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56화 (56/200)

56.시작되는 역사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사건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내내 그 생각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애초에 ‘사건’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도윤은 후자였다.

‘뭐야? 왜 웃어?’

도윤이 지금 민주가 자신을 볼 때마다 슬며시 웃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는 건, 아마 그때 그 일을 ‘사건’이라 생각조차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아침입니다.”

“아, 예. 선배님. 좋은 아침입니다.”

아무리 술잔을 부딪치며 무언의 의기투합을 했다곤 해도 승원의 태도가 눈에 띄게 부드러워진 이유 역시, 그 ‘사건’이 이유일 거란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목은 좀 어때요?”

“목이요? 아. 그때요. 괜찮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요. 그럼.”

묘하게 웃음을 띠고 있다고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여하튼.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도윤만 인식하지 못하는 ‘사건’은 그렇게 도윤에 대한 시선을 약간이나마 바꿔두었다.

물론.

아주 긍정적인 쪽으로 말이다.

“마냥 완벽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아니네?”

“그러니까요. 인간적이지 않아요?”

종탁과 유나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자리를 피하는 승원을 보며 낄낄거렸다.

이유를 깨닫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하는 도윤의 표정은 덤.

“그래도 뭐, OST는 제작될 거라고 하니까요. 다음에는 안 된다고 하지만. 음악감독님 표정, 보셨죠?”

“두 번은 못 봤어. 그 이상 보면 빵 터질 것 같았거든. 내가. 으히힉.”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오는지 종탁은 연신 낄낄대다 문득 유나에게 물었다.

“근데 유나 넌 유독 즐거워 보인다?”

“그럼요. 이제야 좀 다가갈 여지를 찾은 느낌…… 헙.”

유나는 황급히 입을 막았고.

종탁은 그런 유나를 애써 모른 체했다.

이런 한편.

“형. 다음에 노래방 같이 콜?”

성호는 한번 잡은 건수를 절대 잊지 않고 써먹었다.

문제는.

도윤이 그 의도 자체를 못 깨달았다는 것.

“후회 안 할 자신 있냐?”

“네?”

“나 한번 가면 기본이 세 시간이거든.”

성호는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터질 뻔한 웃음을.

‘이,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겠지?’

옆에 있던 민주도 마찬가지.

하필이면 도윤의 표정은 세상 진지해서, 누가 보면 벌써 정규앨범까지 낸 가수가 말하는 것 같았다.

“그…… 그래요?”

“그러니까 각오하고 말해.”

민주는 아예 자리를 피해 버렸고, 도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왜 웃는데?”

“아, 아니에요. 그냥. 기대돼서요.”

“그래. 마음껏 기대해라.”

결국 성호는 울음을 참는 건지, 웃음을 참는 건지 모를 얼굴이 되어 그만 차에 쏙 들어가 버렸다.

“뭐야?

도윤은 결국 의문을 풀지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곧 나올 OST.

그것만 생각하면.

가만히 있다가도 실실, 웃음이 나오던 참이다.

안 그래도 가족들에게는 다 알린 참.

[유동하: OST? 진짜 니가 불렀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오면 꼭 알려줘랔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발 ㅋㅋㅋㅋㅋ]

[유리나: 오빸ㅋㅋㅋㅋㅋㅋ 진짜로? 진짜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버지: 우리 아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 많이 나아졌겠지...?]

[어머니: (웃는 이모티콘)]

반응이 영 이상했지만.

이것도 다 기대감에서 나오는 거라 생각한 도윤은 걱정하지 않았다.

OST 제작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까.

다만.

지금 음악감독이 골머리를 싸맨 채 밤을 새운 지 사흘 차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무튼 뭐.

이런 가운데 –도윤의 생각에 따르면-OST 못지않게 드라마 제작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고.

마침내 첫 방영을 앞두게 되었다.

[<그 남자의 메모리>, 화요일 10시 첫방!]

[‘기대작’ <그 남자의 메모리>, 예고편의 충격 그대로 이어갈까?]

[최도윤‧한유나‧이승원. ‘대세 배우’ 3인방, 시청률 견인할까?]

[‘미니시리즈 탈출’ 강미나 작가, “기대해도 좋을 것” 자신감 드러내]

그리고 언론 보도가 하나둘 나올수록.

“유 PD, 기대할게? 이 갈고 준비한다면서?”

“어이구, 강 작가. 미니시리즈 계속하지. 갑자기 무슨 스릴러야? 로맨스도 없다면서?”

“유나야. 그냥 좋게좋게 가지. 그거 매니아층만 보는 거 아니냐.”

드라마 촬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주변인들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정신들 차리고 움직이자. 곧 방영이야! 테이프 다시 한번 체크해! 스포일러 될 수 있는 거 발견하면 바로 보고하고!”

“애들 입단속 단단히 시켜! 기자놈들 유도질문에 괜히 걸리지 말고. 혹시라도 흘리는 놈 있으면 내가 가만 안 둔다!”

긴장감은 더더욱 높아졌다.

<그 남자의 메모리>는 자주 시도되지 않는 장르의 드라마다.

초반에 드러나긴 하지만 주요 인물이 반전을 품고 있고, 사건을 해결하면서 드러나는 진실들이 스토리의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한다.

때문에 작가 미나는 물론, 모든 사람들이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에헤이, 우리가 몇 년을 보고 지냈는데. 그러지 말고, 조금만 알려줍시다. 네? 거, 나만 좀 알고 있을게요. 아니, 기사를 낸다는 게 아니라 팬이라 그래요.

‘팬은 무슨, 지랄.’

-PD님, 그러지 마시고요. 네? 좋게 써드린다니까. 프리뷰랑 리뷰 딱딱 해서 1위 올라가는데? 드라마는 화제성 챙기고, 나는 궁금한 거 풀고! 돈도 안 드는데 남는 장사도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기자님. 마음은 고마운데, 거 드라마 보고 기사 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지금 촬영이라 이만 끊겠습니다, 그럼.”

-잠시만요, PD님. PD…….

바로 지금처럼.

사방에선 유혹의 손길이 다가오고 있었다.

‘거, 진상들. 끈질기네.’

PD가 항상 캐스팅 청탁 같은 부탁만 받는 건 아니다.

종종 이런 식으로 드라마 스토리를 물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 스토리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사람도 있지만, 이 경우는 백이면 백 스포일러를 대놓고 요구하는 사람.

물론 재훈이 말할 리 없다.

말했다간…….

[스포일러 하는 사람들은 알죠? 앞으로 자리 없을 거예요. 영원히.]

재훈은 생글생글 웃으며 엄포를 놓던 미나를 떠올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동창회 자리에서 유정연의 뺨을 날렸던 강미나라면 분명히 가능할 것이다.

암, 그렇고말고.

여하튼 뭐.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재훈은 오히려 웃고 있었다.

이런 관심이야말로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는 뜻이니까.

물론 기대감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걸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실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겠지만.

아무래도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뭔 놈의 전화가 이렇게 오는지. 자, 스탠바이됐으면 바로 갑시다. 레디…… 액션!”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질 배우들의 연기는 분명히, 늘 그래왔듯 대단할 테니까.

6화.

씬 넘버 3.

‘이다한’은 ‘최형식’과의 만남에서 첫 번째 기억을 되찾고, 다시 ‘톱스타 이다한’으로 돌아오며 서서히 혼란을 겪게 된다.

“아니야, 아니야…….”

톱스타이자 사이코패스 살인마.

까칠하고, 어딘가 모르게 음습했던 ‘이다한’이 사이코패스의 기억을 잃으며 달라진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인성 좋은 스타 이다한’이라는 별명까지 붙으며 전성기를 달리지만.

‘이다한’은 자꾸 고개를 드는 위화감에 괴로워한다.

“난…… 도대체 누구지?”

정체성의 의문.

그리고.

-당신, 내가 옷 벗는 한이 있어도 까발린다. 기대해.

주기적으로 찾아오거나, 찾아오지 않더라도 ‘이다한’의 뇌리에 남아 그를 괴롭히는 ‘최형식 형사’.

그 모든 것이 합쳐져 괴로하던 어느날.

‘이다한’은…….

마침내 ‘사이코패스 이다한’의 두 번째 기억을 각성한다.

“……그래. 그런 느낌이었지.”

히죽.

방금까지 괴로워하며 안쓰러워 보이기만 하던 얼굴에 소름 끼치는 미소가 번져 나간 그 순간.

꿀꺽.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고.

촬영장은 정적으로 잠겨든다.

그리고 입꼬리를 올린 채 몸을 일으킨, 두 번째 기억을 찾은 ‘이다한’은.

부르르…….

떠올린 기억을 몇 번이고 곱씹으며 그날 느꼈던 쾌감에 몸을 떨더니 급기야-

“으히히…… 으흐흣…… 푸흐흐흐흐!”

광소(狂笑)를 터뜨렸다.

쉴 새 없이 꿈틀거리는 얼굴 근육.

부르르, 떨리는 손.

들썩이는 어깨.

과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연기.

저게 과연-

3년 차 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연기일까?

아니, 그전에.

‘연기’이긴 할까?

‘미치겠군.’

도윤은 ‘이다한’이라는 인간이 지닌 두 개의 인격을 더 이상의 대사 없이도 완벽하게 구분해 내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모니터링하는 화면으로도 이 정돈데.

편집이 완료된 화면으로 볼 시청자는, 도대체 저 연기를 보고 뭐라고 느낄까?

소름이 돋을까?

아니면 그냥 멍하니 지켜볼까?

그도 아니면…….

최도윤이 아니라, ‘이다한’이라는 배역 그 자체에 공포를 느낄까?

“총 열 명…… 멍청한 새끼들. 고작 송장 세 개 찾고 호들갑은.”

재훈은 지금 마치 어린아이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마련한 어린아이.

그리고 그 선물을 받을 누군가가 보일 반응을 상상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아이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도저히 떨어질 것 같지 않은 끈적한 느낌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촬영을 끝내고 싶었다.

“다음은 그 형사 새끼로 해볼까? 아니야. 간단해 보이진 않던데…… 눈빛이 미친 새끼였어. 나처럼.”

재훈은 깨달았다.

그래.

이건 불쾌함이다.

최도윤이라는 배우가 펼치는 연기에 대한 불쾌함이 아니라…….

마치 실재하는 듯한.

‘이다한’에 대한 불쾌함이다.

“이거, 문제 될 수도 있겠는데.”

오케이사인을 내린 재훈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촬영하는 자신이 이 정도인데.

표현을 극대화시키는 편집 작업을 거친 결과물을 볼 시청자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조금 다른 의미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군.’

* * *

보통 첫 방영날에는 제작진과 배우들이 함께 모여 모니터링 겸 회식을 한다.

혹시라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자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 축하의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남자의 메모리> 제작팀은 방영 첫날 따로 모이진 않겠다는 공지를 돌렸다.

“엥? 이상하네. 보통 모여서 볼 텐데. 뭐지? 그날 스케줄이 안 맞나?”

“글세, PD님한테 뭐 들은 게 없는데.”

“뭐 어때. 케이블이라 그럴 수도 있지.”

“에이, 유재훈 PD님 지상파에서 이적하신 분인데.”

“됐어, 됐어. 뭘 그렇게 깊게 생각해. 잘됐지. 솔직히 그거 어떤 사람한테는 고역이야.”

배우들은 의아해했지만, 대체로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오히려 이참에 배우들끼리 편하게 모여서 웃으며 보자는 의견이 모여 유나와 종탁이 의기투합했다.

“도윤아. 너도 콜?”

“좋죠.”

여기에 도윤이 합류했고.

“……예. 가죠.”

의외로 승원도 ‘흔쾌히’ 수락하며 자리에 합류하며 네 명의 배우들은 방영 당일 룸을 잡아 느긋하게 방영 시간을 기다렸다.

“근데 첫방 시청률 몇이나 나오려나.”

“케이블이니까 한 3퍼센트? 그리고 쭉쭉 올라가서 10퍼센트 넘기면 대박인데.”

“대박뿐이겠어? 초대박이지. 도윤이 넌? 제작발표에선 7퍼센트 공약이었잖아. 뭐라고 해더라? 포옹 공약이었지?”

도윤은 종탁의 물음에 간단히 답했다.

“한 3퍼센트 나올 것 같은데요.”

사실 도윤도 잘 모른다.

애초에 회귀 전 도윤도 접해보지 못한 드라마였으니까.

하지만.

느낌은 나쁘지 않다.

“승원이 너는?”

“1퍼센트요.”

“염세주의적인 자식. 그래,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장르가 장르니까.”

사실 탄탄한 고정 시청층만 확보해도 남는 장사. 그래도 기대해 볼 만하다.

배우들의 연기가 받쳐주고, 드라마의 초반부는 아주 밝은 느낌으로 흘러가니까.

“아, 광고 끝났다. 시작한다. 다들 빨리 잔 채워봐.”

그사이 광고가 끝나며 드디어 드라마, <그 남자의 메모리>가 시작되었고.

“…….”

“…….”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첫 씬의 강렬한 시퀀스가 선사하는 긴장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찰박, 찰박.

고인 물웅덩이를 밟는 ‘이다한’의 장화.

그리고 우비 아래 드러난 소름끼치는 미소와.

푸욱, 푸욱.

날카로운 무언가가 부드러운 무언가를 가르고 들어가는 소리.

‘역시…….’

‘장난 없다, 장난 없어.’

‘…….’

이를 바라보던 세 명의 배우들이 마른침을 삼킨 반면.

도윤은 그저 덤덤한 눈빛으로 자신의 연기를 바라본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화.

강미나 작가가 장르를 숨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꺄아아아악! 이다한!]

[왜, 왜, 왜 이러세요!]

[오빠아아아아!]

시작은 마치 로코물을 보는 느낌이다.

미니시리즈를 쓰던 작가라 그런가, 일상적인 느낌과 주인공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을 잘 표현해 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느낌만 보면 전혀 스릴러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다.

[아니, 다한이가 왜? 기억을 전부 잃었다고?]

[미치겠네, 이거 진짜. 와. 당장 다음 주 스케줄만 수십 건인데. 야, 이거 어떻게든 해보자. 머리라도 한 대 때려볼까?]

이어지는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

마치 기억을 잃은 톱스타 ‘이다한’이 과거 까칠했던 성격을 청산하고 ‘순진무구한 톱스타’로 변하는 듯한 그 느낌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다 중간.

“으히히히…….”

“큽, 크흡…….”

“……풋.”

도윤이 피처링한 OST가 흘러나오자 도윤을 제외한 셋은 배를 잡았다.

도윤만이 눈을 감은 채 마치 음미하듯 감상할 뿐.

마치 명곡을 듣는 것처럼 말이다.

그 바람에 차마 웃음을 참지 못한 종탁이 기어이 쿠션에 얼굴을 묻어버리고야 말았다.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OST는 좋다.

음악감독이 어찌나 신경을 쏟았던지.

아예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 OST를 녹음할 때의 도윤을 본 사람으로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간적이야. 인간적. 으흐흐.’

그러다 후반부.

[……증거가 없어. 증거가. 돌겠군.]

형사, ‘최형식’이 등장하며 분위기는 서서히 긴장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리고 마침내.

[서지아 기자 연락 왔던데요? 제보할 게 있다고.]

[제보?]

[네. 증거 관련해서요. 바로 연락해달랍니다.]

증거.

그토록 찾던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말을 듣는 ‘최형식’의 씬을 끝으로.

1부가 마무리된다.

“이야. 느낌 좋은데?”

“그러게요. 와, 몇 번을 봤는데 편집이 대단하긴 해요?”

“괜찮네요.”

세 사람이 입을 모아 칭찬하고.

“좋네요.”

도윤 역시 만족한다.

과연.

지상파 짬이 어딜 가는 게 아니다.

재훈은 씬과 씬을 잘 엮어 아주 흥미진진한 스타트를 끊은 것이다.

덕분에.

“우와. 첫방 시청률 3.1퍼센트!”

“대박인데! 순간 최고 시청률이야?”

“평균이요! 순간 최고 시청률은 4.3퍼센트!”

“캬아!”

<그 남자의 메모리>는 최고 시청률 4.3이라는, 대단한 기록과 함께 출발했다.

[<그 남자의 메모리> 기대감 속 첫방 4.3% 시청률 기록!]

[‘훌륭한 스타트’ <그 남자의 메모리>, ‘순진무구 톱스타’ 최도윤 연기 돋보여]

[<그 남자의 메모리>, 또 한 번 케이블 신화 쓰이나?]

[최도윤, ‘성공보증수표’ 될까? 이슈데이터 1위 기록!]

기사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1.그남자의메모리

2.최도윤

3.이승원

4.한유나

5.에볼라 바이러스

.

.

실시간 검색어도 당연하다는 듯 장악해 버렸다.

여기에 팬카페 회원수가 다시 급증하고, -도윤에게는-쓸데없이 도라떼 판매량이 늘고, 1화에 삽입된 도윤이 피처링한 OST <그 남자의 메모리>가 음원 차트 등반을 시작한 가운데.

다음날 방영된 2화 반응은.

“……내 이럴 줄 알았지.”

1화와는 ‘조금’ 달랐다.

“생각보다 파장이 있는데요. 적나라해서 그럴까요?”

딸깍, 딸깍.

조연출과 함께 기사를 들여다보는 재훈.

[<그 남자의 메모리>, 치미는 불쾌감]

[‘해도해도 너무했다’ <그 남자의 메모리> 시청자 게시판 아우성]

[‘너무 잔인했다’,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사운드가 너무 적나라했다’ 시청자 반응 활활]

“생각 이상인데요.”

2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스릴러 분위기.

그 가운데, 후반부에 나온 기억을 잃은 ‘이다한’이 떠올린 살인의 기억 장면이 지금 화제가 되고 있었다.

대체로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과.

머릿속으로 상상되는 바람에 소름이 끼쳤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연기가…… 그냥 보고 있으면 진짜 같음

-진짜 살인마 데려온 거 아님? ㄷㄷㄷㄷ

-소름이 확 끼치더라

-근데 보다가 꺼야 하는데 끄질 못했음 ㅠㅠㅠㅠㅠ

-와…… 연기를 뭐 이렇게 하냐.

이 모든 불쾌감의 원인이.

도윤의 ‘연기’ 때문이라는 것.

내용이 불편해서도.

재미가 없어서 화제가 되는 게 아니다.

마치 배역 그 자체가 된 듯한 주연 배우의 연기력으로 인해 일어난 일.

“괜찮을까요. 방통위 심의 올라간다는 말, 안 나올까요? 아, 그 꼰대 같은 인간들 생각하면 진짜…….”

덕분에 조연출은 벌써부터 시말서를 쓸 생각에 머리가 아픈 것 같았지만.

“그걸 네가 왜 걱정해?”

“그야…….”

“써도 내가 쓰고, 책임져도 내가 책임져. 어차피 만들어졌잖아. 이제 와서 작가 교체라도 할 거야? 아니잖아.”

재훈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래.

애초에 예상치 못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다.

생각해 보면…… 이것만큼 더 좋은 화제는 없지 않은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배우의 연기 때문에 이런 이슈를 부른 것이니까.

“배우한테 타격이 있지 않을까요?”

“글쎄. 최 배우, 더 열심히 했으면 했지 그걸로 자기 이미지 고착화된다고 멈출 사람 아니야.”

“그렇긴 해도.”

“그리고 최 배우 봤으니까 알잖아? 이미지 그거, 고정되든 말든 상관없어. 다른 연기도 똑같이 잘할 배우야.”

그렇기에.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

“아, 알겠습니다.”

재훈은 확신을 표했다.

이슈가 얼마나 터지든.

이 드라마는.

분명히 성공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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