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과천선 배우님(1)
“컷 다 땄어? 다음 씬 바로 준비해야 하니까 움직여. 빨리!”
“조명 아직 세팅 안 됐어? 반사판 좀 다른 거 가져오라니까!”
“엑스트라들 레디시켜. 오늘은 펑크 없지? 저번처럼 그랬다간…….”
분주한 촬영현장.
막 한 장면(scene) 촬영이 끝난 가운데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다음 장면 촬영을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 현장으로 낡디 낡은 중고차 한 대가 들어왔다.
도색은 군데군데 까지고 시동이 걸리는 것조차 놀라워 보이는 그 차는 매우 조심스럽게 촬영현장 구석에 얌전히 주차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내린 사람은 30대 중반쯤이나 되었을까 싶은 남자였다.
그는 자신이 끌고 온 자동차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촬영 현장으로 향했고, 그의 손에는 해질 대로 해진 대본 한 부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다 낡은 차도 그렇고 매니저 없이 운전석에서 내리는 걸로 봐선 전혀 배우처럼 보이지 않았다.
‘후우. 침착하자.’
남자, 한때는 대단한 미남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그는 꽤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다.
하지만 이건 오늘 그가 맡은 배역을 위해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한 분장의 일부.
물론 반쯤은 남자의 진짜 피로가 뒤섞여 있었지만, 그는 오늘 연기만 마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남자.
최도윤은 곧바로 촬영현장의 PD에게 향했다.
그러면서 PD에게 향하는 동안 마주친 배우나 스태프, 단역들에게 꼬박꼬박 인사를 건네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제 와서 저러면 뭐 하냐?”
“야, 야. 들리겠다.”
사람들의 시선은 대체로 탐탁잖았고.
“왜, 안 그러냐? 그래도 꼴에 돈은 벌어야겠다고 아득바득 기어들어 오는 거잖아. 마약이나 한 놈이.”
심지어 대놓고 들으라는 듯 무안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도윤은 어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요동치려는 속을 다스린 채 결국 PD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PD님, 안녕하십니까.”
“아. 최도윤 씨.”
PD는 도윤을 한 번, 그리고 도윤이 들고 있는 대본을 한 번 슬쩍 쳐다보더니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고 고개를 돌리더니.
“왜 벌써 왔어요? 촬영 아직 한참 멀었는데.”
“그게, 미리 와서 연습을 해두고 싶어서요.”
PD의 눈은 도윤이 PD에게 인사를 하러 걸어오는 동안 받은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요, 그럼. 이따 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꾸벅 숙이는 도윤.
그리고 촬영현장 근처, 그늘진 곳에 적당히 자리를 잡았고.
지금껏 수백 번은 읽고 분석했을 대본을 다시 꺼내 들었다.
대사는 딱 세 개에 불과하지만 여백엔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한 대본.
“전 이제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여생이라도 편안히 보내고 싶어요.”
“휠체어에 의존해서 누가 밀어주지도 못하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을 이어가라는 말인가요?”
“제발, 제발…… 절 놔주세요.”
<닥터 미라클>.
이 드라마에서 도윤이 맡은 배역은 살 의지를 잃고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에게 이제 그만 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애원하는 악성중피종에 걸린 역할이었다.
도윤은 단 세 개뿐인 대사를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리고 도윤이 대사를 되새김질할 때마다 주변에선 감정의 파도가 몰아쳤다.
어지간한 배우들보다 훨씬 격렬하고, 훨씬 변화무쌍한 격류.
마치 노련한 배우의 리딩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으며 도윤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맡은 배역에 완벽히 몰입한 채였다.
하지만 그걸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저 사람, 10년 만에 방송 복귀하는 거지?”
“세상 참 좋아. 약 빨던 놈도 시간 지났다고 복귀시켜주고.”
“약만 빨았냐? 양아치처럼 굴다가 저 꼴이 난 거지.”
“약 그거 무혐의 아니었어? 기사 본 것 같은데.”
“무혐의든 뭐든 인성이 쓰레기였다잖아. 그러니까 해명해도 안 믿어주지. 업보야, 업보.”
몇몇은 그를 조롱했다.
하지만 도윤은 완전히 빠져들어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설사 들었다 해도 구태여 해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틀린 사실이라 외치기엔 너무 오래 지난 시간.
또한 10년 만에 어렵사리 잡은 기회를 구태의연한 반박과 해명으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제발, 제발 절 놔주세요…….”
도윤의 대사가 다시 한번 그의 주위를 맴돌다 사라지고.
어둑어둑한 밤이 되어서야 도윤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환자분, 끝까지 마음을 다잡으셔야 해요. 아직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전 이제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여생이라도 편안히 보내고 싶어요.”
홀쭉한 양 볼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갈라진 목소리.
병원 침대에 누워 그늘진 얼굴로 대사를 치는 도윤에겐 정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같았다.
“휠체어에 의존해서 누가 밀어주지도 못하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을 이어가라는 말인가요?”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땅에 거친 흙먼지가 내려앉은 것 같은 목소리가 마이크로 스며드는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숨을 죽였다.
‘재능은 어디 안 가는군.’
‘저런 재능으로 마약이나 하고…….’
‘그때 그대로 갔으면 주연 자리는 거뜬히 꿰찼을 텐데. 쯔쯔.’
최도윤.
데뷔부터 신 스틸러로 이름을 날리고 단기간에 드라마 주연 후보에 오를 만큼 가진 바 재능으로 마치 대나무처럼 쑥쑥 자라났지만.
한순간의 사건으로 나락에 빠진 배우.
여기에 그의 연기를 직접적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몇 없다.
하지만 그가 10년 전 센세이션을 일으킬 뻔한 사람임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 묻혀버린 센세이션을 다시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거기다 도윤의 연기를 목도하는 순간 온몸이 오싹해지고 소름이 돋는 듯한 감정까지 곁들여졌으며-
“제발, 제발…… 절 놔주세요.”
정말 불치병에 걸려 모든 희망을 잃은 환자처럼 완벽히 몰입해 마지막 대사를 치는 도윤을 본 순간.
사방은 정적에 빠져들었다.
컷.
컷이 나와야 한다.
이 장면을 끝으로 씬이 바뀌고 심란한 표정으로 말없이 빵을 먹는 주인공이 나올 차례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PD의 입에서는 그 말이 나오지 않았고.
톡-
먼저 정신을 차린 조연출이 그의 어깨를 친 뒤에야 마치 경기를 일으키듯 PD는 컷을 외쳤다.
“컷. 훌륭해. 잘했어.”
PD는 저도 모르게 살짝 박수를 치려다 손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의미가 내포된 끄덕임.
PD는 도윤을 바라봤다.
완벽한 몰입 탓에 일어난 감정의 소용돌이를 억누르느라 애쓰는 모습.
‘허. 이 정도라니.’
도윤을 쓴 건 PD로서도 도박이었다.
아무리 출연 정지가 풀리고 그 마약파티 사건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잊혀간다 할지언정.
위험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도윤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저 연기력.
고작 세 번의 대사로 대사를 받는 주인공마저 압도해버리는 완벽한 몰입.
방금 씬 만큼은 도윤이 지배하는 시간이었고.
신 스틸러로 불렸던 그 이유가 다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도윤 씨.”
그래서 PD는 씬 촬영을 마치고 스태프들이 준비하는 사이 도윤을 따로 조용히 불러냈다.
“혹시 다음 스케쥴 있어요?”
“네?”
“혹시 없으면 이번 작품 마무리하고 다음 작품 나랑 같이합시다. 이거 끝나면 나도 바로 휴식기 들어가니까.”
도윤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조연 자리 하나가 마땅찮아서 그런 거니까 너무 기뻐하진 마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PD님, 저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PD는 잔뜩 흥분한 도윤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주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도윤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기쁨의 비명을 억누르며 흥분에 몸을 떨었다.
‘드디어, 드디어 기회가 왔어.’
10년에 이르는 치욕의 세월.
누명을 쓰고도 해명할 기회도 없이 출연 정지를 당한 건, 어쩌면 업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데뷔 후 서서히 높아진 콧대.
이제 세상이 자신의 발아래 있을 거란 착각 속에서 안하무인으로 굴던 나날들.
완벽한 데뷔 후 몇 번의 조연을 거쳐 고작 2년 만에 주연 자리를 꿰차는 동안 켜켜이 쌓인 건방진 모습들까지.
사람들은 도윤을 믿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저럴 줄 알았다는 듯 비웃음을 던지고, 뒤늦게 무혐의로 출소했을 때는 기사 한 줄조차 나지 않았다.
물론 해명하려 했다.
다만, 그의 자리를 대체할 사람은 수없이 많았을 뿐.
아무리 잘못한 게 없다 해도 오해는 풀기 어렵고, 그런 오해가 쌓여 있는 이상 그를 쓸 PD나 감독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도윤은 결심했던 것이다.
얼마나 걸리든 다시 배우로 서자고.
사실 복귀할 기회는 있었다.
도윤의 인성이 조금만 더 좋았고, 이 바닥 사람들한테 평판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분명 복귀했을 것이다.
도윤은 진짜로 마약을 한 게 아니었으까.
‘도대체 누구였을까.’
도윤은 그날 파티에 초대되었다.
그리고 술에 잔뜩 취해 누군가 건넨 담배를 받아 피웠는데…….
그건 담배가 아니었다.
함정에 빠졌다는 걸 깨달았을 땐 자신의 흡연 사진과 관련자들의 증언이 모두 흘러나온 뒤.
함정에 빠진 이유.
그리고 함정에 빠뜨린 사람이 누군지도 뒤늦게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
“후우.”
과거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던 도윤은 이내 고개를 털었다.
‘오늘은 집에서 맥주나 한잔할까?’
찰나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다시 기쁨에 젖은 도윤이 몸을 돌리던 그때였다.
휘청-
도윤의 몸이 기우뚱.
그대로 땅으로 곤두박질치려다.
턱.
벽을 짚은 도윤의 손 덕에 간신히 멈췄다.
순간 흐르는 식은땀.
가슴께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
‘뭐지?’
가슴을 ‘꽉’ 붙잡은 도윤의 뇌리로 불안이 엄습했다.
* * *
“그동안 어떻게 참으셨습니까?”
도윤은 원래 인내에 익숙했다.
이미 지금껏 10년을 인내하며 배우로 다시 설 날만 기다렸다.
아플 때도 감기 정도야 그냥 무시하고 조금 크게 아프다 싶으면 그제야 약국에서 약이나 타 먹는 정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기할 날만 기다리며 연습했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폐암입니다. 상당히 진행된 것 같습니다. 여기를 보시면…….”
몇 달 전부터 도윤을 괴롭혀오던 통증은 구체적인 단어가 되어 귓가에 틀어박혔다.
폐암.
그것도 말기.
그 단어를 들은 순간 도윤의 귀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 낙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오늘 입원 수속을 밟으시고…….”
왜 증상이 없었을까.
“원래 폐라는 장기에는 신경세포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윤이 물었다.
“살…… 수 있는 확률은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밖에는 못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도윤은 이번 <닥터 미라클>의 단역을 준비하며 의료 관련 지식을 찾고 또 찾았다.
거기엔 당연히 의사에 관련된 것도 있었다.
의사는 신이 아니기에 환자에게 확답을 할 수 없다고들 한다.
이미 암세포가 척추, 심장을 침범한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더더욱.
“……이만 가보겠습니다.”
도윤은 붙잡는 의사의 말마저 뿌리치고 병원을 나왔다.
웃겼다.
폐암에 걸린 줄도 모른 채 살이 빠지는 걸 두고 배역 준비가 더 완벽해지겠다며 좋아했던 꼴이라니.
억울하기도 했다.
담배를 끊은 지도 오래됐고, 차라리 증상이라도 보였다면 이렇게 늦게 발견하진 않았을 텐데.
그저 허망했다.
뒤늦게 기회를 잡았건만, 이대로 끝난다는 게.
지이잉.
[도윤 씨. 조만간 작가님이랑 미팅 잡죠. 대본은 조만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때 PD로부터 톡이 왔다.
다음 촬영은 아무리 낙관적으로 잡아도 6개월 후.
도윤은 그때까지 자신이 연기를 펼칠 만큼 멀쩡할 자신이 없었다.
“폐암 환자 역할이면 모를까.”
그럼 정말 일생일대의 연기를 펼칠 수 있을 텐데.
이 지독한 아이러니함.
불치병 환자 역할로 기회를 잡았는데 진짜 불치병에 걸려버릴 줄이야.
“하하.”
도윤은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걷기 시작했다.
어떻게 설명할지를 고민하던 도윤은 생각을 거뒀다.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 만약 콧대 높게 굴지 않았다면.
그때 우월감에 젖어 지내지 않았다면.
이제는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후회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느새 병원 앞 횡단보도에 다다른 도윤은 PD로부터 온 톡을 다시 바라봤다.
차라리 이 배역만 마치고 폐암인 걸 알았다면.
잡은 줄 알았던 기회가 고운 모래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느낌은 끔찍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병원에 입원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죽을 날을 기다려야 하나?’
대답은 얻을 수 없었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하나였다.
후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흔하디흔한 염원.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소망.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강력한 의지를 띤 바람이 도윤의 머릿속에 아로새겨진 그 순간.
바아아아아아앙-!
횡단보도에 다다른 도윤의 귓가로 찢을 듯한 트럭의 경적 소리가 들려왔고.
“지윤아, 안 돼!”
한 여자의 소름 끼치는 비명과 함께.
도윤은 바람에 날아가 버린 풍선을 주우러 도로로 뛰어드는 어린아이를 마주했다.
망설일 시간도 없이.
타악-
도윤은 그대로 뛰어 아이를 밀치고.
쾅!
순간 거대한 충격과 함께 아득해지는 의식 속에서.
안심했다.
트럭에 부딪히기 직전, 아이의 몸이 저 멀리 밀려나는 걸 확인했으니까.
그리고 영겁처럼 길던 체공 시간이 끝났으며.
쿵.
바닥에 부딪힌 도윤의 시야는 그대로-
암전(暗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