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연기였는데…….
밥차 덕분에 시작부터 분위기는 아주 좋았고.
마침내 시작된 본촬영은 순조로운 느낌 속에서 시작되었다.
“컷-! 좋습니다. 그런데 감정이 아주 약간 아쉽네요. 바스트만 다시 한번 딸게요!”
첫 촬영이라 약간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분위기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표정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어차피 각자의 스타일은 시간이 지나면 서로에게 맞춰지는 것.
시작부터 기 싸움이라는 이유로 힘을 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맞지 않는 부분을 강조하기에는 오늘 촬영에 임하는 배우들의 자세와 연기가 남달랐다.
“솔직히 내가 봐도 이상하긴 하단 말이야. 아니, 무슨 40년 전에 일어난 사건도 아니고 2014년에 벌어진 사건에 증거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
“선배. 그거 혹시 자살인데 타살로 위장, 뭐 그런 거 아닐까요?”
“야, 이 미친놈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자살하는데 자기 죽음을 타살로 위장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무슨 보험사기도 아니고. 사람이 칼에 찔려 죽었다고.”
“그러니까요. 칼로 스스로를 찔러서…….”
“됐다. 말을 말자. 하여간 연예부 놈들은…….”
현재 촬영 중인 장면은 주연 캐릭터 중 한 명인 ‘서지아 기자’가 최근 들어 연달아 일어나는 의문의 살인 사건을 두고 연예부의 아는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씬.
‘좋네. 역시 한유나야.’
재훈은 막힘없는 딕션을 보여주는 유나의 모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좋습니다. 바로 다음 씬 들어갑시다!”
그리고 이어지는 씬은 이승원이 맡은 ‘최형식 형사’가 파트너 형사와 차 안에서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
“야, 형식아. 이거 우리가 증거 찾을 수 있을까?”
“찾아야죠. 어떻게든. 없으면 없는 대로라도 수사해야 합니다.”
전대미문의 살인 사건.
지금이야 그냥 증거를 찾는 중이다,
현재 수사 중이다라는 변명으로 일관할 수 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상황이 어려워질 것이다.
두 달 사이 벌써 증거 없는 살인 사건이 세 건이나 벌어졌으니까.
“선배님은 짐작 가는 거 없습니까?”
“알면 이렇게 차에서 죽치고 있겠냐? 나도 내가 한심하다.”
한숨을 쉬는 선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최형식’은 빵 봉지를 거칠게 뜯더니 빵을 한 입 우물우물 씹는다.
하지만 차에 대기하며 주변을 살피는 눈빛은 형형하기 그지없었고.
“주연들 쟁쟁하네. 연기는 먹고 들어가겠다야.”
“비주얼도 죽여. 한유나는 말할 것도 없고 이승원도 장난 없고. 이러니 드라마가 애들 망친다는 소리 나오지. 세상에 저런 기자랑 형사가 어디 있냐?”
하지만 그런 비현실적인 비주얼에 묻히지 않도록 자신의 연기를 최대한 뽐내야 하는 게 바로 배우라는 직업.
그런 의미에서 유나는 원숙미를 선보이며 PD 재훈과 작가 미나를 흡족하게 만들고 있었고-
“리딩 때도 잘했는데, 본촬영에서는 얼마나 더 잘하려나.”
“<알고 있는가>에서도 보던 스태프들 다 감탄했다잖아. 나도 기대 중이야.”
이제 드디어 도윤의 차례가 다가왔다.
스탠바이 직전 도윤의 표정은 늘 그랬듯 무표정했다.
끌어올리는 감정을 피부 아래 가둬두고, PD의 사인만을 기다리는 상태.
그리고 그 모습을 유난히 뚫어져라 쳐다보는 한 사람.
‘리딩은 리딩이고, 촬영은 촬영이지.’
승원은 리딩에서 분위기를 압도하던 도윤의 모습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리딩과 본촬영은 분명히 다르다.
주변의 시선.
아직 익숙지 않은 세트장.
야외의 공기.
그리고 표정과 동선까지 고려해야 하는 연기.
어려움으로만 따지면 리딩과 비교할 수 없는 게 바로 본촬영.
그래서 승원은 자신에 비하면 경험조차 별로 없는 도윤이 본촬영에서 분명히 버벅일 거라 생각했다.
“자, 스탠바이해 주세요!”
이런 가운데 도윤은 이제 곧 촬영할 씬의 대사들을 빠르게 되짚었다.
플래시백.
씬 도중 다른 장면을 삽입시켜 회상이나 상상을 표현하는 기법.
지금 도윤이 연기할 씬은 바로 그 플래시백에 이용될 씬이다.
기억을 잃은 사이코패스 살인마, ‘이다한’이 극 흐름에 따라 하나씩 천천히 떠올리게 될 자신의 ‘행적’이 담긴 씬.
때문에 감정이 필연적으로 들끓을 수밖에 없었지만, 도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더없이 고요한 눈으로 PD의 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꿀꺽.
어느새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해진 촬영장.
‘이제 되겠군.’
베테랑답게 주연 배우가 감정을 차분히 끌어올릴 시간을 주었던 재훈은 드디어 손을 들었고.
“레디…… 액션!”
마침내 도윤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쏴아아아아아아-!
살수차가 흩뿌리는 굵은 빗줄기가 몸을 때리고.
찰박.
고인 웅덩이를 밟는 장화 신은 발을 카메라가 클로즈업시킨다.
그리고 서서히 발이 흐릿해지며 초점은 주저앉은 채 벌벌 떠는 ‘희생자’의 얼굴을 비췄다.
“읍, 으으으읍!”
입이 막히고 손발을 결박당한 채 쏟아지는 빗줄기를 그대로 맞고 있는 희생자의 모습에.
씨익.
클로즈업한 카메라에 비친 ‘이다한’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더니.
희생자에게 묻는다.
“기분이 어때?”
“읍, 으읍…….”
“말해봐. 지금 중요한 순간이야. 아, 미안. 입이 막혔구나. 풀어줄까?”
천장이 무너진 공사장.
벽쪽에서 애처롭게 몸을 비트는 희생자를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가던 ‘이다한’은.
그 앞에 쪼그려 앉아 히죽거렸다.
“대답해 봐. 풀어줄까, 말까? 살려줄 수도 있는데.”
그 말에 충혈된 눈으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희생자의 모습에 ‘이다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을 뻗어 희생자의 입을 막은 테이프를 떼어냈다.
지이이익.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시키는 대로 다, 다 하겠습니다!”
테이프를 떼자마자 들려오는 다급한 외침.
하지만 ‘이다한’은 가타부타 말없이 희생자를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은데.”
“네, 네? 그게 무슨…….”
“그렇잖아. 내가 이유도 없이 여기 널 데려왔을 리는 없을 테고. 안 그래? 뭘 잘못했는지 잘 생각해 봐. 말하면 풀어줄게.”
희생자는 재빨리 기억을 더듬는다.
왜 자신이 여기에 잡혀 왔을까.
왜 잡혀 와야만 했을까.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이다한’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면서, 평소에는 절대 들지 않을 감정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떠올린다.
“제, 제가 감히 실수로 사인해 달라고 쫓아오는 바람에…….”
“잘 아네. 그다음은?”
“사, 사인을 안 해줬다고 욕을 했습니다.”
공포에 젖은 희생자의 말이 이어지던 그때 ‘이다한’이 말했다.
“알면서 왜 그랬어?”
“죄,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 테니 제발…….”
그리고.
“근데 있잖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순간 몸을 떨 정도로 소름 끼치는 대사가 흘러나왔다.
“생각해 보니까 그냥 죽여야겠다.”
“네……?”
“그렇잖아. 너는 내가 누군지 알잖아. 괜히 입이라도 잘못 놀리면 피곤해질 것 같아서.”
“제, 제발. 제발!”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절규하는 희생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이다한’.
그리고.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카메라는 비에 젖은 ‘이다한’의 등을 비추고.
마침내 씬이 끝난다.
‘세상에.’
이 느낌은 뭘까.
마치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소름 끼치는 감각.
도윤의 연기를 지켜보던 모두가 그렇게 느꼈다.
살수차도 비를 뿌리는 걸 멈추고, 도윤도 동작을 멈췄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다.
“PD님, 저, 저기…….”
“어, 그, 그래. 컷! 오케이!”
심지어 재훈조차도 오케이 사인을 외치는 걸 잊고 있다가 조연출의 말에 다급히 입을 열 정도였으니까.
‘리딩이랑은 비교가 안 되는데.’
하지만 지금은 흡족한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도윤이 펼친 연기의 잔재가-
여기 이 촬영장을 가득 메운 채 떠나질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 살벌하다. 살벌해. 뭐 저러냐?”
“내가 말했지. 최도윤 대본이 제일 더럽다고.”
“진짜 소름 끼친다. 뭐 연기를 저렇게 하냐?”
지켜보던 스태프들은 물론.
“이야, 최도윤, 최도윤 하는 이유가 있었네. 유나야, 너 같이 촬영했었다면서? 그때 어땠어?”
“잘했죠. 근데 지금이랑 비교하긴 힘드네요.”
배우들까지 감탄한다.
유나는 <그대 내 품에> 촬영 당시 자신의 대사를 받아주며 차정수가 맡았던 배역을 연기하던 도윤을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도윤이 이런 배우가 될 줄은.
“물건이네, 물건.”
유나와 대화하던 종탁은 감탄을 흘리다 고개를 돌렸다.
승원이 있는 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승원은 홀린 듯 도윤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손을 떨고 있었다.
‘인정하면 좀 나을 텐데.’
아마 그럴 것이다.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극단 출신도 아닌 배우가 이런 압도적인 연기를 펼치며 사방을 휘어잡은 이 광경이 믿기지 않을 테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현실인걸.
모두가 도윤을 바라보는 이 현실.
그래서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아무리 부정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적응하면, 저 꽉 막힌 녀석도 조금은 바뀔지도 모를 테니까.
한편.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 배우, 도윤은.
“괜찮으세요?”
컷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희생자’ 배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단역 배우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으, 으아아악!”
자신이 다가가자 감정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한 단역 배우가 비명을 내지르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고.
‘연기였는데…….’
도윤은 그만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 * *
단역 배우가 상황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비명을 지르는 불상사가 일어나긴 했지만, 첫날 촬영은 이후로 문제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진행도 빨랐다.
카메라 숫자가 늘어나면서 쓸데없이 샷을 다시 따는 일이 줄어들 것.
덕분에 배우들도 한결 편안하게 연기를 마칠 수 있었다.
물론 도윤은 카메라가 적든 많든 항상 완벽한 대본 숙지로 막힘 없이 연기를 해낸 배우.
그런 도윤의 모습에.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너 이상하다.”
“왜, 왜요?”
“요새 얌전해서.”
성호였다.
“……제, 제가요?”
“너 또 뭐 꾸미냐?”
“아, 아닌데요.”
성호는 도윤의 추궁에 겁먹은 표정이었다.
이상하다.
평소에는 도윤이 뭘 하든 마이웨이로 개기던 녀석이었는데.
“솔직히 말해. 용서해 줄게.”
“아, 지, 진짜예요!”
분명 뭔가를 꾸미는 게 분명하다는 의심에 확신을 더하던 그때.
“성호 악몽 꿨대요.”
민주가 옆에서 슬쩍 한마디 던졌다.
도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악몽?”
“네. 오빠 연기하는 거 보고요. 그래서 요새 잠잠하잖아요. 고분고분하고.”
“…….”
어처구니가 없었다.
덩치는 산만 한 놈이.
성호가 슬며시 중얼거렸다.
“형이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알면 됐다. 잘하자?”
뭐, 말은 저렇게 해도 조만간 또 개길 녀석이니 신뢰가 가진 않는다.
아, 그나저나.
변한 게 하나 더 있었다.
리딩 때와는 조금 달라진 듯한 승원의 시선?
물론 문제도 아니고, 이걸로 뿌듯해할 일도 아니지만…….
뭐랄까.
자신을 향한 다른 사람의 시선이 바뀐 걸 느끼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오늘 첫 촬영 끝났는데 고기나 먹자. 저번에 갔던 그 돼지고깃집 어때?”
“야호! 고기!”
“넌 옆에서 상추나 씹어.”
“아니, 형…….”
“민주야, 얘 운동시키고 있지?”
“그럼요. 요새 빡세게 굴리고 있어요. 촬영장 옮길 때마다 근처 헬스장부터 알아보고 있어요.”
“돈 신경 쓰지 말고 팍팍 시켜. 저놈 나 은퇴할 때까지 굴려야 하니까.”
성호는 은퇴할 때까지 굴린다는 말에 감동받기는커녕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지금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형…… 저 진짜 먹지 말아요?”
“먹고 싶냐?”
바로 오늘 ‘팀 최도윤’ 회식에서 고기가 허락되지 않았다는 사실.
“생각 좀 해보고.”
“역시, 형밖에 없어요!”
“아, 생각해 보니까 안 되겠다. 민주 보너스 줘야 해서. 대신 마늘은 씹게 해줄게. 기름에 구워서.”
“……제가 무슨 곰이에요?”
곰 같은 덩치의 성호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인 그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신인 배우 차세연이라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신인 배우 조윤석이라 합니다!”
옆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 보니 잔뜩 긴장한 두 남녀가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있었다.
아.
도윤은 둘의 이름을 바로 떠올렸다.
“아, 반가워요.”
둘은 바로 이번 <그 남자의 메모리>에 단역으로 합류한 이엔 엔터 소속의 신인 배우들.
나이는 둘 다 22살.
그리고 둘 다 배우 지망생이다.
“서, 선배님.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우렁찬 외침.
참고로 둘은 이번 <그 남자의 메모리>에서 도윤 덕분에 기회를 얻었다.
수철이 <그 남자의 메모리>에 도윤이 출연하는 조건으로 소속 배우 몇몇의 출연 약속을 받아냈던 것이다.
이 바닥에서는 꽤 흔한 일.
일명 ‘끼워팔기’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엔 엔터처럼 영세한 소속사에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이기도 했다.
제작사는 도윤을 원했고.
이엔 엔터는 그런 제작사에 맞춰 움직인 것뿐.
쉽게 말해-
차세연.
조윤석.
이 두 명의 어린 배우는 도윤 덕분에 소중한 기회를 얻은 셈.
“오늘 잘하던데. 고생했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때문에 도윤의 그 한마디는 둘에겐 큰 칭찬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에, 아우라 미쳤어.’
‘완전 멋있다…… 나도 열심히 하면…….’
둘이 그렇게 떨리는 눈동자로 도윤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였다.
“두 사람, 오늘 돌아갈 때 이걸로 택시비라도 해요. 남는 건 밥 사 먹고.”
“아, 그.”
도윤은 두 사람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지갑에서 꺼낸 5만 원짜리 지폐를 두 장씩, 총 10만 원을 쥐여 주었다.
“열심히 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감동받아 다시 감사를 표하고 돌아간 두 신인 배우.
“오빠 요새 미담 생성기네요.”
저 둘에게 차비라도 하라며 용돈을 준 이유는 그냥 간단했다.
예전의 자신이 떠올라서.
물론 도윤은 비주얼로 빵 뜨고, 그때부터 빠르게 올라갔다가 빠르게 내리막길을 걸어 저런 과정이 없었지만…….
그래도, ‘기다린다’라는 게 뭔지는 잘 알고 있다.
오늘 단 한 씬을 위해 10시간 넘게 대기하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저 신인 배우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됐다. 미담은 무슨. 회식이나 하러 가자.”
도윤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돌렸지만.
그 표정은 꽤 좋아 보였다.
“그럼 오빠가 말한 거기 미리 전화해둘게요.”
그래서일까.
도윤은 갑자기 생각을 바꿨다.
“아니, 오늘은 돼지 말고 소고깃집 가자. 첫 촬영 날이니까.”
“소, 소고기!”
성호의 애처로운 비명이 들려오는 가운데.
“어, 오빠.”
“응?”
“이솔 언니랑 찍은 광고 떴네요. 유튜브에.”
도윤은 움찔했다.
이솔과 함께한 광고 촬영 자체는 즐거웠지만.
광고 내용을 굳이 두 눈으로 보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민주가 그런 도윤의 속도 모르고 재생을 시키는 바람에 고스란히 광고 내용이 들려온다.
[자기야, 나 무슨 티 입은 것 같아?]
[티? 무슨 티? 갑자기?]
[아잉, 알면서. 맞춰봐!]
[흰색 티잖아. 갑자기 왜 그래?]
[다시. 다시 해봐.]
[음…… 그럼 ‘큐티’?]
“…….”
“대체로 반응도 좋고, 제가 보기에도 느낌 좋네요.”
“다행이네.”
“아. 2탄 가자는 댓글도 있네요.”
도윤은 할 말을 잃고 외면했다.
하지만.
왜인지…….
2탄을 곧 찍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