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58화 (58/200)

58.흐름이 좋다

흐름을 탔다.

그렇게밖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개봉 2주 차 200만을 달성한 <기적의 레시피>는 점점 입소문을 타더니 3주 차에 300만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긴 다리>가 동력을 잃고 상영관을 점점 축소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상황.

그리고 <긴 다리>가 빼앗긴 상영관은 고스란히 <기적의 레시피>에 배정되었고.

[<기적의 레시피>, 다윗이 승리하다!]

[<긴 다리>, 손익분기점 못 넘기나? 400만에서 ‘주춤’]

[평단, “부담 없는 영화의 시대를 열었다”]

<기적의 레시피>는 이제 400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정말 다행이야.’

도윤은 300만 공약이 직접적으로 계속 마주하는 공약이 아니라 안도하고 또 안도했다.

300만 공약은 출근길 커피 배포였다.

물론 바쁜 그 틈을 타 드립을 날리는 팬들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녹용’으로 결정타를 맞았던 지난 프리허그 공약 때보다는 견딜 만했다.

아무리 익숙해지려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팬들의 주접.

심지어, 나날이 발전하기까지.

“형, 오늘도 사슴 같네요. 제 마음을 ‘녹용’.”

“넌 보너스 없다.”

그리고 그 주접들을 고스란히 주워들은 성호가 써먹는 것까지 생각하면…….

“오빠. 이거 봤어요?”

“뭔데.”

도윤은 민주마저 자길 놀리나 싶어 눈을 흘기며 고개를 돌렸는데.

“<그 남자의 메모리>. 지금 차트 10위네요.”

“뭐?”

도윤은 민주가 보여준 음원 차트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번 드라마에서 발매한 동명의 OST, 그러니까 도윤이 피처링에 참여한 <그 남자의 메모리>가 무려 10위까지 등반한 것이다.

“10위……요?”

“응.”

성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그런 성호에게 심드렁하게 답하는 민주.

그리고.

“봤지? 나 노래 좀 한다니까?”

도윤은 아주 뿌듯한 표정으로 어깨에 잔뜩 힘을 줬다.

성호는 그만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민주는.

“이러다 사이버 가수의 시대가 오는 거 아닐까요.”

“응?”

“아니에요, 아무것도.”

노래는 좋다.

현대의 기술력 덕분에.

그래서일까.

노래에 달린 댓글도 찬양일색이다.

-도윤오빠는 목소리도 좋음……☆

-최도윤은 못하는 게 없네 ㅋㅋㅋ

-이제 노래까지…… 이게 나라냐?

-와 ㅠㅠㅠㅠㅠ 스밍총공 갑니다 ㅠㅠㅠㅠ

민주는 생각했다.

가급적.

노래를 불러야 하는 행사가 있다면 무조건 막아야겠다고.

팬들의 이런 환상을 깰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여하튼.

흐름은 아주 좋았다.

도윤이 생각했던 대로-

<기적의 레시피>는 순항하는 중이다.

그리고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실도 있다.

바로, 이 <기적의 레피시> 흥행에 도윤이 꽤 크게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연 배우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는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이건 좀 경우가 다르다.

왜냐하면.

드라마와 영화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

[<그 남자의 메모리>, 6화 시청률 9% 돌파!]

[<그 남자의 메모리> 시청자들, “최도윤 때문에 영화 보러 간다”]

[<기적의 레시피>, 최도윤 효과에 관객 증가세 유지……]

쉽게 말해.

최도윤이라는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가는 것이다.

<그 남자의 메모리>를 본 도윤의 팬들이 <기적의 레시피>를 보고.

<기적의 레시피>에 입덕한 팬들이 마침 방영 중인 <그 남자의 메모리>를 보면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낳는 것.

영화는 300만을 넘었고.

드라마는 9% 넘어 10%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팬카페 1만 명 돌파했어요.”

팬카페도 마찬가지다.

부매니저로서 모든 게시글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던 민주는 덤덤하게 소식을 전해주었다.

“별명 또 하나 생겼네요. ‘믿보최’.”

“믿고 보는 최도윤?”

“성호야. 오늘 좀 똑똑하다?”

도윤은 민주의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겸손을 떨기엔…… 지금 나타나는 이 현상들이 말하는 건 명확했다.

정말.

‘믿고 보는 최도윤’이라고.

‘진짜 500만 가겠는데.’

자신이 모르던 작품이었기에 완벽히 확신할 수는 없었다.

<기적의 레시피>는 어디까지나 도윤이 주연을 맡으면서 시작될 수 있었던 작품.

하지만 도윤은 대본과-

이창욱, 그리고 자신을 믿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형, 근데 500만 공약은 뭐로 하시게요? 팬사인회는 어때요?”

은근 기대하는 듯한 성호.

보나 마나.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려는 목적일 테지.

물론 도윤은 호락호락하게 당해주지 않았다.

“이미 정했어.”

“뭐로요?”

“제작진에서 외식 쿠폰 뿌리기로.”

“아.”

성호가 아쉬워하던 그때.

민주가 슬쩍 나섰다.

“오빠. 성호 요새 운동 빼먹어요.”

“누, 누나!”

“말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 보여서.”

“오, 그래?”

도윤은 히죽거렸다.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성호야.”

“네?”

“살 빼면, 아는 동생 소개시켜 줄게.”

“……정말이죠?”

“그럼.”

도윤은 믿어보라는 듯 팔짱을 꼈다.

성호는 요새 외롭다.

그냥 외로운 정도가 아니라 외로움에 몸부림을 친다.

그래서 가장 강한 미끼를 던진 것이다.

과연 이러고도 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해볼게요.”

성호의 눈빛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도윤은 민주를 힐끗 바라봤다.

“부탁할게?”

“맡겨두세요.”

물론 민주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진다.

보너스라는 콩고물과.

분기별 휴가라는 콩고물이.

‘근데 어떻게 매번 중국에 가지. 지겹지도 않나.’

얼마 전에 보니 또 중국에 갈 계획을 세우는 것 같았다.

중국에서 촬영 중인 드라마 <신삼국지> 촬영을 구경하러 간다는데…….

‘뭐, 이젠 놀랄 것도 없으니까.’

문득 성호가 물었다.

“형. 근데 서이솔 배우님이랑은…… 연락 안 해요?”

“연락?”

“그때 SPT 광고 촬영 때 번호 교환하시지 않았어요?”

도윤이 피식거렸다.

물어보는 이유가 뻔히 보였다.

“원래 바늘에는 실이 따라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실이 좀 두꺼워서 바늘에 안 들어갈 것 같더라.”

성호가 도윤의 일격에 충격을 받은 듯 입을 쩍 벌렸다.

“너, 너무하세요.”

“평소 하는 걸 생각해 봐.”

지이잉.

그때 타이밍 좋게도 수철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 팀장님.”

-도윤아. 기쁜 소식이다.

“기쁜 소식이요?”

-응. SPT 광고 제안 추가로 들어왔어. 이번에도 하나 찍자는데?

“…….”

도윤은 성호를 슬며시 바라봤다.

서이솔과 함께 찍었던 그 SPT 광고.

그놈의 ‘티’를 강조해서 찍었던 광고.

2탄은 제발 안 된다고 간절히 바랐던 광고.

“……팀장님, 제가 생각을 좀.”

-서이솔 쪽에서도 바로 오케이했대. 이 정도면 뭐, 바로 고 아니냐?

명분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 *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SPT에서 제안한 두 번째 광고는 저번과 전혀 다른 콘셉트였다.

도윤과 이솔이 이번에도 커플 콘셉트로 출연하는 건 맞지만, 이번에는 멀티 유심이 아니라 SPT의 LTE를 강조하는 광고였다.

덕분에 촬영은 아주 기분 좋게 마무리되었다.

NG도 없었고, 감독도 만족했다.

무엇보다 도윤이 만족했다.

그리고 성호가 바라던 대로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를 각각 대동한 술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건배!”

“건배!”

장소는 이솔이 자주 가는 바(BAR).

참고로 이 바 사장과 이솔이 아는 사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솔은 선글라스도 벗고 모자만 하나 쓴 채 아무 걱정 없이 와인을 마셨다.

“아, 이게 얼마 만에 마시는 술이야. 야, 기철아. 알지? 비밀이다.”

“네, 네. 알죠.”

기철은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쉬었지만.

“대신 안주는 제가 고릅니다.”

“히잉. 튀김 먹으려고 했는데.”

“모레 촬영이에요.”

“내일 굶고 가면 안 돼?”

“저번에도 그 약속하고 족발 시켜 먹다가 저한테 걸렸잖아요.”

“……치사한 놈. 하여간 매니저란 녀석이 인정이 없어요, 인정이.”

“저한테 하는 거 기자들이 알면 인성 논란 터질걸요.”

덤덤한 기철의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수긍하는 이솔.

“그건 인정. 내가 배고프면 좀 예민한 편.”

그러더니 도윤에게 슬며시 지원을 요청한다.

“최도윤 배우님은 안 그래요?”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전 그냥 있는 대로 먹고 말아서요.”

“있는 대로 다 먹는다구요?”

“아뇨. 그냥 있는 거 먹고 말아요.”

“……사기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지?”

이솔이 울상을 짓는 사이.

성호는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기철을 바라봤다.

그리고 민주는.

“어머, 고양이 이름이 여포요? 언니 너무 재미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도 상대의 호감을 얻고 있었다.

“스타일리스트분이 되게 재미있네요.”

“요새는 그걸 걸크러시라고 한다던데요.”

“우리 스타일리스트는 너무 순둥순둥해서. 이번참에 좀 배우면 좋겠는데.”

이솔이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제가 말 편하게 하자고 말 안 했었나요?”

“안 하셨는데요.”

“그럼 지금부터 하죠, 뭐. 스물다섯 살이죠? 전 스물여섯 살.”

“한 살 많네요.”

그렇게 간단히 호칭도 정리되고.

술자리에서는 주로 이솔이 대화를 주도해갔다.

“근데 말이야, 연기 도대체 어떻게 해?”

도윤으로선 할 말이 없는 질문도 있었다.

그냥 열심히 대본 보고.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분석하고.

뭐, 그런 원론적인 말밖에.

“재능이라 이거지?”

“네, 뭐. 그렇죠.”

“와. 다른 사람이 말하면 재수없을 것 같은데 도윤이 네가 하니까 납득된다. 그래서 재수없어.”

재수 없다는 걸까, 아니라고 하는 걸까.

여하튼.

이솔은 꽤 소탈해 보였다.

매니저와도 스스럼없이 막말을 주고받고.

그렇다고 대책 없이 고집을 부리는 것도 아니다.

“아, 젤리! 안주도 먹게 해주는데 왜 젤리는 안 되는데!”

“이거 핑계로 내일부터 젤리 입에 달고 살 거잖아요.”

“그건 그렇…… 아! 뺏겼어!”

“더 연습하고 오세요.”

다만 젤리에 대한 집착은 상당해 보였다.

“아, 내 젤리이.”

“어쩔 수 없죠. 딱 하나만이에요.”

“사랑해, 기철…… 뭐야. 하나만이라면서.”

“네. 한 봉지 말고 하나요.”

“……나쁜 놈.”

도윤은 젤리를 무슨 셰프가 트러플 다루듯 조심스레 집어 올리는 이솔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재미있는 사람 같다.

“어우, 이러면 드라마 끝나도 젤리는 구경도 못 하겠네. 바로 정규앨범에, 다시 작품에…… 기철아. 나 한 2년만 쉴까? 저기 어디 산에 들어가서 자연인처럼.”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씀드리면 될까요?”

“인정머리 없는 놈.”

도윤이 그때 물었다.

“정규앨범 준비하세요?”

“응. 3집. 그래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 촬영 끝나면 바로 녹음실 가고 그러거든. 그래서 살이 막 쭉쭉 빠지거든? 근데 얘는 젤리 하나 못 먹게 한다니까?”

“저번에 그래서 젤리 줬다가 일주일 만에 3킬로 쪘잖아요.”

“……기밀유지도 안 되는 놈이고.”

투덜대는 이솔이 문득 눈을 빛냈다.

“그런 의미에서, 한번 들어볼래?”

“뭘요?”

“당연히 이번 정규앨범 수록곡이지.”

“누나.”

“어허, 내가 들려주겠다는데. 젤리도 안 준 놈은 가만히 있어.”

기철이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고, 이솔은 그사이 휴대폰에 이어폰을 끼우고 도윤에게 한쪽 유닛을 건네주었다.

그 모습에 성호가 부러워 미치겠다는 표정이 된 건 덤.

도윤이 유닛을 귀에 꽂자.

“바로 틀게.”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너무 익숙했던 나머지 하마터면 흥얼거릴 뻔한 도윤.

‘많이 들었었지.’

<꽃사랑>.

이솔의 팬들 사이에서는 ‘숨은 명곡’이라 불린 곡.

[그대의 밤에 찾아가는]

[나의 꽃을 봐요]

[그대의 꿈에 찾아가는]

[내 손의 꽃을 봐요]

서정적인 노랫말과 잔잔한 멜로디.

여기에 노래를 부를 때면 허스키해지는 이솔의 음색이 더해지자, 아직 믹싱이 제대로 끝나지 않았음에도 이 곡의 가치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런데.

‘정규앨범이라고?’

도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윤은 회귀 전 이솔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

그래서, 이 곡 <꽃사랑>이 정규앨범 수록곡이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안다.

그런데 지금 이솔은 <꽃사랑>이 정규앨범 수록곡이라고 말했다.

“정규앨범 수록곡이라고 했었죠?”

“응. 근데 사실 안 들어갈지도 몰라. 앨범 컨셉이랑 안 맞거든.”

아.

도윤은 그제야 이해했다.

이솔의 정규 3집, 는 지금 들려준 <꽃사랑>과 완전히 다른 느낌의 곡들로만 구성된 앨범.

<꽃사랑>이 서정적인 가사와 느릿한 템포로 흘러가는 곳이라면.

는 이솔이 처음으로 EDM을 비롯한 각종 빠른 템포의 곡들로만 구성한 앨범이다.

그래서 아마 <꽃사랑>은 다음 정규앨범에야 포함되었고, 그마저도 타이틀곡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 가 망한다는 것.

물론 이솔의 기준에서 말이다.

노래는 다들 괜찮았는데, 뭐 하나 꽂히는 게 없다고 해야 할까.

‘서이솔이라는 이름값으로 들었다가, 다들 실망했었지.’

“그래서, 어때?”

도윤은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며 묻는 이솔을 바라봤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너무 좋은데요.”

“그치? 그치이? 야, 기철아. 들었지?”

“이번 앨범 컨셉이랑 안 맞잖아요.”

“내가 넣고 싶다니까?”

그때 도윤이 한마디 보탰다.

“앨범에 들어가면 좋겠는데요. 앨범마다 그런 곡 하나쯤은 있잖아요.”

이솔쯤 되는 인기의 가수라면 앨범 곡 선정 권한 정도야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도윤은 개인적인 팬심과.

원래대로라면 그저 그런 반응만 얻고 사라질 <꽃사랑>을 떠올리며 덧붙였다.

“노래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오케이. 한 명 접수.”

이솔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생글거렸다.

아마.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모양이다.

도윤은 그 고민에 도움을 준 것이고.

이솔은 내친김에 성호 쪽으로도 고개를 돌렸다.

“아, 맞다. 성호 씨도 한번 들어볼래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달려온 성호.

그러곤 유닛을 귀에 꽂자마자.

척.

엄지를 세웠다.

“최곱니다. 역시 서이솔! 크으으으으!”

“아직 플레이 버튼 안 눌렀는데…….”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