, 어머니가 저 미국 간 사이에 강아지 데려오셨던데요? 걔랑 같이 산책도 나가고 그러세요.”

“잘됐네.”

지병 때문에 요양하시다가 도윤의 도움으로 성호는 어머니를 서울로 모신 바 있었다.

그러면서 치료도 열심히 받으시더니, 이제는 정정해지셨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살아계실 때 잘해드려. 돌아가신 뒤에 제사상 푸짐하게 차려봐야 아무런 소용 없다.”

“알아요, 형. 잘할게요.”

그리고 이때만큼은 성호도 도윤의 말을 잔소리로 여기지 않았다.

성호는.

도윤이 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다는 걸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

그리고…….

도윤이 서울에 어머니와 함께 살 집을 구해주지 않았다면 정말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사실 성호는 도윤 앞에서만 안 그렇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도윤이 먼저 자신을 버리지 않는 이상 떠나지 않을 거라 말하고 다녔다.

물론.

도윤도 이 소식을 들어 알고 있다.

성호에겐 굳이 내색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지이이잉.

그렇게 차에 올라 이동하는데.

어김없이 오늘도 전화가 걸려 왔다.

바로.

강미나 작가였다.

-도윤아!

“귀 떨어지겠어요.”

-아니, 너무 반가워서 그렇지.

“저희 어제도 통화했는데요.”

-그래? 왜 난 매번 너랑 통화하면 오랜만에 통화하는 것처럼 반갑고 설렐까?

“결혼을 하세요, 누나. 엄한 사람 붙잡고 이러지 마시고.”

-흥흥. 나는 평생 이렇게 살 거야.

당연히.

도윤을 자신의 신작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건 전화였다.

-그래서, 일본 언제 가는데? 가서 한 작품 한다고 했었지?

“네, 어제도 말했어요. 두 달 뒤에 가요.”

-그럼 딱이네! 와서 특별출연이나 카메오라도 하고 가면 안 되는 거야?

“그것도 어제 말했어요. 안 된다니까요. 할 일 많아요.”

-그럼 한 씬만! 딱 한 씬만! 역할도 기깔난 걸로 줄게. 남주 질투 유발하는 톱스타, 어때?

참고로 이번에 강미나는 아주 오랜만에 멜로 드라마를 쓰게 됐다.

방송국을 무대로 PD와 작가가 등장한다고 하는데…….

참고로 PD가 남자고.

작가는 여자다.

즉.

작가 캐릭터는 강미나의 대부분이 투영된 캐릭터였고.

강미나는 지금 도윤을 잠깐이라도 출연시켜 어떻게든 뭔가 만들어보고 싶어 하는 것.

‘작가 하고 PD라.’

강미나 특성상 멜로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전개를 만들어내겠지만.

그래도 짬이 있어서 그런지, 최소한 평균 이상은 해주는 데다 <그 남자의 메모리>와 <악의 재림>을 쓰면서 키운 내면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그래서 약간은 기대가 되긴 했다.

어차피 특별 출연이라 뭐 보여줄 건 비주얼밖에 없겠지만서도…….

“끈질기시네요.”

-최도윤, 너니까.

“드라마 대사 읊지 마세요.”

-어, 어떻게 알았어?

“제가 누나랑 작품을 몇 개나 했는데.”

따지고 보면 세 개뿐이었지만.

-그래서, 응? 딱 한 씬만. 귀찮게 안 할게. 촬영 날짜도 너한테 무조건 맞추고! 응?

“다른 배우들한테 피해 안 주고 싶은데요.”

-그 배우님들도 너 온다고 하면 바로 황송해서 맞춰줄걸. 알잖아? 이번 주연 둘 다 너보다 어리고 필모도 짧아.

도윤은 고민했다.

한 씬 정도야 뭐.

사실 출연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강미나 성격상 한 번 출연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될 확률이 높아서 그런 것.

집착이 강하다고 해야 하나.

특히 도윤에 대한 집착은 신기할 정도였다.

이쯤 되면 자존심이 상하든 제풀에 지치든 그도 아니면 다른 배우를 찾든 해결이 되어야 할 텐데.

미국에 있을 때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연락을 해 오던 강미나.

그래서 도윤은 결국.

“네, 그럼 미팅 한번 가져요.”

-진짜? 진짜로? 꺄아아아! 대박! 대에박!

환호하던 소리도 잠시.

-근데 미팅까지? 그날 와서 대사 두 줄 정도만 보면 되는데.

“연기는 연기죠. 짧아도 준비는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요.”

-역시, 우리 도윤이야. 철저하다니까?

“‘우리’ 좀 빼주세요, 제발.”

여하튼 그렇게.

도윤의 특별출연이 확정되었고

본의 아니게.

강미나의 신작은…….

“그럼 형 이거 ‘복귀작’이네요?”

도윤의 국내 ‘복귀작’이 된 셈이다.

분명히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에서의 작품 활동은 조금 나중이 될 거라 말해두었는데.

이래서야 원.

‘요즘 들어 자주 계획이 바뀌는 기분인데.

하지만 오히려 예전보다는 편안한 느낌이다.

강박이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

“큰 결단하셨네요. 안 하실 것처럼 하더니.”

전화를 끊자 들려오는 성호의 말에.

도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개과천선 배우님 174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