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77화 (77/200)

77.저희 집 고양이가

도윤이 기억하는 미래에서 한올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이유는 여러 개였다.

성격은 여전히 소심했지만 치솟은 인기에 적응할 수 없었다.

여기에 전 극단 단원들이 퍼뜨린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소속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기는커녕 한올에게 더 빡빡한 스케줄을 강요하기까지.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찾아왔던 전 남자친구의 스토킹이었다.

도윤은 정확히 기억한다.

한올이 남긴 유서에 적혀 있던 스토커 녀석의 이름과, 털린 신상으로 공개된 그 녀석의 얼굴을.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당시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연기를 준비하던 도윤이 인상 깊게 봤던 한올이기에 아직까지도 확실히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는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저놈이구나.

시기상으로도 맞다.

‘거의 5년을 스토킹당했다고 했었으니…….’

현시점에서도 아마 같을 것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지금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

-자꾸 회사 앞까지 찾아와서 지금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는데…… 어, 어떻게 해야 해요……?

울먹거리는 목소리.

그래.

역시나다.

도윤은 민주를 힐끗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놔! 아니! 여기 지인이 근무해서 찾아온 거라니까요!”

“아 그러니까 그 지인이 누구냐니까요? 왜 말을 못 해요? 오늘만 세 시간 동안 건물 앞에 있던데, 경찰 부르기 전에 가시라고!”

경비원이 달려 나와 남자를 건물에서 멀리 끌어냈고, 남자는 길길이 날뛰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잠잠해졌다.

그리고 도윤은.

한올의 동의를 받아 수철에게 연락하고, 수철과 함께 한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도윤이 알던 것 이상이었다.

“극단 들어가기 전에 잠깐 만났던 남잔데…….”

집착이 너무 심한 나머지 한 달이 못 가 이별을 고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같이 저렇게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특히.

<그 시절의 우리>가 방영되어 한올이 조금씩 인지도를 넓혀가자 그 정도는 더더욱 심해졌다.

“어제는…… 집에도 못 들어갔어요. 집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상당히 심각한 일이다.

개인적인 일이고.

미래가 어떤 식으로 바뀌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알면서도 물어보진 못했던 사실.

“부모님은 아세요?”

수철이 심각한 표정으로 묻자 한올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직까지는 저 혼자만.”

“빠르게 조치하는 게 좋겠는데.”

수철이 떠올린 방법은 경찰 신고 및 접근금지가처분신청이었다.

하지만.

스토킹이 왜 스토킹이겠는가.

아직 법률이 미비해 처벌 수위도 약한 상황에서 피해자는 더더욱 떨 수밖에 없다.

비단 한올뿐만이 아니라-

연예인들은 한 번씩 겪는 문제.

도윤도 회귀 전의 삶에서 그랬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회귀 전, 도윤의 개차반스러웠던 성격이 그때만큼 도움이 된 적도 없었다.

갑자기 골목에서 튀어나온 스토커에게.

오만 쌍욕을 퍼부어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때문에 도윤은 수철과 달리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채한올 배우가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도윤아. 그게 무슨…….”

“대체로 스토커들이 경찰에 신고한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요. 팀장님도 아시잖아요?”

“…….”

수철은 침묵을 삼켰다.

모를 리 있나.

하지만 그 외 뾰족한 수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어디 흥신소에서 사람 하나 데려다 늘씬하게 패주고 싶었다.

감히 누구한테.

하지만 어디 그러기가 쉬운가.

그러다 법적인 문제로 번지면 지금보다 사태가 더 커질 수 있다.

그래서 물었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 거야?”

마치 답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도윤에게 말이다.

도윤은 그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일단 한올에게 이야기했다.

“앞으로 바꾼 번호로 오는 모르는 연락은 모조리 차단하세요. 당분간 숙소는 근처 호텔 이용하시고. 보안이 철저한 곳이니까 큰일이 나진 않을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미봉책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그리고…… 나중에 약간의 연기가 필요할 것 같은데, 가능하겠어요?”

“연기요……?”

도윤이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띠었다.

* * *

현재 <그 시절의 우리>를 찍고, 트레이닝과 케어를 거치며 한올의 소심함은 상당히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애초에 성격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

또한, 그런 성격 탓인지 남에게 자신의 힘든 점을 이야기해 부담을 지우는 걸 극도로 꺼렸다.

도윤과 수철이 스토킹 사실을 한올의 입으로 직접 들은 것도 상당히 놀라운 일.

여하튼.

그런고로 도윤은 맞춤 해결법을 도입했다.

“인사하세요. 이쪽은 예전에 저 옷 장사할 때 알고 지냈던 오빠.”

“안녕하십니까. 장두칠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요!”

도윤은 성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덩치 역시 더 큰 남자를 보며 할 말을 잃어버렸다.

혹시나 해서 지나가듯 물어본 것뿐인데.

민주가 이런 인재를 데려올 줄이야.

정장 상의가……

‘터질 것 같은데.’

거기다.

눈 밑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두 줄짜리 흉터가 예사롭지 않다.

“반갑습니다. 최도윤입니다.”

턱.

손만 잡았는데 숨이 막힌다.

털이 덥수룩하고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바닥의 감촉.

근데.

왜 저렇게 수줍은 얼굴일까.

“미, 민주야, 내가 지금 연예인 손 잡은 거 맞지?”

“맞아. 그러니까 악수 좀 그만할래? 연예인 손 부서지겠다.”

말도 잘 듣는다.

급히 자신의 손을 놓는 두칠의 모습에 도윤은 혼란을 느꼈다.

“아. 그쪽 옷 장사하는 쪽이 좀 거칠어요. 다툼도 있고, 시비도 종종 걸리고. 그때 이 오빠가 좀 보호해 줬어요.”

“헤헤, 고향에 민주보다 쪼끔 어린 여동생이 있어서 민주가 눈에 좀 밟히더라구요…….”

멋쩍어하며 뒤통수를 긁적이는 모습이 참.

묘하게 어울리면서 안 어울린다.

이게 바로 반전 매력이라는 건가.

도윤은 저도 모르게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아. 사연 있는 것 같아도 꽤 순박한 오빠예요. 덩치는 유도를 해서 그렇고, 흉터는……”

“저희 집 고양이가 할퀴는 바람에 요렇게 상처가 났죠. 고놈 발톱이 좀 억세죠. 헤헤.”

이어지는 말에 그만 멍해졌다.

그때 옆에 있던 성호가 아주 작게 속삭였다.

“어디 조직 출신 아닐까요.”

고양이 발톱 이야기보단 그쪽이 더 설득력 넘쳤다.

하지만 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민주가 데려온 사람이다.

“지금은 그럼 무슨 일을 하고 지내십니까?”

“혹시 플로리스트라고 아세요?”

플로리스트.

설마 자신이 아는 그 플로리스트가 맞을까.

“이래 보여도 손재주가 좀 있어서 인기에요. 그쪽 바닥에서는 점점 유명해지고 있기도 하고.”

“에이, 또 비행기 태운다.”

덩치는 유도를 해서 그렇고.

흉터는 고양이가 할퀴어서 낸 거고.

직업은 심지어 플로리스트다.

극한의 반전에 도윤이 어질어질해질 무렵.

“그래서 제가 무슨 일을 하면 될까요? 민주한테 대충 듣긴 했는데, 나쁜 놈 하나 겁주면 되는 겁니까?”

도윤은 오랜만에 꽤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설명했다.

물론, 한올이 말하길 원하지 않을 민감한 이야기는 빼고.

“정리해 보면, 나쁜 놈 하나가 여기 회사 연예인 하나를 스토킹하는데 그놈을 쫓아내 달라 이 말씀이시죠?”

그리고 그제야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수철이 나서서 보수를 이야기했다.

“네. 보수는 잘 챙겨드리겠습니다. 하루 30만 원. 24시간 함께 이동해 주시면 되고 기간은 한 달입니다. 어떠십니까?”

두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만큼이나 많이요?”

수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적나요?”

“그, 그럴 리가요.”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이만한 돈이 아깝지가 않아서다.

굳이 계산적으로 따지고 싶진 않지만.

한올은 그만한 가치 이상의 재능을 지닌 배우니까.

물론.

돈은 회사에서 내겠지만.

그리고 두칠의 덩치와 민주가 자기를 보호해 줬다는 말을 들어보건대.

그 정도 돈은 오히려 적어 보였다.

그래서 수철은 한 가지 조건을 더 얹었다.

“결과에 따라 추가금도 지급하겠습니다. 물론 현금으로요. 아,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기간이 좀 더 길어질 수도 있고요.”

두칠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민주를 바라봤다.

“미, 민주야. 호, 혹시 내가 사람을 때리거나 하는 건…… 아니지?”

“오빠 하기 나름이죠.”

민주의 심드렁한 대답이 더 이어지기 전에 이번엔 도윤이 끼어들었다.

“아뇨. 그럴 일은 없습니다. 갑자기 달려들면 제압하셔야겠지만…… 글쎄요.”

덤비기는커녕.

눈앞에 마주하기만 해도 오금이 저려 다리가 후들거릴 것이다.

원래-

힘에 의한 굴복만큼 확실한 건 없으니까.

치졸한 인간일수록 더더욱.

여하튼.

“어떠십니까?”

수철은 확실하게 하고자 물었다.

물론 사정상 계약서는 없겠지만.

바로 오케이한다면 이 자리에서 민주를 믿고 선수금으로 300만 원을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 하겠…… 자, 잠시만요!”

별안간 두칠은 망설였다.

‘금액을 더 불렀어야 했나?’

혹시나 돈이 적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플로리스트로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건 아닐까.

도윤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덩달아 고민에 빠진 그때였다.

“한 달이라고 하셨죠? 24시간이구요?”

“네.”

“그럼…… 밥도 주나요?”

생각지도 못한 물음에 도윤이 멍해지고.

“헤헤…… 제가 밥을 좀 많이 먹어서…….”

두칠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로 민주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당황시켜 버렸다.

* * *

두칠은 도윤의 생각 이상으로 순박한 남자였다.

물론 순박하다는 뜻이 멍청하다거나 사리분별이 안 됨을 뜻하진 않는다.

두칠은 프로였다.

그것도 철저한 프로.

존재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을 압도하는 그 분위기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필요하지 않다면 한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태도에 한올 쪽에서 먼저 다가갈 정도였다.

“저…… 장두칠…… 경호원님이라 부르면 될까요?”

“아! 장 프로라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거…… 드실래요? 오전부터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커, 커피!”

“저 때문에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요…….”

“감사히 잘 마시겠습니다!”

두칠은 한올이 건넨 커피를 쪽쪽 빨대로 마시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던 수철은…….

“괜찮을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느낌이 나는데.”

두칠의 어마어마한 비주얼에 마른침을 삼키던 참이다.

도윤 역시 일부 동의했다.

“그러려나요.”

“저 정도면 누구한테 다가가기만 해도 위협적이라고 고소당할 인상인데.”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효과는 확실하다는 뜻.

안 그래도…….

계약 첫날, 두칠과 함께 일부러 소속사 건물 앞까지 나온 한올은 스토커의 존재를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

그리고 예상지 못한 다른 효과도 있었다.

도윤의 상대역인 강수연은 촬영장에 따라온 두칠을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도윤에게 도대체 어느 업체를 쓰는 거냐고 물어봤었다.

‘이러다 이쪽으로 가는 건 아니겠지.’

플로리스트보다는 분명히 어울릴 것 같다지만.

“두칠 오빠는 자기 꽃집 차리는 게 꿈이라고 했어요.”

“그래?”

미안한 말이지만.

손님들이 꽃집에 들어오다가 도로 나가지 않을까.

“아마 잘할 거예요.”

민주가 하는 말이니.

안심, 또 안심이다.

여하튼.

계약은 성립됐고.

이제 남은 건…….

타이밍을 보는 일이다.

“어어! 채한올 배우님! 거기 돌 조심하십시오!”

“가, 감사합니다.”

“제가 먼지 하나 안 묻게 해드리겠습니다!”

“저, 돌부리 조심…… 어머! 괜찮으세요?”

“하하! 괜찮습니다!”

엄청난 일당 덕인지.

아니면 한올의 팬이 된 건지.

의욕 넘치는 두칠을 보고 있자니.

느낌이 아주 좋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