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146화 (146/200)

146.돌아온 악역(2)

배우들에게 묻는다.

꿈이 무엇이냐고.

그렇다면 여러 대답이 나온다.

누군가는 칸에 가는 것.

누군가는 완벽한 작품을 찍는 것.

누군가는 영혼의 파트너를 만나는 것.

그리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우상처럼 바라보는 배우를 만나는 것이라 답한다.

바로.

지금 <악의 재림> 오디션 현장에 모인 배우들 중 상당한 숫자가 그렇다.

‘진짜 한 번이라도 연기하는 걸 직접 봤으면…….’

‘<데드 로드>에서 진짜 최고였었는데.’

‘다른 연기도 최고였는데, 악역 연기는 최고였지.’

데뷔 3년 차에 지나지 않지만 엄청난 팬들을 보유하고.

모든 제작자들이 함께하길 바라마지않는 배우.

연기로는 이미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는 데다-

스펙트럼도 넓어 모든 카테고리의 배역을 완벽히 소화해 낸다.

심지어.

인성까지 좋다는 배우.

그야말로 배우 지망생들에게는 워너비라는 표현조차 부족한 존재.

최도윤.

지금 이 사람들은.

<악의 재림>에 뽑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만큼이나 도윤이 연기하는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모인 사람들.

그리고…….

“최도윤이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온다는 게 진짜야?”

“소문엔 그렇다는데. 아까 최도윤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갔대.”

“대박, 그럼 최도윤한테 맞춰야 하나? 대사 바꿀까?”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그러나 모두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소문까지 돌며-

이 소문을 들은 모든 배우들의 머릿속에선 최도윤이라는 이름 석 자가 콕 틀어박혀 떠나질 않았다.

이런 가운데.

“오디션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총 4부로 나누어 진행되고 각 번호별로 몇 부 오디션에 속하는지 필수적으로 확인 부탁드립니다. 오디션 중간엔 반드시 정숙해 주시길 바라며…….”

마침내 오디션이 시작되었고.

배우들은 긴장한 기색으로 자신의 순서가 되기만을 기다린다.

이런 가운데 몇몇 배우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아, 나는 짬 좀 먹은 거 아니었나?”

“개 같네 진짜. 뭔 오디션을 이따위로 해?”

바로.

이미 다른 작품에 출연했거나.

심지어 팬층이 꽤 두터운 배우들이다.

주연급이 아닌 모든 배역들은 공개 오디션을 거치고.

경력과 관계없이 공평한 조건에서 평가받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아, 그냥 <그녀의 덫> PD님이나 만나러 갈 걸 그랬나?”

“오늘 오디션 있다고 해서 스케쥴 싹 정리하고 왔는데 이런 줄 알았으면…….”

그래도 배우라고.

기존 경력에 맞춰 대우를 받을 줄 알았는지.

경력 없는 생 초짜들과 함께 오디션장에서 대기해야한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해도.

어느 하나 자리를 뜨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백제운 PD가 연출하고.

강미나 작가가 극본을 썼으며.

해외 진출이 용이한 지플릭스 플랫폼에.

최도윤이 참여하는 작품.

어느 한 가지만 있어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인데 말이다.

그래서 툴툴거리면서도 금세 대본 속으로 빠져드는 배우들.

그러는 사이-

“네, 잘 봤습니다.”

오디션장에선 희비가 교차하고 있었다.

“2차에서 봅시다. 이만 가셔도 좋습니다.”

1차 오디션은 말 그대로 1차 오디션.

‘1차’라는 말은.

‘2차’ 역시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제운과 미나를 비롯한 캐스팅에 관여하는 제작진들은 모두 2차 오디션을 위해 1차 오디션에서 선제적으로 지원자들을 걸러내고 있었다.

우선.

“태도가 영 아니네요. 그게 연기라면 다행이지만요. 다음 분.”

기본 자세가 안 되어 있거나.

“대사 숙지는 해 온 겁니까? 지정연기에, 시간도 충분히 드렸던 것 같은데.”

대사 숙지가 전혀 안 되어 있거나.

“지각? 바로 다음 분 들여보내세요.”

이런 와중에 지각을 했다거나.

그리고.

“아, 백 PD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죄송하지만 기억이 안 나는데, 우리가 어디서 봤죠?”

“어유, 왜 그러십니까? 예전에 <긴 하루> 찍을 때 같이 하셨으면서.”

친한 척하면서 앞에 있는 캐스팅 담당자와 친분을 과시해 오디션에서 이득을 보려는 의도를 가진 배우 역시-

“제 기억에 안 남는 걸 보면,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별반 차이가 없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네, 네?”

걸러냈다.

“가차 없으시네요.”

“그렇게 해야지.”

제운은 스스로 그리 좋은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때로는 스스로를 속물이라 여기기도 한다.

잘하는 배우에겐 한없이 너그럽지만.

이렇게 애매하거나, 발전 가능성이 없거나, 기억할 이유가 없는 배우들에게는 냉정하니까.

특히.

“난 저런 애들이 싫어.”

“그래도 아직 이름 없는 배우들 심정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런 거 없이도 묵묵히 노력해서 올라오는 애들도 있어. 여기는 정치판이 아니야. 실력 있는 배우들이 대우받아야지, 남한테 아부 잘하고 아무데나 고개 조아리는 애들이 대우받으면 안 되는 거지.”

제운은 그러면서 경력이 꽤 길게 적힌 배우의 이력서를 뒤집어 옆으로 밀어두었다.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근데 진짜 막막하네요. 이래서 원석이 보일까요?”

이런 와중에 들려온 미나의 푸념.

제운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안 보일 수도 있지.”

“그러다 캐스팅 못하면요?”

“그럴 일은 없을걸?”

“네?”

“3부부터는 최 배우가 합류하니까.”

“아.”

미나는 그제야-

도윤이 3부부터 함께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대본 분석에 여념이 없을 텐데도 흔쾌히 제안을 수락해 준 배우.

‘선구안이 도대체 얼마나 좋은 걸까?’

이엔 엔터는 업계에서 떠오르는 별이다.

거기서 나온 신인들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연기력을 보여주고.

심지어 특색까지 갖추고 있다.

가장 좋은 예가 바로 현재 주연급으로도 손색없고 청순한 이미지를 제대로 각인시킨 채한올.

여기에-

다른 수많은 신인 배우들까지.

그런데 놀라운 건.

그 배우들의 캐스팅에 관여한 사람이 이엔 엔터의 능력 좋은 대표와 본부장만이 아니라는 사실.

‘부디, 하나만이라도…….’

미나가 속으로 애타게 비는 가운데.

시간은 흘렀고.

여전히 둘의 눈에 공통적으로 띄는 배우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밥은 맛있네요.”

“지금 뭐든 안 맛있겠어.”

“근데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있어야죠.”

후다닥, 식사까지 끝낸 둘은 곧 들어올 도윤을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도윤을 영접하는 순간.

“아이고, 최 배우님.”

“도윤아!”

구세주라도 만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났다.

덕분에 방금까지도 죽어가던 걸 옆에서 지켜보던 현장 스태프들은 웃음을 참느라 애를 쓰면서도-

편안한 복장의 도윤에게서 흘러나오는 아우라에 마른침을 삼켰다.

저게 바로.

배우의 아우라구나, 싶어서.

“다들 피곤해 보이시네요.”

“어우, 말도 마세요. 죽겠어요. 다음에는 안 할 겁니다. 최도윤 배우님이랑 또 한다면 말이죠.”

농담삼아 은근히 도윤을 디스하는 제운.

아닌 게 아니라.

이번에 오디션에 온 사람들 반은 도윤을 보러 왔거나, 함께 연기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나 역시.

“도윤아, 다음에는 너 캐스팅 제일 나중에 발표해야겠다.”

죽겠다는 듯 엄살을 부렸다.

와중에 옆자리에 도윤이 앉자.

“아, 이 안정감.”

“그래, 이거지.”

둘의 감탄이 터져나오고.

도윤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1부부터 들어올 걸 그랬어요.”

“아냐, 아냐! 우리 주연 배우 죽일 일 있나. 3부부터라도 와줘서 고마워. 진짜로.”

아무튼.

그렇게 도윤이 합류한 가운데.

“오디션 3부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3부 시간이 다가왔고.

도윤은 시작부터 눈을 빛내며 순차적으로 들어오는 오디션 참가자들을 살폈다.

마찬가지로.

‘지, 진짜 최도윤이다.’

‘대박!’

‘와…… 미모 미쳤어.’

들어오는 오디션 참가자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도윤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입을 쩍 벌렸다.

특히.

신인 배우들이 그랬다.

오히려 경력 있는 배우들은 그런 신인들과는 다르다는 걸 온몸으로 어필하듯, 도윤과 눈도 안 마주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

물론.

중요한 건 이런 태도들이 아니다.

“네, 잘 봤습니다.”

“하, 한 번만 기회를…….”

“죄송합니다. 다음 분.”

연기가 최우선이고.

그다음은 가능성.

어차피 합격을 결정하는 건 앞선 두 사람의 몫.

도윤이 해야 할 건.

‘옥석을 가리는 거지.’

이미 정해온 배우가 들어오면 둘에게 사인을 주는 것.

혹은.

자신이 미처 보지 못한 재능을 발견했을 경우.

마찬가지로 두 사람에게 사인을 주는 것.

물론 지금껏 여러 배우들의 운명에 개입해 그들의 길을 바꿔두긴 했지만-

그건 모두 그들의 연기를 더욱 다듬어주고 좋은 길을 찾아주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적어도 같은 배우에게 탈락 선언을 하는 건 자신이 해선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고.

“다,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야?”

“내가 궁금해? 나는 말이야…… 너 같은 새끼들이 너무 싫어. 사람 인생 망쳐두고 자기 인생은 신나게 즐기는, 너 같은 새끼들 말이야.”

“사, 살려줘. 제발!”

그래서 지금 연기를 펼치는 신인 배우를 주목했다.

‘배진호.’

극 초반.

주인공이자 자경단 ‘석주’에게 심판을 당하면서-

‘석주’가 어떤 존재인지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는 역할.

그러다 중반부 이후에 다시금 등장해 ‘석주’의 적이 되는, 나름대로 꽤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는 배역.

도윤이 보기에.

<악의 재림>에서 중요하지 않은 역할은 단 한 명도 없다.

캐릭터를 잘 만들어내는 미나답게 대사 한 줄만 치는 단역이라 할지라도 확실한 역할을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배진호’라는 신인 배우가 연기하는 ‘유준명’은…….

“좋은데요.”

연기가 펼쳐지는 동안 도윤이 미나에게 살며시 귀띔할 만큼 훌륭했다.

‘2018년이었나? 그때 데뷔하면서 충격을 몰고 왔었지.’

아마 스릴러 장르의 드라마였을 텐데.

비록 형사 주인공에게 붙잡히지만.

한 화 전체를 아우르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역할로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그 연기를 바탕으로 이후 승승장구하게 되는 배우.

거기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어떤 잡지에서 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전까지 작품 운이 엄청 안 따랐다던데.’

고른 작품이 작품 외적인 문제로 망하거나.

주연 배우의 문제로 시청률이 무너지거나.

영화 크랭크인을 앞두고 제작사의 도산으로 일자리를 잃는 등.

여러 일을 겪은 끝에 데뷔한 것.

쉽게 말해.

운이 전혀 따르지 않았던 것.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미 그가 성공할 걸 알고 있는 도윤이 이 자리에 있었으니까.

“흐음.”

그리고 제운은.

“어때?”

“나쁘지 않은데요.”

“최 배우가 와서 처음 픽한 배우니까, 2차 보내자고.”

놀라울 정도로 흔쾌히 결정했다.

“배진호 배우? 연기 잘 봤습니다. 2차때 보죠. 그때는 더 좋은 연기,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제운의 통과 선언이 떨어진 그 순간.

“가, 감사합니다…….”

배진호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또 한 명.

배우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고.

어쩌면.

지독히도 길게 이어질지 모르는 불운의 순간이.

끝나는 순간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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