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보고 놀라지나 마라
도윤이 절치부심하며 준비한 연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렀다.
-와 미친연기 ㅋㅋㅋㅋ 음치연기 실화? ㅋㅋㅋㅋㅋ
-토막상식: 최도윤이 피처링한 곡은 음원차트 4위까지 올라갔었다
-ㅋㅋㅋㅋ 음치연기도 이 정도면 예술이다 ㅋㅋㅋ 진짜 음치같네 ㅋㅋㅋㅋ
-우리 언니 진짜 진성 음친데 노래방 가면 딱 저렇게 부름 ㅋㅋㅋㅋ
11화.
중반부.
‘이성아’와 엇갈린 뒤, ‘이성아’가 자신의 마음을 거절한 거라 오해한 도윤이 술을 진탕 마시고 혼자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팬들은 열광했다.
정말 음치를 연상케 하는 씬에 도윤이 노래를 잘하는 줄로만 알고 있던 팬들은 즐거워하면서 감탄한 것.
노래를 잘하는데 음치 연기가 완벽하다는 상당히 재미있는 ‘사실’.
덕분에 ‘노래방 폭주씬’은 또 한 번, 최도윤을 유튜브 화제 동영상 상위권에 소환시켰고.
“와…… 이래서 연예인 이미지가 중요한 거구나.”
“우리 오빠 노래방 가서 진짜 부르는 거 보면 기겁할 텐데…….”
이 반응을 지켜보던, 진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인 도윤의 가족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린 시절.
노래방에 데려갔더니.
<말 달릴까>를 열창하며.
다음 날 이비인후과에 데려갈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 바로.
도윤이었으니까.
“혹시 진짜 노래 잘하는 거 아니야?”
그런 와중 아버지 유준환이 내놓은 가설에 나머지 세 사람이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어. 아빠도 봤잖아? 오빠 노래는 정말…….”
“나도 오늘만큼은 유리나 말에 동의. 엄마는?”
“대답할 가치도 못 느끼겠다 나는.”
결국 유준환은 빠르게 가설을 폐기하며.
[우워어어어어어어어어-!]
도윤이 노래방에서 폭주하는 씬과.
-앜ㅋㅋㅋ 완전 대박 ㅋㅋㅋㅋ
-노래 완전 잘하는데 음치 연기 대박 잘함 ㅋㅋㅋㅋㅋㅋㅋㅋ
-뮤지컬 배우가 음치연기 하는 기분 ㅋㅋㅋㅋ
그 동영상 아래 달린 댓글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쉴 새 없이 안경을 고쳐 썼다.
그러다.
“오빠 많이 뻔뻔해졌는데.”
“뭔데?”
“이거 봐봐. 메이킹 영상인데…….”
마침 제작사 측에서 화제성에 편승해 공개한 ‘노래방 폭주씬 촬영 비하인드’ 영상에 가족들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제가 노래엔 그래도 조금…… 자신 있는데 음치 연기하느라 이번엔 조금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거의 한 10시간을 연습한 것 같아요.]
영상 속.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동하는 결국 고개를 돌려 버렸고.
리나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이쯤 되자.
가족들은 도윤을 안쓰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도윤이…… 많이 힘들구나…….”
“이미지 때문에 분명히 소속사에서 시켰을 거야. 그렇겠지?”
“이래서 연예인 생활이 힘들다는 거구나.”
그렇게.
오해가 쌓여가고 있었다.
* * *
10월.
회귀한 지 벌써 1년 하고도 몇 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하지만 도윤은 새삼 시간이 빨리 갔다든가, 많이 달라졌다든가 하는 감상에 빠진 채 지내지 않았다.
그저 매일 대본을 보고.
카메라 앞에서.
“그래서, 그때 그렇게 헤어지자 해놓고 이렇게 온 이유가 뭔데? 김하나, 네가 뭔데 와서 자꾸 흔드냐고! 제발, 제발 그만 좀 하자. 응?”
“봐. 너도 흔들리잖아. 윤재야. 우리…… 솔직해지자.”
“제발. 제발 그만하라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래.
어쩌면 숙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카메라 앞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잊은 채 연기에 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 사람이 정말 최도윤인지.
아니면 배역 그 자체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죽이는데.”
여전히 저 연기를 접한 스태프나 다른 배우들은 여지없이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스태프들은 놀라워서 그렇고.
배우들은 부러워서 그렇다.
특히.
‘도대체…… 저런 감정선은 어떻게 따 오는 거지?’
매 촬영 때마다 도윤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세로 지켜보던 한올은 오늘도 좌절해 버렸다.
보면 볼수록,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진다.
저건 단순히 재능으로 될 만한 연기가 아님을 한올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경험.
배우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경험.
도윤은 마치 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고작해야 한올과 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대학 다니시다가 이엔 엔터 들어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하지만 한올이 아는 도윤의 과거는 평범함 그 자체다.
부모님이 일찍이 돌아가셔서 친구의 가정에서 자라났다는 사실을 몰라 그럴 수도 있지만.
안다고 해도 생각이 달라지진 않을 듯했다.
여하튼.
‘저기에는 못 미쳐도…… 발끝에라도.’
도윤의 연기는 이렇게 한올처럼 불타오르게 만들거나.
‘쟤는 그냥 다른 차원이네. 저러니 주연이지. 됐다. 뭘 따라가냐.’
아예 마음을 접게 만드는 등.
여러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아무튼 현재 14화.
<그 시절의 우리>는 후반부 촬영에 접어들었고.
현재 ‘이성아’와 이어질 듯하던 ‘서윤재’가 옛 연인 ‘김하나’와 마주하며 그간 참아야만 했던 감정들이 폭발하는 장면.
-아니, 도대체 누구랑 되는 건데?
-ㅋㅋㅋㅋㅋㅋ 미친 드라마 등장인물 이어지는 걸로 베팅사이트까지 생겼네 ㅋㅋㅋㅋㅋ ‘윤나 커플’ 배당이 제일 높음 ㅋㅋㅋㅋ
-ㅋㅋㅋ 솔직히 드라마라 보고 있는거지 현실이었으면 서윤재 미쳤을걸? ㅋ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처럼-
‘서윤재’는 드라마 내내 짠내를 풀풀 풍기는 캐릭터다.
10년을 만난 연인 ‘김하나’와 헤어진 뒤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다 간신히 안식처를 찾는 듯했는데.
다시 나타난 ‘김하나’의 모습에 결국 옛 추억들이 되살아나며 흔들리고야 만다.
10년.
강산이 바뀌고, 도시의 전경이 바뀔 시간.
그 시간 동안 함께한 연인을 잊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그냥 냉정하게 놓고 보면 ‘서윤재’는 답답한 캐릭터다.
‘김하나’를 잊지 못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성아’를 자꾸 밀어내기만 하고, 일에 집중하느라 계속해서 가까워질 기회조차 놓친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가장 깊이 공감하는 캐릭터가 된 건, 마음을 건드리는 도윤의 연기 덕분이겠지.
지금처럼 말이다.
“하나야, 아니. 김하나. 그만하자. 우리 끝났잖아. 잊었어? 너…… 그렇게 매몰차게 말하고 나 떠났어. 나 없는 사이에 짐도 다 빼고, 그냥 원래 없던 것처럼 떠났다고. 사람 마음을 그렇게 썩어 문드러지게 해놓고…… 넌 이제 와서 그런 말이 나와?”
“윤재야. 그때는…….”
“집어치워. 제발. 나…… 이제 너 잊고 싶다. 원래 없던 것처럼. 부탁할게, 김하나.”
‘김하나’에게는 ‘서윤재’가 모르는,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하지만.
‘서윤재’는 이제 더 이상 ‘김하나’에게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오히려 증오마저 치솟는다.
충혈된 눈과.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
그러나-
시청자들은 두 캐릭터가 지닌 각자의 사연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기에 이 장면을 보며 더더욱 안타까움을 느낄 것이다.
“오케이, 아주 좋습니다!”
이런 가운데 컷사인이 떨어지고.
곧바로 성호와 강수연의 매니저가 뛰어들어왔다.
막 연기를 마친 배우를 케어해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양쪽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강수연’은 결국 감정 연기에서 터진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매니저가 건넨 손수건에 얼굴을 묻었고.
도윤은…….
“배합이 바뀐 것 같다? 벌써 3호 개발했냐?”
“아뇨. 실수로 시럽 한 펌프 더 넣었는데요.”
“그걸 그대로 가져왔다 이거지? 종신계약이라고 아주 막 나가는구나.”
“그러니까 책임지세요.”
방금까지 그렇게 격렬한 감정 연기를 해놓고 성호와 투닥거렸다.
그리고 눈물을 닦으며 그 모습을 보던 강수연은 그만 멍해지고야 말았다.
‘저게 가능해?’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배역을 위해 끌어올린 감정에서 저렇게 빨리 빠져나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연기를 위한 감정이란 단순히 스위치를 누르듯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오래된 자동차의 엔진을 예열하는 것처럼 시간을 가져야 하며, 가라앉힐 때 역시 마찬가지.
적어도 강수연이 아는 배우들은 다 그랬다.
심지어 촬영을 마친 뒤 배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 배우도 부기지순데…….
도윤은 마치 옷을 갈아입듯, 연기를 마치면 배역을 위해 입었던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저렇게 ‘최도윤’으로 간단히 돌아가 버린다.
‘감정을 절제할 줄 아는 건가? 아니면…… 아예 감정이 없냐?’
강수연은 헛다리를 짚고 있었다.
“기왕 종신계약한 거, 다음에는 담당 연예인 챙기는 척이라도 해라. 손수건 꺼내는 시늉이라도 좀 하라고.”
“에이, 전 그런 과잉 충성은 안 하는 주의라서.”
“과잉 갈굼은 안 두렵고?”
결국.
강수연은 눈물을 다 닦아낸 뒤에야 다가가 물었다.
“저, 최도윤 배우님.”
“아, 선배님.”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물어봐도 돼요?”
“얼마든지요.”
도윤은 옆에 있던 성호에게 커피잔을 도로 넘겨주었고, 성호는 옆으로 살짝 빠져주었다.
곧바로 강수연이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빠져나와요?”
“네?”
“연기 끝나고 말이에요. 무슨 비법이라도 있나 싶어서.”
기대감 반.
궁금함 반.
도윤은 지금껏 두 달 남짓 함께하면서도 처음 본 강수연의 눈빛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간단히 대답했다.
“그냥요.”
“네?”
“그냥 되던데요.”
10년.
10년이다.
골방에 홀로 틀어박혀 연기를 연습한 시간.
그 시간 동안.
도윤은 조금이라도 더 연습하기 위해 하나의 배역 연습을 마치면 다른 배역에 재빨리 몰입했고,
그 과정에서 감정을 빠르게 다스리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물론.
본인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간단히 대답하며.
강수연을 당황시켜 버린 것.
하지만.
“알려주기 싫으면 싫다고 하시지…….”
“네?”
“그렇잖아요. 그냥 되는 게 어디 있어요?”
강수연은 오해해 버렸고.
도윤은 당황해 버렸다.
하지만 진짜였다.
“진짜 그냥 되는 건데…….”
사실, 그냥 본능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사람이 배가 고프면 먹는 것처럼.
딱히 어떤 심오하고 상세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
적어도 도윤에겐 말이다.
도윤은 약간 심술이 난 듯한 강수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볼을 긁적였다.
“이상하다. 당연히 되는 거 아닌가?”
그때 들려오는 성호의 목소리.
담당한 연예인이 도윤뿐인지라.
성호 역시 당연하게 여기는 것.
그렇게 잠시 쉬러 그늘 아래 의자로 향하는 사이.
“아, 형. 아까 문자 왔었어요.”
도윤은 성호가 건네준 휴대폰으로 문자를 확인했다.
[최도윤 고객님의 차량이 오늘 인도될 예정입니다.]
아.
드디어 기다리던 날이다.
“어, 왜요?”
“오늘 차 온대.”
“우와! 진짜요?”
성호는 호들갑을 떨었다.
그도 그럴 게.
도윤이 지금까지 무슨 차를 뽑았다고 끝까지 이야기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호는 가끔 지금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어디 거예요? 독일차? 아니면 그보다 윗급? 혹시 스웨덴차?”
“왜 그렇게 기대하냐.”
“아니, 형이 생애 첫차 뽑는 건데 어떻게 기대가 안 돼요!”
성호는 그랬었다.
도윤이 차를 뽑으면.
자신이 운전 연수를 시켜주겠다고.
하지만 성호는 모른다.
회귀 전 도윤이 얼마나 운전을 많이 했는지를.
아무튼.
“이따 보고 놀라지나 마라.”
“깜짝 놀랄 준비 되어 있습니다.”
성호는 기대감에 흥분해 있었다.
그것도 잔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