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조연의 품격(3)
1시간 전.
이미 엘리하우스를 나섰어야 할 시간.
용석은 한숨을 쉬며 태주를 달랬다.
“태주야. 구체적으로 말해봐. 어떤 게 마음에 안 드는데?”
“그냥. 다.”
“아…….”
순간 치미는 욕을 참을 수 있었던 건 이곳이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호평받는 엘리하우스라는 곳이란 사실이다.
거기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묘한 낌새에 귀를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
이 바닥만큼 소문 빠른 곳은 없다.
용석은 빠르게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다급히 태주를 달랬다.
“태주야. 지금 시간이 없어. 안 그래도 차 막힐 텐데 지금 출발해야 안 늦어. 오늘 포스터 촬영이잖아. 태주야, 오늘 하루만 참자. 응?”
그러면서도 직원을 살짝 바라보며 눈빛으로 미안함을 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직원은 당황스러워도 이해한다는 표정이다.
이런 꼴을 보이는 연예인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으니.
하지만 태주에 대한 감정은 이미 상할 대로 상했겠지.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형. 이 상태로 현장 가라고?”
“태주야.”
“안 가. 아니, 못 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태주의 태도다.
문외한인 용석이 봐도 직원의 스타일링은 훌륭했다.
맡은 역할이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신입사원이기 때문에 화려한 스타일링보다는 수수한 댄디컷으로 헤어를 만지고, 메이크업 역시 부드러운 인상을 위해 직원이 심혈을 기울였다.
여기에 살짝 촌스러운 느낌의 정장만 입으면 어리버리한 신입사원으로 보이기엔 더없이 완벽한데-
도대체 뭐가 부족하다고 하는 걸까.
“태주야. 부탁할게. 지금 시간 별로 없어.”
“못 간다고. 이 상태로 가서 포스터 촬영했다가 개판 나면, 형이 책임질 거야? 아니면…….”
태주는 직원에게 시선을 홱 돌렸다.
그 순간 용석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저, 정말 죄송합니다. 그, 혹시 스타일링 한 번만 다시 좀 부탁을…….”
“알겠어요. 다시 볼게요.”
직원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용석이 안절부절못하던 그때였다.
“무슨 일이에요?”
또각, 또각.
싱그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리하우스의 원장, 이연주였다.
연주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잔뜩 찌푸린 연예인의 얼굴, 무표정하지만 금이 가기 직전인 직원의 표정, 여기에 안절부절못하는 매니저까지.
“어머, 태주 씨. 아까랑 너무 다르다. 멋있는데요? 하긴, 아이돌 짬바가 어디 가겠어? 스타일 너무 좋다. 들어가는 작품이 오피스 드라마라면서요? 시청자들 계 탔네.”
보자마자 단번에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던진 말은 청산유수였다.
그리고 태주의 얼굴이 그 순간 조금 풀렸다.
“정말요?”
“그럼요. 태주 씨, 무대 체질인 줄 알았는데 카메라빨도 잘 받겠어요. 혹시 마음에 안 드는 부분 있어요? 그럼 내가 바로 좀 만져주고. 사실 지금도 너무 좋은데. 그쵸?”
“네. 좋아요.”
그리고 놀랍게도 태주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용석은 멍한 표정을 짓던 것도 잠시, 얼른 연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아. 매니저님이시구나. 반가워요. 부럽다. 내가 태주 씨 매니저였으면 이 얼굴 매일매일 봤을 텐데.”
한마디 한마디가 연예인까지 웃게 만든다.
이래서 유명 샵의 원장이겠지.
아무튼 한숨 돌렸다.
용석은 태주와 함께 빠르게 샵을 빠져나와 급히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도착 예정 시각은 아닌 9시 30분.
콜타임은 9시. 용석의 마음이 복잡해지던 그때였다.
“이제 좀 마음에 드네.”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태주의 말.
용석은 고개를 홱 돌렸다.
“허. 너 그럼 아까…….”
“짜증 나잖아. 애초에 급이 다른데 누구는 원장이 봐 주고 누구는 직원이 봐주고. 말이 돼? 조연에 경력도 얼마 안 되는 애랑 나랑 차이가 난다는 게?”
“…….”
미친 새끼.
그런 너는 소속사 아니었으면 어디 이 바닥에 발이나 들였을 것 같아?
욕과 팩트가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용석은 그 대신 엑셀을 밟았다.
제발 오늘 무사히 넘어가길 바라면서.
* * *
“분위기 안 좋아 보여.”
“당연하지. 주연이 안 왔는데.”
해영과 선우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흐르는 냉랭한 기류를 감지하고 소곤거렸다.
“나야 그렇다 치는데 해영이 너는 어쩌냐.”
포스터 촬영에는 보통 평소보다 진한 메이크업이 동반된다.
그래서 해영은 가급적 땀이 흐르는 걸 막기 위해 계속 에어컨 아래 있었다.
거기다 해영의 배역은 주인공 ‘신민재’의 입사동기.
편안한 복장의 선우와 달리 오피스룩을 입고 있었는데, 치마도 H형이라서 여간 불편해 보이는 게 아니다.
“난 괜찮아.”
“맨날 괜찮다고만 하고.”
“어쩔 수 없지. 주연이 안 온 거잖아.”
선우는 도윤을 슬쩍 바라봤다.
“형님은 화가 난 것 같은데.”
“아니. 내가 보기엔 그냥 표정이 저래. 도윤 오빠는 리딩이나 대화할 때 빼고 항상 저 얼굴이던데.”
“그래서 도윤 형님 매니저가 쩔쩔매는 건가.”
선우는 방금도 면박을 맞고 돌아간 도윤의 매니저 성호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주연이 너무 늦는다.
이런 포스터 촬영은 주연 없이 진행이 불가능하다.
포스터라는 게 드라마 홍보를 위해 찍는 건데, 그 홍보에 주연 배우가 빠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그래서 제운의 표정도 여느 때와 달리 영 좋지 않았다.
그러다 몇 분 후.
띠잉.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그리고 오늘 대관한 스튜디오로 태주와 용석이 들어섰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런 가운데 용석이 빠르게 제운에게 뛰어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차가 많이 막혀서 조금 늦었습니다.”
9시 40분.
콜타임에서 40분이나 오버되었다.
제운은 무척이나 고민했다.
여기서 한마디 해야 할지, 아니면 참아야 할지.
‘후우.’
당장은 참자.
곧 있을 포스터 촬영에서 갚아주면 된다.
제운은 베테랑이고-
말이 좀 그렇지만, 건방진 배우를 다루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일단 촬영 들어갑니다. 나중에 이야기하죠.”
“알겠습니다.”
와중에 태주는 사과는커녕 대본을 보는 척하며 제운의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주연이라는 새끼가.’
제운은 일단 지금은 참았다.
저 건방진 놈에게 쓸 방법은 수두룩하니까.
경력만 15년이 넘은 제운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스쳐 가는 가운데.
“자, 스탠바이합시다!”
드디어 포스터 촬영이 시작되었다.
무려 40분이나 늦게.
배우들의 표정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사과를 하긴 했는데, 그게 먹힐 리가.
리딩 날부터 지금까지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리는 이미지.
‘달라진 게 없군.’
그리고 도윤은 자신 옆에 선 태주를 보며 고소를 머금었다.
저건 멍청한 짓이다.
배우가 촬영장에 지각하는 거야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니라지만, 태주는 유일한 주연임과 동시에 경력이 짧은 배우.
여기 있는 어지간한 배우들이 태주보다 긴 경력을 지닌, 이른바 ‘선배들’인데 그들을 지금 40분이나 기다리게 만든 것이다.
촬영장에서 신뢰를 얻는 걸 시작으로 이 바닥에 좋은 소문만 남겨도 모자랄 판인데 저 지경이라니.
‘아까 그거 때문인가?’
도윤은 엘리하우스에서 자신과 마주치고 눈에 띄게 당황하던 태주의 모습을 떠올렸다.
정말인지 알 수 없지만, 어쩐지 관련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오늘 스타일링 좋네요, 최 배우.”
그때 문득 물어오는 태주의 말에 도윤이 일부러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선배님도요. 원장님이랑 친하시다더니, 원장님이 잘해주셨나 봐요.”
태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새끼가…….’
하지만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제운의 외침이 들려왔다.
“오늘 단체는 다섯 개 버전으로 촬영 들어갑니다. 그다음에는 단독 버전이니까 의상팀이랑 각 배우 스타일리스트분들은 순서 유의해서 세팅해 주세요!”
오늘 촬영 콘셉트는 오피스 장르인 만큼 오피스 느낌이 물씬 풍기도록 하는 것.
소품 담당 스태프들이 정성 들여 세팅한 의자, 책상에 각 배우들이 걸터앉는다.
도윤은 태주 바로 뒤쪽.
‘강영준 대리’는 태주 다음으로 대사와 분량이 많은 배역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옆엔 ‘진 과장’ 역의 태규가 서 있었고, 바로 건너편엔 입사동기 ‘이선진’ 역할의 해영이 자리했다.
마지막으로 ‘이만춘 부장’ 역의 형원과 입사 동기 ‘강석민’ 역의 선우까지.
와중에 태주는 도윤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적개심을 불태웠고.
“서태주 배우님. 대본에 너무 몰입한 거 아닌가요? 왜 아까부터 최도윤 배우를 노려봐요?”
그게 지나쳤던 나머지 조연출이 농담 삼아 한마디 한 뒤에야 눈빛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이 모습에 도윤만이 속으로 비웃음을 머금었다.
‘역시, 정신 못 차리네.’
여하튼 그렇게 총 6명의 주요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에 서고.
찰칵! 찰칵!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느낌 좋습니다. 자, 류해영 배우님. 턱 조금만 당기고. 좋아요. 좋습니다. 임형원 배우님. 너무 나오셨다.”
“하하. 배역 욕심이 있어서.”
“그 욕심, 쪼끔만 넣어두세요. 하하. 자, 다시 가겠습니다. 좀 더 밝게. 좋습니다!”
“좋습니다. 이번에는 환호하는 느낌이에요. 소품 담당들, 서류 뿌리기 준비해 주세요. 카메라 가이드라인 안 잡히도록!”
파라락!
허공에서 서류가 펼쳐지는 걸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CG로 서류 넣을 돈도 아끼려고 소품 담당들이 사다리에 몸을 단단히 고정하고 서류를 뿌리는 연출이라니.
하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웃음도 간간이 터져 나오고 말이다.
이런 가운데 도윤은 촬영감독과 PD의 찬사를 받았다.
“마스크 좋네. 캬. 카메라빨 죽이는구만.”
“그래서 서태주를 퍼스트에 놓은 거잖아. 최도윤 옆에 두면 죽어버리니까.”
촬영감독의 감탄에 제운이 촬영 컷을 들여다보며 맞장구쳤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드라마 끝나면 주연 제안 엄청 들어올 거야.”
“일단 시청률부터 확보하고 말합시다, PD님.”
“새끼, 초를 쳐도…….”
여하튼 순조로운 촬영이었다.
개인 포스터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다시 갈게요. 좀 더 표정 풍부하게. 지금 감정으로는 세상의 냉혹함에 시달리는 신입사원 느낌이 전혀 아니에요.”
개인 포스터 촬영 첫 타자, 태주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너무 활달한 표정입니다. 다시 갈게요.”
“느낌 좀 더 살리죠. 몸 더 뒤로.”
“아니죠. 그게 아니죠. 자, 다시 콘셉트 보죠. 서태주 배우님. 집중 부탁드립니다.”
답답하다는 촬영감독의 표정.
‘이건 뭐 완전히…… 대본을 안 보고 왔나?’
포스터는 사진이다.
정확히 말하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다.
표정이야 적당히 잘 짓고 자세 유지만 하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남들이면 이미 끝나고도 남았을 개인 포스터 촬영에 무려 30분 넘게 시간이 지나간 상황.
“서태주 배우. 오늘 컨디션 안 좋아 보이는데. 이대로 가면 날 새겠네, 날 새겠어.”
결국 보다 못한 제운이 나서 툭 한마디 던졌고.
“늦었으면 촬영이라도 열심히 해야지.”
들으라는 듯 일부러 중얼거린 그 말에 태주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젠장.’
의도된 제운의 어깃장.
사실 아주 못 쓸 수준의 컷은 아니다.
하지만, 제운은 오케이해 줄 생각이 없었다.
계속 초조하게 만드는 한편,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눈총을 받게 만드는 방법.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몇몇 배우들에게는 아주 잘 먹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아, 됐습니다. 서 배우, 좀 이따 합시다. 오늘 안 되겠네.”
그리고 기어이 태주는 그대로 강판당해 옆으로 물러났다.
이런 제운의 방법이 먹혀들어 간 걸까.
태주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늦었다는 이유로 묘한 시선을 던지던 PD.
그리고 엘리하우스에서 원장에게 직접 스타일링을 받던 도윤의 모습 때문에.
그런 태주를 향해 쏟아지는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시선.
당연히 고울 리 없는 시선이다.
물론, 늦은 이유가 가장 컸지만.
“다음은 최도윤 배우.”
“예.”
이런 가운데 바로 도윤의 차례가 되었다.
다소 급작스러웠지만, 기다렸다는 듯 민주가 빠르게 옷매무시를 점검하고 미처 보지 못한 실밥이 없나 확인해 주었다.
“최대한 차갑고 싸늘한 느낌으로 갑니다. 노려보는 느낌. 예민하고 까칠한 느낌으로 연출해 주시면 됩니다. 서류는 모서리 쪽 잡아주시고. 스타일리스트분? 배우 소매 살짝만 더 걷어주세요.”
그리고 마침내 카메라 앞에 선 도윤은-
완벽한 ‘강 대리’ 그 자체.
“대박. 비율 미쳤어.”
“이거 찍어도 되겠지?”
“빨리 찍어. 친구들한테 자랑한다면서?”
그 모습에 스태프들이 얼굴을 붉히며 호들갑을 떨고.
“좋습니다. 슛 들어갑니다!”
촬영감독은 태주 때와 달리 힘찬 외침과 함께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좋아요. 완벽합니다. 손목 좀 더 안쪽으로 꺾어주세요. 오케이. 눈빛을 좀 더 강하게. 오케이!”
“원더풀합니다. 캬, 잘 받네. 한 번 더 갈게요.”
“오케이. 오케이-! 고생하셨어요. 이거, A컷이 너무 많아서 뭘 고를지 모르겠네.”
그리고 촬영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끝났다.
놀라운 속도였다.
“어떠세요, PD님?”
“좋네. 다음에 기회 있으면 컷 줄여서 가자고. 뭘 10분이나 찍나.”
“저도 그 생각 했습니다. 첫 컷부터 캬…… 예술이네.”
촬영감독의 흐뭇한 웃음은 덤이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제운까지.
“형님 진짜 대박인데.”
“부럽다. 저게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나오지?”
다른 배우들의 감탄도 당연히 터져 나왔다.
특히 선우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형님 너무 멋있는 것 같아.”
“오빠, 눈에서 침 나와요.”
“그게 뭔 소리야?”
이런 한편.
‘이게 말이 돼?’
태주만이 유일하게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윤이 너무 잘해서가 아니라-
자기 때와 너무 달라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10분이 채 걸리지 않은 촬영.
자신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PD의 미소까지.
마치…… 무시당하는 듯한 이 느낌.
‘이 새끼들이 누구 돈으로 찍는 줄도 모르고…….’
태주가 주먹을 꽉 말아쥔 그때였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많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옆에서 도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홱, 날카롭게 고개를 돌린 태주는 도윤의 얼굴을 보고 당황했다.
마치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얼굴이다.
“PD님께 말씀드릴까요? 안색이 너무 안 좋으신데.”
“아, 그, 괜찮아요. 오늘 컨디션이 좀 그래서. 잠깐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선배님, 전 선배님만 믿고 있습니다.”
선배님만 믿고 있다.
오늘따라, 썩 나쁘지 않게 들리는 말이다.
태주는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 잘해봐요.”
“잘 이끌어주세요. 선배님만 믿겠습니다.”
다시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가는 도윤.
그 모습을 보던 태주는 피식거렸다.
‘너도 누가 힘이 있는지 미리 알아보는 거지.’
처음에는 조금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제 보니 조금 예뻐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하긴, 생각해 보면 깍듯한 녀석이다.
그러나.
“최도윤 배우님. 메이크업 바로 들어갈게요.”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서태주 선배님 안색이 안 좋아 보여서요.”
“어머. 너무 착하다.”
“봐봐. 내가 뭐랬어. 그거 다 소문이라니까? 그쵸?”
의상팀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민다.
다시 생각해 보니 마음에 안 들었다.
꼬투리 잡을 게 없어서 문제였지만.
‘이제 슬슬 느껴지냐?’
그리고 도윤은 태주를 향해 속으로 비웃음을 머금었다.
빠르게 벌어지는 자신과 태주의 처지.
회귀 전과 완전히 뒤집힌 이 상황.
그리고 회귀 전의 도윤이 그랬듯, 자멸하는 태주의 모습.
역시 도윤이 그랬듯, 진짜 의도를 못 깨닫고 자만하는 저 모습.
‘이런 기분이었구나.’
새삼.
회귀 전의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알 것 같았다.
여하튼.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본촬영이 시작되면-
자신과 태주의 차이는 더더욱 벌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