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최도윤이 아니면
도윤이 돌아오자마자 잠깐의 휴식도 없이 팬미팅을 기획한 건 다른 이유가 없다.
꽤 오랜 시간 한국을 떠나 있었고.
그 동안 팬들은 도윤에게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주었다.
국제우편으로 도윤이 머무르는 호텔에 수많은 편지와 선물을 보내주는가 하면-
촬영장까지 직접 찾아와 선물을 준 팬들도 있었다.
심지어.
‘이런 적도 있었지.’
한국에서 흔히 그러는 것처럼 커피 트럭과 푸드 트럭을 보내주기까지.
등신대는 약간 민망했지만, 그래도 다른 배우들의 놀랍다는 반응에 기분이 좋았던 건 사실이다.
여하튼.
그런 의미에서 도윤은 당연하게도 팬 행사 개최를 요청한 것.
덕분에 팬카페 <달달한도라떼>를 비롯한 팬들이 모인 곳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고.
-오자마자 팬들 챙기는 인성 무엇;;;
-이번에는 여러 지역에서 한다던데
-거주지 인증해야 참여 가능하다고 함 ㅇㅇ 우리 욕심부리지 맙시다
-도라떼 무한제공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한 곳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돌아가며 개최한다는 소식에 흥분하는 팬도 있었다.
여기에.
[최도윤, 미국 물 먹더니 건방진 태도?]
최상철의 때아닌 무리수가 기름을 부어버렸다.
-ㅋㅋㅋ 이거 미친놈이네 ㅋㅋㅋㅋㅋㅋ
-아니 공항 간 팬들은 다 아는데 ㅋㅋㅋㅋ
-와 같은 기자들도 안 도와주는 건 처음 본다 ㅋㅋㅋㅋㅋㅋㅋ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지만.
기어이 도윤을 욕하는 기사를 냈다가 제대로 역풍을 얻어맞은 것.
최상철의 소속 신문사는 1분이 멀다 하고 항의 전화에 시달렸고.
결국 기사가 내려가며 편집장 이름으로 사과 기사까지 게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덕분에 최상철은 본의 아니게 도윤의 귀국 소식과 인기만 높여준 꼴이 된 셈.
여하튼 뭐.
귀국 소식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수많은 제작자들을 뒤로한 채 도윤은 약 2주에 걸친 팬미팅을 개최했고-
“꺄아아아아악!”
“사진! 사진!”
그야말로 폭발적인 환호 속에서 성황리에 팬미팅을 마쳤다.
물론.
도윤의 너덜너덜해진 멘탈은 덤이다.
“형, 미국에서 좀 강해진 줄 알았는데.”
“닥쳐 성호야.”
“팬들의 주접은 참 각양각색이네요.”
“…….”
2주.
그 기간 동안 도윤은 만나는 팬마다 던지는 기상천외한 주접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물론 아는 것도 몇 개 있어서 웃어넘길 때도 있었지만…….
팬들은 언제나.
도윤의 머리 위에 있었다.
그리고 기어이 1주째 되는 날 울먹거리는 자신을 보며 그렇게 좋아하던 걸 생각하면…….
“그래도 잘 끝났어요. 반응도 좋고. 2주가 좀 길어서 대표님이랑 본부장님 안색이 안 좋긴 하지만요.”
“이제 스케줄 소화하러 가야지.”
도윤은 현재 들어온 제안들을 차근차근 살폈다.
아니, 사실 이미 어떤 걸 할지는 모두 정해뒀다.
광고도.
예능도.
작품도 말이다.
2주는 긴 시간이다.
아무리 팬미팅으로 바빴다지만 스케줄 검토할 시간은 충분했다.
도윤이 쉬질 못했다는 게 문제지만.
“근데 형 진짜 하루라도 푹 쉬는 게 어때요?”
어지간하면 도윤 걱정을 안 하는 성호가 저렇게 말할 정도였으니까.
“됐어.”
“딱 하루 만이라도요. 지금 형 그대로 스케줄 소화하면 죽어요. 그리고 솔직히 형이 하루 미룬다고 어디 큰일날 급도 아니고.”
하지만 도윤은 단호했다.
“급 따지다 훅 간다, 성호야.”
“그렇게 훅 가기 전에 형이 훅 가게 생겼는데요.”
그리고 성호는 이보다 더 단호했다.
이런 와중에 민주는.
“이번에는 성호 말이 맞는 것 같은데요.”
“너까지?”
“네. 좀 쉬세요. 하루라도.”
놀랍게도 성호의 편을 들어주었다.
2주 동안 여러 지역을 돌며 팬사인회를 개최한 도윤을 봐 온 결과.
지금 하루라도 푹 쉬지 않으면 큰일 날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린 셈.
“두칠 오빠 여기 있었으면 같은 소리 했을걸요.”
마찬가지로 미국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본업’으로 돌아간 두칠까지 언급되자.
막상 단호하게 말했던 도윤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잘 생각하셨어요. 그리고 쉬시면서 미국에서 가져온 슈퍼카도 좀 운전하시고. 그거 한국에 몇 대 없다는데.”
“관심 없어. 너나 몰아.”
“지, 진짜요?”
“사고 나면 알아서 처리하고. 난 너 모르는 척할 거야.”
“그럼요, 당연하죠!”
사고가 나도 모른 척한다는데.
그저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중에 한 30년 근속하면 진짜 슈퍼카라도 하나 뽑아줘야 하나 고민된다.
“민주 너도 좀 쉬고. 오자마자 나 때문에 계속 붙어 다녔는데.”
도윤은 내친김에 민주에게도 하루짜리 즉석 휴가를 주었다.
성호도, 두칠도 고생했지만.
미국에서 민주만큼 고생한 사람은 없다.
도대체 어떻게 아는 인맥인지 어마어마한 스타일리스트와 연결해 주질 않나, 가는 곳마다 민주 특유의 그 시크한 친화력으로 사람들을 잘도 구워삶질 않나.
나중에는 빌이 탐을 내며 전속 스타일리스트로 쓰고 싶다는 걸 말리느라 진땀을 흘릴 정도였다.
물론 민주가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그럴 일은 사라졌지만 말이다.
아무튼 휴식이 필요한 건 도윤뿐만이 아니다.
성호도, 민주도.
모두 하루 정도는 푹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름의 방법으로.
“그럼 전 중국 좀 다녀올게요.”
“하루밖에 없는데?”
“하루면 충분해요. 가서 요리도 좀 먹고, 관광도 하고.”
하루면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도윤은 죄책감을 느낀 나머지-
“하루 더 쉬다 와.”
“네. 그럴게요.”
민주의 수에 간단히 걸려들었다.
그리고 성호는.
“형, 저는요?”
“그래, 너도 그래라.”
“아싸!”
체념한 도윤의 허락을 받아내고 환호했다.
이로써-
팀 최도윤 원년멤버 세 명의 휴가 이틀이 결정되었고.
곧 이 소식을 듣게 된 경후는.
“이, 이틀?”
“네. 그렇게 됐어요.”
“도윤아…….”
“죄송해요, 본부장님.”
눈물을 머금고 휴대폰을 들어 연락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뭐.
도윤이 사실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다들 그냥 도윤이 오는 날만을 기다렸다가 요청했던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이중에는 매일같이 전화해서 제발 좀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애타게 이야기하던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그래, 이참에 쉬는 게 낫지.’
경후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오자마자 시차 적응할 틈도 없이 팬들 만나러 다니고, 와중에 스케줄 검토도 했으니까.
나름 휴가라면 휴가라고 해야 할까.
이제 도윤은.
뭐가 됐든 ‘골라서’ 갈 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니까.
“그래, 어쩔 수 없지. 이참에 좀 쉬고 와라. 어디 국내 여행이라도 가게?”
경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물었고.
의외의, 그러나 도윤다운 답을 들었다.
“여행은 무슨요. 집에 가야죠.”
“집? 아, 이사한 곳? 하긴, 이사하고 얼마 안 있다가 미국 가서 거의 보지도 못했지?”
“거긴 그냥 자취방인데요. 영주 갈 겁니다.”
“아.”
도윤은 당연하게도.
고향에 갈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 * *
강미나.
<그대 내 품에>로 비로소 만년 2등 이미지를 벗고.
<그 남자의 메모리>로 대형 작가로 거듭났으며-
이후 <신의 계약>이라는 작품으로 어느 방송사든 믿고 모셔가는 작가가 된 드라마 작가계의 거물.
매일같이 PD에겐 전화가 걸려오고.
하루가 멀다 하고 배우들에게 안부 연락이 오는가 하면.
얼마 전 옮긴 넓은 집에는 팬과 배우, 방송 관계자들이 보낸 선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한마디로 업계 정상을 찍었고, 이 분야에서는 최고의 대우를 받는 사람이 된 셈.
그런데 그런 사람이.
오늘따라 우울해 보였다.
그것도 아주.
“아…… 미치겠네.”
물론 돈을 많이 번다고, 유명하다고, 명예가 드높다고 항상 행복하리라는 법은 없지만-
오늘 강미나의 표정 영 좋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최도윤 이 나쁜 놈.”
미국에서 돌아왔다던 도윤이 자신의 신작에 대한 답변을 아직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씨이. 내가 먼저 연락할 수도 없고.”
그래도 나름대로 작가라고.
배우를 재촉하는 것 같기도 하고.
먼저 연락하자니 너무 엉기는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도윤에게 할 건지 말 건지 물어보질 못하고 있었는데.
이건 뭐, 기다리느라 미칠 지경이었다.
‘걔 아니면 안 되는데…….’
사실 이유는 있었다.
도윤이 생각 이상으로 거물이 되었고, 그런 도윤을 잡기 위해 경쟁이 정말 엄청나다는 점.
그리고.
도윤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점.
이 두 가지가 바로 강미나가 몇 번이고 휴대폰을 잡았다 내려놓게 만드는 이유.
괜히 질척거리는 티라도 냈다가.
안 한다고 하면 큰일이니까.
미나는 지금 <악의 재림>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미나는 가급적-
그 작품의 주인공을 도윤으로 할 작정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도윤을 주인공으로 가정하고 썼다.
<그 남자의 메모리> 이후.
미나의 머릿속엔 도윤만 떠올랐으니까.
“주인공이지, 그래. 무조건.”
솔직히 도윤이 돌아올 걸 예상한 것도 없잖아 있다만.
미나 정도 되는 작가가 이렇게 배우 한 명에 집착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
그래서 미나는 결국 다시 한번 휴대폰을 들었고.
“네, 네. 본부장님. 계속 연락드려서 죄송해요. 혹시 도윤이, 아니 최도윤 배우가 별말 없던가요?”
-대본은 분명히 읽었을 겁니다. 그리고 도윤이 성격상 한 번 인연 맺은 사람들한테는 본인이 직접 연락할 테니까 아마 좀 더 기다려보시는 편이…….
“네에. 제가 자꾸 재촉드리는 것 같아 죄송해요.”
-아닙니다. 솔직히 어느 배우가 마다하겠습니까. 작가님 정도 되는 분이 이렇게 매번 연락해서 스케줄 물어보는 거 말입니다.
경후로부터 그리 만족스럽지만은 않은 답변을 들었다.
하기야.
이젠 미국에서 인지도도 높아졌고 인기 드라마의 시즌2 출연도 확정 지은, 그야말로 ‘노는 물’이 달라진 배우가 됐는데.
어디 한국 드라마 출연에 눈길이나 주겠는가.
“어쩔 수 없죠. 그럼, 소식 있으면 연락 부탁드릴게요.”
-네, 도윤이 지금 영주 내려가서 아마 올라오는 대로 연락 돌릴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결국 미나는 아쉬움에 사로잡혀 전화를 끊었고.
“다른 배우가 있으려나…….”
미나의 신작에 관심을 보이던 여러 배우들을 떠올렸다.
솔직히 쓸 배우야 많다.
자신의 마음에 드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겠지만, 주인공을 못 구할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도윤의 대답을 듣기 전엔 다른 어떤 배우에게도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이유야 당연히.
<그 남자의 메모리>에서 도윤이 ‘이다한’을 연기하며 보여준 그 압도적인 퍼포먼스 때문.
자신이 텍스트로 쓴 배역을 구체화시켜 완벽히 마무리 지은 도윤의 그 연기력이…….
도저히 잊히지 않는 것이다.
드라마 작가란.
이런 직업이니까.
‘에휴. 모르겠다.’
결국.
미나는 도윤에 대한 생각을 애써 접으며 한숨을 내쉬었고.
냉장고를 열어 맥주 한 병을 꺼냈다.
그리고.
퐁!
병뚜껑을 따고 잔에 술을 따르던 그 순간.
지이이잉.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도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