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소문은 언제나(2)
비상.
그 말이 딱 어울렸다.
적어도.
이 공간에서는 말이다.
“경후야,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얼마나 다급하고 혼란스러웠으면.
동민이 직급도 잊고 경후를 이름으로 부를 정도.
경후 역시.
이런 일이 다소 당황스러웠던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이런 일’의 타겟이 도윤이라는 점에서.
당황하고 있었다.
“일단 기다려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윤이 이야기 먼저 들어봐야죠.”
“만약 진짜면?”
경후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이야기를 듣는 게 우선입니다. 저희가 먼저 판단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내가 이러면 안 되는 거지. 정신 차려야지.”
직급에 따라.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동민은 대표라는 입장에서 지금 이 일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쉽사리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최도윤이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엔 엔터 최고의 배우이면서.
이제는 가장 아끼는 동생인 도윤이니까.
반면 경후는.
도윤과 친하긴 해도 일단 그에게 도윤은 배우 중 한 명이고, 현재 이 상황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이렇듯 같은 자리에서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
‘만약 정말이라면…….’
경후는 회사로 온 메일 하나를 다시 열어보았다.
최도윤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으며.
과거의 행적들을 모두 증거로 가지고 있는 데다.
만약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을 경우.
그것들을 언론에 폭로하고.
도윤을 연예계에서 매장시켜 버리겠다는 협박.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진짜든, 아니든.
돈 잘 벌고, 잘생긴 데다, 좋은 집에 사는 연예인들은 몇몇 사람들에겐 참을 수 없는 질투심을 유발하는 존재니까.
그리고 대부분 그 질투심은, 다소 끔찍한 방향으로 표출된다.
이런 경우처럼 말이다.
‘이전에 준섭이 건에서는 잡고 보니 중학생이었고, 예나 건에서는 웬 30대 여자였지. 침착하자. 아무 일 아닐 수도 있어.’
경후는 마음을 다스렸다.
경후는 도윤을 믿는다.
왜냐하면.
경후가 지금까지 본 도윤은 절대 이런 일을 할 만한 녀석이 아니니까.
공식 석상에서는 물론.
사석에서도 당당함과 예의를 동시에 갖추고, 절대 선을 넘지 않는 녀석이 누군가를 때리고 나쁜 짓들을 저질렀다?
절대 믿을 수 없다.
물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지만…….
똑똑.
“도윤입니다.”
“어, 들어와!”
그때 도윤이 들어왔고.
썩 좋지 않은 표정에.
경후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도윤아.”
동민은 결국 다급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는지, 도윤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이거, 이거 정말 중요한 문제야.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해줘라.”
“…….”
아.
도윤이 대답하지 않는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거에 단순히 충격을 받은 걸까?
아니면.
정말 뭔가 있는 걸까?
이제는 경후마저 다급해진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기 일보 직전.
“도윤아…… 아니지?”
간절한 동민의 물음에.
도윤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설마 아니어야 하는데.”
“응?”
“아…….”
도윤은 머리를 감싸쥐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제가.”
꿀꺽.
마른침이 넘어가는 가운데.
“대학생 때 술 마시고 광장에서 노래 부른 적 있거든요.”
“……뭐?”
“혹시 그게 아닌가…….”
“…….”
모두가 할 말을 잃은 가운데.
경후가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물었다.
“그, 그럼 다른 일은 없었던 거야?”
“다른 일요? 아. 제가 사람을 왜 때려요. 누구 괴롭힌 적도 없고, 담배나 술 한 적도 없어요.”
“아…….”
“이래 보여도 나름대로 착실하게 지냈는데요. 안 믿기시면 어쩔 수 없고.”
도윤이 어깨를 으쓱이자.
동민과 경후는 약속이라도 한 듯 손을 내저었다.
“그, 그럴 리가 있나!”
“그럼 저 가도 되는 거죠?”
“어, 그, 그래.”
배우가 아니라고 하는데.
더 붙잡고 있을 재간이 있나.
결국 이제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두 사람의 몫이다.
그러던 그때.
벌컥.
“야 도윤아!”
‘이 팀장’ 시절처럼.
수철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더니.
대뜸 다가와 도윤의 어깨를 잡았다.
“너 아니지? 아니지? 아니라고 얼른 말해!”
도윤은 고민했다.
지금 이 흥분한 사람을 놀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래서 결국.
“야, 야. 수철아. 앉아. 왜 이렇게 흥분했어?”
아까까지만 해도 가장 흥분해 있던 동민이 말리자 수철은 아주 약간 진정했고.
“그런 거 없어요. 흑역사는 있어도.”
“……흑역사? 그게 무슨 말이야?”
흑역사라는 단어를 알아듣지 못한 통에.
결국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다.
“……아, 그게 그 말이었어?”
“그렇다네요. 아무튼 도윤이는 아니라고 하니까, 저희 쪽에서 대응 들어갈 예정입니다.”
“어떤 식으로?”
“지금부터 이야기해 봐야죠.”
이런 한편.
도윤은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결국 일어나긴 하는구나.’
연주가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당연히 그냥 넘겨버렸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연예인은 유명세를 감당해야 하지.’
사람마다 의견은 다르지만.
도윤은 연예인은 이런 유명세로 인한 부작용을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무시하고 넘어가나?
아니면.
뭔가 액션을 취해야 하나?
아직.
가장 큰 고민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 * *
다시 이성을 찾은 경후는.
일단 대응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굳이 대응해서 일을 키울 필요도 없거니와.
배우 측에서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들은 대개 당사자가 아니라고 부정해도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준비했다.
“……네? 달달한…… 도라떼요?”
“네! 거기 제가 우수회원이에요!”
정확히는.
준비 ‘당했다’.
민주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채은성 변호사님이 저희 최도윤 배우 팬카페 회원이고…… 심지어 우수회원이시다는 말씀이시죠?”
“네!”
해맑게 웃으며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정신이 멍해진다.
민주가 아는 변호사가 엄청 유명한 법무법인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미팅을 잡았더니.
이런 사람이 나올 줄이야.
“그, 그럼…….”
“민주한테 연락 왔더라구요. 언니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달려왔죠.”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니.
민주는 도윤의 팬카페 부매니저로서 은성과 꾸준히 연락하며 언니동생하는 사이가 되었고.
이런 일이 생기면서, 회사 측에서 법무 자문 관련으로 다소 고민하자 이렇게 움직여준 것이다.
그래서 경후는 고마운 한편으로-
도윤에게 종종 들었던 민주의 면모에 대해서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 하는 애일까.’
이제 20대 중반인데 뭐 이렇게 발이 넓은지.
여하튼 뭐.
도움이 되리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왜냐하면.
지금 맞은편에 앉은 은성은.
법무법인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유성’ 소속 변호사이며.
미팅 전 알아보니, 엄청난 승소 기록들을 가진 실력자 중의 실력자였던 것이다.
사실 돈을 퍼부으면 아주 못 할 것도 없지만, 이런 유명 법무법인의 에이스 변호사를 고용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
그런데 그런 사람이 먼저 이렇게 흔쾌히 나서주고, 심지어 비용도 깎아주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심지어.
“즉각적으로 고소하면 안 됩니다. 일단 형사 절차를 밟아서 신원을 확보하고 움직이는 게 베스트예요. 경험상 이런 애들은 무시하면 더 날뛰거든요.”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려야죠. 먼저 움직이도록. 그리고 움직임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를 내고 대응을 시작하면 될 거예요.”
내내 고민하던 솔루션 제시까지.
아까 도윤의 이야기를 할 때만 해도 어린아이처럼 기뻐한 은성은 여기 없었다.
오로지.
법무법인 유성의 에이스 채은성 변호사만이 남아 있을 뿐.
“그래도 분명히 이미지 타격이 있을 텐데…….”
“만약 그런 점을 고려하신다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방안도 있지만, 중요한 건 선례를 안 남기는 거예요. 여기에 답장을 진행하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해서 더 신이 날 거예요.”
“그렇겠군요.”
은성은 곧바로 서류들을 펼쳤다.
“제가 맡은 건들이에요. 아직 판결이 끝나지 않은 것도 있고, 판례가 남은 것도 있죠. 참고로 모두 승소했고, 승소 예상 중입니다.”
“…….”
“그리고 대부분은 상대의 반응에 맞춰 움직였습니다. 모든 경우에 대응할 수 있도록요. 배우 측에서 무고하다는 것만 확실하다면, 돌아가는 대로 바로 준비해 보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경후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고.
이어진 은성의 말에 더욱 멍해졌다.
“저, 그런데요…… 혹시 최도윤 배우님 지금 회사에 계신가요?”
“네?”
“민주가 그러는데…… 오늘 오면 볼 수 있을 거라고.”
“아아.”
경후는 그제야.
은성이 도윤의 팬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것도 팬카페 우수회원.
팬사인회도 여러 번 참여했고.
회사로 선물도 여러 번 보낸 열성팬.
발그레한 양 볼을 손바닥으로 감싼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람은 참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떠오른다.
“곧 올 겁니다. 아마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정말요? 어떡해!”
은성은 도윤의 실물을 처음으로 영접했던 <기적의 레시피> 시사회 날을 떠올렸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지금 이 미팅룸의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도윤입니다.”
문이 열리고.
도윤이 들어오자.
“…….”
은성은 그만.
고개를 숙여버렸다.
덕분에 방금까지 은성의 철두철미한 모습을 봤던 경후는.
실소를 터뜨려버렸다.
“안녕하세요, 채은성 변호사님.”
“아, 아,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런 와중 은성은.
도윤의 얼굴도 바라보지 못한 채 악수했고.
“참, 저희 예전에 시사회장에서 봤었죠? 그때 제가 팝콘도 드렸는데, 기억하시려나 모르겠네.”
이어진 도윤의 말에.
그만 혼절할 뻔했다.
* * *
사람은.
누구나 질투를 느낀다.
그리고 보통은 그 질투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때에 따라 다르긴 해도.
보통 스스로를 추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질투의 대상이.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가령.
연예인이라거나.
지금 컴퓨터 앞에 앉은 남자가 그랬다.
“이 새끼들이…… 기회를 줬는데도 날 무시해?”
타다다닥!
사람이 보통 질투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검은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건 그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익명에 기댄다면.
사람은 이상하게 용감해진다.
지금 이 남자처럼 말이다.
-분명히 기회를 드렸는데 기한을 넘기셨네요. 그럼 예고대로 폭로 시작하겠습니다.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길 바랐는데, 아쉽습니다.
남자는 메일을 적어 이엔 엔터로 보냈고.
이어서 연예 기사에서 ‘최도윤’의 이름을 검색해 나오는 기사마다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최도윤 인성 개쓰레기라는데 아직도 빨아주냐? ㅉㅉㅉ 이제 다 뽀록날듯
당연히 도윤과는 일면식도 없고, 그냥 어디서 들은 그렇고 그런 찌라시를 바탕으로 쓰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멈출 수 없었다.
└이거 미친새끼네 최도윤 기사마다 ㅇㅈㄹ함 ㅋㅋㅋ
└또라이네 좀 꺼져라
└진짜 최도윤 인성 개쓰레기임? 출처가 어디임?
└아는 사람이 촬영 스태프인데 최도윤이 촬영장에서 그렇게...
처음에는 욕만 먹었지만.
댓글을 꾸준히 달수록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누군가가 관심을 주고.
자신의 말에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쁜 일일 줄은 몰랐기에.
타자를 치는 남자의 손은 더욱 빨라지고 있었고.
“아들, 오늘은 밥 꼭 챙겨 먹어. 엄마가 찌개 해놨…….”
“아! 노크하고 들어오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미, 미안해…… 꼭 밥 먹어? 알았지? 엄마 지금 일 나가니까…….”
“알아서 할 테니까 좀 나가!”
애타는 목소리를 무시한 채.
쾅!
매몰차게 방문을 닫고.
다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