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소문은 언제나(3)
은성은 과연.
최고의 변호사였다.
이엔 엔터를 대신해 재빠르게 경찰에 협박 관련으로 고소장을 접수하는 한편.
간단한 솔루션도 제시했다.
“최도윤 배우 미담이 될 만한 일들이 있을까요? 사실 얼굴 자체가 미담이긴 한데…….”
“…….”
도윤의 이야기만 나오면 조금 푼수같이 구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실력이 이런데 그 정도쯤이야.
“미담? 미담이라…… 어떤 게 좋을까요?”
“뭐든 좋아요.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에게 뭘 쐈다거나, 아니면 남몰래 선행을 했다거나…….”
그때.
오늘 일을 마치고 함께 자리한 민주가 말했다.
“있죠, 미담.”
“뭔데요?”
“기부요. 아마 거의 6개월은 넘은 것 같은데…….”
“최도윤 배우님이 기부도 했어요? 왜…… 난 몰랐지? 전 우수회원인데…….”
혼란스럽고.
억울하다는 은성의 반응에.
동민과 경후는 그만 도윤이 기부했다는 사실에 반응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사이 민주가 말을 이었다.
“도윤 오빠가 어쩔 수 없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말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이번 건이면 상관없겠죠. 어차피 밝혀질 일이었으니까.”
“아니, 알고 있었으면 말을 해주시지…….”
아쉽다는 듯 말하는 경후에게 민주는.
“오빠 말 먼저 따라야죠. 이해해 주세요.”
“……하기야. 성호나 너나 도윤이 말이면 무조건 들으니.”
“그래 보여요?”
“니들 맨날 투닥거려도 도윤이가 한마디 하면 바로 움직이잖냐. 그럼 그게 아니면 뭐야?”
이런 와중.
“혹시…… 최도윤 배우님 스타일리스트 한 명 더 안 뽑으시나요?”
“죄송해요, 언니. 티오 찼어요.”
“아…….”
은성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존재감을 뽐냈고.
“자자, 다시 일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결국 동민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한 후에야 다시 도윤의 기부 이야기 쪽으로 돌아갔다.
“보육원이라…… 그것도 6개월. 어디 재단이나 단체 통한 게 아니라 직접 기부했다는 거지?”
“네. 그쪽 원장님도 모르세요. 성호는 짐 나르느라 얼굴 몇 번 보셨겠지만…… 오빠가 보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하시겠죠.”
들키기 전까지는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들키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
어쨌거나.
여기 있는 세 사람에게 ‘들킨 것’ 아니겠는가?
여하튼 그렇게 경후가 알고 지내는 기자를 통해 도윤의 보육원 미담이 준비되었고.
기사 말미에 들어갈 ‘자잘한’ 미담도 준비되었다.
가령.
과거 스태프에게 커피를 건네며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준 사실이라든가.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가운데.
“그런데, 왜 이러는 걸까요?”
성호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성호는 궁금했다.
정말 잘못을 했다면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대중들에게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지만.
왜 있지도 않은 사실들을 만들어내는 걸까?
그 질문에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온 은성이 답해주었다.
“세상엔 여러 사람들이 있죠. 그리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하는 법이라서요.”
“아…….”
“다 이해하려고 하면 힘들더라구요. 심지어 제가 변호해야 할 사람들마저도요.”
은성은 변호사다.
그리고 개인 사무실이 아니라 법무법인에 소속되어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인간 채은성’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거나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변호해야 할 때도 있다.
때문에 종종…….
그냥 개인 사무실을 개업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할 정도.
그러면서 배운 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기에, 인간의 사고는 너무도 편협하다는 것.
“변호사님 말이 맞습니다. 우리가 이해해 줄 필요는 없죠.”
이 이야기에 동민 역시 동의했고.
경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민주는.
“굳이 그 사람을 이해하고 말고를 택할 사람이 있다면, 도윤 오빠뿐이겠죠.”
지금쯤, 이런 일에도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자신의 배역 연습에 몰두해 있을 도윤을 언급했다.
“맞아요. 당사자만이 이해할 수 있죠. 그것조차 강요할 수는 없고요.”
씁쓸하게 말한 은성은.
곧바로 좌중을 둘러봤다.
“그럼, 시작하죠.”
* * *
도윤은 언론 노출이 잦은 배우가 아니다.
TV를 틀면 인기 드라마를 재방송해 주니 언제나 볼 수 있는 건 맞지만-
언론 노출은 이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
도윤은 사생활 때문에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는 배우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능 출연이 잦은 배우도 아니다.
거기다 외출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니라 일반적인 배우들처럼 어지간해서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띌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대중들은 갑작스럽게 전해진 도윤의 미담에 열광했다.
[최도윤, 지난 6개월간 보육원에 남몰래 기부…… ‘선한 영향력’]
[‘보육원 기부’ 최도윤, “자랑하려 한 일 아니다” 인터뷰에 난색 표해]
[최도윤, 남몰래 기부로 ‘개념배우’ 등극!]
-와 배우들은 평소에 약 빨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기부 ㅋㅋㅋㅋ
-그냥 이미지 관리 아님?
-ㄴㄴ 이미지 관리였으면 지금 안 밝히지. 보통 이런 거는 한 1~2년 꾸준히 장기적으로 빌드업하는 거 아님?
-심지어 보육원에 직접 기부 ㄷㄷ 그럼 자기가 직접 가서 전달해 줬다는 거임?
-진짜 ㄹㅇ 잘한 거임 대충 단체 통해서 돈만 준 게 아니라 가서 할 정도면... 그렇다고 단체 통해서 돈 주는 게 잘못되거나 나쁜 건 아니지만.
팬들은 특히.
도윤이 보육원까지 직접 찾아가서 물건들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놀라워하고 있었다.
방식이나 형태야 어떻든 기부 자체를 나쁘게 볼 수는 없지만-
안 그래도 기부금을 횡령한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나도는 이 나라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직접 사서 기부한 모습이 좋게 보였던 모양이다.
거기에.
도윤이 과거 스태프에게 따뜻한 커피를 건넸던 사실이나 촬영 현장에서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던 일들이 밝혀지며.
도윤에 대한 이미지는 그야말로 하늘을 뚫을 지경이 되었다.
덕분에.
-최도윤 도대체 왜 빠냐? 이 새끼 이거 진짜 이미지 관리하는 거라니까?
최도윤의 기사마다 꾸준히 달리던 남자의 댓글은 점점 그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이 새끼 이거 진짜 고소당하려고 작정했네 ㅋㅋㅋ 삶이 지루하냐?
└얘 말하는 거 보면 하나같이 카더라임 ㅇㅇ
└ㄹㅇ 증거 제시하는 걸 본 적이 없음
└너 진짜 그러다 고소당한다 ㅋㅋㅋㅋ
“이 새끼들이 진짜…….”
남자는 당황한 나머지 허세를 부렸다.
└ㅋㅋ 사실을 말하는데 왜 고소? 응~ 나 안 무서워~
물론 반응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이 새끼 쫄리네 ㅋㅋㅋㅋ
└백퍼임 ㅋㅋㅋ 쫄았음 ㅋㅋㅋㅋㅋ
└잘가라 ㅋㅋㅋ 멀리 안 나간다
└자~ 드가자~
“쫄았다고? 절대 아니야!”
남자는 더더욱 열심히 댓글을 다는 한편.
아주 그럴듯한 ‘폭로글’도 작성했다.
그러나.
그 ‘폭로글’이 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쾅쾅쾅!
“아들!”
“아! 들어오지 말라고!”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내가 무슨 짓을 한다고! 시끄러우니까 문 그만 두드…….”
“경찰에서 전화 왔어! 너 협박죄로 고소당했대!”
남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고.
“아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응? 제발 좀 나와봐. 제발…….”
간절한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리기 시작했다.
* * *
“이한수. 29세. 경찰에서 출석 요구했는데 불응하고 이틀 지난 뒤에야 연락했고…… 처음에는 자신이 쓴 댓글들이 전부 다 사실이라고 했다네요.”
도윤은 계속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수사관이 계속 추궁하니까 결국 실토했고…… 선처를 원하고 있습니다.”
은성이 담백하게 전달해 주는 사실에.
도윤 역시 담백한 반응을 보인다.
“어떻게 할까요?”
“선택은 배우님의 몫이죠.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여기서 왈가왈부해서 제가 좋아하는 배우님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고 싶진 않아서요.”
은성은 프로다.
그래서 처음에는 도윤만 봐도 심장이 두근대던 사람이.
이제는 냉정한 조언을 건네고 있다.
그래.
‘저 말이 맞지.’
은성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도윤에게 법적 자문을 주었고, 범인을 특정하고 잡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 이상의 개입은 하지 않는다.
여기서 더 개입한다는 건, 자칫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를 흔들 수도 있는 거니까.
그렇기에.
옆에 있는 동민과 경후.
민주와 성호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도윤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대로 진행하세요.”
이후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선례를 만들겠습니다.”
그 말에 경후는 잠시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아마 회사는 앞으로도 점점 커질 거고, 소속 연예인들은 악플이나 악성 루머에 시달리겠죠.”
“그렇다고 도윤이가 굳이 선례를 만들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이미지를 만들 필요까지는…….”
동민의 그 말에 경후는 고개를 저었다.
“전 그 사람을 만나보지 못해서 어떤 사람인지 잘 모릅니다만…… 선처한다고 우리나 도윤이가 뭔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도윤은 경후의 말에 동의하며.
“이후를 위해서죠. 제 이미지는 상관없습니다. 그렇다고 희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말했다.
“왜 너그럽게 굴어야 하는지 모르겠으니까요.”
“…….”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까지 연예인들은.
‘공인’이라는 이유로 종종 희생을 강요당하고, 일반인이었으면 불가능했을 선처도 은근히 종용받았다.
괜히 선처 없이 간다는 말을 했다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며 욕을 먹거나.
심지어, 고소당한 측에서 무려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잦지 않았던 것.
특히 도윤은.
회귀 전, 선처를 택한 연예인들이 잠깐의 자비로운 이미지 외 그 어떤 득도 보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다.
악플러들은 계속 나타나고.
루머는 언제나 생산된다.
인간의 질투심이 존재하는 한-
절대 바뀌지 않을 일.
그리고 도윤은 절대 스스로를 성인군자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지닌’.
한 인간이라 생각할 뿐.
“음…… 저는 개인적으로 형이 선처해 주실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말을 들어보니 맞는 말 같아요.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희생할 필요는 없죠.”
항상 마음 약하고 착하게만 굴던 성호도 이때만큼은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모든 사람들이 도윤의 선택을 존중했다.
사실.
존중하지 않았다한들.
도윤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겠지만.
그렇게-
결정이 내려지고.
“잘 생각하셨어요.”
잠시 둘만 대화하게 해달라고 부탁해 가진 자리에서, 은성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래 봐야 협박의 강도가 높지 않고, 처벌되어도 벌금형이 전부일 테니까요. 보통 형량이 낮게 나온다는 가정 속에서 선처하면 상대는 의기양양하게 나오기 마련이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네. 차라리 처벌 진행하고, 그 기간 동안 상대가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게 오히려 낫죠. 그리고…… 선처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요.”
결정이 내려지자.
솔직한 마음을 말하는 은성.
“그리고 이건 사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참에 이런 분위기가 좀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구요.”
분위기.
은성은 그간 덕질뿐만 아니라 본의 아니게 ‘연예계 잘 아는 변호사’로 여러 사건들을 맡으며 깨달은 바를 말했다.
“사람들은 잘 몰라요. 연예인들이 선처해 줄 거라고 마냥 생각만 하지, 그 과정에서 어떤 고민들이 있는지요.”
“맞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손가락을 움직일 때 한 번은 생각하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거죠. 뭐, 아무리 처벌받는 사람이 늘어나고 선처는 없다고 말해도 악플 달 사람은 달겠지만…… 그렇다고 모두 봐줄 수는 없는 거잖아요?”
도윤은 은성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봐주는 거야 어렵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이엔 엔터의 후배들과.
다른 연예인들이 겪을 문제를 생각하면.
선례를 만들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번만큼은 도윤이 최도윤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고려한 결정을 내린 셈.
“아무튼 이걸로 끝났네요.”
때문에 도윤은.
더 이상 ‘그 남자’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선처해 줄 생각은 더더욱 없고.
이제 모든 걸 지켜보고 결과만 확인하면 될 일.
처벌이 어떻게 되든 그것 역시 상관없다.
중요한 건.
선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니까.
“고생하셨습니다, 덕분에 마음 덜 쓸 수 있었네요.”
“별말씀을요. 최도윤 배우님 일이라면 뭐든 도울 수 있어요.”
이런 와중.
은성은 다시 그 ‘팬카페 우수회원 채은성’으로 돌아와 발그레한 얼굴로 물었다.
“이번 작품은 잘 준비하고 계시죠?”
“그럼요. 도와주신 덕분에요. 곧 첫방이기도 하고…… 드라마 후반 즈음에는 문제없으면 영화도 개봉할 것 같구요. 아, 참. 이거 드리려고 했는데.”
은성은 도윤이 안주머니에서 꺼낸 물건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뭔가요?”
“꼭 오세요. VIP석이니까요.”
그건 바로.
곧 지플릭스에서 서비스될 영화 <협조>의 VIP 시사회 티켓이었고.
은성은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그만-
기절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