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46화 (46/200)

46.멀티!(1)

[최도윤 소속사, “배우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최도윤, 태정대 자퇴 의사 밝혀…… 학과장, “학생 의견 존중”]

[태정대 경영학과 모 신입생 “태정대 오면 최도윤 볼 줄 알았는데” 울상]

[최도윤, 배우 활동 집중하기 위해 명문대 자퇴!]

-헐 최도윤 태정대 다녔었음?

-와 난 왜 몰랐지

-ㅁㅊ 뇌섹남이잖아

-??? 저 얼굴에 연기에 태정대... 이게 나라냐?

-아니 ㅋㅋㅋㅋㅋ 어처구니가 없네 ㅋㅋㅋ

-난 알고 있었는데 ㅋㅋㅋ

-와... 리스펙.. 자퇴 쉬운 거 아닌데

-특례입학해서 학교 일주일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애들보다 훨씬 낫다 ㅋㅋ

자퇴가 도대체 뭐라고 이렇게 화제가 될까.

도윤은 어제 학교를 다녀온 뒤 저녁 내내 자신의 이름이 검색어에 올랐던 걸 떠올렸다.

하긴.

이것도 능력이다.

도윤으로선 별거 아니라 생각한 일을 화제로 만들고, 이미지 메이킹에 활용하는 걸 보면 능력은 능력이다.

여하튼 자퇴는 확정됐고.

도윤은 다음날 다른 매니저의 도움을 받아 몰래 학교에 들렀다.

학과장 말고도 무슨 부총장이라는 사람이 와서 자퇴를 만류했지만, 속이 뻔히 보여 도윤은 간단히 거절하고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자퇴라는 단어에 입맛이 좀 쓰긴 했지만.

어차피 회귀했고 햇수로만 따지면 무려 10년 가까이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아쉽거나 하진 않았다.

그냥. 선택을 하나 한 것뿐.

그래서 홀가분하다 생각했는데-

“형님 팬들 앞에서 또 울먹거렸어요?”

“닥쳐. 성호야.”

“에이, 왜 그랬어요.”

생각지도 못한 다른 문제가 터졌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오빠, 오빠. 오빠 왜 이런 티 입어요?

-티, 티요? 설마 큐티?

-아뇨. 귀티.

저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드립들.

“동영상 꺼라.”

도윤이 무섭게 노려봤지만.

“누나, 이거 봐요. 팬이 학교에서 형 촬영한 거라는데 미쳤어요. 페북스타야, 페북스타.”

“티로 끝나는 말이 또 뭐 있지?”

이제는 민주까지 합세했다.

-어떡해! 울먹거려도 멋있어!

-오빠! 제가 지켜줄까요? 에스코트!

-오빠, 이번에 밴드 들어간다면서요? 허즈밴드. 깔깔깔!

도윤은 당장 저 동영상이 재생되는 휴대폰을 박살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라리 새로 사주는 한이 있더라도.

‘다음에 나갈 일 있으면 더 철저하게 가리고 나가야겠어.’

그래야 학교에서 겪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팬들은 좋아 죽겠다는 듯 깔깔거렸지만, 도윤은 울먹거리고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라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

그때 그 커피 공약 때 그놈의 동영상이 퍼져서 문제였지.

“어, 형 얼굴에 김 묻었다.”

그때 성호가 슬쩍 일어나 도윤에게 다가오더니 살살 약을 올렸다.

그사이 민주는 동영상 재생을 멈추고 한발 뒤로 물러났다.

곧 터질 상황을 예상한 재빠른 손절.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잘 울게 생김! 하하하하!”

성호의 답이 없는 드립이 터지는 그 순간.

“성호야.”

“네?”

“너도 얼굴에 김 묻었다.”

“에이…… 저도 알아요. 못생김이죠?”

“아니, 잘 개기게 생김.”

순간 성호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요새 개김성이 충만한데, 우리 대화 좀 할까?”

“형? 형? 혀어어어엉!”

비명이 이엔 엔터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민주는.

“음…… 이 코디가 괜찮겠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재빨리 착석해 아주 흥미롭다는 눈으로 코디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형, 형. 제, 제가 잘못…….”

“왜. 벌써 지쳤어?”

도윤이 악마처럼 히죽 웃던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성호를 살렸다.

도윤은 아쉽다는 듯 손을 내렸고, 성호는 환호하며 얼른 거리를 벌렸다.

문이 열리고, 수철이 들어왔다.

“사이 좋아 보이네?”

“그래 보여요?”

“응. 성호 고향 다녀왔더니 신났구나?”

“티, 팀장님. 저 형이랑…….”

“응?”

순간 성호는 도윤의 눈빛에 깨갱하며 조용히 태세를 전환했다.

“잘해보겠습니다!”

“허허, 그래. 잘해야지. 네가 도윤이 많이 좀 도와줘라.”

수철은 껄껄 웃곤 다시 도윤에게 고개를 돌렸다.

“도윤아. 때가 됐다.”

“네?”

갑작스러운 소리에 도윤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것도 잠시.

“너, 광고 또 들어왔어.”

“광고요?”

광고라면 이미 몇 개나 쌓여 있다.

그리고 이미 몇 개를 찍기도 했다.

그런데 수철에게서 옅은 흥분이 느껴지는 걸로 봐선-

“자식아, 통신사 광고야! 통신사 광고!”

역시.

급 높은 광고가 들어온 게 맞았다.

“통신사면 완전 대박이지. 이거 아무나 못 찍는다. 라이징이나 찍는 거야.”

“좋네요.”

사락.

도윤은 수철이 잔뜩 들떠 내민 제안서를 받아들어 표지를 바라봤다.

SPT 광고 제안서.

국내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자랑하는 통신사에서 광고를 제안한 것이다.

심지어-

“그리고 누구랑 찍는 줄 아냐? 서이솔이야, 서이솔!”

그 말에 환호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서이솔!”

말할 것도 없이 성호였다.

“형, 제가 충성할게요. 제가 사랑하는 거 알죠?”

“닥쳐.”

도윤은 팔을 붙잡는 성호를 매몰차게 뿌리치고 제안서를 넘겼다.

서이솔이라.

드디어 만나는구나.

‘로체’ 광고 영상에서 함께 등장하긴 했지만 정작 촬영장에선 만날 수 없었던 배우.

‘이번에는 사인받겠네.’

도윤은 오매불망 사인을 기다리고 있을 동하를 떠올렸다.

그러나.

“제안서 보면 알겠지만, 광고 컨셉이랑 아이디어 좋더라. 이거 꼭 해야 돼.”

제안서 내용을 본 순간 도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서이솔: 자기야, 나 무슨 티 입은 것 같아?]

[최도윤: 티? 무슨 티? 갑자기?]

[서이솔: 아잉, 알면서. 맞춰봐!]

[최도윤: 흰색 티잖아. 갑자기 왜 그래?]

[서이솔: 틀렸어! 다시!]

[최도윤: 음…… 뭐지?]

“……이거 진짜예요?”

“너 학교 가길 잘했어. 너 팬들 앞에서 울먹거리는 영상 그거 화제되는 바람에 난리도 아니야.”

“…….”

도윤이 보기에 제안서에 있는 대본은 가관이었다.

여자친구 역할로 출연하는 ‘서이솔’의 질문을 계속 맞추지 못하던 도윤.

그러다 느닷없이 SPT의 마스코트 캐릭터가 등장해 ‘멀티!’라고 대답하는 대본.

이번에 SPT에서 출시한 ‘멀티 유심’을 광고하는 장면이었는데…….

하필 도윤이 커피 공약 때도 그렇고 이번에 학교에 갔을 때 팬들이 던진 질문에 울먹거리던 장면이 화제가 되었고.

SPT는 그 화제성에 맞춰 대본을 만든 것.

“도윤아, 당연히 할 거지? 대표님도 이건 절대 놓치면 안 된다고 그랬어. 광고료만 1억이 넘어. 알잖아?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도윤이 할 말을 잃은 가운데.

“형, 제 맘 알죠?”

성호는 얼른 다가와 도윤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 * *

스타들의 스타.

서이솔을 표현하자면 딱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1살에 솔로 가수로 데뷔, <그거 알아>라는 노래로 히트하더니 이후 내는 곡마다 차트를 점령하며 순식간에 정점에 오른 솔로 가수.

그리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배우로 도전하기 시작한 이솔은 첫 작품에서 혹평을 받았지만.

두 번째 작품 <이별의 화원>에서 나쁘지 않은 연기를 선보이며 배우로서 가능성을 확인하기까지.

쉽게 말해.

가수로서는 정점에 오르고, 배우로도 잘 나가는 연예인.

“……이라는 말씀이죠.”

“귀에 딱지 앉겠다.”

“형, 그뿐만이 아닙니다. 완전 아름다워요! 여신, 여신 그 자체!”

“민주야. 얘 입 좀 막아라.”

“힘들 것 같은데요.”

도윤은 광고 촬영장으로 이동하는 내내 떠들어대는 성호의 모습에 그만 한숨을 쉬며 포기해 버렸다.

그러기를 30분.

끊임없는 성호의 이솔 예찬론에 도윤이 뒤통수를 한 대 칠까 말까 고민하던 그때 오늘 촬영이 있을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그리고 차에서 도윤과 함께 내린 민주가 말했다.

“어. 여기, 거기네요.”

“응?”

“오빠 작품 만든 제작사요. <그대 내 품에>.”

그러고 보니…….

정말 바로 옆엔 익숙한 건물이 서 있었다.

하긴.

여기는 각종 스튜디오가 밀집한 곳.

우연이라 해도 이상할 건 없다.

‘진주섭 PD님이 이쯤에서 만드는 새 작품이…… 아마 <청춘 에세이>였지?’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어보던 도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따 연락드리고 한번 인사나 드려야겠다.’

기왕 여기 온 거 찾아가서 인사라도 하면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그런 한편.

“형! 안 들어가요?”

아주 신나는 발걸음으로 앞서며 안 오고 뭐 하냐는 듯 재촉하는 성호.

거의 날아가듯 뛰는 성호를 따라 건물 안에 들어가자, 촬영감독이 도윤을 반겼다.

“아! 어서들 오세요! 최도윤 배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최도윤입니다.”

“하하, 잘 왔어요. 오늘 촬영 잘 좀 부탁하겠습니다. 거기! 여기 와서 배우님 좀 안내해드려!”

도윤은 촬영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곧장 대기실로 안내되었다.

그리고 성호는 드디어 서이솔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도윤은 그렇게 면박을 줘도 결코 멈추지 않는 성호를 보며 결국 피식거리고야 말았다.

하긴, 회귀 전에도 서이솔, 서이솔 노래를 부르던 녀석이다.

형이 얼른 유명해져서 서이솔이랑 드라마 한번 찍는 거 옆에서 지켜보면 여한이 없겠다고 할 정도로 서이솔 덕후였었지.

그래서 도윤은 서이솔을 만나면 정중하게 부탁해 볼 예정이었다.

성호랑 같이 사진 한 장만 찍어주면 안 되겠냐고.

‘그럼 좀 잠잠해지겠지.’

그렇게 대기실 문 앞에 도착해 스태프가 노크를 하려던 그때였다.

벌컥.

“야, 너 진짜 죽는다! 야 이 새끼야! 나 그거 먹을 거라고!”

“사장님이 감시하라고 했단 말이에요!”

“차라리 죽여! 내가 그거 얼마나 좋아하는데! 내놔 이 새끼야!”

문이 열리고.

스태프와 도윤 일행은 안에서 막 뛰쳐나오려던 한 남자와 그 뒤를 쫓던 여자를 마주했다.

그리고.

잠시 정적.

“…….”

“…….”

모두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던 그때.

“어머, 최도윤 배우님 맞죠? 반가워요. 호호호. 서이솔이라고 해요.”

방금까지 남자에게 새끼라 외치던 이솔은 재빠르게 표정을 바꾸며 인사했다.

그리고 도윤은 인사하기 전.

성호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성호는…….

“은혜로우셔…….”

오히려 무슨 포상이라도 받은 녀석처럼 웃고 있었다.

도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미친놈.

* * *

“죄송해요, 우리 매니저가 제가 먹던 젤리를 쌔비는…… 아, 아니. 훔쳐 가서.”

분이 덜 풀린 듯한 서이솔은 자신의 매니저 심기철을 노려보더니 도윤에게 다시 사과했다.

“죄송해요. 제가 요새 체중 조절 중이라 예민해서.”

“기뻐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뭘.”

“네?”

그래.

기뻐하는 사람 저기 있지.

이솔의 욕을 듣더니 무슨 큰 상이라도 받은 녀석처럼 저기 히죽거리고 있는 녀석.

“아 참, 내 정신 좀 봐.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사실 ‘로체’ 광고 때 한번은 뵙고 싶었는데, 제가 도저히 시간이 안 나서.”

“저도 되게 뵙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기쁘네요.”

동하 때문에요.

“어머, 정말요? 야, 심기철. 봤지? 나 이런 사람이야. 니가 젤리를 맘대로 쌔벼 갈 만큼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 계신 최도윤 배우님이…….”

“네, 그럼 젤리 그만 드세요.”

“……하나만 먹으면 안 될까? 딱 하나만.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말만 안 하면 되는 거잖아. 응?”

단호하고 깐깐한 태도에 금세 비굴해지는 이솔.

도윤은 생각지도 못한 이솔의 면모에 웃음을 참느라 애썼다.

“히잉. 치사한 새…….”

“누나. 다른 사람 있을 땐, 제발.”

“알았어, 알았어.”

아무튼 뭐.

이솔이 수더분한 건 확실해 보인다.

스타라고 재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대기실 같이 쓰는 거에 별달리 반감도 없어 보이고. 물론 대기실은 아주 넓다.

탈의실도 따로 있고, 칸막이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몇몇 급 높은 배우들이 공간 하나를 무조건 독점하는 걸 생각해 보면, 이솔은 확실히 털털한 편이다.

“요새 드라마 잘 보고 있어요. 참, 강미나 작가님 작품 들어갔다면서요? 저 강미나 작가님 번호도 있는데.”

아.

그랬었지.

생각해 보니 이솔은 미나의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때 연기로 말아먹어서 욕 엄청 먹었었는데. 아우, 쪽팔려.”

그게 하필 첫 연기 도전이었고, 제대로 말아 먹어서 문제였지.

하지만 그건 이솔에게 일종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그때부터 절치부심, 노래를 부르는 것만큼 치열하게 연습해서 다음 작품에서 큰 발전을 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중에 강미나 작가님 만나면 말 좀 해주세요. 반성하고 있다고.”

도윤은 이솔의 진심 어린 부탁에 웃음을 터뜨렸다.

“네. 맞아요. 재미있겠죠. 자기 작품 시청률 2퍼센트는 떨어뜨린 배우가 다시 좀 부탁한다고 하는 건데…….”

그리고 불쌍한 척을 하다가 갑자기 손을 뻗은 이솔은.

“야아! 좀 속아줘라!”

“안 된다니까요. 그만 먹어요.”

매니저의 재빠른 젤리 수거에 그만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이거 참.

정신없는 사람이다.

당장에라도 카메라 앞에 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이 저런 모습이라니.

“치사한 놈.”

“누나. 말.”

“……알았어.”

도윤과 성호의 관계와 묘하게 다르면서 비슷한 이 느낌.

그래서 도윤은 생각했다.

오늘 촬영이 꽤 재미있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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