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150화 (150/200)

150.이것이 배우다(2)

[‘완벽한’ 리딩, 최도윤의 한계는 어디까지?]

[최도윤에게 남은 건 완벽함뿐.]

[<악의 재림>, 리딩 현장에서 느껴지는 대박 조짐!]

[최도윤, 이번에도 지플릭스 스타 되나?]

기자들이 잔뜩 몰려가 1부 현장을 촬영한 리딩이었기에 기사 역시 잔뜩 쏟아졌다.

과연.

시작부터 이렇게 화제를 모은 드라마가 과연 몇 개나 있었을까?

물론 드라마는 1인극이 아니기에 배우 한 명의 힘으로 극을 이끌 수는 없다.

하지만 배우 한 명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어마어마하게 집중시킬 수는 있다.

바로 도윤처럼 말이다.

다만.

그래서일까.

“네, 엄마. 저 집에 못 갈 것 같아요.”

-올 생각 말고 서울에 있어. 영주 오면 영주 터진다. 안 그래도 니 아빠가 플래카드 걸었어.

“……또 뭐라고 걸었는데요?”

-뭐라더라? 장하다, 영주의 아들 최도윤! 지플릭스 또 진출! 이라던데?

“…….”

도윤은 이제 집 밖으로 한번 나가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어딜 가나 사람들이 알아보는 탓에 쉽사리 놀러 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특히, 부모님이 계시는 영주에 가는 건 더더욱 어렵다.

괜히 갔다가.

민폐나 안 끼치면 다행이니까.

유명세도 때로는 불편한 법.

물론 이 유명세를 통해 얻는 금전적 이득과 명예를 생각하면 아쉬울 것도 없는 일이다만, 그래도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는 법이다.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드라마나 잘 찍어. 알았지?

“네, 그럴게요.”

-그리고 요새 니 아빠가 차 이야기하던데 괜히 사 주거나 하지 마라. 지금도 두 대나 있어서 골치야. 제발, 응?

“하, 하하.”

도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이미 한 대가 출고 대기 중이었기 때문이다.

-너 혹시…….

“아! 매니저가 불러서요! 끊을게요!”

도윤은 황급히 전화를 끊었고.

“제가 불렀어요?”

“아냐. 됐다.”

성호의 어리둥절한 표정 속에서 휴대폰을 열어 출고 대기 중인 차량을 확인했다.

역시.

출고 취소는 어려울 것 같다.

어릴 때 자신과 동하, 리나를 태우고 다니시면서 똑같은 차만 15년을 끌고 다니시던 분인데.

자식 셋 키우느라 그 좋아하던 차도 못 바꾸시던 아버지가 눈에 아른거렸던 것.

‘뭐, 아버지가 나머지 욕은 드시겠지.’

어차피 영주에 내려가지 못해 어머니에게 더 이상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것 역시 이유라면 이유.

“형 효자시네요.”

“그럼. 차를 세 대나 사 드렸는데.”

“요새 뻔뻔해지신 것 같아요.”

“겸손보다는 이게 낫더라고.”

도윤은 성호의 말을 가볍게 받아치곤 편안하게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그나저나.

이 소파에 앉아보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은데.

새삼 집 가구조차 제대로 써 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바빴다는 게 실감 난다.

‘사흘 뒤에 2차 리딩이고, 다시 열흘 뒤에는 3차 리딩…… 정신이 하나도 없겠구나.’

어차피 대본은 볼 만큼 봤다.

이제 눈 감고도 대사가 술술 나올 지경.

하지만 중요한 건 대사를 단순히 외우는 것뿐만이 아니다.

리딩을 통해 상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고, 필요하다면 디테일을 수정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야 비로소 카메라 앞에서 펼칠 수 있는 연기가 나온다.

연기라는 건, 단순히 자신의 대사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

하지만 걱정은 전혀 없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해낼 테니까.

“근데 형, 소식 들었어요?”

“뭘?”

“서태주요. 또 경찰에 잡혔대요.”

도윤은 그 말에 간단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네. 이번에는 약이 아니라…… 음주운전이네요. 사람은 안 쳤는데, 중앙분리대 들이받았다는데요. 죽진 않았고요. 차는 좋은 거 탔나 보네. 음…… 날짜가…….”

도윤은 성호가 말해준 날짜가.

그날, 화장실에서 서태주와 마주쳤던 날임을 떠올리고 피식거렸다.

결국.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건넨 조언은 듣지도 않은 채.

끝까지 스스로를 무너뜨리다니.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는 법이다.

“얘는 이제 소속사도 없는데 어떻게 하려나.”

도윤은 비꼬는 성호의 말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가볍게 결론을 내렸다.

이제 정말.

끝났구나.

* * *

서태주의 소식은 이제 큰 화제가 될 것도 없었다. 아주 잠깐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긴 했지만, 그대로 묻혔다.

서태주가 더 이상 대중들에게 매력적이거나 관심을 끌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

또한 도윤 역시 당연하게도 주변 사람들이 지나가듯 전해주는 서태주의 소식에 반응하지 않았다.

애초에 반응할 이유가 없었고.

이제 더 이상 서태주는 도윤의 마음 한구석 조그마한 자리조차 차지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으니까.

“자, 30분 후에 리허설 슛 들어갑니다! 현장 스태프들 안전장치 점검해 주시고 살수차 레디해 주세요. 오늘 리허설 중요합니다. 제대로 가봅시다!”

그리고 이제는-

2·3차 리딩까지 마친 <악의 재림> 리허설에 집중할 때.

<악의 재림>은 지플릭스에서도 커다란 관심을 보이는 드라마다.

특히, 한국 드라마가 해외에서 인상적인 성적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돈 냄새 잘 맡기로 유명한 지플릭스의 선택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

베테랑 PD 백제운.

<그 남자의 메모리>로 톱급 작가로 거듭난 강미나.

그리고.

최고의 배우, 최도윤까지.

특히.

도윤의 합류가 확정되자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제작비가 얼마나 들든 무제한으로 지원하겠다고 결정한 건 업계에서도 꽤나 유명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지금 리허설 현장에 준비된 세트장 역시 할리우드의 경력자들을 초빙해 제작한 엄청난 규모였고.

도윤은 그 전문가들 중 한 사람과 반갑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도윤! 드디어 보는군! 제발 날 모른 척하지 말아줘.”

“행크, 어제 메시지까지 보내놓고 갑자기 무슨 너스레야?”

“그야 여기 한국에서는 네가 왕(king)이니까 그렇지. 연기의 왕!”

“부탁인데, 여기서는 그런 말 쓰지 말라고.”

“왜?”

“그야 다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도윤의 뻔뻔함에 행크는 웃음을 터뜨렸다.

“LA에서 처음 봤을 때는 은근히 위축된 것 같았는데, 역시 달라졌어.”

“그때도 비슷했는걸?”

“아니야, 확실히 한국에서의 네 모습이 더 인상적이야. 하긴, 그때도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행크는 <데드 로드> 세트장 제작에 참여한 사람 중 하나.

도윤에게 한국 소품 관련 자문을 구하며 친해지게 된 케이스였다.

행크는 도윤이 마음에 들었다.

영어를 꽤 잘해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고 연기에 집중해도 모자랄 배우임에도 소품 문제를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

거기다.

“참, 조만간 그 ‘부대찌개’라는 거 파는 곳 데려가 줄 거지?”

행크는 도윤 덕분에 한국 음식 하나에 푹 빠져 있었다.

“말만 해. 그거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먹여줄 테니까.”

“오! 다른 거?”

“양념치킨이라고 들어봤어?”

“‘양념치킨’? 발음은 좀 어려운데 그만큼 미치도록 맛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뭐라고 하는 거야?”

“둘이 친한 것 같아 보이는데.”

“저 사람들 할리우드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나?”

“진짜 글로벌하게 노는구나.”

부럽다는 기색이 가득하다.

어떻게 보면 그냥 외국인과 반갑게 대화하는 장면인데.

그 사람이 도윤이다 보니 달라도 한참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

물론 무려 할리우드에서 온 외국인이긴 하지만 말이다.

“자, 곧 슛 들어갑니다! 배우분들 준비해 주세요!”

이런 가운데 시간은 흘러.

마침내 대망의 리허설 시간이 되었다.

세트장 점검 겸 전체적인 흐름을 보기 위해 선택된 장면은 씬 넘버 60.

바로.

배주호와 도윤의 씬이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배주호, 넌 할 수 있어!’

배주호는 두방망이질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도윤을 마주하는 순간.

진정되기는커녕 더욱 요동치는 가슴.

그러던 그때.

“잘할 수 있을 겁니다.”

도윤이 배주호를 보며 가벼운 웃음을 지었고.

배주호는.

놀랍게도 떨리던 가슴이 서서히 진정되어감을 깨달았다.

“잘해봐요, 배주호 배우님.”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카메라 앞에서는 선후배 없으니까 그 단어는 잊으시고요.”

“네, 네엡.”

“기왕이면 선배라는 생각으로 절 대해보셔도 좋을 것 같고.”

여기에 가벼운 농담이 더해지자.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기까지.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도윤이 하는 말 모든 것들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우상이라서 그럴까?

여하튼 떨리던 가슴이 빠르게 진정된 것만은 확실했고.

이를 바라보던 신강수는 처음으로 부럽다는 감정을 느꼈다.

‘나도 저기 서 있으면.’

신강수는 단역이다.

원래대로였다면, 그러니까 오디션을 보기 전까지 했던 자신의 생각에 따르면-

저기 배주호가 연기할 ‘유준명’은 자신의 배역이 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신강수는 오디션을 본 뒤 제운이 제안해 온 단역 포지션을 수락했고.

지금 이 자리에서 둘의 연기를 바라보고 있다.

부럽다.

미치도록 부럽다.

그때 오디션에서 압도당했던 기억은 이제 부끄러움 대신 선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시 한번.

저 배우의 연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면.

다시 호흡을 맞출 수만 있다면.

뭐든 할 텐데.

“그럼 슛 들어갑니다!”

제운의 외침 속.

도윤, 아니.

‘석주’의 첫 대사가 시작되었다.

“바질란테라고, 알고 있나?”

저벅, 저벅.

자신을 향해 두려움 어린 시선을 보내는.

‘심판 대상’을 향해 걷는 ‘석주’.

그리고 그 ‘심판 대상’이자 망나니 재벌 3세 ‘윤준명’은…….

아니.

아직까지는 ‘배주호’인 남자는 생각했다.

두렵다.

지금 저 다가오는 배우, 아니 이미 ‘석주’에 완벽히 동화된 사람을 향해.

자신이 대사를 할 수 있을까?

정말 국가를 대신한 범죄자를 심판하는 ‘자경단’이라도 된 것처럼.

위압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석주’를 향해 말이다.

“세상이 그렇게 합리적이진 않거든. 그래서 너 같은 놈들을 벌해줄 사람이 필요해. 그게 나고.”

꿀꺽.

마른침을 삼킨 ‘배주호’는 생각했다.

도윤이.

시작하기 전 자신에게 했던 말들을.

그리고 여기까지 오기 위해 배우로서 노력했던 모든 것들을.

그렇게 생각하자.

이제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이…….

마침내 떠오른다.

“너, 너 정체가 뭐야! 뭐냐고! 너, 그, 그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정체가 뭐냐고! 뭐 하는 새끼야!”

발악하듯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정말로 뉘우침이 없는 악인처럼 표독스런 표정으로 ‘석주’를 노려본다.

그리고 ‘석주’.

아니 도윤은 속으로 씩 웃었다.

이제야.

‘유준명’을 연기하기 시작한 배주호를 바라보면서.

“말했잖아, 자경단이라고. 바질란테라고도 부르고. 아니지. 지금은 그런 말보다…… 네가 심판당할 거라는 게 더 중요한 사실이지.”

“오지 마, 오지 말라고!”

“미안하다는 말은 못 해줄 것 같다. 너 때문에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거든.”

저벅, 저벅.

손에 밧줄을 든 ‘석주’가 다가갈 때마다 ‘유준명’은 엉덩이를 끌며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지만.

턱.

등에 닿은 벽의 감촉을 느끼며 절망을 느낀다.

“아, 안 돼!”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다.

방법이 하나 있다면.

지금 다가오는 저 ‘악마’를 뿌리치는 것뿐.

하지만.

바들바들.

손발이 떨려오고.

무력함과 절망감이 그를 엄습한다.

그리고 배주호가 ‘유준명’에 완벽히 동화되어 멋진 연기를 펼친 그 순간.

“오케이, 컷! 아주 좋습니다! 둘 다 퍼펙트하네요!”

제운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며 리허설 현장에 감돌던 긴장감이 일거에 해소되고.

짝짝짝짝.

NG 없이 첫 리허설 씬을 무사히 마친 두 사람을 향해 박수가 쏟아졌다.

그리고.

도윤 역시.

방금 막 ‘유준명’을 확실히 연기해낸 배주호를 향해.

가벼운 박수를 보냈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이다.

덕분에 배주호는…….

“아…….”

난생처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박수를 보내는.

완벽한 경험 속에서.

느꼈다.

자신의 연기가.

틀리지 않았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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