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300화 (완결) (300/300)

< 회초리. <완결> >

민국당 의원들이 최학인 대표의 팔을 잡고 질질질 끌어내기 시작했다.

방송국 카메라가 이 모습을 촬영하는 중이다.

그리고 당 대표라는 사람이 타국의 불법적인 자본을 꿀꺽하고 살인 청부까지 지시했다.

계속 추한 모습을 보이면 민국당의 지지율이 위태로울 거다.

그럼 다음 총선이 어려워진다.

“대표님! 제발 좀!”

하지만 최학인 대표는 멈추지 않는다.

허공에 발길질까지 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난 죄가 없어! 이건 모두……!”

그때 성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요.”

최학인 대표를 끌어내던 민국당 의원들의 행동이 멎었다.

그러자 성윤이 내려와 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최학인 대표가 눈을 번뜩인다.

“내가 네놈은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네깟 놈 한 마리가 국회를 흐리고 있어!”

최학인 대표의 목소리는 흥분한 짐승 같았다.

하지만 성윤의 목소리는 지나칠 정도로 차분하다.

“이유가…… 도제성 의원님을 위해서였다고요? 그러니까, 도제성 의원님이 정상에 서는 것을 보고 싶어서 이런 짓까지 벌였다고요?”

“뭐?”

“이런 일을 벌이는 이유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던 최학인 대표가 낄낄낄 웃기 시작했다.

“그래, 이 새끼야! 너나 박무혁이 나라 망쳐 먹는 꼴을 볼 수 없잖아! 그래서……!”

“그래서 사람을 죽이고 타국의 불법 자금을 뒤로 받고?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며 기도를 하고?”

“도제성 의원님이 대통령이 됐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성윤이 고개를 저으며 한심한 눈으로 최학인 대표를 향했다.

“거짓말…… 이제 그만하세요.”

“뭐?”

‘거짓말’……. 평소에 들었다면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윤이 내뱉은 단어가 최학인 대표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왔다.

그가 지금껏 벌인 모든 일의 이유는 ‘도제성 의원의 복귀’와 ‘민국당의 집권’…….

그런데 그게 거짓말이라니.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하면…….

“인정하세요. 거짓입니다. 위선이고요. 앞에서는 보기 좋은 모습과 명분을 만들어 두고 뒤로는 자기 욕심만 채운 위선자…….”

모든 카메라가 두 사람을 비추고 있다.

많은 국민이 지켜보는 중이다.

그 상황에서 최학인 대표의 가면이 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윤은 멈추지 않는다.

속마음을 들으며 사정없이 찔러 들어가고 있었다.

“대표님에게는 탐욕만 있었어요. 권력을 쥐고 싶다는 생각이 뇌를 지배했어요. 그 욕심이 여기까지 오게 한 거고요.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게 된 거죠.”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인정하면 위선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까지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네, 네가 뭘 안다고! 다 아는 것처럼 지랄하지 마!”

“구치소에서 교도소, 반성하고 생각할 시간은 많을 겁니다.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이제 끝났습니다.”

성윤은 몸을 돌렸다.

최학인 대표의 온몸이 파르르 떨린다.

“이성윤 이 새끼야!”

하지만 성윤에게 더 이상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최학인 대표는 다시 의원들에게 끌려 질질질 본회의장을 벗어난다.

“이성윤!”

***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투표가 끝났다.

사건에 연루된 오십여 명의 의원들…….

결과를 기다리는 그들의 표정은 초조하다.

투표 결과를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투표는 회의에 들어오기 전에 결정되기 마련이다.

찬성과 반대는 당 간부의 의지에 달려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성윤의 돌발 행동을 시작으로 갑자기 열렸다.

당의 회의는 없었고 의원 개개인의 선택에 따라야 한다.

“하…….”

눈을 감고 몇 표가 나왔을지 고민해 본다.

함께 싸웠던 사람이 몇 명인지 생각해 보고 친했던 사람이 몇 명인지 기억해 보고…….

그중에 몇 명이 배신하지 않을 것인지…….

하지만 한숨만 나온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아슬아슬하다.

‘젠장.’

그때 의장이 앞에 섰다.

본회의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서늘해진다.

의장의 발언에 따라 오십여 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의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자들은 단두대에 목을 집어넣은 것처럼 긴장된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총투표수 275표 중 가 201표…….”

“……!”

체포 동의안이 통과됐다.

죄를 지은 의원들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지 눈만 깜빡인다.

그러다가…….

“이게 뭐 하는 거야!”

벌떡 일어나 소리를 내지른다.

이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는 기억하지 못한다.

체포 동의안에 찬성한 동료 의원들이 미울 뿐이다.

“의리도 없는 새끼들아!”

급기야 노트북을 집어 던지며 난동을 부리는 사람도 나타났다.

“난 죄가 없어! 없다고!”

의장이 의사봉을 내려친다.

“조용하세요! 경위! 가서 말려!”

경위를 비롯한 의원들이 달려든다.

“그만! 그만!”

마지막까지 개판이었다.

잠시 후.

모든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떠났다.

국회는 적막하다.

그곳에 성윤이 서 있었다.

조용히 주변을 둘러봤다.

본회의장의 문이 박살 나 있는 게 보인다.

망치에 두들겨 맞고 전기톱에 갈려서다.

성윤의 시선이 복도로 틀어졌다.

쓰레기가 가득하고 바리케이드로 사용했던 의자와 책상은 널브러져 있다.

그것을 지켜보는 성윤의 눈빛이 착잡했고 입에서는 절로 신음이 내뱉어졌다.

이런 것을 보기 위해 수 없이 같은 꿈을 꿨고 국회의원이 되었을까 생각이 든다.

벽에 등을 기대고 복도에 앉았다.

그렇게 잠시 앉아 있는데 정우가 다가온다.

그 역시 성윤의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안 가세요?”

“가야지.”

성윤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는지 정우는 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옆에 앉아 있을 뿐이다.

그렇게 있는데,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틀어 보니 여당 의원들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다.

바닥에 놓인 쓰레기를 주우면서…….

성윤과 눈을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는다.

“청소해야죠.”

지금껏 허탈하게 앉아 있던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청소해야죠.”

박살 났던 국회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깨진 유리도 쓸고 의자와 책상도 정리하고.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어? 노을!”

정우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킨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창으로 향한다.

붉은 노을과 함께 해가 지고 있다.

마치 대한당과 민국당으로 양분되었던 시대가 저무는 것처럼 느껴진다.

밤이 올 것이고 또 새벽이 오겠지만 어둠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시대가 찾아올 거다.

***

-외국의 폭력 조직에게 뇌물을 받고 이권을 챙겨 준 국회의원 54명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가결됐습니다.

자동차 라디오 채널이 돌아갔다.

-최학인 대표는 체포 동의안이 가결된 직후 국회 내에서 체포됐습니다. 미국에서 투자 활동을 벌였던 이 모 씨를 청부 살해한 혐의입니다.

채널을 바꿔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한상국 전 대통령이 구속 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 중앙 지법에 도착했습니다.

서울 곳곳은 시위로 가득하다.

정치인의 지지자가 주축인 시위다.

‘한상국 대통령을 사모하는 모임’, ‘최학인과 함께하는 세상’ 등등등.

이들은 분명 명확한 죄를 저질렀다.

살인과 뇌물, 마약과 매춘을 눈감아 주고 경찰에 압력을 행사하고…….

하지만 지지자들의 눈에는 그들의 죄가 보이지 않나 보다.

-최학인 대표를 석방하라!

“석방하라! 석방하라!”

-박무혁과 이성윤은 정치공작을 그만하라!

“그만하라! 그만하라!”

-한상국 대통령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청렴했던 것이다!

결국 라디오는 종료됐다.

정우가 고개를 틀어 성윤을 본다.

“이러다가 이 이슈가 총선까지 가는 거 아니에요?”

며칠 후, 성윤과 정우는 의원회관에서 당사로 향하는 중이었다.

성윤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설마…….”

“설마가 사람 잡아요. 지금 뉴스고 포털 사이트고 죄다…….”

성윤이 손을 저었다.

“됐고. 그런데, 안 가 볼 거야?”

“어딜요?”

“거기.”

며칠 전, 성윤은 정우의 아버지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은 사람을 찾았다.

그러니까 자신의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일반 시민을 끝없이 갈아 넣었던 사람.

죄가 없던 정우의 아버지를 고문하라 지시했던 자…….

당시 안기부 차장이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치매 요양 병원에 있다.

“안 갈래요.”

성윤과 정우는 야당 대표 최학인에서 전 대통령 한상국의 말로를 지켜보며 권력의 비참한 끝을 마주했다.

그런데 권력을 향해 아득바득 올라가던 전 안기부 차장이 치매 요양 병원에 있는 것까지 보면…….

정우가 씁쓸하게 웃으며 묻는다.

“의원님, 우리의 끝도 비참할까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을 부리면 비참할 거야. 비참하지 않아도 추할 거야. 탐욕적인 노인네가 될 거니까. 국회의원은 사심이 없어야 해.”

“사심, 사심…….”

가만히 생각에 빠졌던 정우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복잡한 생각은 여기까지만 하죠. 정치 말고 제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인생의 선배로서 대답해 줄 수 있어요?”

성윤이 슬쩍 정우를 바라봤다.

인생의 선배 어쩌고 하는 걸 보고 있으니까 오랜만에 보좌관이 아니라 동생처럼 여겨진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한정이 기자에게 고백하려고 하거든요?”

“어?”

“총선 선거운동 할 때요. 사람들이 딱 모여 있을 때……. 그러니까 우리 선거운동 봉사자들이 모여 있을 때요. 일반 분들 말고.”

뭔가 불안해진다.

하지만 성윤은 끝까지 귀를 기울였다.

“어, 모여 있을 때. 뭘 하려고.”

“노래를 부를 거예요. 노래는 <고해> 여자들이 좋아하잖아요. 그리고 99송이 장미를 전해 주면서 ‘남은 한 송이는 너야.’ 이 멘트를 날리면 딱 눈물을 글썽이겠죠? 여기서 쐐기를 박는 거예요. 샴페인을 따라 주면서 ‘이거 다 마시면 나랑 결혼하는 거다.’ 캬! 이때, 봉사하시는 분들이 손뼉 치면서 ‘뽀뽀해’…….”

“하지 마.”

“네?”

“하지 마. 널 위해서야.”

“그런데, 의원님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뭘?”

“정혜성 씨요. 계속 그렇게…….”

“좋은 감정으로 만나는 중이다. 됐지?”

***

총선의 투표 날이다.

여당 당사의 분위기는 술렁이고 있다.

오가는 당직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출구 조사 나왔나?”

“아직…….”

“우리 자체 조사는 어때?”

분명 분위기는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란 까 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다.

승리를 당연히 여긴 지지자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아 패배한 경우도 있으니까.

게다가 민국당에는 도제성이 복귀해 당권을 차지했다.

세력을 규합하며 빠르게 지지율을 따라붙는 중이다.

그래서 불안했다.

“최종 투표율 나왔어?”

“87%!”

“뭐? 87?”

말도 안 되는 투표율이다.

당직자들은 눈을 깜빡이며 다시 묻는다.

“87이라고?”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당직자들이 선거에 이골이 났다고 하지만 이정도의 투표율이 나오면 어디에 유리할지 감이 잡히지도 않는다.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강당에는 의원들이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했다.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고.

지금부터 시작될 개표 방송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맨 앞자리 가운데에 성윤이 앉았다.

카메라는 성윤의 얼굴을 확 끌어당긴다.

그리고 동시에 개표 방송이 시작된다.

-국민의 선택! 정당별 예측 의석수입니다. 한민당 148에서 171석. 민국당 91에서 118석, 대한당 11에서 20석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총선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명단이 바뀌는 순간이다.

한민당은 과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고, 민국당에는 구원 투수로 등장한 도제성 때문에 약진했다.

누군가는 또 도제성이냐고, 왜 변한 게 없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실세는 우경도다.

그를 중심으로 민국당은 새롭게 바뀌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멸망의 길에 들어선 대한당은 원내교섭단체 진입이 목표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 아나운서가 계속 입을 연다.

-먼저 서안시입니다. 한민당 이성윤 67.2%, 예측 당선입니다.

예측이지만 67%다.

성윤의 주변은 난리가 났다.

갑자기 성윤의 이름을 외쳐 부른다.

“이성윤! 이성윤!”

성윤은 조용히 미소 지을 뿐이다.

아직은 확정이 아니라 예측이기 때문에…….

그리고 성윤의 목표는 당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바꾸는 것이니까.

모두는 다시 자리에 앉아 개표 결과를 지켜본다.

하지만 조용하기는 어렵다.

예측이 이어질 때마다 탄식과 환호가 이어지고 있다.

“와!”

“아…….”

하지만 성윤의 귀에 그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국민의 마음이 들려온다.

87%라는 놀라운 투표율…….

국민은 개돼지가 아니다.

작년에 일어났던 일을 기억한다.

최학인 대표와 오십여 명의 국회의원들, 그들이 벌인 일…….

그래서 국민은 소중한 한 표라는 이름의 회초리를 손에 들었다.

정치인에게는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아픈 회초리다.

누군가는 말했다.

정치를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놓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또 누군가는 말했다.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고…….

정치는 국민의 선택이다.

그리고…….

-개표가 시작되었습니다!

《국회의원 이성윤》 마칩니다

< 회초리. <완결> > 끝

- 작가의 말 & 후기 -

안녕하세요? 이해날입니다.

이성윤은 부정부패 척결을 끝내고 또 다른 정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마침표를 찍습니다.

사실, 완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큰 목표를 끝낸 지금이 마침표를 찍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됐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완결을 낸 순간은 항상 아쉽습니다.

그런데, 이번은 그런 마음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과연 최선이었나? 조금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과 후회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게 부족한 능력 탓인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지금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준비해서 돌아오겠습니다.

이런저런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지만 글쓴이는 글로 이야기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드리고 싶습니다.

국회의원 이성윤을 이야기하며 참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300회라는 긴 이야기를 함께 해주신 의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독자님들 덕에 이 이야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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