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172화 (172/200)

172.귀국(1)

빌은 끝까지 도윤을 붙잡았다.

“도윤, 아니 윤(Yoon)! 지금 널 위한 광고와 작품들이 줄을 이었어! 아직 <데드 로드> 시즌2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공개된다면 더더욱 몰려들 거라고!”

“그럼 그때 가서 한번 볼게요. 한국에서.”

“이런 젠장!”

이제 미국의 프로듀서라면 누구나 도윤을 탐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시아 시장에서 지니는 확실한 메리트.

이미 동양인의 한계를 깼다고 평가받는 연기력과 마스크.

여기에-

<데드 로드>에서 확보한 상품성까지.

예전에는 약점이나 다름없었던 동양인이라는 사실이 이제는 더없이 확실한 장점이 된 배우를.

이렇게 놓쳐야만 한다니.

그것도 몇 개월, 아니 1년 가까이나!

심지어.

돈이 부족해서 놓치는 것도 아니다.

“이전에 한 약속은 지켜야죠.”

마치.

그럼 진작에 좀 붙잡아두지 그랬느냐-

라고 느껴지는 듯한 도윤의 말에 빌은 울상을 지었다.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뜰 줄 알았겠냐고!’

한국까지 날아가서 데려올 만큼 정성스럽게 도윤을 대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데드 로드>에서 반향이 큰 나머지 시즌2에서 주연까지 맡을 줄을 누가 알았을까?

거기다 아직 공개되진 않았지만, 공개되면 분명히 엄청난 이슈를 몰고 올 도윤의 연기력까지 생각한다면.

이대로 보내기엔 너무도 아까웠다.

“얼마면 돼!”

“빌, 알잖아요. 돈은 이제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는 거.”

“망할…….”

하지만 선약을 내세우는 도윤을 붙잡을 명분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면 분명히 후회할 거라는 둥, 지금 가면 다시는 여기 와서 작품 활동하기 힘들 거라는 둥.

이따위 협박이 먹힐 사람도 아니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고.

한다고 해도 그럴 일 없는 엄포겠지만-

지금 도윤은 그럴 이유조차 못 느낄 정도로 확고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빌, 미안해요. 시즌3에서 봐요.”

“염병.”

“아주 가는 것도 아닌데.”

“이대로 가면 못 돌아올 것 같으니 그렇지!”

“돌아와요. 약속 지키러 가는 건데, 다른 약속 무시하면 쓰나요.”

“이런 젠장…….”

프로듀서로 살아오며 어디 가서 말로 밀려본 적이 없던 빌인데.

이상하게 도윤 앞에서는 매번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진작에 잡았어야 했던 건데!’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결국 빌이 할 수 있는 건.

도윤의 소매를 놓아주고 손을 흔들어주는 것뿐이었다.

아.

하나 더 있었다.

“이건 한국에 가져가도 되는 거죠?”

“……그래. 가져가라, 가져가!”

바로 미국에서 타라며 준 두 번째 슈퍼카를 ‘쿨하게’ 내주는 것.

여기서 가져가지 말라고 하면 모양이 빠질 것 같았으니까.

사실 서류 작업도 미리 마쳐뒀다.

이렇게 배포를 보여주면-

혹시나 도윤이 남을까 봐.

마치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마음을 돌리길 바라며, 아주 사소한 것에 전력을 다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슈퍼카가 일반적으로 사소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한국 가서 잘 탈게요.”

“그래, 근데 안 돌아오면 내가 직접 한국 가서 회수할 거야! 아니면 FBI에 의뢰하든가!”

씩씩대며 아무 말이나 내뱉던 빌은 결국 제풀에 지쳐 한숨을 내쉬었고.

“그래…… 가서 잘하고 오라고.”

“고마워요, 빌. 그동안.”

“아니, 다시 안 올 사람처럼 말하지 말라니까?”

“온다구요, 와.”

도윤도 그런 빌을 달래주기 위해 확답을 해두었다.

다시.

돌아오겠다고.

<데드 로드> 시즌 3의 ‘강석’으로 돌아오겠다고.

“크리스가 널 살려둔 이유를 증명하라고.”

참고로 ‘강석’은 시즌 2 시나리오상 시즌 1에 이어 또 한 번 살아남는다.

심지어 ‘가즈’의 그룹을 무너뜨리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고, 명실상부한 주인공 그룹의 리더 중 한 명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게 다.

도윤이 연기하는 ‘강석’의 인기 덕택.

그래서 지금 빌은 크리스가 도윤을 살려뒀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럼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1년이야. 그 이상은 안 돼.”

“시즌 3 촬영은 1년하고도 6개월 후 아니었나요?”

“……끝까지 안 넘어간단 말이지.”

투덜대던 빌은 한숨을 쉬었고.

도윤은 그런 빌을 바라보며 씩 웃더니.

“그럼, 이제 갈게요.”

“가버려. 멀리.”

“네, 멀리 갈게요.”

“너무 멀리 가진 말고.”

“그럼요.”

철컥, 탁.

몇 개월이나 머무르던 호텔방을 나섰고.

침묵이 밀려온 호텔방엔 빌 홀로 남았다.

빌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한동안 심심하겠군.”

오랜만에 참.

화제성 높은 녀석을 만난 것 같다.

프로듀서로서 뿌듯함과 허탈함을 느끼는 건 바로 이럴 때다.

너무 잘 키워서 이제는 자신의 손을 벗어나 훨훨 날아가는 걸 보고 있으면.

도약하는 배우의 모습에 흐뭇한 웃음이 나오면서도-

이제는 앞으로 이전처럼 자주 함께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며.

허탈함이 밀려오는 것이다.

잘나가는 프로듀서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이 바닥에서 한 명의 프로듀서와 쭉 함께 가는 연예인이 드물다는 걸 생각하면…….

“그래도 뭐, 다시 온다고 했으니까.”

빌은 마치 주문을 외듯 읊조렸고.

마침 떠오른 생각에 씩 웃었다.

“이참에 아시아 쪽이나 다시 돌아볼까.”

도윤은 정말 특이 케이스다.

빌도 그걸 잘 안다.

하지만, 한번 이렇게 데려와서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니.

또 한 명의 스타를 찾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기 시작했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좋아. 까짓거, 가는 거지.”

빌은 결심했으며.

곧.

도윤이 떠나면서 생긴 빈자리에.

거대한 두근거림이 차 오르기 시작했다.

* * *

도윤은 조용히 귀국했다.

정말 조용하게.

한 달 전부터 아주 철저하게 귀국 정보를 통제한 덕분이었다.

기자들이 그놈의 애국심 고취를 핑계로 뻔한 질문을 던져대는 것도 싫었고, 할리우드 여배우 누구랑 만나봤냐는 질문도 대답하기 귀찮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후의 동선이 모조리 공개되는 게 싫었다.

돌아온 이상 가족들도 잠시 만나고, 사람들도 만나야 하는데.

그놈의 기자들이 따라붙는 것 때문에 도무지 누군가를 만날 수 없었던 것.

그런 일드은 <데드 로드 > 시즌 1을 마친 후 귀국했을 때 겪었던 걸로 충분하다.

그래서 도윤은 완벽한 작전 끝에 기자들 한 명 없는 게이트를 비밀리에 통과할 수 있었다.

“역시 민주야. 우와, 진짜 한 명도 없네.”

“누나, 도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그리고 이 작전은 전적으로 민주의 공.

민주가.

거의 몇 달 전부터 빌드업하며 도윤의 거짓 귀국 정보를 뿌려댔고.

혹시나 싶어 다른 연예인들이 귀국하거나 출국하지 않는 날들을 인맥을 총동원해 알아본 뒤.

그야말로 완벽한 날을 고른 것.

“민주야.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말해. 차 한 대 사줄까?”

“아뇨. 휴가 보내주세요.”

“오케이. 접수.”

그리고 도윤은 민주에게 한도 무제한이나 다름없는 카드를 건네며 이에 보답했다.

“원하는 대로 써. 막 긁어.”

“네. 그럴게요.”

그리고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카드를 받아드는 민주의 모습에.

“부럽다.”

“누나, 그때 그 월병 또 사 와요.”

성호와 두칠, 둘은 부럽다는 눈길이었다.

민주는 이런 와중에 자신의 완벽함을 한 번 더 보여주었다.

“오빠 입을 옷들 다 세팅해 놨어요. 샵 가면 언니가 안내해 줄 거예요.”

“오냐, 고맙다.”

“그럼 저 바로 갈게요.”

“응?”

“티켓 남은 거 하나 사서 오늘 바로 출국하려구요.”

“…….”

그렇게나 삼국지가 좋을까.

미국에 있으면서 좀 뜸하다 싶었는데.

미국에 있다 와서 그런지 더더욱 마음이 동하는 모양이다.

어쩌겠나.

“그래, 다녀와.”

“네. 그럼. 일주일 후에 봐요.”

민주는 그렇게 게이트를 나오던 복장과 캐리어를 그대로 끌고 다른 곳으로 가 버렸고.

도윤은 멍하니 그걸 바라보고 있던 둘을 향해 한마디 했다.

“뭐 해, 안 가고.”

“가, 가야죠.”

그렇게 도윤은 공항을 떠났고.

곧바로 자신의 집 근처 주차장으로 향해 자신의 차에 시동을 걸더니.

영주로 떠났다.

아주 빠르게.

* * *

기자들은 아마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도윤이 이미 한 달 전에 귀국했고.

가족들과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었다는 사실을.

“이게 뭔데. 야! 최도윤 아직 귀국하려면 한참 남았다면서!”

“그, 그게 확실합니다! 여러 곳에서 들은 정보들이 모두 일치했어요!”

“그럼 이건 뭔데! 말해봐! 왜 최도윤이 지금 한국에서 팬사인회를 여는 건데!”

그래서.

기자들은 제대로 물을 먹었다.

당연히 아직도 미국에 있을 줄 알았던 도윤이.

한국에서 팬사인회를 열었다는 사실에 말이다.

“…….”

심지어.

도윤의 팬카페에는 근황을 알리는 게시글들이 오늘도 업로드되었다.

촬영을 마치고, 그랜드캐니언으로 놀러 간 도윤의 모습이.

물론 꽤 예전에 찍힌 사진이었고.

이런 철저한 계획을 세운 건 바로 민주였다.

덕분에 도저히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사진을 확인한 기자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연예계 기자들에게는 특종이나 다름없는 배우가.

아무도 모르게 귀국해서 한 달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쏘다니고, 심지어 보란 듯이 팬사인회까지 열었으니까.

“……망했네.”

한 기자의 낮은 절규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도윤은.

“오빠! 저 오빠 때문에 벽 부쉈다가 우리 집 원룸 됐어요…….”

“오빠가 너무 빛나서 날이 이렇게 더운 건가요?”

“오빠 앞에 벽 있네요. ‘완벽’.”

오랜만에 팬들의 주접 속에서 울먹거리고 있었다.

날마다 진화하는 팬들의 주접은.

미국에 있는 동안 팬사인회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복수라도 하듯-

도윤을 무척이나 당황시키고 있었다.

물론 이번에도 대비한다고 대비는 했는데…….

역시나.

팬들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배우였다.

“오빠, 혹시 혼혈이에요?”

“네?”

“천국이랑 한국.”

“…….”

그리고 결정타를 얻어맞아 어질어질하게 있는 도윤 앞으로는.

수많은 선물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선물 대신 함께 기부하자고 말은 해뒀는데.

아무래도 오랜만에 보는 최애를 향한 사랑을 모두 막을 수는 없는 법.

게임기에 사과폰, 심지어 TV에 청소기며 편지와 책…….

수많은 선물들이 도윤 옆에 놓이고 있었고.

나중에는 책상이 가득 찰 무렵.

도윤은 공간을 마련하러 다가오던 성호에게 눈짓하고 멈춰 세운 뒤 선물들을 직접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팔찌를 차고.

목걸이를 걸고.

모자를 쓰고.

반지를 끼고.

외투를 그 자리에서 걸치기까지.

그리고 포장재조차 조심스럽게 뜯어 원 상태 그대로 옆에 둔 뒤.

공간을 아예 스스로 마련해 버렸다.

덕분에 팬들의 감동은 배가되었다.

팬들이 준 선물을 온통 둘러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팬들에게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최애였다.

“다음 분. 네네, 천천히 오세요.”

어떤 배우는 작품 좀 찍고 떴다고 팬들을 소홀히 대하기도 하고.

아예 팬들을 하찮게 보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매체 노출이 적은 배우라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거지-

여기에는 덕질을 하다가 최애의 행동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눈에-

도윤은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최애’였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돌아온 후 한국에서 응원하던 팬들을 잊지 않고 팬사인회를 열었으며.

이렇게 완벽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그러니.

인기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것.

“오빠, 그거 알아요? 잘생긴 사람을 보면 기억을 잃는대요.”

“모, 모르겠는데요.”

“오빠, 그거 알아요? 잘생긴 사람을 보면 기억을 잃는대요.”

“……네?”

“오빠, 그거 알아요? 잘생긴 사람을 보면…… 어머. 저 아까 이 말 하지 않았어요?”

물론.

팬들의 주접에는 여전히.

내성을 갖출 수 없었다.

개과천선 배우님 17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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