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171화 (171/200)

171.다시 한국까지 한 달(1)

도윤은 요즘 들어 부쩍 표정이 좋아졌다.

원래 표정이 안 좋았던 건 아니다.

웃을 때는 웃고, 화를 낼 때는 내고, 무표정할 때는 가만히 있는 등.

도윤은 생각보다 감정에 나름 충실한 편이었다.

그런데.

그런 도윤이 요새는.

자주 웃기 시작했다.

“저는 저런 형이 무서워요.”

성호의 말마따나.

도윤은 요새 싱글거리는 일이 늘어서인지 성호의 공포를 자극하고 있었다.

성호는.

도윤이 웃는 게 제일 무서웠다.

보통 앞에서 웃고 있으면.

자신이 뭘 잘못했을 때가 많으니까.

“난 네가 더 무서운데. 성호야, 살 좀 빼자. 이러다 운전석에 끼겠다.”

민주의 일침에 성호는 시선을 회피했다.

“미국 왔다고 미국인처럼 먹기만 하면 어쩌니.”

“그건 너무 맛있어서…….”

성호는 요새 다시 예전의 식습관으로 돌아갔다.

미국에 왔으니 햄버거를 먹어줘야 한다며 햄버거, 감자튀김, 밀크셰이크라는 진리의 조합으로 하루 세끼를 해결하는가 하면-

어지간해서는 세 사람이 얼마나 돈을 쓰든 신경 안 쓰는 도윤이 심각한 표정이 될 정도로 룸서비스를 시켜 먹어댔다.

그뿐인가.

운전석 쪽에는 마트에서 파는 간식들이 한가득이고.

촬영장에서도 입에 뭘 달고 산다.

덕분에 살 빼라는 소리에 한번 싫은 티를 낸 이후로 뭐라 안 하던 도윤이.

다시 뭐라고 할까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

“너 그러다 진짜 금방 죽어.”

민주의 말에 성호는 흠칫하면서.

“그, 그렇긴 한데요…….”

“어머니 살아계실 때 결혼하고 싶다면서. 그럼 정신 차려야지?”

“……네.”

성호는 풀이 죽어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는 한숨을 쉬었다.

요새는.

팀 최도윤을 보살피는 엄마가 된 기분이다.

도윤을 위해 일하는 거야 뭐 항상 했던 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말 안 듣는 아들 같은 성호와.

철없는 오빠 같은 두칠을 보고 있으면.

속이 터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물론 민주 성격상 그걸 드러내지도 않고, 매번 척척 해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고통받는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런 와중에 도윤이라도 여유를 찾고, 뭔가 욕심에 충실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톡, 토독.

민주는 얼른 휴대폰 카메라로 도윤을 찍었고.

-사진 찍는 오빠 모습!

이라는 제목으로 카페에 글을 올렸다.

그러는 사이 도윤은.

“도윤, 취미 생겼어? 요새 카메라 들고 다니네?”

“예전에 해봤던 게 생각나서.”

“좋네, 그럼 나도 한 장 찍어줄래?”

“좋지.”

마침 다가온 안드레아의 사진을 찍어주며 꽤 선선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데드 로드> 촬영도 어느덧 아주 익숙해졌고.

주연 배우들은 어지간하면 NG 없이 빠르게 촬영을 끝내는 게 당연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주는 도윤이나.

피사체가 된 안드레아 둘 다.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잘 나온 것 같은데? 고마워. 내 인스타로 보내줘!”

“미안. 난 안 해서.”

“이쯤 되면 할 때도 되지 않았어? 그냥 하나 대충 만들어서 올려봐!”

이런 와중 도윤은 안드레아의 제안에 지금까지와는 달리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지, 진짜? 그럼 나 팔로우한다?”

“아냐. 그냥 나인 줄 모르게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사진이나 올리려고.”

“너무해.”

도윤은 울상을 짓는 안드레아에게 피식거리곤 휴대폰으로 금방 인스타그램을 설치하고, 가입까지 완료했다.

그리고는 고민 끝에…….

첫 피드를 올리는 기념비적인 일을 달성했다.

아주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지금까지 팬들이 그렇게나 줄기차게 요청해도 카페로나 소식을 전하고, 일상을 전혀 공유하지 않았던 도윤이.

SNS라는 걸 시작한 역사적인 순간이었지만.

“도윤 너인 걸 안 밝히면 도대체 왜 하는 거야? SNS라는 건, 사람들의 관심을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그 관심을 관리하기 싫어서 지금까지 안 한 거야.”

“넌 참 특이해. 흐응.”

문제는 바로 이 계정이 도윤의 것임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

심지어 옆에 있는 안드레아는 결국 계정 아이디를 끝까지 알아내지 못했다.

“치사해, 진짜 치사해.”

“어쩔 수 없어. 네가 팔로우하면 누군가 분명히 유추할 테니까.”

“해본 적도 없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야?”

그야 회귀 전에 해봤으니까.

목구멍까지 치민 말을 삼킨 도윤은 능글맞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돌아왔고.

“오빠 요새 많이 웃네요.”

“그래 보여?”

“네. 좋아 보여요.”

“취미가 생겨서 그런가.”

“취미 덕에 여유가 생겨서 그런 거 아닐까요.”

역시 민주다.

항상, 전체를 관통하는 날카로움을 지녔다고 해야 할까.

“앞으로 계속 이렇게 해보려고. 대본 다 보고 사진 찍고, 업로드도 해보고.”

“대본 덜 보고 찍는다는 말은 끝까지 안 하시네요.”

“예리한데.”

“하긴, 그게 낫죠. 취미에 매몰되면 안 되는 거니까.”

늘 그렇듯 심드렁하게 답하는 민주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화제를 돌렸다.

“근데 오빠 이제 한국까지 한 달 남았네요.”

“벌써 그렇게 됐지.”

<데드 로드> 시즌 2.

어느덧 촬영 끝이 보이는 시기에서.

도윤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을 확정헀다.

빌이 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듯 조금만 늦춰줄 수 없냐고 사정사정을 했지만.

빌의 속셈을 아는 도윤은 어쩔 수 없이 거절해야 했다.

돌아가는 대로.

또 작품에 들어가야 했으니까.

물론 천천히 여유롭게 찍을 예정이고, 여기서 느낀 것처럼 어느 정도 자신에게 좀 더 틈을 줄 생각이긴 했지만.

여길 다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운 건 맞다.

‘가기 전에 그랜드캐니언이나 보고 갈까.’

사진에 관심을 가져서일까.

자연스럽게 사진 찍기 좋은 스팟에 눈이 갔고.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여행을 가는 것에도 관심이 갔다.

그리고.

여기 있는 좋은 사람들과 잠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도 아쉽다.

확실히…….

회귀 후 미친 듯이 달리기만 하던 때를 생각하면.

나름대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가야지.’

하지만 가야 하는 건 맞다.

여유 좀 찾자고 계약을 깨는 건 안 될 일.

위약금을 물어주면 그만이라 할 사람도 있겠지만-

위약금을 물어준다고 무너진 신뢰가 회복되진 않는다.

민주의 말처럼.

취미에 매몰되어서는 안 되는 것.

여하튼.

이젠 슬슬 촬영도 마무리되어 가고.

도윤은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사실 호텔에서만 지낸 덕에 별로 준비랄 것도 없지만…….

적어도 함께한 사람들과 술 한잔 정도는 하고 가는 게 인지상정.

“도윤, 오늘 준비됐나? 오늘은 브랜디로 가지. 브랜디의 역사에 대해 잘 아나?”

“한번 알려주시면 술맛이 더 좋아질 것 같습니다.”

“좋아. 오늘 기대하라구. 마치고 가는 대로 아주 맛 좋은 술을 먹여줄 테니까.”

그래서 오늘은 지금 껄껄 웃으며 등을 두드리는 그랜트와 약속이 있었고.

“내일 와인 약속 안 잊었지?”

“그럼.”

내일은 자칭 와인 마스터, 칼과의 술자리 약속도 있었다.

다만.

“근데 진짜 안 만나볼 거야? 널 엄청 좋아한다구! 나한테 한 달 내내 너 보게 해 달라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안 봐. 내가 미국 언제 또 올 줄 알고.”

“널 만나기 위해서라면 한국도 따라갈 기세던데.”

“그럼 더더욱 못 만나지.”

“젠장, 도대체 왜 사람을 안 만나는 거야? 한국에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라면서? 혹시 다른 쪽이야?”

“부탁인데, 제발 그런 발언 좀 삼가줄래?”

“망할, 내가 또 죄인이군.”

칼은 돌아가기 전까지 주변 사람 중 한 명을 도윤에게 소개시켜 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하기야.

도윤이 전혀 연애를 안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칼은 도윤이 혹시 기능상의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니까.

“에휴, 그럼 아무튼 내일 보자고. 오늘은 저쪽과 마시고.”

“그래.”

아무튼.

한국에 돌아가기 위한 준비는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 * *

-논란이 있었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밝아 보이는 조의 모습입니다!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지는 경기장.

오늘도 어김없이 램스의 키커로 출전한 조성환은 필드골로 가볍게 3점을 추가하며 램스의 승리를 이끌었고.

“우와아아아아아아아!”

“JO! JO! JO!”

또 한 번 홈팬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환하게 웃었다.

이전보다.

훨씬 밝은 미소였다.

-램스는 하마터면 최고의 키커를 잃을 뻔했습니다. 지금은 21세기입니다. 이전처럼 선수를 무조건적으로 통제하려 드는 건 시대착오적이죠.

-NFL 선수들이 종종 사고를 치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아직 사고 치지 않은 선수를 그렇게나 통제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오늘도 50야드 필드골을 성공시키는 조! 그야말로 괴물의 출현입니다!

미식축구에서 키커는 흔히들 파리목숨이라 칭해진다.

반드시 넣어야 하는 골을 실수로라도 넣지 못하면 온갖 욕을 먹는 건 다반사고-

몇몇은 키커라는 포지션 자체를 무시하기도 한다

오로지 ‘차는 것’만 하기 때문.

하지만 조성환은 지금 50야드 필드골을 완벽하게 성공시키며 홈팬들의 엄청난 환호를 받고 있었고.

이 환호는-

아마 꽤 오래도록 이어질 것 같았다.

이런 가운데.

-램스의 승리입니다! 램스! 3연승을 챙겨가네요!

-완벽합니다. 램스를 도대체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오늘 경기를 결정 지은 포지션은 또 한 번 키커였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조성환은 예상지 못한 사람을 관중석에서 발견했다.

바로.

도윤이었다.

“형님!”

조성환은 용케 도윤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그쪽으로 다가갔고.

오늘만큼은 들키지 않을 작정으로 온 도윤은 잠시 당황했지만.

“경기 잘 봤다. 잘 차던데.”

“형님이 사인해 준 헬멧 덕이죠. 하하.”

이내 자신이 사인해 준 헬멧을 톡톡 두드리던 조성환을 축하해 주며 씩 웃었다.

그리고.

마침 온 김에 할 말을 했다.

“나 이제 다시 한국 간다.”

“네에?”

조성환은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벌써…… 그렇게 됐어요?”

“어. 아마 갔다가 시즌3 촬영 전까지는 안 올 것 같다.”

“아…….”

도윤은 아쉬워하는 조성환을 보며.

“한국 오면 연락해. 운동선수니까 술은 좀 그러면, 밥이나 먹자.”

“좋죠! 그리고 저 술도…… 안 마셔보긴 했지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 그럼.”

도윤은 피식거렸고.

마침 조성환이 또 공을 내밀려 하자.

고개를 저었다.

“난 하나 있잖아. 다른 팬들 주거나, 간직해.”

“그래도요.”

“됐어. 간다. 오늘 경기 잘 봤고, 한국 오면 연락해.”

“네, 네엡!”

도윤은 그러면서 몸을 돌렸고.

곧, 옆에 있던 성호와 함께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이제 다 된 건가?’

귀국이 2주 정도 남은 시점에서.

이제 만날 사람은 다 만난 것 같았다.

원래 이런 거에 연연하지 않았는데.

확실히.

바뀌긴 한 모양이다.

“경기 재미있네요. 한국에는 미식축구 리그 없나?”

“있겠지. 찾아봐. 아니면 직접 하든가.”

“제가요?”

“덩치 안 밀릴 것 같던데.”

“……빼요, 뺀다구요.”

성호가 투덜거리는 사이.

도윤은 낄낄거리며 차에 올랐다.

그리고.

그사이 인스타그램을 열어 마침 뜬 조성환의 피드를 발견했다.

-오늘도 이겼다. 그리고 이길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감사합니다, 형님.

참.

솔직한 녀석이다.

도윤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어렸고.

곧.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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