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머리를 둘로 만들어줄까?
유명 연예인의 사업 소식은 꽤 자주 들리는 편이다.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본업 외 다른 활동에 욕심이 생겨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서.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싶어서 등.
하지만.
개중에 성공하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
처음에는 연예인의 이름을 내걸고 잘 나가던 사업이 노하우가 부족해 무너지거나,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연예인을 등쳐먹으려는 인간들이 몰려들기도 한다.
그도 아니면 순전히 운이 없다거나.
여하튼.
유명인들의 ‘부업’은 대부분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하며-
그건 큰 사업이라 부르기에 민망한 자영업도 포함된다.
때문에 도윤이 지금 꺼낸 말들은 차정수에게 꽤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얘가 왜?’
다른 배우도 아니고.
최도윤이라는 배우다.
앞길이 아직 창창, 아니 이미 창창한 길을 걷고 있는 데다.
앞으로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유일한 배우.
그래서 아직 해야 할 연기도 많고, 가야 할 곳도 많고, 때문에 카메라 앞에 설 시간도 부족할 녀석이…….
갑자기 사업?
“너무 이른 거 아니냐?”
정수의 질문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아직 30대도 안 됐고.
그렇다고 지금 연기 활동이 잘 안 되어 다른 쪽에 눈을 돌려 머리를 식히려는 이유도 아니다.
아니, 너무 잘 되어서 문제.
도윤이 조금만 움직여도 사방에서 억만금을 들고 달려와 같이 일하자고 사정사정을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사업?
‘아무리 봐도 돈 욕심은 아닌데.’
정수가 혼란스러워하던 그때.
“당연히 돈 벌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 나중에 더 바빠지기 전에 틀을 잡아두려구요.”
이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도윤은 자신의 플랜을 꽤 정성 들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났을 땐.
도윤이 자연스럽게 꺼내 온 맥주 네 캔이 비어 있었고.
정수는 고심했다.
“흐음…….”
솔직히.
이미 도윤이 결정하고 조언을 구하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반대한다고 따를 것 같지도 않고.
도윤은 애초에 사업을 시작한다는 전제로 유경험자인 차정수를 초대한 거니까.
그래서 차정수는-
“1년 뒤부터 시작하는 걸로…… 정확히는 미국이랑 일본 일정 끝나는 때겠네?”
“네. 그때는 아마 한국 들어와서 작품 활동도 하면서 사업 병행하려구요.”
“음…… 난 사업이 네 배우 필모그래피를 망칠 것 같아서 걱정인데.”
차정수의 말이 이어졌다.
“사업하는 거 좋지. 신인 배우들에게 적어도 억울한 일 안 만들어주겠다는 마인드도 훌륭하고. 근데 말이야, 그거 하려고 네가 한국에 굳이 머무를 이유가 있나 싶다. 시즌2 끝나면 시즌3도 찍어야 할 거고, 일본에서도 계속 러브콜 들어올 텐데.”
차정수의 지적은 타당했다.
도윤이 아직 해외 진출하기 전도 아니고.
이미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시즌2에서도 높은 비중을 약속받은 데다, 일본에서도 지속적으로 도윤을 원하는 상황에서-
굳이 사업을 이유로 국내에 무대를 한정시켜야 할까?
“처음에는 국내에 머무르면서 직접 배우들을 모집할 겁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제가 잘하는 걸 해야죠.”
“잘하는 거?”
“잘 아시겠지만, 배우들은 대부분 사업적 감각이 없더라구요.”
차정수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럼 전문 경영인을…….”
“바로 그거죠.”
도윤은 사업을 구상하면서 느꼈다.
사업에는 생각보다 많은 기술이 필요하구나.
도윤의 경우-
카메라 앞에서 하는 모든 것들에는 자신 있었지만.
사업적 수완을 요하는 일들에는.
아직 많은 것들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그걸 위해 배우 활동을 접기란 어려운 일.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하는 게 사업이라지만.
글쎄.
혼자 하는 사업도 아니고.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신인 배우들을 모아 그들을 책임져야 한다.
그럼 최소한 경영 부분에서는 잡음 없이 매끄럽게 굴러가야 하기에-
믿을 만한 전문 경영인이 필요한 것.
“전문 경영인이라……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하긴, 나도 고민했던 부분이니까.”
차정수는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놈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작품 활동에 들어갈 때마다 회사일과 병행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
도윤도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좀 아니다 싶었는데, 전문 경영인이라…… 틀을 잡고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물론 그렇다고 사업이 말처럼 되면 어디 누군들 안 하겠냐만.”
차정수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안나 누나한테 이미 이야기해뒀어요.”
주안나.
재계 3위 청진그룹 회장의 외동딸이자.
이제는 총 여섯 개의 계열사를 관리하는, 재벌 중의 재벌.
“안나면 뭐…… 도윤이 너한테는 대충 소개해 주진 않을 테고.”
차정수가 봐도.
주안나는 도윤을 마음에 들어 한다.
도윤이 청진그룹의 계열사 광고 몇 개를 맡은 뒤 매출이 수직 상승해서만은 아니다.
“안 그래도 놀라더라구요. 제안도 하던데요. 이참에 청진 엔터 쪽도 진출할까 하면서.”
“덥석 물다가 통째로 먹힌다. 조심해라. 무서운 애야. 모임에는 한없이 생글거려도 사업할 때는 진짜…….”
하기야.
그런 면이 없었으면 그 나이에 여섯 개 계열사를 관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
여햐튼.
전문 경영인 건도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았다.
“뭐야, 그럼 이미 다 정해 놓은 거네?”
“사실 형님 얼굴 보려구요.”
“넉살은.”
차정수는 피식거렸고.
도윤은 잠시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근데 모르죠. 어떻게 될지는. 담나 될 거란 확신을 가지고 해야죠. 연기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처럼.
그 말에 차정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넌 뭘 해도 될 거다. 한번 해봐. 내가 허락하는 건 아닌데, 너 하는 거 보고 있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망하면 더 재미있겠죠?”
“무슨 내가 망하길 바라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어, 그런 말은 아닌데.”
“음,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망하고 우리 JS엔터로 전격 이적!”
“세상에.”
“원래 이렇게 틈을 노리는 거지.”
차정수는 낄낄거리는 한편.
은근히 진지하게 권유했다.
“진짜 올 생각은 없고.”
“죄송합니다. 제가 누구 밑에서 일을 못 하는 성격이라.”
“어유, 핑계는.”
“티 났어요?”
정수는 예전에도 그랬듯.
빠르게 포기했다.
‘내가 품을 녀석은 아니지.’
그래.
녀석의 말마따나.
자기가 사업을 하면 했지.
누구 밑에서 일할 녀석은 아니다.
일하지 않을 성격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누구든 저런 배우를 밑에 두고 싶어 할까.
동업이라면 또 몰라.
결국 차정수는 살짝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냉장고를 슬쩍 바라봤다.
“이런 큰 건을 이야기했는데, 설마 맥주가 더 없는 건 아니겠지?”
도윤은 대답하는 대신 냉장고 문을 열어 보였고.
그 안에는.
맥주가 종류별로 그득하게 쌓여 있었다.
차정수의 눈에 기쁨이 차오르는 데엔.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 * *
다시.
미국으로 가는 날.
“한국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비밀리에 출국하는 도윤 앞에서.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셨고.
“거, 이번에 가면 또 반년 가까이 있다 오는 거냐?”
아버지는 걱정하셨다.
도윤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이었다.
“건강히 돌아올게요.”
“그래, 몸 건강히만 와라. 이제 와서 연기 못 해도 된다는 말은 좀 그렇지만…….”
연기를 똑바로 못 할 일은 없다.
다만.
그냥 아들이 타지로 간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
“그러니까 저 없는 동안 서울 올라와서 관광도 하고 그러세요. 그리고 저 나가 있는 동안 해외여행 좀 다녀오시구요. 리나가 아주 노래를 부르던데.”
그 말에 아버지가 맞장구쳤다.
“그래, 요새 북유럽이 좋다던데. 그러지 말고 다녀오자, 응? 애들이랑 어디 못 놀러 간 지도 꽤 됐잖아.”
그렇게 부모님이 여행 이야기에 잠시 화제를 돌린 사이.
도윤은 자신을 알아본 듯한 몇몇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얼른 인사했다.
“저 이제 갈게요. 계속 있으면 곤란해질 것 같아서.”
“그래, 얼른 가라. 조심하고.”
“도착하면 꼭 연락하고, 알았지?”
도윤은 부모님의 배웅 속.
먼저 들어간 민주와 성호, 두칠이 통과한 출국 게이트를 통과했고.
도윤이 떠나고, 부모님이 잽싸게 피한 자리에는.
“진짜 본 거 맞아? 제대로 본 거 맞냐니까?”
“아니, 진짜 최도윤이었다니까? 내 짬이 몇 년인데. 유명한 애들은 실루엣만 봐도 안다니까?”
“이엔에 연락 좀 해봐. 오늘 출국일 맞냐고.”
“그걸 알려주겠냐? 이건 왜 달고 다니냐?”
마침 다른 일로 공항에 와 있던 기자들이 사냥감이 떠난 자리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도윤은 떠났고.
지금은 면세점에 와 있었다.
“하나씩만 골라. 가격 신경 쓰지 말고.”
“형, 두 개는요?”
“머리를 둘로 만들어줄까?”
“와, 살벌하다.”
도윤은 이제는 자연스럽게 물건을 고르는 세 사람을 보며 피식거리는 한편.
담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총감독 크리스를 떠올리며 크리스가 자주 피우는 담배 한 보루를 샀다.
“어머, 혹시…….”
면세점 직원의 호들갑에 검지를 입술로 가져다 대며 사인을 해준 건 덤이다.
“형 인기 스타네요.”
“너무 고루해. 다른 표현 없냐?”
“도사마?”
“손에 든 거 도로 내.”
“에이, 한번 사 주면 땡이죠!”
도윤은 그 큰 덩치로 잽싸게 도망치는 성호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저번 출국 때 그랬던 것처럼 라운지로 향해 대본을 펼쳐 들었다.
사실 도윤은 <악의 재림> 편집이 거의 끝나가는 가운데 완성물을 보지 못하고 출국길에 오르게 됐다.
<데드 로드> 시즌2 촬영 일정상.
어쩔 수 없었기 때문.
하지만.
준비가 부족하거나 한 건 아니다.
이미 시즌1이 끝난 시점에서 시즌2 대본 일부를 받았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빌과 크리스를 통해 지속적으로 <데드 로드> 시즌2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았기 때문.
참고로 ‘강석’은.
‘모종의 사건’으로 시즌1에서 두 팀으로 갈라진 기존의 무리 중 하나를 이끄는 리더가 된다.
인기 때문에 맡게 된 갑작스러운 역할이 아니라.
시즌1부터 차근차근 떡밥을 뿌려왔고.
여기에 도윤의 설득력 있는 연기가 더해지며 결정된 역할.
‘대사 좋고…… 느낌도 좋고.’
그래서 나름대로 부담을 느낄 법하건만.
도윤은 오히려 기뻤다.
시즌2 중반까지 팀 하나를 이끌고 독립된 세력을 구축하는 리더.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얼마나 매력적인 배역인가?
그래서 도윤은 처음과 달리 매번 결정의 순간을 마주하며 서서히 변해가는 ‘강석’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한편.
자신에게 들어온 미국 내 광고도 꼼꼼하게 검토했다.
“이번에도 자동차 광고예요? 와, 향수 광고도 있네.”
옆에서 성호가 광고 목록을 보고 조잘거리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몇 개를 골라내고 상세 내용을 살펴보는 사이.
“오빠, 갈 시간이에요.”
이제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시간이 됐다.
도윤은 몸을 일으켰고.
“가자.”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