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이미지 메이킹이란
[‘바쁘다 바빠’ 최도윤, 영화 촬영 끝낸 지 얼마나 됐다고…… 차기작 캐스팅 소식!]
[<그 남자의 메모리>, 최도윤 주연으로 발탁!]
[이번엔 톱스타 연예인으로? 최도윤, 미래의 자신을 연기?]
[최도윤 팬카페, “우리 오빠 안 쉬어요?” 걱정……]
도윤의 캐스팅 소식이 알려지고.
도윤을 노리던 PD와 작가, 감독들은 또 한 번 패배의 쓴맛을 봐야 했다.
“아니, 우리 대본도 충분히 좋은데…….”
“의리라 이거지. 강 작가랑 한번 해서 그런 거 아니야?”
“아우, 이번에도 못 잡았네. 다음에 잡으려면 몸값 장난 아닐 텐데.”
“강 작가 작품이면 미니시리즌가? 무슨 제목이 저래? <그 남자의 메모리>? 기도 안 차서.”
아쉬워하는 반응.
가지지 못한 대상에 대한 질투.
애써 현실을 외면하는 합리화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왔지만.
이제 도윤의 차기작과 배역은 정해졌다.
사실상 처음으로 맡는 거나 다름없는 악역.
그것도 사연 있는 나름 슬픈 악역이 아니라.
진짜 악 그 자체.
하지만 그래서 더 역설적으로 잘만 연기해내면 호평받을 수 있는 배역이기도 하다.
덕분에 개런티도 높았고 말이다.
참고로 도윤의 이번 개런티는 회당 약 5천만 원.
지난번 <기적의 레시피>를 택하며 거절한 드라마 <브람스의 숲>에서 제시한 개런티 3천보다 훨씬 높은 금액.
데뷔 3년 차 신인에게는 전례 없는 금액.
여기에 수철이 협상력을 발휘해 넣은 몇몇 부가적인 조항까지.
물론.
그만큼 요구되는 연기의 수준이 아주 높았지만 말이다.
여하튼.
좋은 대본을 따라가다 보면…….
돈은 알아서 따라오는 법이다.
‘첫 리딩까지 두 달 남았었지.’
그리고 분석할 시간도 충분하다.
도윤은 처음으로 도전하는 악역인 만큼 제대로 준비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도윤은 회귀한 뒤로 까먹고 있던 사실을 맞닥뜨렸다.
지이이잉.
막 대본 분석을 시작하려는데 울리는 휴대폰.
-형, 팀장님이 학교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라고 하셨어요.
“학교?”
-네. 말씀하시기론 이번 학기까지가 휴학 기간이라던데요.
도윤은 무슨 소린가 싶어 미간을 좁히다 아차 싶었다.
‘아. 학교.’
회귀한 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자신이 현시점에서 일단은 ‘학생’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이 휴학생 신분이며.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 역시도.
-그래서 형한테 물어보라고 하셨어요. 알아보니까 휴학 연장할 방법 더 있다고.
도윤은 잠시 고민하다 쿨하게 답했다.
“자퇴한다고 말씀드려.”
-자, 자퇴요? 태, 태정대를요? 아깝지 않아요?
“학벌이 뭔 상관이야. 학교를 못 다니는데.”
-더 연장할 방법 있는데도요?
“연장해도 똑같아.”
연장해서 1년의 유예를 가져도 1년 뒤에 학교를 다닐 확률은 낮을 것이다.
거기다 배우와는 전혀 관련도 없는 경영학과다.
수업 가서 민폐나 안 끼치면 다행이지.
-그럼 그렇게 말씀드릴게요.
“어, 학교는 내가 가볼게.”
-제가 가도 되는데.
“자퇴 서류 직접 내야 돼. 그리고 너 지금 고향 아니야?”
-그렇긴 한데…….
성호는 지금 도윤에게 휴가를 받아 잠시 고향에 내려가 있었다.
캐스팅 관련 미팅도 마쳤고, 시간이 좀 있으니 그사이 어디든 다녀오라고 한 것이다.
일종의 휴가 개념이라고 해야 할까.
민주 역시 마찬가지.
참고로 민주답게 화끈했다.
며칠 쉬다 오라고 말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휴대폰으로 비행기 표를 예약하더니.
다음날 새벽 비행기로 무려 중국에 가버린 것이다.
‘관우 무덤을 보러 간다고 했었나.’
그 심드렁하던 녀석이 눈빛을 반짝거리던 것 외엔 기억이 더 나질 않는다.
여하튼.
“엄한 데 신경 끄고 어머니나 잘 모셔. 병원은 잘 모셔다 드렸냐?”
-네. 어제 다녀왔어요. 많이 나아지셨대요.
“그래. 다행이다. 알았어. 끊는다.”
도윤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채비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자퇴 뭐,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회귀 전에 한 번 해봤던 자퇴.
물론 그때는 자의 반 타의 반이었지만.
지금은 완벽한 자의라는 게 중요한 사실이다.
* * *
도윤은 학교로 가기 전 먼저 동민과 수철을 만나 자퇴하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수철은 그래도 태정대 학벌이 아깝지 않냐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했지만 동민은 뒷말 나오기 전에 깔끔하게 정리하자는 의견에 동의했다.
-그래, 도윤이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후회하지 않겠지?
“그럼요.”
그리고 등록금을 내주셨던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역시 동의했다.
어차피 반대해도 생각을 바꿀 계획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해야 마음도 편하고 사람에 대한 예의도 지킬 수 있는 것.
‘괜히 욕먹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안 그래도 특례입학으로 대학에 간 연예인들이 매번 수업 빼먹고 학교에 갈 때마다 사람들을 잔뜩 끌어모아 욕을 먹는 걸 생각하면, 역시 자퇴가 제일 깔끔하다.
괜히 욕심내서 휴학 연장해도 강제로 공백기를 가지는 게 아닌 한 정상적으로 등교할 방법은 없었다.
설령 그렇게 한다 해도 도윤의 현재 직업과 인지도를 고려하면 다른 학생들에게 민폐가 될 게 뻔한 일.
여하튼.
도윤은 꽤 오랜만에 교정을 밟았다.
‘이런 곳이었지.’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교정의 풍경은 꽤 색다른 느낌이다.
학교를 다닐 때는 딱히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것들이 구석구석 보인다고 해야 하나.
오랜만에 학교를 방문한 졸업생이 된 기분.
“셔틀 놓치고 맨날 뛰기 바빴는데.”
대학 시절은 그래도 즐거웠다.
아직 실내 흡연이 허용되던 시절.
학교 앞 술집에서 입에 담배를 물고 소주병을 기울이던 기억.
중앙광장 근처 동상에 기대 노상을 깔고 술을 마시다 그대로 잠들어 다음 날 아침 망신을 당한 기억.
‘좋은 기억들이지.’
회귀 전에는 떠올릴 틈도 없는 기억이었지만.
이제는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다.
감상도 잠시.
도윤은 곧장 학과 사무실로 향했다.
아마 문제가 없다면 자퇴 처리가 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두 가지, 잊은 사실이 있었다.
하나는 얼마 전 <맛대결>에서 보여준 도윤의 퍼포먼스가 아직까지도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
또 하나는 아무리 선글라스를 쓰고 모자를 눌러썼다 한들, 도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를 모두 감출 수 없었다는 것.
‘설마 알아보겠어.’
선글라스.
볼캡.
여기에 마스크까지.
설마 알아보겠나 싶었다.
하지만.
“혹시…… 저기 연예인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날씨 흐린데 선글라스 꼈어.”
“마스크도 꼈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시선을 집중시켰다.
저건 누가 봐도 신분을 숨기기 위한 변장이었다.
“그나저나…… 핏 장난 아닌데?”
“진짜. 팔다리 봐라. 장난 아니네.”
“맞다! 나 배우 중에 누가 우리 학교 경영학과 출신이라고 들었었는데!”
하나둘.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고.
“가서 말 걸어봐.”
“아, 좀 있어봐. 부끄러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 혹시 아니면 어떻게 해!”
모두가 망설이던 와중.
“저, 혹시…… 최도윤 배우 아니신가요?”
한 용기 있는 여학생이 다가와 건넨 말에 도윤은 그 자리에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어, 어쩌지?’
사실 도윤은 인지도가 올라간 후 단 한 번도 이렇게 변장까지 하고 나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 사람 잘못 보셨는데요.”
무척이나 의심스러운 대답을 내뱉었는데.
“목소리가 맞는데. 제가 <알고 있는가>만 다섯 번을 정주행했거든요. 오빠 맞죠?”
하필 그 학생은 도윤의 찐팬이었다.
결국 도윤은 백기를 들고야 말았고.
곧장 인간의 파도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미친! 진짜 최도윤이야!”
“종이, 종이! 아 씨! 오늘 가방 안 들고 왔는데!”
“나 전공책 있어! 찢을까?”
“아직도 안 찢었어?”
“야, 야. 사진!”
그리고 곧 교정 한복판에서 인파에 둘러싸여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 * *
“뭐야 이거.”
수철은 마케팅팀 직원이 말해준 사실에 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하고 아연실색했다.
“도윤이 사고 쳤어?”
[실시간 검색어]
1.최도윤
2.PC방 흡연 금지 처벌
3.겨울킹덤 상영기간
4.디아3 출시
.
.
수철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실시간 검색어로 ‘겨울킹덤’과 ‘디아3’를 제칠 정도라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크게 벌어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곧 이어진 설명에 수철은 아연실색했다.
“학교?”
“네. 매니저분한테 연락드려보니까 오늘 자퇴서 제출하러 학교 갔다고…….”
아.
오늘이 그날이었구나.
수철은 도윤이 자퇴를 택했다는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이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근데 1위야?”
아무리 들켜서 사람들한테 둘러싸였다지만 1위라니.
딸깍.
검색어를 클릭하니 실시간 소셜 피드들이 주르륵 뜨고 있었다.
-학교에 최도윤 떴다!
-핏 개쩜 ㅠㅠㅠㅠㅠ 사인받았는데 가보로 삼는다!
-선글라스 벗을때 심장 멎는줄...
-얼굴에 출구가 없음... 강대리님 사랑해요 ㅠㅠ...☆
-남자가 봐도 얼굴 미침 ㅋㅋㅋㅋ 아 이게 나라냐 ㅋㅋㅋㅋ
-여자친구가 제 손 놓고 최도윤 쪽으로 뛰어갔는데 어떻게 하죠?
└같이 뛰셈
-미치겠다 ㅋㅋㅋㅋ 리액션 진짜 혜자임 ㅋㅋㅋㅋ
-오빠 앞에서 주접 좀 그만 떨엌ㅋㅋㅋ 울먹거리잖앜ㅋㅋㅋ
-아침에 화장실 거울 보고 존잘이라 생각한 내 인생이 레전드다...
“허허.”
수철은 생각지도 못한 열광적인 반응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알고 있는가>가 큰 성공을 거두고 <맛대결>이 화제를 부른 건 잘 아는 사실.
그런데 이 정도로 도윤이 화제가 될 줄이야.
“검색어 1위? 대단한데?”
반응은 대표 동민도 마찬가지.
수철에게 이 사실을 보고받은 동민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도윤이 많이 유명해졌네.”
“많이가 아니라 엄청 유명해진 것 같은데요. 이야, 이건 뭐…….”
수철이 그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러면 자퇴 못 하겠는데요?”
“도윤이 전화 받나?”
“아까 해봤는데 안 받았습니다. 아마 못 받았겠죠.”
“흠. 어쩔 수 없지. 다음에 시간 될 때 다시 가라고 해야지. 이거 참. 허허. 이제 도윤이 정도 인지도면 어디 나가기도 쉽지 않아. 그렇지?”
최근 두각을 드러낸 신인 배우들 중 단연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도윤.
제작사들이 끈질기게 러브콜을 보내는 데다 광고주가 원하는 20대 남자 배우 중 1위에 꼽힐 정도니.
“도윤이 오늘 고생 좀 하겠네요.”
“성호는 도윤이한테 휴가받고 고향 갔다고 했지? 흐음. 지금 회사에 남은 매니저 있나?”
“민석이 쉬는 중이라 그쪽에 바로 보내 놨습니다. 도윤이 보면 데려오라고요.”
“잘했어. 팬들 안 다치게 잘 데려오라 그래.”
“지금 팬들보다 도윤이가 더 걱정인데요.”
“뭐, 한 번쯤은 겪을 일이지. 나 참, 거길 혼자 갔단 말이야?”
종종 그런 경우가 있다.
인기가 급작스럽게 올라간 나머지 자신의 현재 위치를 잘 체감하지 못하다 저렇게 팬들에게 둘러싸이는 상황 말이다.
도윤이 딱 그랬다.
<알고 있는가>로 대박을 치고, 요리 프로그램 <맛대결>로 인지도를 상승시킨 상황이니.
‘그래, 저런 것도 배워야겠지. 매니저라도 미리 보내 놔서 다행이군.’
그때 수철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우우우웅.
수철이 잠시 미간을 좁혔다.
“누군데 그래?”
“기자네요.”
“기자?”
“예. <민족일보> 연예부 기자입니다. 문자 왔네요. 도윤이 지금 학교 간 거 무슨 일이냐고.”
“기자는 기자네. 엄청 빨라.”
그때 동민이 문득 씩 웃었다.
“잠깐. <민족일보>면 꽤 큰 곳이잖아?”
“그렇죠. 영향력으로만 따지면 손에 꼽히죠.”
“잘됐네.”
동민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도윤이 자퇴할 거라고 말해. 보도자료는 박 실장한테 만들라 하고. 아, 그리고 ‘태정대’ 자퇴한다고 꼭 말해. 오케이?”
수철은 그제야 동민이 웃은 이유를 깨달았다.
“관심 끌린 지금 해야 할 일이야. 이미지는 그렇게 만드는 거 아니겠어? 배우 활동을 위해 무려 ‘태정대 경영학과’라는 학벌을 포기한 배우. 얼마나 호감이야?”
동민의 말에 수철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박 실장한테 지시하겠습니다. 도윤이, 정말 바빠지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