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65화 (65/200)

65.이엔 엔터 오디션(1)

드라마의 흥행 요인은 다양하다.

좋은 각본, PD의 훌륭한 연출, 작가의 대본 집필력, 그리고 제작사의 충분한 지원 등.

하지만 요인들 중에서도 최고를 꼽으라면.

역시 주연 배우의 열연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윤은 <그 남자의 메모리>가 세운 케이블 최고 시청률 기록의 일등공신이나 다름없다.

두 개의 자아를 오가는 신들린 연기.

말이 필요 없는 비주얼.

여기에 영화 <기적의 레시피>의 흥행으로 드라마가 얻은 반사 이익까지.

그렇기에 지금 이엔 엔터의 전화기는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무박 2일> 작가입니다. 최도윤 배우님을 게스트로 섭외하고자 이렇게 연락을…….

-<놀라운 오디션>에서 연락드렸습니다. 최도윤 배우님께 패널 출연 제안을…….

-<요리대첩> 제작진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최도윤 배우님께 제안드릴 점이 있어서…….

예능‧교양 등 프로그램을 가리지 않고 섭외가 들어왔으며.

심지어.

솔로 음원 발매를 제안하는 쪽도 있었다.

도윤이 피처링에 참여한 OST가 음원차트 최종 3위까지 올라갔고, 그런 이유로 도윤의 화제성을 노리며 발매를 제안한 것 같았지만…….

애석하게도 이엔 엔터 쪽에서 먼저 거절해버렸다.

“죄송합니다. 최도윤 배우는 연기 활동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음원 발매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거절에 도윤은 크게 아쉬워했다는 게 포인트라면 포인트.

“형 진짜 아쉬워하는데요.”

“아깝다. 음반 제작했으면 진짜……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요, 까비.”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한 성호와 민주는 덤이다.

여하튼.

도윤은 드라마를 마친 후 잠깐의 휴식만을 취한 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버라이어티 예능.

토크쇼.

음악예능 패널,

유명 브랜드 화보 촬영 등.

물론 가리지 않고 되는 대로 나간 건 아니다.

수철, 동민, 그리고 필요하다면 성호와 민주까지 동원해 최상의 전략을 짠 뒤 알맞은 프로그램에만 출연했다.

덕분에 나올 때마다 뜨거운 반응이 줄을 이었고.

서서히, <그 남자의 메모리>에서 도윤이 선보였던 사이코패스 연기와 독특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었다.

-최도윤 완전 순진하네 ㅋㅋㅋㅋㅋ

-팬들 주접드립 칠 때마다 울먹임 참는 거 치인다 치여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MC들 놀리면서 깐족대는 거 봐라 ㅋㅋㅋㅋㅋ

도윤의 콘셉트는 꽤 자연스레 잡혔다.

자퇴 서류를 내러 갔을 때 학교에서 있었던 일도 그렇고.

<기적의 레시피> 200만 공약 행사 당시 팬들 앞에서 맥을 못 추는 모습이 유튜브에서 큰 화제가 되며 제작진도 이를 이용한 것이다.

덕분에 사이코패스 연기로 강렬한 충격을 선사했던 도윤이 이제는 색다른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되고 있었고-

“……아니, 이게 반응이 좋다고?”

“세상엔 참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죠.”

“이 팀장, 나는 이해를 못 하겠는데…… 도윤이가 그냥 집에서 대본 보고 요리하다가 끝난 이게 반응이 그렇게 폭발적이라고?”

“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요.”

<나 홀로 집에>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도윤은 믿기지 않을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불렀다.

“내가 늙은 건가?”

하루 종일 대본만 보고.

그러다 잠깐 직접 요리해 먹고.

그러다 다시 대본 삼매경에.

잠깐 TV를 보는 게 끝.

그런데 그게 무려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음…… ‘꿀노잼’이라는 반응이 있네요.”

쉽게 말해.

딱히 재미있어 보이진 않는데.

흐트러진 모습으로도 가릴 수 없는 도윤의 비주얼과 분위기 덕분에 시청자들이 눈을 뗄 수 없었던 것.

“보기만 해도 힐링된다, 흐트러진 모습도 치인다, 저기 가서 드립 치고 싶다, 울먹거리는 모습 보고 싶다…….”

“으음.”

수철이 댓글 반응을 차례로 읽어내자 동민이 앓는 소리를 냈다.

“나도 공부 좀 해야겠어. 이거 원, 요새 젊은 사람들은 확확 바뀌니. 아무튼 좋은 건 맞지?”

“네. 순간 최고 시청률 23% 기록했으니까요. 예능에서 이만한 시청률도 드물 겁니다. 덕분에 그쪽 PD가 엄청 고마워합니다.”

참고로.

<나 홀로 집에>는 도윤이 회귀한 미래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프로그램이지만.

현시점에선 아니다.

연예인의 솔직한 일상을 보여준다는 명목으로 시작되었지만.

너무 늦은 편성 시간.

부족한 화제성.

그리고 출연 패널들의 케미 문제도 있어 이대로 묻혀도 이상하지 않을 프로그램이었는데…….

“도윤이가 한 건 제대로 해준 셈이구만.”

“네. 아마 그래서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가 유지될 것 같습니다. 그쪽 PD랑 작가가 그러는데, 이엔 엔터 연예인은 무조건 1순위로 섭외하겠다고 합니다.”

도윤이 출연한 편을 계기로 검색어는 물론 화제성과 이슈 데이터 1위를 차지하고 날아오르기 시작한 셈.

물론.

도윤은 <나 홀로 집에>가 미래에 성공하는 예능 프로그램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성공하고 주목받게 되는 건 원래의 미래에선 조금 더 늦게 일어나는 일이다.

다시 말해.

도윤의 출연으로 <나 홀로 집에>는 더 일찍 빛을 보게 된 셈.

“당장 출연할 연예인이 없어도 토크에 초대할 패널도 얼마든지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PD님이 최선을 다해서 홍보해 준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좋네. 좋아. 이거 참, 도윤이한테 매번 도움만 받는군.”

여하튼 도윤 덕분에 이엔 엔터는 훗날 성공할 예능 프로그램의 PD와 좋은 관계를 만들어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동민이 뿌듯해하면서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자 수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한테는 고마운 배우죠.”

가는 곳마다 화제를 만들어내고.

이제는 20대 배우들 중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지니게 된 도윤.

“그런 의미에서 얼른 우리도 소속 연예인들 좀 빠르게 올려야겠어. 참, 서류 취합은 끝났나?”

“예, 면접에 부를 인원들에게는 개별 연락 돌려 놓았습니다.”

“좋아. 원석이 있는지 알아보자고. 혹시 아나? 도윤이만 한 재능이 있을지.”

동민이 넌지시 던진 그 말에 수철이 슬며시 웃음 지었다.

“그러면 참 좋겠지만…… 아마 힘들 겁니다.”

“그렇긴 하지. 도윤이가 어떤 녀석인데. 이 팀장 자네 전성기 시절도 훌쩍 뛰어넘었고.”

“제 전성기가 어디 뭐 볼 게 있었나요.”

“왜. 연극판에서 레전드 찍고 올라와서 거의 3년을 혼자 해먹었는데. 연극 쪽에서 아직도 애들 해마다 티켓 보내주고 인사도 온다면서?”

수철은 고개를 저었다.

“과거의 영광이죠.”

그러곤 이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저처럼은 안 돼야죠. 도윤이는.”

* * *

드디어 이엔 엔터 연예인 오디션 날이 밝은 가운데.

“도윤아, 오늘 잘 봐라. 재능 있어 보이면 바로 골라봐.”

도윤은 수철, 동민과 함께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도윤이 오디션을 보는 건 아니고, 이엔 엔터에 지원한 지망생들의 오디션이었다.

저번에 동민이 제안했던 대로, 도윤이 면접 심사관 자격으로 참여한 것이다.

이엔 엔터 최고의 연예인이자 현재 20대 배우들 중에서는 톱이라 할 수 있는 배우.

도윤이 참석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오디션장에 들어서는 지원자들의 눈빛이 달라질 것이다.

뭐, 사실.

‘내가 아는 원석이 있을지도 모르고.’

도윤 입장에선 이런 이유가 가장 컸다.

듣기로는 지원자가 백 단위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에서 혹시 자신이 회귀 전 인상 깊게 봤던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올지 안 올지는 모르지만.’

그때 동민이 은근슬쩍 물어왔다.

“참, 도윤이. 다음 작품은 정했나?”

“아직요. 장르는 아마 좀 바꿀 것 같은데, 작품은 아직 안 정했습니다.”

“그래?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고. 전사적으로다가 지원해 줄 테니까.”

이제는 뭐, 거의 전적으로 믿는 분위기다.

고르는 것마다 대박을 치는, 이엔 엔터의 유일한 ‘캐시 카우’니까.

“정 고르기 어려우면 한동안 쉬는 것도 방법이야. <그대 내 품에>, <알고 있는가>, <기적의 레시피>, 거기에 <그 남자의 메모리>까지. 네 작품 연달아 뛰었잖아? 그것도 세 작품은 주연급으로.”

수철의 말이 틀리진 않다.

도윤은 지금 휴식기를 가져도 이상하지 않다.

안 그래도 <그 남자의 메모리>에서 ‘이다한’을 촬영하며 얻은 약간의 후유증이 남아 있었으니까.

듣기로는 유나와 승원도 들어오는 모든 제안들을 보류한 채 한동안 쉬기로 결정한 듯했다.

하지만 왜일까.

여전히…….

욕심이 난다.

주연만 연달아 세 번을 했는데도, 왜 아직도 지치기는커녕 욕망이 끓어오를까?

연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10년을 기다려서?

이제 모두가 원하는 배우가 되어서?

아니다.

이건 그냥-

연기가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 이 팀장 말도 맞지.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어. 지금 잠깐 쉬고 돌아온다고 인기 안 떨어져. 오히려 몸값만 오를걸? 봤잖아? 케이블 최고 시청률에 영화는 500만 돌파했어. 그런 배우가 좀 쉬고 왔다고 약발 떨어졌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렇기에 도윤은 맞장구치는 동민을 보며 슬쩍, 웃어 보였다.

“조만간 답 드리겠습니다.”

“그래. 참, 성호랑 민주는 휴가 보냈다면서?”

“예. 한 보름 푹 쉬다 오라고 했습니다.”

“매니저랑 스타일리스트 그렇게 챙겨주는 연예인도 드물 거야. 따로 보너스도 챙겨준다면서?”

“네.”

“하여간.”

여하튼.

이제는 오디션에 집중할 상황.

“서류에서 추려낸 지원자가 50명……. 이 팀장, 잘 보라고. 좋은 재능이 있을지.”

“맡겨두시죠. 근데 저보다 도윤이 눈이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하하.”

도윤은 그 말에 씩 웃으며 지원 서류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익숙한 이름도 있고.

모르는 이름도 있다.

그리고.

조금 다른 이유로 도윤이 아는 배우도 있었다.

‘채한올.’

바로, 지금 보이는 이 서류의 주인공처럼.

‘그…… 영화였었지. <그 여름>.’

<그 여름>.

그건 대중들에게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독립영화였다.

하지만 <그 여름>은 개봉 직후부터 채한올의 청초하고도 아름다운 비주얼과 연기력 덕분에 입소문을 타더니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채한올은 대중들의 주목을 조금씩 받게 되고-

어떤 드라마의 조연으로 발탁되어 신인답지 않은 좋은 연기력과 완벽한 비주얼로 사랑받기 시작한다.

‘상당했었지.’

도윤은 케케묵은 ‘청순’과 ‘첫사랑’ 이미지를 제대로 되살려냈던 한올을 떠올렸다.

하지만.

한올은 그 이후 어떤 작품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다 1년쯤 지났을까.

[배우 C,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

[경찰 “타살 의혹 없다” 내사종결……]

한올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한창 재기하기 위해 이런저런 작품을 보고배우들의 연기를 공부하던 시점의 도윤은 그때 큰 충격에 빠졌다.

눈여겨봤던 배우가 그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이후 공개된 유서에는-

한올이 겪었던 수많은 어려움이 담겨 있었다.

소심한 성격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던 많은 관심.

스토킹.

그리고.

전 극단 단원들의 협박과.

전 남자친구의 집요한 금전 요구까지.

도윤은 그때 느꼈던 충격을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의미로 충격을 느끼고 있다.

‘이것도 미래가 바뀐 영향이겠지.’

원래대로라면 이엔 엔터는 지금쯤 이 바닥에서 없어졌을 회사.

도윤의 건으로 동민이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결국 사업을 접어야 할 만큼 큰 타격을 입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도윤 덕분에 맹렬히 성장하는 엔터 회사 중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 이 ‘채한올’이라는 재능 있는 배우가 지원하게 된 셈.

하지만.

도윤이 모르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아, 아, 안녕하십니까아! 채, 채한올이라고 합니다!”

한올이 이엔 엔터 오디션에 지원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그래요. 너무 떨지 마시고. 지원 동기 한번 들어봅시다.”

“네, 그, 아, 알겠습니다! 저, 저는 <그 남자의 메모리>에서 주연을 맡으신, 여기 계신 최, 최도윤 선배님과 함께 연기하는 게 꿈이라 지,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도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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