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200만 돌파 공약 수행
재훈의 예상대로였다.
<그 남자의 메모리>는 살인 씬이 선사한 강렬한 자극 탓에 화제가 되었고, 결국 큰 이슈를 만들어내며 몇몇 보수적인 언론들의 포화를 맞았다.
심지어.
[<그 남자의 메모리> 방통위 심의 올라간다…… “불쾌한 살인 묘사”]
[<그 남자의 메모리>, “혐오감을 주는 장면 묘사”라며 방통위 심의……]
조감독의 예측대로 정말 방통위 심의에 올라갔다.
주된 명분은 바로 직접적인 살인 묘사가 없었어도 그 불쾌감이 도를 넘어섰다는 것.
그런데.
[시청자, 방통위에 비난 폭주…… “왜 드라마를 드라마로 못 받아들이는가?”]
[<그 남자의 메모리> 팬들, 방통위에 집단 민원…… “드라마는 드라마다”]
오히려 팬들이 나서줬다.
정확히 말하면, 도윤의 팬들이 나서줬다.
도윤의 팬카페, 달달한도라떼의 회원들은 물론.
이 건이 이슈가 되자, 평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심의를 남발해 이미지가 좋지 않던 방통위가 폭격을 맞은 것이다.
비슷한 씬이 있는 다른 드라마와 비교하거나.
단순히 배우의 연기가 좋아서 벌어진 일을 두고 심의까지 갈 이유가 있냐는 등.
수많은 민원들이 쏟아졌고.
결국 방통위는 심의 결과 처분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꼬리를 내리고야 말았다.
“봐, 내가 뭐라고 했어.”
덕분에 재훈은 이럴 줄 알았다며 기세등등해졌고.
이런 가운데 <그 남자의 메모리>는 3화 시청률 5%대를 돌파하며 오히려 상승기류를 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격렬한 상승기류.
막장드라마와 비슷한 경우다.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는데 시청률은 오르는 기이한 현상.
물론 경우는 약간 다르지만, 아주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그 남자의 메모리>가 화제가 된 이유는…….
주연 배우의 연기 때문이었으니까.
[……재미있잖아. 그래서 죽이는 거야.]
[저, 그, 제, 제가 이다한이라구요? 제가요? 제가 이 사람이었다구요?]
사이코패스 살인마와.
순진무구한 톱스타.
이 두 배역을 오가는 도윤은 마치…….
쌍둥이 배우가 서로 다른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것 같았다.
물론 스토리가 받쳐줬기에 배우의 연기 역시 빛이 나는 거지만.
도윤의 연기는.
선후 관계를 따지기엔, 너무도 압도적이다.
한편.
수철과 함께 <그 남자의 메모리> 3화를 시청한 동민도 엇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느낌 좋네. 이번 드라마도 10% 넘어가나?”
“이 정도면 케이블의 아들급 아닐까요.”
“배우가 어디 방송사 보고 작품 고르나. 고르고 보니까 케이블이지. 그래도 뭐, 지상파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긴 해.”
“아마 계속 시장은 커질 겁니다. 그나저나, 시청자 반응이랑 이렇게 상반되는 결과를 보이는 드라마는 참 오랜만이네요.”
동민이 주억거렸다.
“시청자 반응만큼 들쑥날쑥한 게 없어. 어떨 때는 여론을 참 잘 반영하는데, 어떨 때 보면 그냥 무시하고 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이번에는 좀 경우가 다르네요.”
“그렇지. 다르지. 보면서 불편하긴 한데, 계속 보고 싶어. 도윤이 이 녀석, 도대체 얼마나 준비한 거야? 아우, 방통위에서 심의한다고 해서 내가 얼마나 쫄았게.”
동민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사실 걱정하긴 했어도, 잘할 거라 생각했다.
최도윤이니까.
그런데 이렇게나 잘 해낼 줄이야.
“이 팀장이 보기엔 어때?”
“비슷한 나이대의 배우들 중에서는 비빌 수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덤덤하기에 더더욱 와닿는 평가.
“촬영도 순조롭다고 하고, 반응도 좋으니까요. 광고도 곧 완판될 것 같다네요.”
“좋네. 우리 쪽에 들어온 도윤이 광고는?”
“너무 많아서 보류 중입니다. 적어도 드라마 촬영이 좀 마무리되고 여유가 생겼을 때 진행할 생각입니다.”
“몸값 더 올려서 진행하겠다는 말로 들으면 되겠지?”
수철은 대답하는 대신 어깨만 으쓱였고, 동민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호재가 하나 더 있네요.”
“호재?”
“오늘 영화 개봉합니다. <기적의 레시피>요.”
“얼마나 나올 것 같나?”
“글쎄요. 봐야 알겠지만…… 시사회 반응이나 평론가들 평을 봤을 때 무난하게 흘러갈 것 같습니다.”
무난하다.
그대로만 흘러가면 나쁘진 않겠지.
‘한 200만? 그 정도만 돼도 준수하지. 하필 <긴 다리>랑 붙는데.’
<긴 다리>.
상업영화계의 거장 ‘조창식’이 준비한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블록버스터 영화.
그래서 큰 기대는 없다.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하고.
<긴 다리> 정도의 스케일 큰 작품과 붙는데, 핑계라도 생기는 거 아닌가
이른바 ‘명예로운 죽음’ 말이다.
뭐, 그렇다고 영화를 못 만든 것 같진 않다.
시간을 쪼개 <기적의 레시피> 시사회에 다녀온 바로는, 느낌이 꽤 좋았으니까.
그리고 첫 영화다.
‘손익분기점이…… 140만이라 했었나?’
제작진에게는 실례일 수 있지만, 손익분기점만 넘겨도 신인 배우에게는 충분히 자축할 만한 일.
‘아무튼 까봐야 알겠지. 이 드라마처럼.’
문득 도윤과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500만 넘으면 차 한 대 뽑아주겠다고 했었는데. 에이, 설마.’
그럴 확률은 희박하다.
하지만 넘기만 한다면야.
한 대.
아니 세 대도 뽑아줄 수 있다.
여하튼.
100만.
높게 잡으면 150만.
정말, 아주 높게 잡으면 200만?
<기적의 레시피>에 대한 기대치는 딱 그랬다.
하필 2014년 최대 기대작 <긴 다리>와 개봉 시기가 겹쳐버리고 말았으니까.
전쟁영화라는 장르 특성상 스케일은 말할 필요도 없고, 조창식이라는 이름값 아래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한 <긴 다리>.
덕분에, 상영관을 독점해 버리며 국내 최대 영화관 두 곳에서 대놓고 밀어주기까지.
때문에 보통 이런 상황이면 개봉을 조금 미루거나 하는 식으로 경쟁을 피해갈 법도 한데…….
이미 홍보도 잔뜩 해뒀고, 미루기엔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지 <기적의 레시피>는 예정된 개봉일 그대로 개봉했다.
그것도 <긴 다리>와 고작 이틀 차이로.
때문에 사람들은 말했다.
시기가 안 좋았다는 둥.
<긴 다리>랑 상영 시기만 안 겹쳤어도 괜찮았을 거라는 둥.
제작비만 열 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승부할 거냐는 둥.
대체로, 동정하는 모습이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 * *
일주일.
첫 개봉한 영화의 성적을 예상하기엔 충분한 시간.
종종 입소문을 타고 역주행하는 경우도 있으나, 상영관 회전이 빠른 최근 경향에서는 일주일이면 영화의 흥행을 판단하긴 충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기적의 레시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긴 다리>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긴 다리>는 개봉 전까지만 해도 올해 최대 기대작으로 꼽힌 영화.
1천억이라는 제작비와 스타 배우들, 거기에 조창식이라는 감독의 이름값까지. 심지어 전쟁영화라는 장르였기에, ‘제2의 <태극기>’라는 타이틀을 노리던 작품이다.
덕분에 첫날 역대 최고 관객 수를 기록하며 기대대로 되나 싶었는데…….
[<긴 다리>, 이게 1천억 제작비 영화라고?]
[어설픈 전우애, 어설픈 진영논리, 어설픈 스토리…… 전쟁영화인가, 영상 화보집인가?]
[‘CG는 돋보였으나’, 스토리가 애매했던 <긴 다리>]
[또 억지 감동? 지나친 전우애 묘사, 안 하느니만 못하다]
평단의 혹평 폭격과.
-ㅋㅋㅋㅋㅋ 또 신파네 신파야 ㅋㅋㅋㅋ
-CG만 볼만했음
-아니 뭔놈의 전쟁영화가 주제가 없으면 전투씬이라도 넣어놓지 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ㅅㅂ 자기 상관 죽인 북한군이랑 갑자기 친구먹는 게 말이 되는 거냐?
-솔직히 너무 잔인함;;; 욕설 심한 건 참아줄 수 있는데 잔인함에 맥락이 없음. 그냥 CG기술 과시하는 느낌.
기대감에 잔뜩 차서 관람하고 돌아온 관객들의 분노 어린 반응을 얻어맞았다.
CG만 좋았다.
스토리가 빈약했다.
개연성이 너무 없다.
그렇다고 전투씬이 많은 것도 아니다.
어설프게 진영논리를 투입했다.
온갖 혹평 속.
<긴 다리>는 일일 관객 숫자가 점점 줄어들며 ‘얼마나 흥행할 건지’에서 ‘과연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을지’로 그 초점이 옮겨갔고.
[<기적의 레시피> 감동과 편안함 다 잡았다…… 관객수 점점 증가해]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승리하는 건 <기적의 레시피>?]
반면 <기적의 레시피>는 이런 <긴 다리>의 혹평 속에서 생각보다 높은 평가를 받으며 일일 관객이 증가하는 놀라운 흐름을 타고 있었다.
-편하게 보기 좋더라 ㅇㅇ
-스토리는 예상 가능한데 배우들이 연기를 잘함
-감독이 음식 좀 찍을 줄 알던데 ㅋㅋㅋ 영화 끝나고 엄청 배고팠음
-대회 때 만든 스테이크 집에 가서 만들어봤는데 개꿀맛 ㅋㅋㅋ
기대치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적은 제작비로도 충실하게 내용을 구성해 낸 감독의 힘일까.
그도 아니면.
배우들의 힘일까?
확실한 것 하나는.
<기적의 레시피>는 분명히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이라는 사실과.
현재 계속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것.
또한, 다소 불쾌하고 잔인한 장면이 다수 삽입된 <긴 다리>와 달리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스토리 덕에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지속적으로 찾고 있는 것도 큰 호재.
여기에 더해.
[최도윤, 이제는 영화까지 섭렵? 흥행의 아이콘!]
[최도윤, 또 한 번 연기 변신…… 이 20대 배우의 한계는?]
[‘최고의 신인 배우’ 최도윤, 영화 속 요리 실력으로 눈길 끌어]
<기적의 레시피>의 주인공 ‘오민석’ 역을 맡은 도윤이 다시 한번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고.
“질서를 지켜주세요! 너무 가까이 오시면 위험합니다!”
“꺄아아악! 최도윤!”
“오빠! 오늘 입은 티 큐티이이이!”
도윤은 지금.
200만 돌파 공약을 수행하기 위해 영등포 미닛스퀘어에 나와 있었다.
공약은 바로 프리허그.
덕분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다.
조감독이 오늘 공약을 보러 온 사람들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진짜 200만 넘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못 넘을 줄 알았냐?”
창욱이 눈을 흘기자 조감독은 얼른 덧붙였다.
“상대가 상대였잖아요. 아니, 솔직히 개봉 전에 누가 저희 영화가 흥할 거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래서 <긴 다리>가 망해서 우리가 흥한 거다?”
“꼭 그런 건 아니죠. 근데 상영관 차이도 그렇고, 여하튼 엄청 불리했지 않았습니까.”
조감독의 말이 맞다.
영화는 상영관 숫자에 따라 관객 동원 파워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헐리우드 경쟁작이 없어 거의 70%를 넘는 상영관을 배정받은 <긴 다리>였다.
누가 봐도 다른 영화야 망하든 말든 밀어주려는 모습처럼밖에 안 보였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TJ랑 온데에서 계속 상영관 늘려준다고 하니까, 앞으로 더 좋아지겠지.”
“300만 보십니까?”
“아니. 500만.”
조감독이 입을 쩍 벌렸다.
“500만이요?”
아무리 입소문을 탄다 해도…….
500만은 너무 과한 거 아닐까?
요새 하도 천만, 천만 해서 그렇지, 500만은 엄청난 관객 숫자다.
하지만 창욱은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배우들한테 조만간 말하려고. 공약들 생각해 두라고.”
그런 한편.
“오빠, 예쁜 거 보여줄까요? 짠! 거울 보세요!”
“오빠. 다 잘하는데 하나만 고쳐주면 좋겠어요. 제 심장.”
여전히 면역력을 만들지 못한 도윤이 팬들의 주접에 울먹이고 있자 창욱이 별일 다 본다는 듯 피식거렸다.
“최 배우가 저러는 건 처음인데.”
도윤은 지금 일생일대의 위기 속에서 포옹할 때마다 주옥같은 멘트를 치는 팬들 때문에 그야말로 죽을맛이었다.
“오빠. 사람 미치게 만드는 두 가지 방법 들어본 적 있어요?”
“네?”
“첫 번째는 말을 하다가 마는 거고, 두 번째는…….”
저렇게 말하고 포옹은커녕 쿨하게 가버리며 도윤을 멍하게 만드는가 하면.
“오빠. 저 등산하고 왔어요.”
“드, 등산이요?”
맥락 없는 멘트에 도윤이 도대체 또 무슨 말이 나올까 고민하는 사이.
“네. 오빠 코 타고 5박 6일. 너무 높아서 오래 걸렸어요.”
상상도 못 한 드립이 계속 터져 나왔다.
팬들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도윤은 오늘을 위해 그간 자신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온갖 주접들을 다 연구하며 만반의 준비를 마친 바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어디 한번 올 테면 와 보라는 각오였는데-
그게 다 소용이 없어진 셈.
역시나.
도윤의 팬들은 한 수 위였다.
“오빠를 음계로 표현하면 ‘레’가 아닐까요?”
“그, 그게 무슨 소리죠.”
“‘도’를 지나쳤고, ‘미’치기 직전이니까.”
상상을 초월하는 멘트들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도윤은 어떤 팬에게 결정타를 맞았다.
“오빠. 오빠는 사슴 닮았어요.”
사슴?
방금 팬이 코 드립을 치고 갔으니 혹시 루돌프 사슴코가 아닐까?
도윤이 어떻게든 대답을 짜내려 고민하던 그때.
“내 마음을 ‘녹용’.”
“…….”
결국 상상도 못 한 한 방을 얻어맞고 울먹거렸다.
“또 하나 주웠다. 아싸.”
“녹용 저건 좀 참신하다.”
그리고 성호는 도윤을 놀릴 생각에 벌써부터 기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