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156화 (156/200)

156.성인군자였네요

한국의 스타가 일본에 왔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팬들은 흥분했고.

그중 일부는 도윤을 보기 위해 공항과 시상식장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방송 관계자 및 기업들은.

도윤을 만나기 위해 애를 썼다.

“젠장, 왜 진작에 알지 못했던 거야?”

어떤 쪽에선 도윤이 입국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고 개탄스러워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접촉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명함을 꽂아주란 말이야!”

다소 극단적인 지시를 내리는 쪽도 있었으며.

“한국 소속사에 연락되나?”

“일본에서는 시상식만 마치고 바로 한국에 복귀한다고 합니다.”

“헛물 켜지 말고 그냥 포기해야겠군.”

재빠른 포기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쪽도 있었다.

여하튼.

도윤은 단순히 입국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화제가 되고 관심을 모을 만큼 그 위상이 높아져 있었다.

단순히.

일전에 특별출연했던 것 때문만은 아니다.

<데드 로드>.

이미 일본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한 지플릭스에서 여전히 1위를 수성 중인 그 드라마 덕택에 도윤의 인지도는 매우 높았고-

심지어 도윤이 출연한 모든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 수입되어 인기리에 방영될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정말…….

‘도사마’라는 칭호가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물론.

“도사마.”

“뒤질래?”

성호가 이때다 싶어 놀릴 만큼.

도윤이 썩 좋아하는 별명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둘이 친해 보이네요.”

“아니, 안 친한데.”

“그럼 말고요.”

두칠의 물음에 매몰차게 답한 도윤 옆엔.

몇 시간 전 수상한 특별상 트로피가 놓여 있었다.

이런 와중.

“이제 중국만 남은 건가?”

민주는 드물게도 눈을 반짝거리며 ‘중국’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고 있었다.

“한국, 일본 먹었으니까 이제 중국 진출도 염두에 두시는 건 어때요.”

“먹긴 뭘 먹어.”

“오빠는 조운 맡으면 딱인데.”

평소 미래의 계획, 포부 등 남들이라면 그냥 지나가듯이라도 말하는 것들조차 전혀 입에 담지 않는 시니컬한 민주지만.

그런 민주에게도 꿈이 있었다.

바로.

도윤이 중국에 진출해 삼국지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

좀 더 구체적으로는…….

마이너한 무장을 주로 좋아하는 민주가 메이저한 무장들 중 그나마 좋아하는 ‘조운’ 역을 도윤이 맡는 것.

“자기 욕망을 담당 배우한테 투영시켜도 되는 거야?”

“제가 평소에 욕심 안 부리잖아요.”

그건 그렇긴 한데.

도윤은 애초에 장소에 목적을 두지 않아서 문제다.

작품이 마음에 들면 카메라가 있는 어느 곳이든 가는 주의니까.

“나중에 제안 들어오면.”

“진짜죠. 약속했어요.”

도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묘한 불안을 느꼈다.

어쩐지 민주라면.

중국에도 분명히 있을 지인에게 연락해.

자신의 손에 대본을 쥐여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중국 가면 돈은 많이 벌겠네.’

시장 스케일이 다른 나라, 중국.

내수 시장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돈이 벌리는 곳.

그래서 매력적이지만.

중국 특유의 그 폐쇄성과 당 정책 탓에 가기가 은근 꺼려지는 나라.

뭐.

도윤이 그런 걸 따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성호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조만간 중국도 먹으러 가시겠네.”

“성호야, 닥쳐.”

“넵.”

아무튼 뭐.

먹었다는 표현은 아직 적절치 않다.

도윤의 인기가 특출나긴 해도.

일본에서 ‘고작’ 특별상 하나 수상한 것으로 모든 걸 맛봤다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니까.

그래서 도윤은…….

일본에 온 김에 드라마 출연 계약을 맺었다.

일전에 이야기가 나왔던.

<데드 로드> 시즌2 촬영이 끝난 뒤 해보겠다던 일본 진출 건 말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도윤 상.”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도윤은 NJN 본사에 방문하여 NJN에서 준비 중인 특별 프로젝트 계약서에 사인을 마쳤다.

“계약금은 금주 내로 즉시 입금될 겁니다. 물론 도윤 상은 돈보다는 저희 NJN의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져주셨지만…….”

“돈에도 꽤 관심이 있었는걸요.”

“하하하! 솔직하시군요. 하긴, 세상은 돈이 전부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거액의 계약금 역시 지급받았고.

NJN 사장은 개인적인 선물까지 내밀었다.

“약소하지만, 이건 제 개인적인 성의 표현입니다.”

바로 그림이었다.

그것도 17세기의 유명 화가가 그린 진품.

도윤은 다소 놀랐다.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이 선물을 받음으로써 자신에게 빚이 분명히 생길 거라 생각했던 셈.

차라리.

술이나 시가 같은 거라면 기쁘게 받았을 것이다.

“팬이 보내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받을 수 없습니다. 제 팬카페 팬들은 모두 저에게 선물을 보내는 대신 봉사활동을 하거나 기부를 하니까요.”

때문에 도윤은 유연하게 빠져나갔다.

사장 역시 몇 번 더 권하고 포기할 만큼.

“크흠,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물은 받지 못하지만, 이 마음만큼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게 많아지면.

이렇듯 여러 선물들이 들어오는 법.

하지만 먹어서 체할지 소화가 될지 잘 따져봐야 한다.

이 그림은.

아무리 봐도 전자였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계약을 마친 도윤은 만찬 자리까지 마무리하고 차로 돌아왔다.

얼마 전.

정식 계약을 맺은 두칠과 함께 말이다.

경호원 겸.

일본어 선생님 겸.

“근데 형, 플로리스트 하신다면서요?”

“도윤 형님이 제시해 주신 조건이 좀 세더라고. 꽃이 생각 안 나던데.”

역시 자본주의의 논리란.

그렇게 팀 최도윤은 총인원 넷으로 늘어났고.

도윤은 이제 준비한 이야기를 꺼냈다.

“셋한테 할 말이 있는데.”

할 말.

그 단어에 셋은 각양각색의 표정을 지었다.

민주는 살짝 미간을 좁혔고.

성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두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두칠이야 잘 모르지만.

성호와 민주는 도윤이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셋 모두 귀를 기울인 가운데.

“회사 하나 만들 생각이야.”

도윤은 담백하게 본론부터 꺼냈다.

괜히 뜸을 들이거나.

빙빙 돌려 이야기하는 건 애초에 도윤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너희 세 명이 같이 해줬으면 하는데, 어떤지 생각을 물어보고 싶어서.”

도윤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

세 사람 모두 조금씩은 당황할 만큼.

하지만 아주 당황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성호와 민주 두 사람은 이미 이전부터 서로 이 이야기를 하곤 했으니까.

연예인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성장한 뒤 자신의 회사를 차리는 게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절세 목적으로 법인을 세운 김에 아예 1인 기획사로 진출하는 것.

그러다 같이하는 사람이 생겨 규모가 커지면 아예 전문 엔터 회사로 바뀌게 되는 식.

도윤 역시.

일찍이 법인을 만든 상태고.

1인 기획사 선언만 안 한 것뿐, 이엔 엔터와 합의만 마치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즉.

그다지 이상한 말만은 아닌 셈.

다만.

이엔 엔터와 끝까지 함께할 것처럼 보였던 도윤이 이런 말을 했다는 점에서…….

‘혹시 대표님이랑 싸웠나?’

‘딱히 사이가 안 좋아 보이는 건 아니었는데.’

성호와 민주, 두 사람이 다른 이유를 떠올리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도윤은 곧 두 사람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미리 말하는데 이엔 엔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가는 건 아니야.”

“그럼요?”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때 민주가 입을 열었다.

“그걸 이야기해 주셔야 저희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맞는 말입니다, 형님. 그리고 전 바로 며칠 전에 이엔 엔터랑 사인했는걸요.”

민주와 두칠의 말에 도윤이 피식거렸다.

“진지하게 이야기해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데, 당장 하려는 건 아니야. 준비할 시간도 필요하고, 인력도 필요하고. 그리고 그 인력 중 너희 세 명이 가장 우선이고.”

그러면서-

“신인들을 위한 회사를 만들 거야.”

도윤은 드디어 오랜 시간 생각해 온 포부를 입에 담았다.

신인 배우들을 위한 회사.

그건-

도윤이 회귀 전, 그리고 회귀 후 보고 느낀 것들 위에 만들어진 목표다.

“신인들을 위한 회사…….”

“그래. 적어도 돈 없고 배고파서 재능 없는 배우들이 자기 꿈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지.”

성호의 중얼거림에 맞장구치는 도윤.

민주는.

“오빠 성인군자였네요.”

늘 그렇듯, 민주답게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눈은 빛나고 있다.

또한 두칠 역시.

“역시 도윤 형님이십니다.”

무한한 존경심을 담아 도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적이고, 어쩌면 내 생각대로 안 될지도 몰라. 신인들을 모아서 트레이닝시키는 데 들어가는 돈도 돈이고, 사업성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렇죠. 기업이 단순히 돈이 많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하고 싶어. 망해도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도윤의 확고한 그 말에.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인 사람은 성호였다.

“전 할게요. 어차피 종신계약이니까.”

종신계약 핑계를 댔지만.

성호는 이미 도윤이 어딜 가든 따라갈 작정이었다.

성호에게 도윤은 그런 존재였으니까.

자신조차 자신의 어머니를 더 신경 쓰고.

이런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앞으로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물론.

종종 갈구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도윤은 성호의 말까지만 듣고 고개를 저었다.

“당장 결정하라는 건 아니야. 그냥 이런 계획이 있다 정도만 알려주는 거니까.”

도윤은 셋에게 부담을 주려고 한다기보다는-

선택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성호는 이제 로드급을 벗어나 다른 매니저들을 관리할 수 있는 실장급으로 갈 수 있는 수준이고.

민주 역시 일개 스타일리스트로 끝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재주를 지니고 있다.

두칠이야 이제 막 정식 계약을 맺었지만, 애초에 하던 일이 있던 사람.

셋 모두.

단순히 한 사람과 함께하면서 제한된 역할만 맡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도윤은 그 역시 세 사람이 선택한 일이고, 자신 역시 강요한 적 없음을 충분히 알고 있다.

다만.

미리 생각할 여유를 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치고 너무 진지한데요. 저도 할게요.”

민주는 성호처럼 간단히 결정을 내렸고.

“어, 음. 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때 가서도 이 생각이 유지된다면 하겠습니다. 형님이랑 함께요.”

두칠까지 이렇게 이야기하며.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도윤의 말이 무색하게도.

팀 최도윤은 그대로 가게 되었다.

단 한 명도 이탈 없이 말이다.

“이러니까 도원결의 느낌이네요. 장소가 호텔 안이긴 하지만.”

“복숭아 좀 사 올까요?”

성호의 드립에 민주는 한숨을 쉬었고.

“뭐, 그래도 같이 가게 됐으니까 느낌은 좋네요. 그렇죠, 형님?”

두칠의 말에 도윤은 세 사람을 바라보며 고마움을 느꼈다.

조금의 고민도 없이.

자신을 따라준 사람들.

“실망 안 시킬게.”

그래서 도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을 입에 담았다.

반드시.

해내보이겠다는 각오로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