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166화 (166/200)

166.끈질긴 구애

그러나.

중국의 구애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도윤이 컨펌을 했다.

일단 진행하지 않겠다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 일정을 잡아두었고.

향후 한국에서 활동할 가능성이 높은데.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중국까지?

200억.

분명 큰돈은 맞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래서 내가 찍은 작품이 시청자들에게 각인될 수 있느냐는 것.

그런 의미에서 언제고 촬영 혹은 방영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은 중국 작품을 굳이 할 이유가 없는 법.

특히나 도윤은 현재 화제가 되는 <악의 재림>이 중국 쪽에 그리 달갑지 않은 소재의 작품임을 알고 있고.

머지않은 미래에 한한령(限韩令)이 떨어져 중국 내 한국 연예인들의 활동이 모조리 막히고 한국 작품들의 수입이 중지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여하튼.

거절의 이유는 충분한 셈.

하지만 중국은 거기서 한 번 더 권유하는 대신.

아예 미국으로 날아왔다.

무려 촬영장까지 말이다.

“아까부터 자꾸 도윤 널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같은 한국인이야?”

“아마 중국인일걸. 그리고 그런 말은 삼가 줬으면 좋겠는데.”

“아, 미안. 같은 아시아계가 아닌가?”

“그냥 아시아에도 다양한 나라가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도윤은 한숨을 쉬었다.

방금 무지를 드러낸 칼 때문이 아니라.

저기 지금, 자신의 촬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정장 차림의 남자 세 명 때문에.

요란하게도 람보르기니를 끌고 촬영장 앞에까지 와서는 ‘대단한 사람들’임을 잔뜩 과시한 그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신경을 박박 긁어댔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도윤의 연기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말이다.

“오늘도 좋군. 이제 몸은 좀 어떤가?”

“슬슬 괜찮아지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먹다가 토하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다행이군. 근데 말이야, 저기 저 자네한테 관심 있는 친구들은 어떻게 안 되나?”

“보안요원도 안 통할 정도면, 저도 뭐.”

도윤은 어깨를 으쓱이자 크리스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마침 내 차에 매그넘이 있는데.”

“촬영 끝나기 전에 감옥에 가면 섭섭할 것 같은데요.”

“으흠.”

도윤은 사생팬처럼 자신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중국인 셋을 힐끗거렸다.

말 한마디라도 안 걸어준다면.

며칠이라도 여기 있을 기세다.

도윤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민주야.”

“맡겨주세요.”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민주를 출격시킨 것.

물론 미국까지 온 저들이 영어를 못 할 리 없으나.

중국어로, 그것도 타지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건 조금 다른 의미니까.

그리고 민주는.

의외로, 아니 역시나.

쉽게 해결했다.

“프레스틴 호텔에 가 있겠다고 하네요.”

구구절절한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역시나.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다.

그렇게 도윤은.

민주 덕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촬영을 마칠 수 있었고.

빌의 신신당부 속에서 차에 올랐다.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무시하라고. 귀를 닫아. 아, 금액은 듣고 오라고! 얼마나 되든 내가 더 줄 테니까! 알겠지?”

“참고하겠습니다.”

“이봐!”

빌은 딱 봐도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었다.

안 그래도 붙잡기 힘든 상황인데.

중국과 한 작품이라도 계약하는 순간 도윤을 미국에 붙잡아두기란 더더욱 힘든 일이 될 테니.

그렇게 오매불망, 답이 오길 기다릴 빌을 뒤로한 채.

도윤은 그들과 약속한 프리스틴 호텔로 향했고.

그리고.

시작부터 돈 이야기가 나왔다.

“도윤. 한화로 약 250억의 제안을 드립니다.”

250억.

듣기만 해도 입이 쩍 벌어지고.

자연스럽게 통역을 자처한 민주조차 아주 조금은 당황할 만한 금액.

심지어.

“참고로 이건 한 작품에 출연하는 대가입니다.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광고 등의 수입에 대해 우리는 절대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

한 편의 대가고.

그 외 수익에 대해서는 전액 도윤에게 보장한다는 제안까지.

“이유를 듣고 싶은데요.”

“그야 당신이 아시아 최고의 배우니까요. 그리고 향후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을 배우라 생각합니다.”

도윤은 그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보다는.

중국이 생각 이상으로 자신을 강하게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죄송하지만, 그 제안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도윤은 거절했다.

리스크를 짊어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지금 제시받은 돈보다 중요한 일들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런데.

도윤과 마주한 세 사람은 서로 속닥이더니.

또 한 번 놀라운 제안을 내놓았다.

“그럼 한화 300억에,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해드리죠.”

과연.

대륙의 스케일다웠다.

단숨에 50억을 올리는 건 물론이고.

공수표를 저렇게 자신 있게 던지다니.

원하는 모든 것?

도윤이 일반인도 아니고.

부와 명예는 일찌감치 거머쥔 배우다.

그런 사람이 뭘 말할 줄 알고?

물론.

도윤은 말하는 대신.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민주가 시선을 돌렸다.

도대체.

왜?

중국이라서가 아니라.

저 돈이면 할 수 있는 게 수두룩한데.

아무리 돈에 관심 없는 오빠라도.

왜 거절하냐고 묻는 것 같았다.

결국.

중국 쪽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다.

“좋습니다. 그럼 우리가 언제 다시 찾아오면 되겠습니까?”

“그건 저도 말씀드리기 힘들겠군요.”

“이런 제안을 거절하는 사람은 처음이군요. 여기까지 온 우리의 성의를 무시할 작정입니까?”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도윤은 기도 안 찬다는 듯.

속으로 피식거리지도 않았고.

민주를 통하는 대신 직접 영어로 물었다.

“내가 언제 당신들에게 찾아오라고 했습니까?”

“중국의 시장은 아주 큽니다. 그런 태도로 일관하다간, 앞으로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기회.

그것도 원하는 기회여야지.

원하지도 않는 기회를 붙잡아야 할 만큼.

도윤은 절박하지 않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네요.”

“지금 뭐라고…….”

“여기 볼 게 많더군요. 천천히 즐기다 가시길 바랍니다. 아, 촬영장에는 안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 프로듀서가 사설 경비대를 부른다고 하더군요. 샷건과 권총으로 무장한 사설 경비대 말입니다.”

도윤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민주와 함께 그곳을 벗어났다.

뒤에서 고함이 들려왔지만.

솔직히.

못 알아듣겠다.

중국어라서.

“통역해 드려요?”

“아니.”

도윤은 민주를 보며 피식거렸다.

“아쉽지 않아? 너 나 삼국지 드라마 출연하는 거 보고 싶다고 했잖아.”

“중국에 쟤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쟤들은 삼국지 안 만들어요. 삼국지 만드는 애들은 따로 있어요.”

“그래?”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 이건가?

“그리고 비즈니스를 저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거죠. 아마 오빠가 출연한다고 했으면 제가 말렸을걸요.”

“아까는 당황하더니.”

“쟤들 때문에 그런 건데요.”

“그럼 뭐.”

아무튼.

이 정도로 해 놨으니.

당분간 중국에서 제안이 올 일은 없겠지.

솔직히.

한 번쯤 해볼 법도 하지만…….

그보다.

더 해보고 싶은 일들이 산더미다.

그래서 거절한 것뿐이다.

돈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200억, 아니 300억이면…….’

도윤은 300억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생각해 보다가 그만두곤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다시 연기를 하러 갈 시간이다.

* * *

<데드 로드> 시즌2 촬영은 순조로웠다.

얼마 전 촬영장 근처에 배치된 사설 경비대 덕도 있었지만.

시즌2에 접어들면서 전체적으로 배우들이 익숙해지고 자신의 역할에 자연스레 몰입하게 된 이유가 가장 컸다.

그리고 개중에-

역시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도윤이다.

“뭔가 의견을 모으고 싶나? 그렇게 해보라고. 의견을 모아서, 투표를 하고, 반대하는 이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출발하면, 아마 문을 여는 순간 네 앞에 죽은 자들이 득실득실할걸?”

도윤이 맡은 ‘강석’은 시즌1과 다르게 서서히 독선적으로 변해간다.

이 치열한 아포칼립스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하게 된 변화.

그리고 지금은.

이런 변화한 ‘강석’과 그룹원들이 대립을 벌이는 장면이다.

“그래서, 지금 네가 대장 노릇이라도 하겠다 이건가?”

“그렇게 안 보였나?”

“하, 적당히 봐서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이거 뭐 주제를 모르는군.”

여기에.

극한으로 치닫는 대립 속.

새롭게 합류한 그룹원 한 명이 ‘강석’에게 시비를 걸다가.

기어이 주먹을 날린다.

하지만.

퍼억, 퍼억!

처음에는 조금 맞아주나 싶던 ‘강석’이 거의 일방적으로 상대를 구타하며 결정타를 날리고 기절시켰고.

겁에 질린 그룹원들을 바라보며.

묻는다.

“다음.”

없었다.

있을 턱이 없다.

그래서.

‘강석’은 말했다.

“그럼 현 시간부로 더 이상 이곳에 우리가 기억하는 체제는 없습니다. 살고 싶으면, 내 말을 따르십시오.”

내 명령을.

따르라고.

“오케이. 좋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는 여기서 오케이 사인을 내리며 흡족하게 웃었다.

서서히 몸도 회복되고 있고.

연기야 말할 필요도 없이 좋다.

저번과 같은 생각지도 못한 방해꾼은 사설 경비대의 샷건으로 쫓아내면 그만.

여기에.

“긴장 안 되십니까?”

“긴장은 무슨. 다 하던 건데.”

“그럼, 여기 있는 애송이들한테 한번 보여주시죠.”

드디어.

그랜트의 촬영 시간이 다가왔다.

모두가 신경 안 쓰는 척하지만.

모두가 이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시간.

“좋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드디어.

그랜트의 차례가 되었고.

그랜트는 순식간에 자신이 맡은 배역, ‘가즈’의 눈빛으로 바뀌더니.

그룹 내에서는 누구보다 천사 같고 자상한 리더를 연기하기 시작한다.

“오! 베티. 넘어진다. 조심하렴.”

“아저씨! 오늘은 언제 나가요?”

“아마 밤에 나갈 것 같은데, 왜?”

“그럼 다녀오실 때 이 과자 찾아줄 수 있어요?”

“그럼. 물론이지.”

어린아이를 안아 세상 인자한 미소를 지은 ‘가즈’는.

자신이 이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이룩한 백 명에 달하는 집단을 바라보며 웃는다.

이들 모두.

언젠가 자신이 세울 국가의 신민이 될 자들.

그러니.

숨겨야 한다.

이들을 완벽히 통제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본모습을 숨겨야 한다.

씬은 곧 넘어간다.

‘가즈’와.

한 무리의 생존자 집단이 조우하는 씬으로.

“우리는 당신들을 위해 제공할 수 있는 음식과 물, 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도 있죠. 모든 것들은 거대한 장벽으로 방어됩니다. 죽은 자들은 더 이상 들어올 수 없고, 거기서 죽은 이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게 되죠. 이른바…… ‘살아 있는 자’들의 세상입니다.”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지친 생존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한 ‘가즈’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온 생존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을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마치.

‘완벽한 리더’처럼.

하지만.

다시 넘어간 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아직도 버티고 있나?”

“방금 잭이 부상당했습니다.”

“더 볼 거 없군. 풀어.”

세 번이나 설득했음에도 실패한.

마트를 점거한 생존자들.

그래서.

준비했다.

쿠르르릉!

다섯 개의 트럭에 가득 실린.

죽은 자들을.

“좋아. 열어!”

마트 망가진 벽 쪽에 후진으로 돌진한 트럭 문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마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안에서는.

총성과 비명이 들려오는 가운데.

‘가즈’는 느긋하게 이를 바라본다.

모두 죽은 자들이 되면.

처리할 심산으로.

씨익.

그야말로.

소름이 끼치는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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