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포상휴가 때문에
빌은 상당히 궁금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딱히 불편한 기색 없어 보이던 도윤이 왜 지금 표정을 찡그리고 있는지.
그리고, 가끔 화들짝 놀라기까지.
“레이첼, 이유를 알겠나?”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거 아닐까요? 직접 물어보시죠.”
“으음, 이유를 먼저 추측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혹시 내가 실수한 게 있나 생각해 보는 중이야.”
“그러니까 맨날 무르다는 소리를 듣는 겁니다.”
“그 무른 프로듀서가 무슨 작품들을 만들었더라?”
“…….”
비서 레이첼과 주거니 받거니 하던 빌은 슬며시 도윤의 상태를 살폈다.
딱히 심각해 보이는 건 아닌데.
뭐라고 해야 할까.
아까와 주변에 흐르는 기류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성호’라는 매니저도.
자신을 ‘칠’이라 소개한 경호원 비슷한 사람도.
뭔가 힙해 보이는 ‘민주’라는 스타일리스트도.
도윤과 딱히 즐겁게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빌은 결심했다.
물어보기로.
“도윤.”
“아, 네.”
“혹시 무슨 일 있나요?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
빌은 조마조마했다.
혹시 자신이 실수한 게 아닌가 싶어서.
물론 빌은 배우의 기분이 어떻든 그렇게 크게 신경을 두진 않는 사람이지만-
도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이 직접 한국까지 날아가서 캐스팅했고, 그 비협조적이던 총감독의 마음마저 돌린 사람이 아니던가.
그래서 가급적 원인을 알고, 그 원인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해 보고 싶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요.”
그건 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옛날 생각이라면…….”
“그냥, 그런 겁니다. 별일 아니니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왜냐하면.
진짜 옛날이야기였고.
그냥, 잊을 수 없는 경험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으니까.
빌은 결국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돌아와야 했고.
“작품 여러 개 터뜨리신 프로듀서님, 일은 해결하셨나요?”
“……분명히 내가 잘못한 게 있을 거야.”
“흐응, 그럼 열심히 해보세요.”
레이첼의 핀잔 속에서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윤의 표정을 찡그리게 만든 ‘생각’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말이다.
* * *
미국 하면 떠오르는 건 여러 개가 있다.
성조기.
독수리.
백악관.
인종의 용광로.
그리고.
총기.
여러 이유로 총기 사용이 허가된 게 지금까지 전해진 나라.
그래서 총기 사고도 많고.
잊을 만하면 총기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사람들과 합법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나는 나라.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총기가 허용되었지만 실제로 총기를 사용해 본 경험을 지닌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나라.
대개는 총을 구매한 뒤 한두 번 정도 쏴보고 집에 보관하며 평생토록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가다 쓸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런 일을 원하지 않고, 실제로 총기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많은 나라.
여하튼 그런 의미에서 오늘 사격 훈련은 이렇듯 실제로 총기를 다뤄본 적이 없거나, 익숙지 않은 배우들을 위한 자리였고.
주연 배우 4인방 중 두 명은 덕분에 긴장까지 하고 있었다.
“안드레아, 총 별거 없어. 그냥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나가서 표적에 작은 쇳덩이가 박히는 거라고.”
“젠장, 그 작은 쇳덩이가 사람 몸에 박히면 죽는 거잖아?”
“그렇긴 하지. 그래서 잘 쏴야 한다고. 사사미르, 너도 잘 들어둬. 이런 건 유경험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리엄 유경험자였다. 이전 작품 촬영 때 잠깐이나마 총기를 다뤄본 경험이 있었던 것.
물론 훈련 때 잠시 실총을 다루고 촬영 당시에는 당연히 프롭 건(prop gun)을 이용했지만, 그래도 유경험자가 맞긴 하다.
때문에 리엄은 도윤에게도 물었다.
“도윤, 혹시 긴장했나?”
“아니.”
“왜, 맞는 것 같은데.”
도윤은 실실 웃는 리엄을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화하기 싫다는 듯 말이다.
리엄은 그런 모습에 어깨를 으쓱이며 나머지 둘을 돌아봤지만, 안드레아와 사미르는 긴장했는지 동의는커녕 눈도 못 마주치고 있었다.
“뭐, 보면 알겠지.”
리엄은 머쓱한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고.
“곧 훈련 들어갑니다. 오늘은 교관 대동 하에 자세를 익히고, 이후 권총과 자동소총을 각 200발씩 훈련할 겁니다. 질문사항 있습니까?”
그사이 들어온 사격장 관계자의 말이 들려왔다.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다들 일어나서 이동하죠.”
그렇게 <데드 로드>의 주연 배우 넷은 사격장으로 들어섰고.
탕! 타앙!
사방에서 들려오는 사격 소리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도윤만 빼고 말이다.
오히려 인상을 찡그릴 뿐.
별다른 반응은 없다.
물론 리엄은 이런 모습을 눈치채지 못한 채 애써 태연한 척, 넷 중 유일한 여성인 안드레아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안드레아, 너무 긴장한 것 같은데. 긴장 좀 풀고…….”
“리엄, 미안하지만 좀 조용히 해줄래요? 안 그래도 긴장되는데 자꾸 말 거니까 더 떨리는 것 같아요.”
“나, 나는 그냥 너무 떠는 것 같아서…….”
“부탁할게요, 제발.”
물론, 더더욱 어색한 상황이 되었지만 말이다.
“반갑습니다. 오늘 네 분의 사격 교육을 맡게 된 교관 릭 에임즈라고 합니다.”
그렇게 이동을 마친 네 사람은, 방탄조끼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거구의 남자 릭 에임즈를 맞이했다.
“각자 소개는 생략하죠. 여기서 중요한 건 얼마나 잘 쏘느냐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묻고 싶군요. 혹시 여기서 총기를 다뤄본 경험이 있으신 분?”
리엄은 곧바로 자신 있게 손을 들었다.
그리고.
“오, 두 분이나 계시는군요.”
도윤도 손을 들었다.
무덤덤하게 말이다.
리엄의 고개가 홱 돌아갔고.
‘저놈 저거 사기 치는 거 아니야?’
불신 어린 눈빛이 도윤을 향한다.
하기야, 한국의 사정을 모르는 리엄으로선 안 그래도 거슬리는 도윤이 자신만 해본 줄 알았던 사격 경험이 있다고 하니.
신경이 쓰이는 게 당연지사.
다만 리엄은 곧 제멋대로 합리화했다.
그래 봐야 그냥 만져본 적이 있는 정도라고.
어차피 다들 처음이니 속이긴 쉽지 않겠는가?
“좋습니다. 하지만 사격 전에 자세를 잡고 안전수칙을 배우는 걸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 이 사격장에는 이 사격장의 룰이 존재하는 거니까요. 그럼, 바로 시작합시다.”
여하튼.
사격 자세를 잡는 훈련이 시작되었고.
처음은 권총이었다.
그리고 리엄은 자신의 예상대로 흘러가자 씩 웃었다.
“으음, 총기를 다뤄본 것치고는 권총 잡는 게 익숙해 보이진 않는데.”
교관의 갸웃거리는 고개.
총기를 다뤄봤다고 하는 녀석이 권총 하나 제대로 못 잡고 있다니.
반면.
“네슬리 씨? 권총 잡는 자세가 상당히 안정적이군요. 파지법도 잘 배웠고요. 이 정도면 바로 실사격에 들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리엄은 깐깐해 보이는 교관으로부터 칭찬까지 받았고.
때문에 이어지는 자동소총 사격 자세 훈련에서도 자신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물론 배운 적은 없지만 말이다.
“다음은 자동화기입니다. 정확히는 우리가 소총(Rifle)이라 부르는 것들이죠. AR-15, AKM, HK…… 여하튼 여러분들이 찍을 <데드 로드>에는 그런 총기들이 등장할 테고, 이제부터는 그 총기를 잡는 방법부터 배워볼 겁니다.”
하지만.
리엄은 곧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도윤이 눈앞에 놓인 M-16 소총을 집어들더니.
철컥, 틱.
아주 자연스럽게 노리쇠를 전진‧후퇴시키고 빈 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광경 말이다.
‘유튜브라도 봤나?’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자연스럽다.
그러면서.
“자세 좋은데. 권총은 영 아니었는데, 소총은 잡을 줄 아는군. 이전에 쏴본 경험이 있다고 했었지?”
“네. 조금 쏴 봤습니다.”
“으흠. 이만하면 바로 사격에 들어가도 되겠는데.”
교관의 극찬 속.
탕, 타앙!
단발 사격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견착.
시선.
호흡.
그리고 초탄 명중 후 표적지를 확인하더니 능숙하게 클리크를 수정하곤 수정 사격하여.
탕, 타앙!
10발 중 무려 8발을 표적지 중앙에 명중시킨다.
리엄이 입을 쩍 벌리고.
안드레아가 흥미로운 시선으로 도윤을 바라보는 가운데.
도윤은 교관을 바라보더니 대뜸 물었다.
“혹시 K2는 없습니까?”
교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K2? 그거라면…… 아, 혹시 한국에서 만들어진 그 총 말인가?”
“네. 맞습니다.”
“흐음,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이, 조! 가서 K2 있으면 한 정 꺼내오라고!”
그리고 갑자기 생전 처음 보는 총을 받아들더니.
아까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자세로 노리쇠를 작동시키고 방아쇠를 당겨보더니 만족스럽게 웃는다.
그것도 오늘 처음으로 말이다.
그러더니.
탕, 타앙, 타앙!
초탄부터 시작해서 10발을 모조리 표적지에 명중시킨 것도 모자라, 한 곳에 몰린 완벽한 집탄군을 형성시켰다.
이제는 다른 배우들은 물론.
교관조차 감탄했다.
“아주 좋은데. 완벽해. 이전에 총을 조금 쏴 본 게 아닌 것 같은데, 혹시 군사 훈련을 받은 적이 있나?”
“네. 2년 동안. 육군이었습니다.”
“오, 젠장. 나도 육군 출신이야. 반갑군. 혹시 미 육군인가?”
“한국 육군입니다.”
“아! 내가 잘 알지. 그쪽 출신 친구가 하나 있어서 말이야. 2년이면…… 징병제였겠군. 이거, 희귀한 경력을 가진 친구를 만났어.”
“한국에선 희귀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나한테 이렇게 사격 훈련을 받으러 오는 배우들 중에서는 그런 사람이 드물지. 흐음, 이 정도면 따로 훈련은 필요 없겠군. 지향사격 자세도 잘 알 테고, 나머지야 뭐…….”
그때 교관이 문득 묻는다.
“근데 꽤 시간이 흘렀을 텐데도 사격을 꽤 잘하는군.”
“그때 포상휴가 때문에 열심히 쐈었죠.”
“응?”
“별말 아닙니다.”
도윤은.
떠오르는 그 기억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3박 4일짜리 포상휴가가 걸린 대대 사격대회에서 고생 끝에 만발을 쐈던 기억.
하지만.
포상휴가를 나가는 날 아침, 병사 하나가 탈영하는 바람에 포상휴가가 밀리다가 결국 잘렸던 그 기억.
물론.
열심히 설명해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도윤은 적당히 말을 돌렸다.
“아, 다시 쏴도 괜찮을까요?”
“아, 물론이지.”
교관은 얼마든지 쏴 보라는 듯 새로운 탄창을 꺼내 장전해 주더니 문득 물었다.
“참, 혹시 연발로는 당겨봤나?”
“네. 딱 한 번.”
“그럼 오늘 원 없이 긁고 가라고.”
그렇게 말한 교관은 다른 교관을 불러 도윤을 봐 주게 하더니, 나머지 세 배우에게 다가갔다.
아직 사격은커녕.
자세조차 제대로 못 잡고 있는 세 사람.
교관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턱을 매만지더니.
“다들 많이 부족하군요. 자, 다시 해봅시다.”
세 사람의 가슴을 살벌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권총 사격까지만 해도 기고만장해 있던 리엄은…….
“네슬리 씨, 이게 아닙니다. 호흡에 집중합니다. 내쉬고, 참고. 권총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걸 왜 모릅니까?”
교관의 갈굼 속.
눈물을 머금고 팔이 빠져라 총을 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