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배우님-27화 (27/200)

27.끝났군.

<알.있>의 쫑파티가 종료되고.

도윤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잠시 영주로 내려갔다.

[경] 장하다, 영주의 아들 최도윤! 시청률 터졌다! [축]

그리고 리나가 단 게 분명한 플래카드 덕에.

“우와! 최도윤!”

“여기 출신인가 봐!”

도윤은 영주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가족들이 사는 동네에서 말이다.

“오빠, 오빠. 봤지? 봤지? 완전 대박이지 않아?”

“다음에는 제발 내 사진 넣지 마. 쪽팔려.”

“왜, 우리 집 돼지는 맨날 자기도 걸어 달라고 난린데.”

“뒤질래? 누가 돼지야?”

아무튼, 잠시 맛보는 평화로운 일상은 꽤 달콤했다.

도윤은 방에 짐을 풀고, 옆에서 재잘대는 리나의 학교 생활 이야기를 배경음악 삼아 이 잠깐의 한가로움을 만끽했다.

하지만, 곧바로 달려온 동하에게 방해당했다.

“야. 야. 서이솔 사인은? 응?”

“오자마자 서이솔이냐?”

“받아달라 했잖아. 응? 응? 제발 받았다고 해줘. 제발. 형님.”

“서이솔 바쁘대.”

물론 진짜 바쁜지는 모른다.

만나본 적이 없으니.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동하는 절망했다.

“하긴…… 톱스타니까.”

도윤은 오랜만에 진심으로 낄낄대며 물었다.

“그렇게 서이솔이 좋냐?”

“그럼, 안 좋냐? 여신이라고, 여신!”

절규하는 동하를 보고 리나가 혀를 찼다.

“쟤 자취방 내가 가봤거든? 서이솔 포스터만 열 장 붙여놨어.”

도윤은 혀를 찼다.

“미친놈. 여자 만날 생각이 하나도 없구나.”

하지만 당당한 동하.

“연예인 좋아하는 게 뭐 어때서!”

“과하게 좋아하면…… 됐다. 노력은 해볼게.”

“사인 받아주는 거? 진짜로?”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까 받아다 주면 넌 평생 서이솔만 좋아할 것 같아서 안 되겠다. 내 친구 연애하는 건 봐야 하지 않겠냐?”

“제발. 유동하랑 만나주는 여자 있으면 내가 업고 동네 한 바퀴 뛰면서 자랑한다.”

리나와 도윤의 맹공에 결국 풀이 죽은 동하.

도윤은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보며 진짜 서이솔을 만나면 사인이라도 한 장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만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서이솔은 가수와 배우, 양쪽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톱스타.

‘아직’까지는 만날 일이 없어서 문제긴 하다.

지이이잉.

이런 가운데 울리는 휴대폰.

화면을 보니 한유나에게 톡이 와 있었다.

‘아, 선배도 촬영 끝났겠구나.’

얼마 전 우연찮게 접한 <악마의 세계> 종영 기사.

탑급 PD와 작가 둘이 뭉쳤다기엔 초라한 성적으로 막을 내린 드라마.

그 작품에서 시청자들이 납득하기 힘들 만큼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배역의 유나였다.

[잘 지내지? ㅋㅋ]

[선배님도 잘 지내시죠? ㅎㅎ]

[(웃는 라이온 이모티콘)]

[종영하고 강제 백수됐어. 차기작도 아직 못 정했고. 너는?]

[저도요. 고민 중이에요.]

[나는 한동안 쉴까 고민 중이야.]

그때 동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서이솔?”

“미친놈.”

“에이 씨.”

도윤은 동하를 무시하고 톡을 이어갔다.

[차기작 뭐 할지 모르겠지만, 너는 잘할 거야! ‘알있’ 대박이었잖아?]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종종, 이렇게 연락이 오는 걸 보면 그때 좋은 이미지로 남은 모양이다.

‘정수 형님이랑도 한번 뵈어야 하는데.’

유나에겐 아직 차기작을 정해두지 않았다고 했지만, 도윤은 마음속으로 이미 차기작을 정해두었다.

그리고 그 건으로 조만간 정수를 만날 생각.

[ㅋㅋ 담에 보자. 고생해!]

[(손 흔드는 라이온 이모티콘)]

[네 선배님 들어가세요!]

삑, 삑, 삑.

철컥.

그때 들려오는 현관문 열리는 소리.

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준환이었다.

“아버지, 오셨어요.”

“오! 도윤이 왔구나. 축하한다. 드라마 잘 봤어. 신수가 훤하네. 허허.”

기뻐하는 준환의 모습에 도윤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근데 집 앞에 차는 도윤이 네 차냐? 차 좋아 보이던데. 이번에 나온 그 신형 SUV 아니냐?”

“아. 그거요.”

도윤은 슬쩍, 동하와 리나를 힐긋대곤 조용히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아버지 차에요. 제 선물.”

“내, 내 차라고……?”

“차 오래 타셨잖아요. 이제 바꾸실 때도 됐죠. 부담 갖지 말고 타세요.”

그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무한한 감동을 받은 아버지 준환의 표정 말이다.

준환은 벅차오르는 감동을 그대로 드러내며 도윤의 어깨를 꽉 잡았다.

“아들아…….”

“알아요, 아버지.”

씩 웃으며 감동의 포옹을 하는 부자.

10년 넘게 타 이제 폐차비라도 받으면 다행인 저 똥차.

저걸 이제 더 이상 안 타도 된다니.

“어머니한테는 회사에서 선물로 준 거라고 해둘게요. 돈 주고 샀다고 하면 집도 반품시킬 분이라. 저는 회사 차 있어서 차 필요 없다고 하면 돼요. 동하랑 리나는 면허 없으니까 뭐.”

“그래. 너만 믿는다.”

격렬히 고개를 끄덕이는 준환.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사드릴걸.’

이렇게 기뻐하시는 건 또 처음이다.

여하튼 정산금을 미리 준다고 할 때 받길 잘한 듯했다.

하지만 이내 걱정으로 물드는 얼굴.

“근데…… 니 엄마는 어쩌냐. 우리 여사님, 서운해할 텐데.”

“걱정 마세요. 현금 뽑아왔어요.”

“역시 넌 내 아들이다.”

“언제는 아니었어요?”

도윤은 피식거리며 준환의 손에 차키를 쥐여주었다.

무슨 감전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떠는 준환.

“둘이 뭐 해?”

와중에 들려오는 리나의 말에 준환이 “큼큼” 헛기침하더니 근엄하게 입을 열었다.

“부자간의 정을 나누는 중이란다.”

“정은 무슨. 또 뭐 꾸미지?”

누굴 닮아서 눈치가 저렇게 빠를까.

* * *

종영 후 2주.

도윤은 영주를 내려간 것을 포함해 짧은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자신을 향한 러브콜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기 때문이다.

인기란 무엇인가.

도윤은 이제 그 질문에 조심스럽게나마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라마 다섯 개, 영화 세 개, 웹드라마 한 개, CF만 여덟 개…… 형, 진짜 인기 장난 없는데요.”

인기.

그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도윤을 바라본다.

<알.있> 출연진 중 최고로 꼽히는 데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강 대리 앓이’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니까.

오죽하면 전국의 대리 직급 직장인들이 <알.있>을 보고 온 신입사원들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뺀다는 이야기가 돌겠는가.

반쯤은 농담이지만, 현실에 존재하기 힘든 ‘강영준 대리’라는 캐릭터를 성토하는 사람도 있었다.

뭐, 그만큼 연기를 잘했다는 뜻.

여기에 도윤은 커피 1만 잔 공약을 지켰고, 이엔 엔터가 일제히 보도 자료를 뿌리며 그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때문에 지금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도윤의 다음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도윤은 지금.

‘슬슬 다 옮겼으려나.’

이엔 엔터 사무실에서 이사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작품의 성공으로 전역한 뒤부터 쭉 살고 있던 정든 자취방을 떠나게 된 것.

도윤은 기다리는 동안 대본을 꼼꼼히 살폈다.

‘<브람스의 숲>, <커피하우스>, <론 메모리>…….’

제목을 본 순간 떠오르는 작품들의 흥행 기록들.

크게 성공하는 작품도 있고.

폭삭 망하는 작품도 있다.

“형, 근데 다음에 뭐하실 거예요? 혹시 <브람스의 숲>은 어때요? 저 음악 드라마 좋던데.”

그때 성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윤은 그 말뜻을 알아채고 피식거렸다.

“왜. 팀장님이 그거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든?”

“형 진짜 귀신이네요.”

“앞으로 그냥 솔직하게 말해.”

“그래도 하면 좋죠. 주연 제안에 개런티도 빵빵한데. 그리고 여주인공으로 ‘서이솔’ 나올 수도 있대요.”

서이솔.

동하가 그렇게 좋아하는 그 배우.

도윤은 동하를 떠올리며 피식거렸다.

“좀 더 보고.”

“하면 좋을 텐데.”

“그냥 니가 배우 해라.”

“사실 서이솔이랑 찍으면 형 핑계로 사인 좀 받으려고 했거든요. 사진도 찍고. 제가 서이솔 찐팬이라.”

“…….”

도윤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호야. 요새 내가 좀 소홀했지?”

“혀, 형? 배, 배우가 매니저를 이렇게…….”

“계속 외쳐. 여기선 아무도 못 들을걸?”

도윤이 성호를 즐겁게 응징하는 사이 문이 열리며 민주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두 분은 참 사이가 좋아 보여요.”

“그치?”

“네. 엄청요.”

“전 아니에요! 누, 누나! 살려주세요!”

민주는 성호를 힐끗 바라보더니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

“너도 즐기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그래 보여. 참, 오빠. 이사 끝났대요. 여기 마스터키요. 비밀번호는 1234.나중에 바꾸세요.”

“아. 고마워.”

도윤은 그제야 성호를 풀어주고 민주가 내민 키를 받아들었다.

“고생했다. 둘 다 연락하기 전까지는 쉬어.”

“네, 그럼 전 동호회 있어서 가볼게요.”

“삼국지?”

“네. 그럼.”

여전히 심드렁하고 무덤덤해 보이지만.

쉬라는 말 덕분인지 평소보다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둘 다 고생했으니까.’

빡빡한 드라마 촬영이 이어지는 동안 군말 없이 잘 따라주고 최선을 다한 둘에게 휴식을 주는 건 당연했다.

물론, 도윤은 거기에 약간의 보너스도 살짝 얹어주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고생했다는 의미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까.

원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사람들은 잘 챙겨야 하는 법.

종종 고마움을 모르고 배은망덕하게 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걸 미리 알 수도 없고.

어쨌건 둘 다 고마운 사람은 맞는 셈.

새삼 느껴지는 회귀 전과 다른 온도에 미소가 흘러나온다.

“누나. 형이 왜 웃을까요?”

“글쎄. 너 괴롭히는 게 즐거워서?”

“그런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수긍하는 성호.

볼수록 참.

납득이 빠른 녀석이라 좋다.

* * *

“와! 집 좋다!”

“형님, 투룸이에요? 대박 깨끗해!”

“여기에 고양이 한 마리 키우면 딱인데! 오빠, 고양이 키울 생각 없어요? 제가 집사로 만들어드릴게요!”

“형님! 저 이 방 들어가 봐도 돼요?”

예상대로 선우와 해영은 도윤이 이사한 집에 오자마자 신나게 호들갑을 떨었다.

투룸 오피스텔.

전에 살던, 대학 시절부터 살아온 자취방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하고 좋은 집이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방에 들어가 감탄을 터뜨리는 모습에 도윤은 피식거렸다.

“남의 집이 그렇게 신기하냐?”

“그럼요! 저는 아직 기숙사에서 지내거든요. 우리 회사 기숙사 완전 구려요. 냄새나고, 꼴 보기 싫은 사람들이랑도 마주치고. 으으.”

떠올리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떠는 선우.

“저는 아직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요. 독립하고 싶은데 절대 허락을 안 해주셔서…….”

그리고 정말 부럽다는 듯 시무룩하게 중얼거리는 해영.

“해영이야 그렇다 치고, 선우 너는 왜 안 옮겨?”

“저 아직 군대 이야기가 안 끝나서…….”

“아. 미안.”

“아니에요. 후우. 진짜 눈 딱 감고 가버릴까…… 대표작 하나는 만들고 가고 싶었는데.”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

커리어에 2년의 공백기를 강제로 새겨야 한다는 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신인들이 치고 올라가려 기를 쓴다.

거기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환경에서 2년 뒤에도 자연스레 적응한다는 보장도 없고.

선우처럼 대중들이 이름을 대면 떠올릴 만한 대표작을 찍지 못한 배우들은 더더욱 두려워할 수밖에.

“그래도 오빠 이번 거 잘하면 되잖아. <그 남녀의 방식>. 도윤 오빠가 추천해 주셨다면서?”

“잘 돼야 할 텐데…… 사실 형님이랑 같이 찍고 싶었지만.”

참고로 선우는 도윤이 추천해 준 <그 남녀의 방식> 오디션에 당당히 합격했다.

조연급이지만 비중이 상당히 높고,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더 좋은 배우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

“형님,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오디션 내가 봤냐?”

도윤은 피식거리며 다시 군대 이야기를 떠올렸다.

‘뭐, 난 다녀왔으니까.’

군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전 요즘 형이 제일 부러워요. 형, 육군 다녀오셨죠?”

“어. 155밀리.”

“155밀리요? 그게 뭐예요?”

“포병 보직 중 하난데, 꿀보직이야.”

“아하! 꼭 지원할게요! 포병이라고 하니까 되게 멋있어 보이네요.”

이제 도윤의 말이라면 팥 심은 데 콩이 난다고 해도 철석같이 믿는 선우.

도윤이 사실 개고생만 했다며 연예병사나 가라고 말해주려던 그때였다.

“어, 오빠. 조미료가 엄청 많네요? 칼도 종류별로 다 있고. 되게 신기하다.”

“아. 그거.”

그 타이밍에 해영의 질문이 날아왔고, 애석하게도 도윤은 하려던 대답을 멈추고 주방 쪽으로 다가갔다.

이번에 도윤이 종류별로 구비한 조미료와 향신료, 식칼을 비롯한 요리 도구들이 보기 좋게 놓여 있는 광경.

도윤은 회귀 전, 거의 10년 가까이 혼자 살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것저것 요리를 직접 해서 먹는 습관이 생겼고, 이번에 그 기억이 떠올라 이사하는 김에 왕창 사둔 것이다.

그리고 또 경험이 있다면…….

‘주방에서 일도 했었지.’

어쨌든 살아가기 위해 주방에서 일을 해봤던 경험도 있었다.

그리 오래 일하진 않았지만, 칼질이나 재료를 손질하는 방법은 다 거기서 배웠었으니까.

“오빠 혹시 요리도 하세요?”

“어. 그냥 혼자 사니까.”

“대박! 그럼 저희 오늘 오빠 요리 먹는 거예요?”

“아마도?”

도윤의 말에 해영이 양손을 꼭 쥐고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선우의 눈에 깃든 도윤을 향한 동경심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좀 해볼까.’

생각해 보니 회귀한 뒤에는 단 한 번도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다.

워낙 바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

그래서 준비했다.

타앙!

“우와아!”

“세상에…….”

보기만 해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식재료들이 차례로 냉장고에서 튀어나온다.

특히, 그중에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거대한 T본 스테이크에 해영과 선우는 입을 헤 벌렸다.

도윤이 그때 문득 피식거렸다.

“너희 혹시 마이야르라고 알아?”

* * *

도윤의 실력이 전문 요리사급은 아니다.

그저 회귀 전 자취하며 이것저것 해먹는 데 재미를 붙였고, 식당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요리와 친해진 것뿐.

하지만 다년의 경험으로 다져진 실력은 결코 무시당할 수준까진 아니다.

톡톡톡톡톡!

치이이이익-!

현란하진 않아도 정확하고 빠른 칼질.

말린 로즈메리, 어니언‧갈릭 파우더 등 각종 향신료를 과감하게 때려넣는 박력.

타이머와 온도계까지 준비해 거대한 T본 스테이크를 굽는 섬세함.

스테이크가 구워지는 동안 곁들일 가니쉬(Garnish)를 준비하는 재빠른 손놀림.

여기에 나름 유려한 플레이팅이 화룡점정을 찍는 모습은-

“오빠, 다 됐어요?”

“형님. 빨리요!”

두 손님을 잔뜩 흥분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탁.

탁.

둘 앞에 맛깔나게 구워낸 T본 스테이크가 놓였다.

당근, 양파 등 각종 채소를 넣은 가니쉬로 색감과 맛을 더하고 버터를 입혀 구운 스테이크의 황홀한 풍미가 코끝에 스며든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달려드는 둘.

“우와! 대박! 진짜 맛있어!”

“형님! 진짜! 와!”

저러다 고기가 아니라 손을 써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빠르게 칼을 놀리는 두 사람.

도윤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자신도 한 점 썰어 입에 넣었다.

생각 이상으로 맛이 좋다.

미디움레어로 알맞게 구워진 고기의 풍미와 육즙이 입안을 가득 채우더니.

꿀꺽.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좋은데?’

사실 이런 스테이크류는 회귀 전의 도윤에게도 익숙한 요리가 아니다.

가격이 꽤 나가는 편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기억을 더듬어 인상 깊게 봤던 유튜브 방송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한 것뿐인데…….

생각보다 이렇게 잘될 줄이야.

심지어 가니쉬도 잘 만들어졌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고 인터넷을 뒤져 만든 것치고는, 더없이 훌륭한 맛.

“형님, 혹시 취사병 출신이었어요? 아니면 요리학과?”

“포병이었다니까. 그리고 경영학과였어.”

“아차차. 와. 형님 진짜 대단하시다. 연기도 잘해, 요리도 잘해. 도대체 못 하는 게 뭐예요?”

격세지감은 격세지감이다.

회귀 전의 도윤은 지금 이 시점에서 마약 스캔들로 몰락했다.

하지만 지금은 드라마 하나를 성공으로 이끌고 동료 배우들과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상 참. 알 수 없다니까.’

“오빠, 이거 진짜 맛있는데. 나중에 또 해주실 거죠? 다음엔 제가 술 사 올게요!”

“하는 거 봐서.”

“그럼 저 잘할게요!”

“퍽이나.”

말은 그러면서도 해영은 정말 쉼 없이 스테이크를 흡입하고 있었다.

‘무슨 아귀가 붙었나.’

저 작고 얇은 체구에 쉼 없이 들어가는 음식을 보고 있자니 미래에 인기를 끌 비슷한 체구의 모 먹방 유튜버가 떠올랐다.

어쩐지.

촬영장에 간식이 올 때마다 군침을 흘리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여하튼.

그릇이 싹 비워지는 데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해영과 선우 둘 다 아쉽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입맛을 다셨고, 도윤은 그런 둘을 위해 미리 준비한 후식을 내왔다.

“우와! 이거 치즈예요?”

“형님, 진짜 사랑합니다…….”

도윤이 올려놓은 건 레드와인과 온 마트와 인터넷을 (성호가) 뒤져 어렵사리 찾아낸 프랑스산 까망베르 치즈.

지금은 2013년이고, 아직 한국에는 해외의 다양한 치즈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라 극히 드문 물건인 셈.

덕분에 안 그래도 높았던 도윤에 대한 호감도는 그야말로 폭발해 버렸다.

“와…… 앞으로 여기 단골 해야겠다. 완전 맛집이네! 어때요?”

“인정. 대박 맛집. 고오급 레스토랑!”

“‘도윤 다이닝’은 어때?”

그래, 그게 낫겠다.

아무튼 와인 두 병과 치즈를 깔끔하게 비운 해영과 선우는 꿈결을 거닐 듯 행복한 표정이었다.

‘좋네. 이런 것도.’

지금까지는 요리를 해서 누군가에게 대접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혼자 먹기 위한 방법일 뿐.

그렇기에 그냥 혼자 만족하는 수준에 그쳤는데-

요리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주방이 힘들고 박봉이어도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 덕분에 버틸 수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근데 진짜 이 정도면 어디 취직하셔도 되겠는데.”

“내 말이. 진짜 완전 맛있어. 오빠. 이거 나중에 페북에 올려도 돼요?”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든가.”

“대박. 좋아요 엄청 찍히겠다. 근데 와…… 대충 찍어도 이 정돈데. 오빠 진짜 나중에 요리 드라마 해봐요. <파스타> 같은 거.”

그것도 나쁘지 않다.

“아, 배고픈데. 뭐라도 또 시킬까?”

“해영아, 너 쭉 쉴 거야? 체중 관리 안 하냐?”

그때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게 아니라! 오늘은 그래도 되는 날이잖아!”

“그래, 먹어라. 먹어. 언제는 자기 좀 말려달라더니.”

“그건 촬영 때고. 그럼 시킨다?”

결국 승리한 해영은 휴대폰을 꺼내 설렌다는 표정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별안간.

“헐. 대박. 이거 뭐야.”

휴대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이 되었다.

“뭔데? 어? 미친!”

옆에서 본 선우도 비슷한 반응이었고.

“기사 봤어요?”

“기사?”

“이거요. 이거.”

해영이 도윤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와, 이걸 진짜 하는 사람이 있구나.”

“원래 되게 흔하다는데.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건 다름 아닌-

[(단독) 배우 A씨 외 다수, 마약 투약 혐의로 자택에서 검거……]

“누굴까? 진짜 대박이네.”

“또 한 명 이렇게 가는구나.”

도윤이 준비한 한 방이 드디어 터졌음을 알리는 기사였다.

“해영아, 기사 읽어봐.”

선우의 재촉에 목을 가다듬더니 기사를 읽기 시작하는 해영.

“……유명 보이그룹의 리더이자 최근 좋은 시청률을 기록한 케이블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은 A씨는…….”

그러다 순간 말문이 막힌 듯 잠시 멈춘 해영은.

“이거…… 혹시 서태주 아니에요?”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리고 도윤은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드디어 끝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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