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좋은 소식이요?
도윤은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끝까지 챙기는 성격이다.
이번 <협조> 촬영이 끝나자마자 성호와 민주, 두 사람에게 현금으로 빵빵한 보너스를 챙겨주고 휴가를 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세상에.”
“오빠.”
어지간하면 놀라지 않는 민주조차.
이번에는 상당히 놀란 얼굴이다.
성호는 액수를 보고 놀란 것 같지만.
민주는 액수보다는 휴가라는 사실에 더 놀란 것 같다.
“진짜 가도 돼요?”
“왜, 가기 싫어?”
“아뇨, 다시 한번 물어봐서 구두로 약속받아놓으려고요.”
“······.”
하기야.
민주는 도윤이 다친 사이에 강제로 쉬다 온 바 있다.
민주는 극구 반대했지만 도윤이 환자복 입고 무슨 코디를 하냐며 쉬라고 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형, 진짜 요새 왜 그래요? 혹시 그때 배 말고 머리도 같이······ 에헤이. 제가 받기 싫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감동했다는 말이죠.”
도윤은 슬쩍 봉투에 손을 가져가자 잽싸게 품으로 회수하는 성호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빨리 나가. 10초 준다.”
“근데 형 진짜, 진짜로 이거 제가 받아도 되는 돈······ 읍읍!”
도윤은 그 덩치 큰 성호의 입을 막고 질질 끌고 나가는 민주의 모습을 보며 피식거렸다.
그래도 뭐.
다시 일이 시작되면 미치도록 바빠질 테고.
가장 고생하는 건 둘일 테니.
저 정도 보너스와 휴가는 하나도 아깝지 않다.
덕분에 가끔 경후가 와서 다른 매니저들 괜히 기대한다며 보너스 좀 그만 챙겨주라 타박했지만.
도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말이 이엔 엔터 소속이지.
사실상 도윤과 운명공동체나 다름없는 둘이니까.
“알아서 잘 쉬다 오겠지.”
분명히 중국에 다녀올 민주.
그리고 어머니 모시러 고향에 내려갈 성호.
뻔히 보이는 둘의 행동을 상상하며 도윤은 피식거렸다.
이런 가운데.
“선배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한올이었다.
“잘 지냈어?”
“그럼요. 선배님 진짜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서로 바쁘니까. 거기 앉아.”
도윤과 비슷한 시기에 촬영을 끝낸 한올의 표정은.
이전보다 훨씬 더 밝아 보였다.
당당한 걸음걸이와.
얼굴에 가득한 미소.
확실히.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요새는 별일 없지?”
“네. 두칠 오빠가 없어서 좀 아쉽지만······.”
도윤은.
기다렸다는 듯 두칠을 언급하는 한올의 모습에 슬며시 미소 지었다.
“왜, 있다 없으니까 아쉬워서?”
“그, 그런 것도 있고······.”
“있고?”
“······선배님 짓궂으시네요.”
도윤은 한올이 더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적당히 하기로 하고 피식대며 화제를 돌렸다.
“촬영은 어땠어?”
“좋았어요. 음, 다행히 드라마 반응도 좋고······ 현장에서 선배님들도 잘해주시고.”
“네가 잘해서 그래.”
“아, 아니에요. 그······ 이승원 선배님이 너무 잘 챙겨주셔서요.”
의외다 싶었다.
“승원 선배가?”
“네에. 말수는 좀 적으신데, 와서 커피 한 잔씩 주고 가시고, 또 담요도 주시고······.”
그 말 없고.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인간이.
후배를 챙겨준다?
“저도 처음에는 왜 챙겨주시나 싶었는데, 나중에 술자리에서 대화해 보니까 따뜻한 사람 같았어요.”
“수, 술자리?”
“네. 아······ 거, 걱정 마세요! 취할 때까지 안 마셨어요!”
“네가 안 취할 때까지야?”
“아, 아뇨! 승원 선배님이 안 취할 때까지······.”
다행이다.
한올이 취할 때까지 마시면.
남아나는 사람이 없었을 텐데.
난생처음으로 술 대결에서 패배하곤 전봇대를 붙잡은 채 오열하던 유준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하튼.
“잘 적응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하네.”
“다······ 선배님 덕분이죠.”
“나 한 거 없어.”
도윤은 무심하게 답하고 말을 이었다.
“도와줘도 걷어차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
“네가 잘해서 그러는 거야.”
“제가······ 이런 말을 이제 와서 하는 게 좀 이상하지만. 어떻게 갚아야 할지······.”
도윤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려다.
“정 갚고 싶으면.”
다른 말을 꺼냈다.
“다음에 아끼는 후배 생기면 걔 도와줘.”
도윤은 그렇게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갈게. 아, 여기 대본들 있으니까 볼 거면 봐.”
“네? 어디 가세요?”
“고향. 가서 좀 쉬게. 오랜만에 드라이브도 좀 하고.”
“아, 그래서 아까 성호 씨랑 민주 씨가······.”
“왜, 신나서 나가든?”
“아, 아뇨! 성호 씨가 민주 씨한테 끌려가던데······.”
도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익숙한 광경이라.”
그리고는 옆에 두었던 가방을 챙기더니.
“간다. 아, 거기 대본 중에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말해. PD님한테 이야기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감사는 무슨.”
도윤은 벌떡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이는 한올에게 됐다는 듯 손을 홰홰 내젓더니.
그대로 문을 열고 사무실을 나섰다.
* * *
[최도윤, 일본 진출 초읽기? 이엔 엔터 측, “초대받은 것뿐” 선 그어]
[한류, ‘용사마’ 이후 이제는 ‘도사마’ 배출하나?]
[<알고 있는가>, <그 남자의 메모리>. 일본에서 초인기······ 이젠 일본도 접수?]
[2000년대 이후 끊긴 ‘일본의 한류’, 최도윤이 잇나?]
도윤의 일본 진출 소식은.
동민과 경후의 전략적인 정보 유출로 언론을 타고 서서히 번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상당한 화제가 될 정도였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오빠, 진짜 일본 가는 거야?”
“이제 내 친구 얼굴도 못 보게 생겼네.”
“언제는 자주 본 척하네.”
도윤은 오랜만에 본가로 내려와 푹 쉬면서 일본어 공부에 몰두하고.
자신에게 들어온 광고 제안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물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거의 홍수가 몰아치고 있어서 굳이 노를 젓지 않아도 배가 앞으로 갈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도윤은.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하기까지의 수고로움을 생각해 최대한 꼼꼼하게 제안들을 살피고 있었다.
“세상에, 100억?”
“차가 몇 대야.”
와중에 옆에서 슬쩍 제안 내용을 본 동하와 리나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100억.
한 대기업이 도윤에게 전속 광고 모델을 제안하며 이야기한 돈의 총액.
물론.
도윤은 감흥조차 없었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이 광고를 찍음으로써 자신이 금전적인 이득 외 무엇을 취할 수 있느냐니까.
그리고 사실.
‘모임’의 회원들이 도윤에게 제안한 금액이 훨씬 많다.
특히.
청진그룹 회장의 외동딸 주안나는 도윤이 ‘청진화재’ 광고모델이 된 이후로 여성 가입자 숫자가 엄청나게 늘었다며.
다른 계열사 광고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상태.
뭐.
도윤이 그만큼 회원들에게 자신을 잘 어필한 덕도 있고.
도윤의 현재 브랜드 파워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었지만.
안 그래도.
온갖 광고들이 다 들어오는 판이다.
특히.
어지간해서는 매체 광고를 하지 않는 한 수입차 브랜드에서까지 도윤에게 광고 제안을 하기까지.
아쉽게도 현재 도윤이 타고 있는 차가 국산 브랜드인지라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말이다.
“화상들아. 도윤이 일하는데 옆에서 방해하지 말고 얌전히 티비나 봐.”
이런 와중.
어머니는 그런 둘을 타박하며 도윤이 앞에 살며시 앉았다.
“과일 먹으면서 해라.”
“아, 잘 먹을게요.”
도윤은 잘 깎은 사과 하나를 집어 입에 쏙 넣는 한편.
옆에 있던 아버지에게 하나를 건네주려다 어머니에게 제지당했다.
“니 아빠한테 줄 거 없다.”
“왜요?”
“어휴, 요새 술에 꼴아서 다니는 것만 생각하면······.”
옆에서는 헛기침 소리가 들리고.
그래도 도윤은 슬쩍, 어머니가 투덜거리시는 사이 아버지에게 사과를 찍은 포크를 얼른 건네드렸다.
“역시, 우리 아들밖에 없다.”
“어제 도윤이 와서 다행인 줄 알아. 아니었으면 오늘 당신은······.”
이러나저러나.
항상 화목한 가정이다.
“야, 최도윤. 근데 넌 연애 안 하냐?”
“바쁘다.”
“내가 너면 진짜 하루 종일······ 얘 또 이렇게 보네. 야, 유리나. 내가 무슨 틀린 말 했냐?”
“아니. 좀 고급지게 말할 수 없나 싶어서.”
도윤은 둘의 싸움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니들이 해봐라. 시간이 나나.”
“원래 연애는 없는 시간도 내서 하는 거라고 했는데.”
“그러는 유동하 너는 있는 시간 다 써도 연애 못 하잖아.”
“······.”
리나의 팩트 폭력에 동하는 울먹이며 입을 다물었고.
“너 아직도 자취방에 서이솔 포스터 잔뜩 붙여놨냐?”
“그, 그게 왜!”
“누구 만들고 싶으면 그거부터 떼고 톡 프사부터 바꿔. 야, 덕질도 정도껏 해야지.”
도윤이 맞장구치자 리나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저래서 누가 좋아하냐? 전역하고 운동한다더니 살만 쪄가지고.”
여하튼 뭐.
화목한 시간을 보내던 도윤은.
문득 어머니에게 물었다.
“집 옮기실 생각은 없어요?”
“또 그 소리야?”
“좋은 집 살면 좋죠. 여기 근처에 아파트 하나 새로 짓던데.”
“아이고, 됐다. 지금도 시장만 가면 도윤이 니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천진데. 아들 덕 보는 거 그만하면 됐다.”
역시나.
요지부동이시다.
하긴.
회귀 전에도 도윤이 출연료를 모아서 집을 사드린다고 했을 때 오히려 화를 내셨던 분이다.
물론.
그때 도윤의 태도가 지금과 다르게 좀 오만하긴 했지만 말이다.
“왜, 아들이 해주겠다는데.”
“당신!”
“아, 알았어.”
아무튼.
어머니는 도윤이 해주는 걸 그대로 받을 생각은 절대 없으신 것 같고.
그건 마냥 어려 보이는 동하와 리나도 마찬가지다.
언제였더라.
몇 달 전에 동하한테 차 뭐 사고 싶냐고 물어보니.
사도 나중에 자기가 사겠다며 딱 잘라 거절하는 의외의 모습을 본 바 있다.
물론 그게 약간 고집을 부리는 것에 가깝긴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사주고 싶다고 해야 할까.
뭐.
그 뒤에 살짝 후회하는 것처럼 보여서 좀 웃기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일본은 언제 간다고?”
“다음 달이요. 이제 한 일주일 조금 넘게 남았나?”
“가서 몸조심하고. 일본 사람들 겉으로는 웃어도 속은 다르다던데.”
“한국에도 그런 사람들 많은데요 뭘.”
도윤은 아버지의 걱정을 웃어넘기는 한편.
광고 제안서를 쭉 살피다가.
지이이이잉.
문득 휴대폰으로 걸려온 강선의 전화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 있나?’
그리고 전화를 받자.
생각지도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아, 최 배우? 이수철 배우 연락이 안 돼서 연락했어. 무슨 일 있나?
“아, 감독님. 선배 오늘 애들 데리고 놀이동산 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연락이 안 됐던 것 같던데요.”
-그래? 그럼 혹시라도 연락되면 나한테 연락 좀 달라고 해달라고. 문자 남겨두긴 했는데, 좋은 소식이 있어서.
“좋은 소식이요?”
도윤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간 가운데.
-어. 아는 PD 하나한테 이수철 배우 편집영상 보여주니까 좀 보고 싶다고 해서. 주연 캐스팅 건으로.
도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요?”
-그래. 안 그래도 걱정돼서 누구 좀 소개해 줄까 고민했는데, 그럴 필요 없게 됐어. 여하튼 먼저 좀 연락되면 소식 좀 전해주라고. 참, 고향 갔다고 했나?
“네. 지금 내려왔습니다.”
-잘 쉬다 오고. 나중에 편집 좀 마무리되면 그때 양미리에 소주나 꺾자고.
“예, 알겠습니다. 쉬십시오, 감독님.”
전화를 끊은 도윤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 나갔다.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협조> 촬영 후 붕 뜨는 시간 동안 수철이 조마조마하게 지낼 일은 이제 사라진 셈.
어차피 뭐.
<협조>가 개봉하면.
수철의 부활을 본 관계자들의 러브콜이 줄을 이었을 테지만.
도윤 정도 되면 그 시기야 충분히 앞당기고도 남는다.
‘이만하면······.’
그러니 이젠.
마음을 놓고 일본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