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102화 (102/200)

102.강제 진출

순조로운 촬영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튜브에서 수십만의 구독자를 확보한 지플릭스 계정에 어느 날 하나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바로 <협조>의 메이킹필름이었다.

물론 전체가 올라온 건 아니고, 약 10분 정도 촬영장 전체를 둘러보고 배우들을 인터뷰하는 정도에 불과한 길이었지만.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다.

-와 분위기 좋네ㅋㅋㅋㅋ 빨리 좀 나와라 정기결제 때린 지 벌써 두 달이다!

-ㄹㅇ 볼 거 다 봐서 이제 볼 게 없음 ㅋㅋㅋㅋ

-요새 맨날 볼 거 찾다가 시간 다 감ㅋㅋ

-<협조> 이거 성공하겠냐? 스크린에 안 거는 영화는 진짜 모르겠는데

-ㄴㄴ 지플릭스 미국에서 개쩜. 그래서 아마 전세계 팬들이 보니까 성공하지 않을까?

-와 최도윤 이번에는 아주 깡패 빙의했네 ㄹㅇ 껄렁껄렁함 ㅋㅋㅋㅋ

-이수철도 생각보다 연기 잘하는데? 10년 쉰 거 맞음?

-클라스 어디 가냐 <사이버러버>에서도 유일하게 이수철 연기만 남았는데 ㅋㅋㅋ

지플릭스는 우려를 깨고 착실하게 마케팅을 진행하는 중이었고.

업계 사람들도 이제는 시선을 조금씩 달리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의문스러운 시선은 여전히 남는다.

그래서, 성공할 것인가?

성공한다 해도 과연 얼마나 성공할 것인가?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정작 이 모든 시선이 쏠려도 <협조> 촬영은 아주 순조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고.

어느덧-

포스터 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여기만 한 곳이 없어. 그치?”

“그렇긴 한데요, 굳이 스튜디오에서 안 찍으시는 이유가 뭔데요?”

유정의 은근한 타박에 강선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CG로 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지.”

“합성 두고 뭐 하신대. 아무튼 뭐, 좋긴 하네요. 바람도 선선하고, 조명도 따로 필요 없을 것 같고······.”

하지만 유정은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쉰다.

“이 시장통에서요?”

아닌 게 아니라.

“최도윤! 꺄아아아악!”

“완전 대박. 실물 개쩐다.”

“존잘······.”

“지서연 40대 맞냐? 와······.”

“오빠, 그래서 지서연이 예뻐 보여?”

여기는 선유도 공원이고.

지금 시각은 오후 1시경.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한가득인 곳이다.

강선은 산책로를 배경으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야 한다며 여기를 고집했고.

그 결과.

“죄송합니다! 더 오시면 안 돼요!”

“사진은 괜찮은데 플래시 터뜨리는 건 자제해 주세요!”

“거기 조심하세요!”

스태프들이 다가오려는 사람들을 정신없이 막아야만 했다.

“잘 나와야 할 텐데.”

“걱정 마. 잘 나올 거야.”

“제발 그러길 바랄게요.”

유정은 입술을 비죽이다가도 곧장 재빠르게 현장을 지휘해 촬영 세팅을 마친 뒤 촬영감독과도 협의를 완전히 마쳤다.

“이쪽에서. 네. 각도는 오른쪽으로 살짝만. 네, 요런 구도에서 한 컷 찍어주시면 되고, 이쪽 보드에서는······.”

늘 퉁명스럽게 굴어도.

강선의 지시라면 철저하게 따르는 조감독.

그게 바로 유정이었다.

강선이 마음 놓고 촬영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이유.

여하튼.

스태프들이 진땀을 흘리는 사이 세팅은 빠르게 완료됐고.

“자,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포즈 잡아주시고! 네, 최도윤 배우님 기준으로 이수철 배우님이 조금 더 왼쪽으로. 네, 아주 좋습니다. 지서연 배우님! 좀 더 고혹적인 표정. 네에!”

마침내 촬영이 시작되었다.

배우들은 주변에서 어떤 소음이 있든 카메라에만 집중하며 촬영감독의 주문에 충실히 따랐다.

멀리서 보면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주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린 데다, 영화 촬영과는 전혀 관계없는 광경들이 한가득인데.

배우들의 표정만 놓고 보면 영화의 한 장면 그 자체였다.

전직 조직폭력배, ‘주강훈’.

파면당한 전직 형사, ‘김석진’.

두 남자가 쫓는 최종보스의 비밀을 쥔 ‘소현’.

중심이 된 세 사람은 정적(靜的)인 열연을 펼치며-

“아주 좋습니다! 바로 다음 컷 들어가겠습니다! 포즈 잡아주시구요!”

촬영감독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다른 여러 버전에서의 촬영 역시 별다른 문제 없이 쭉 이어졌고.

마침내 포스터 촬영이 끝나자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박수와 함께 여기저기 고개를 숙이던 도윤이 향한 곳은 인파가 몰려 있는 곳이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김지우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휴대폰 있어요?”

“휴대폰이요?”

“셀카 찍어드리게요.”

“대박!”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 모습에.

막고 있던 스태프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고.

도윤은 내친김에 팬 한 명에게 슬며시 속삭였다.

“저기 있는 배우 이수철 배우님이거든요? 곧 뜰 것 같은데, 사인 미리 받을래요?”

“저 이수철 배우 알아요! <사이버 러버>!”

“하, 하하. 배우 앞에서 절대 그 이야기는 하지 마시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철도 팬서비스 대열에 합류시켰으니.

지서연은 안달이 났다.

‘어쩌지?’

지서연은 원래 팬서비스에 충실한 배우가 아니다.

어쩌다 한 번.

기분이 내킬 때 사인을 해준다.

모 야구선수처럼 사인의 희소성이 떨어진다는 변명을 굳이 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모르는 사람이 불쑥 다가와 종이와 펜을 내밀거나 카메라를 들이미는 걸 싫어할 뿐.

하지만 두 주연 배우가 저렇게 나서서 팬서비스를 하는 마당에.

이렇게 가만히 있기도 민망한 사람.

거기다 몇몇 팬들이 애타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지라.

“갔다 올게.”

“네?”

지서연은 옆에서 막 휴대폰을 건네려던 매니저를 뒤로하고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완전 대박! 실물 진짜 와······ 언니, 너무 예뻐요.”

“당연한 말 그만하고, 펜.”

“대박, 걸크러쉬······.”

그리고는 심드렁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는데.

그 모습이 묘한 매력을 불렀다.

과연 배우는 배우였다.

“언니, 사진 찍어도 돼요?”

“나만 찍어. 같이 찍지 말고.”

“네!”

그리고 도도한 표정으로 포토타임을 갖게 해주는가 하면.

“오빠, 그만 좀 보라고. 아주 뚫겠다.”

“내, 내가? 내가 언제?”

의도치 않게 커플 한 명을 건드리기까지.

여하튼.

좋은 광경이었다.

강선이 보기에는 말이다.

배우가 팬서비스를 하든 말든 강선은 별로 신경을 두진 않지만.

이렇게 영화 촬영과 관련된 현장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특히나 지서연의 변화가 눈에 띈다.

배우는.

어차피 연기하는 직업이고.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전부 아니겠는가?

때문에 강선은 지서연의 지금 모습에 만족했다.

지서연이.

어떻게 생각하든.

“분위기 좋은데요. 솔직히 이럴 목적이셨죠?”

그때 다가온 유정의 말에 강선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라곤 말 못 하지.”

“네, 이번에도 제가 졌네요.”

“언제 이겨서 독립할래?”

유정은 입술을 비죽였다.

“저도 몰라요.”

“거 참······.”

강선은 멀어지는 유정을 보며 혀를 찼다.

그리고 이런 한편.

“오빠! 오빨 보면 뭔가 허전해요!”

도윤은 기습적으로 날아온 공격에 잔뜩 긴장하며 두뇌를 풀가동시켰지만.

“······왜, 왜요?”

“왜냐하면, ‘명불허전’이니까.”

오늘도 당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던 수철은 입을 쩍 벌린 채 생각했다.

연예인이.

생각보다 쉬운 직업이 아니구나, 하고 말이다.

* * *

배우는 보통.

작품 하나에 집중하면서 여러 일을 병행한다.

광고 촬영이라든가.

차기작 관련 논의라든가.

혹은 기타 행사라든가.

인기 배우라면 끊임없이 요청이 들어오고, 배우들은 어지간해서는 그 요청을 거절하지 않는다.

현재 촬영 중이거나 방영 중, 혹은 스크린에 걸린 작품에 피해가 가거나 배우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는 게 아닌 이상 무조건 하는 게 이득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다만.

도윤의 경우는 조금 특별했다.

“요새 살이 쪽 빠지셨네요, 박 팀장님.”

“말도 마라. 아주 죽겠어. 나 참.”

말이야 저렇게 해도.

요새는 슬슬 수철을 대신해 팀장이라는 업무에 적응해 가는 모양이다.

“참, 배는 좀 어때?”

“멀쩡합니다. 흉터도 거의 안 남았고요.”

“어유, 그때만 생각하면 진짜······.”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 이수철 선배님 들으면 슬퍼해요.”

“알아. 되게 힘들어하셨다면서. 아무튼 뭐, 그나마 다행이지.”

그렇게 그간 못한 이야기가 지나가고.

박경후 실장은 본론으로 들어가며 눈을 반짝였다.

“좋은 소식이 있어.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일본 방송사 쪽에서 널 부르고 싶어 해.”

“일본이요?”

“응. 그것도 아주 강하게.”

도윤은 아연한 표정이다.

경후가 전해준 소식은 생각지도 못한 소식.

“<알고 있는가>랑 <그 남자의 메모리> 인기가 계속 오르고 있대. 아직 언론에 크게 기사화는 안 됐는데, 이제 곧 알려질 거고.”

“그 작품들이 왜요?”

“왜긴 왜야, 재미있으니까 그렇겠지.”

도윤도 이야기를 듣긴 했다.

두 작품이 해외로 수출된다고.

특히, <알고 있는가>는 주연 배우의 마약 사건 연루로 인해 국내 정서상 재방송이나 VOD, 블루레이 발매 등이 다소 애매해 해외 쪽 판로를 찾는다고 들었는데······.

일이 이렇게 풀릴 줄이야.

“<알고 있는가>는 아무래도 한국과 일본의 직장문화가 비슷한 면들이 많다 보니까 시청자들이 꽤 공감하면서 본 것 같더라고.”

사실.

촬영하면서도 백제운 PD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긴 했다.

이거 일본이나 중국 쪽에서 어쩌면 잘 먹힐지도 모르겠다고.

주연 배우들 마스크 훌륭하고, 오피스물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배우들의 연기력이야 말할 필요도 없으니.

그때는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만 하고 별 기대는 않았는데.

이렇게 터질 줄이야.

“그리고 음······ <그 남자의 메모리> 같은 경우는 그 특유의 진중한 느낌이 좋았나 봐. 솔직히 뭐, 일등공신은 도윤이 너지. 당사자 앞에 두고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연기가 좀 미쳤었냐?”

<그 남자의 메모리>는 굳이 말이 필요하냐는 모양.

정리하자면.

“공교롭게도 두 작품 다 같은 방송사에서 수입했고, 이번에 한 주에 나눠서 편성했는데 드라마 두 개가 다 선방한 덕분에 다른 방송사 시청자들까지 끌어오는 모양이더라구. 각각 지금 6화씩 방영된 상태고.”

도윤이 주연을 맡은 두 작품이 현재 일본에서 대박이 터질 기미가 보인다는 것.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요?”

“일본 가서 팬들 만나고 토크쇼도 나가고 그러는 거지. 팬사인회도 하고, 음. 정확히는 모르겠다. 근데 가도 아마 너 촬영 끝난 다음에 가야지. 편집하고 지플릭스 공개까지 시간 좀 걸리니까 그때 가야 맞지 않을까?”

시기가 얼추 맞을 듯싶었다.

현재 <협조> 촬영은 얼마 남지 않았고.

촬영 종료 후 이것저것 추가적인 일정을 소화한 뒤라면 충분히 여유가 있을 테니.

“이러다 ‘도사마’되는 거 아니냐?”

“에이, 그럴 리가요.”

도윤은 듣기만 해도 오그라드는 별명에 손을 휘휘 내젓다 문득 물었다.

“참, 일본은 보통 더빙해서 방영한다고 들었는데.”

“그치. 근데 자막판을 요구하는 시청자도 점점 많아져서 재방송에서는 자막판 이야기도 나오는 모양이야. 여하튼 나도 이건 일본 쪽에 있는 지인한데 들은 이야기고, 아마 조만간 제작사랑 방송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을까 싶······.”

지이이잉.

말하기 무섭게.

울리는 경후의 전화.

경후는 휴대폰에 뜬 발신인을 보더니 씩 웃었다.

“봐. 내 말이 맞지?”

경후가 보여준 휴대폰엔.

백제운 PD의 이름이 떠 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지이이잉.

도윤의 휴대폰도 울리기 시작했다.

차례로 뜬 이름들은.

<알고 있는가>와.

<그 남자의 메모리> 촬영을 함께한.

배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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