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99화 (299/300)

< 발악. - (6) >

하지만 성윤은 최학인 대표와 달리 차분하다.

흥분하지 않고 조용히 입을 열고 있다.

“보좌관을 향한 폭행…… 명백한 갑질입니다. 약자를 위해 정치를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봐요? 그러니까 위선자라 불리나?”

“이 새끼가 끝까지!”

하지만 최학인 대표의 목소리는 거기서 그쳤다.

성윤이 휴대폰을 꺼내더니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러 버렸기 때문이다.

“그 손 놓으세요. 계속하시면…… 인터넷에 올릴 겁니다.”

“하!”

최학인 대표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우경도 보좌관의 목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우경도 보좌관이 목을 잡고 컥컥거린다.

괴로웠던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하지만 쉬고 있을 틈은 없었다.

최학인 대표가 그를 향해 싸늘하게 입을 연다.

“따라와.”

“네?”

“따라오라고, 이 새끼야!”

최학인 대표는 이 상황에서도 우경도 보좌관을 끌고 가려 한다.

방금 우경도 보좌관이 성윤과 했던 통화…….

-2시에 시작할 겁니다. 좌측 통로에…….

그 내용에 깡패를 끌어들였다는 정보는 없었다.

시작 시간과 좌측 통로에 대한 이야기만 있었을 뿐이다.

‘이성윤이 깡패에 대한 것만 모르면 되는 거야.’

그럼, 되는 거다.

깡패들은 통로를 열 것이고 본회의장은 이들이 장악하게 될 테니까.

최학인 대표의 시선이 성윤에게 향했다.

“내가 내 보좌관과 함께 나가겠다는데, 이것도 막을 생각인가? 이것도 갑질이야?”

최학인 대표의 목소리가 험해진다.

일부러 시비를 거는 것처럼…….

성윤의 시선이 우경도 보좌관에게 향했다.

우경도 보좌관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신경전을 더 벌이지 말라는 거다.

성윤은 고개를 끄덕인다.

우경도 보좌관의 안전은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밖에는 사람이 많다.

아무리 최학인 대표라 해도 방금과 같은 돌발 행동을 하지도 않을 거다.

성윤이 몸을 틀어 길을 내주자 최학인 대표가 그 옆을 스치며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성윤…… 까부는 것은 여기까지야.”

“그건 지켜봐야 알겠죠.”

“끝까지.”

최학인 대표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자리를 떠났다.

비상구의 철문이 ‘쾅!’ 소리와 함께 닫혔다.

성윤은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2시…….’

***

태풍이 다가오기 전의 고요함은 스산하다.

점심을 이용해 간단히 김밥으로 끼니를 때운 의원들과 보좌관들…….

그들은 담배를 피우며 억지로 우스갯소리를 이어 가고 있다.

“이거 봤어요?”

“뭐?”

“미국 대선요. 아무래도 우리가 이긴 것 같은데요?”

“정말?”

“지지율이 크로스 됐어요. 이번에 공화당 그레이슨이 앞섰고 며칠 안 남았으니까…….”

휴대폰으로 미국 대선을 보며 낄낄대는 중이다.

일본 정치인들이 상대 당을 지지했는데, 이제 엿 먹었느니 어쨌느니…….

한참을 떠들다가 그들의 시선이 성윤에게 향한다.

“이성윤 대표님…… 점쟁이 같은데요?”

“그러게 돗자리 깔아도 되겠어요. 하하하.”

그레이슨이 공화당 후보가 되기 전부터 성윤은 그를 지지했다.

꿈을 통해 미리 봤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만 모두 놀라워하고 있다.

“이성윤 대표님이 계시면 미국과의 관계는 신경 안 써도 되겠네요.”

“그러게? 그럼, 미국 대선 끝난 후에 일본과 중국 그리고 북한을 신경 써야 하나?”

“외교는 박무혁 대통령님이 해야 하는 거지.”

“그래도 대표님이 신경 써야지. 정부의 실세가 비서실장이나 수석이 아니라 대표님이잖아. 하하하!”

모두들 크게 웃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눈동자는 복도 끝을 향하고 있다.

2시에 온다고 말한 민국당과 대한당의 연합…….

시간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더욱 커지는 중이다.

새벽이 기억나서다.

상대는 전기톱까지 동원하며 문을 부수려했다.

감정이 더 격해지고 상황이 극단적으로 변하면 유혈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마른침을 삼키는데, 한쪽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2시 5분 전입니다.”

그리고 복도 끝에서 저벅저벅……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온다.

놈들이다.

가장 앞선 자들은 예사롭지 않은 덩치를 자랑하며 검은 모자에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깡패들…….

그들이 책상과 의자로 가로막힌 바리케이드 앞에 섰다.

“열어.”

살기로 가득한 음성에 여당 의원들과 보좌관들이 움찔한다.

앞에 선 자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너희들 누구야? 누구 밑에 있어?”

공대출 의원이 물었다.

하지만 놈들은 낄낄거리며 모자를 더 푹 눌러쓴다.

“인턴이에요, 인턴. 누구 밑에 있는지는 알아서 뭐 하려고요?”

여당 의원들은 힐끗 카메라를 든 기자와 유튜버 들을 살폈다.

폭력 사태가 일어나도 저들이 잘 찍어 주면…….

“왜 안 찍어?”

안 찍고 있다.

먼 곳, 다른 곳을 찍는 중이다.

기자는 보여 주고 싶은 것만 보여 준다.

“개새끼들아!”

그 목소리가 시작이었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줄이 끊어지며 최학인 대표가 끌고 온 깡패들이 바리케이드를 부수기 시작한다.

앞에 놓인 의자를 집어 사람에게 던지지만 망설임이 없다.

“죽여!”

여당 의원들도 다급하다.

한쪽은 힘으로 막고 있고 다른 쪽은 손을 휘저으며 본회의장을 가리킨다.

“가! 여기는 신경 쓰지 말고 가!”

그 말에 여당의 일부 의원과 보좌진은 본회의장으로 달려갔다.

바리케이드가 무너질 것을 대비해 안에서 문을 잠그려는 거다.

하지만…….

저기서 또 전기톱이 등장했다.

반대쪽에서는 해머를 들고 나타났다.

문을 잠그면 부숴 버리겠다는 의지…….

“뒈져! 이 새끼들아!”

“막아!”

말 그대로 개판.

동물 국회라는 말도 아까울 정도다.

그리고…… 최학인 대표는 먼 곳에 서 있었다.

국회를 개판으로 만든 장본인은 고고하게 서서 여당 의원들의 당황하고 겁에 질린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다.

입가에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빙긋이 걸린다.

‘끝났어.’

확실히 깡패의 전투력은 다르다.

지금껏 복도를 채우던 여당의 보좌관들이 낙엽처럼 흩날리고 있다.

‘진작 이렇게 할 것을…….’

유튜버들에게는 돈을 찔러줬고 방송국은 한상국 전 대통령이 장악했다.

거칠 것이 없었다.

‘이대로 국회를 장악하고 투표를 못하게 막아 버리면 되는 거야.’

그럼, 감히 검찰 따위가 국회의원을 체포할 수 없다.

그동안 증거는 조작하면 되는 거고 내년 총선에 또 당선되면 끝인 거다.

자신은 야당의 대표다.

텃밭을 골라 이름만 제출하면 무조건 당선이다.

적당히 전철을 깔아 준다고 하면 좋다고 투표할 거다.

그게 민심이다.

‘그럼 되는 거야!’

최학인 대표의 눈이 번쩍였다.

그동안 걱정했던 모든 것이 깔끔하게 해소되는 기분이다.

“다 죽여 버려!”

최학인 대표의 목소리가 벼락같이 떨어졌다.

동시에 겨우 버티고 있던 바리케이드가 완전히 무너졌다.

의자와 책상이 널브러졌고 그 사이로 깡패와 대한당과 민국당 의원이 달려들어 간다.

최학인 대표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더 짙어졌다.

밥 처먹고 책상에만 앉아 있던 의원이나 보좌관이 깡패들의 앞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시작될 것은 싸움이 아니다.

학살이다.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다.

그런데…….

‘어?’

최학인 대표의 눈동자가 성윤의 얼굴에서 멎었다.

성윤은 반대편에 서 있다.

그런데…… 최학인 대표만큼 짙게 웃고 있다.

‘왜? 네가 왜 웃어?’

그 순간, 최학인 대표가 끌고 온 깡패 중 한 명이 돌발 행동을 벌였다.

같은 편인 민국당 의원의 다리를 확 걸어 버린다.

민국당 의원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안쓰러울 정도로 복도를 굴러 버렸다.

모두 황당한 얼굴로 그 깡패를 바라본다.

“뭐야? 미쳤어?”

“너 왜 그래!”

하지만 그 깡패는 주변의 말을 신경 쓰지 않는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더니 여당의 앞에 선다.

천오민이었다.

이어서 성윤의 뒤에서 거대한 덩치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역시 모자를 쓰고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자들…….

그들이 성윤의 옆을 스치며 말한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장한수 실장과 훈련받은 요원들이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치지 마세요. 박정우 보좌관이 올 때까지만 견뎌 주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장한수 실장의 짧은 대답, 그 순간 요원들이 튀어 나간다.

멍하니 있던 여당과 야당 의원들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몸싸움, 거친 욕설…….

혼신의 힘을 다해 밀고 당기고 난리도 아니다.

최학인 대표는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성윤도 깡패를 데리고 있었다니.

그것도 자신이 옆에 뒀던 천오민이 배신자였다니!

최학인 대표의 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우경도 보좌관에 이어 깡패까지 첩자였다.

주변 모두를 믿을 수 없게 됐다.

그때 성윤의 옆으로 정우가 섰다.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는지 보이지 않았던 정우다.

최학인 대표의 눈이 번뜩인다.

‘설마, 저놈도?’

정우가 첩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정우에게 받은 정보 중에 중요한 것은 어떤 것도 없었다.

그럴듯한 것만 존재했다.

그의 인상이 있는 대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당했어.’

인정해야 한다.

성윤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

그의 분노로 가득한 눈빛이 정우에게 집중됐다.

정우는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성윤에게 건네는 중이다.

‘뭐지?’

최학인 대표의 눈은 찌푸려졌다.

저 봉투 안에 든 게 뭔지는 모르지만 섬뜩하다.

날카로운 칼이 들어 자신의 목을 그어 버릴 것만 같다.

그런데 그 순간 성윤이 몸을 틀어 본회의장으로 향한다.

이어서 들리는 마이크 소리.

-본회의장에서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본회의가 개의되겠습니다. 의원 여러분께서는 회의장에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느닷없는 방송이다.

거친 몸싸움이 순간 멎었다.

모두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순간…….

“문이 열렸어!”

굳게 닫혔던 본회의장의 문이 활짝 열렸다.

지금껏 싸웠던 게 우스울 정도로…….

“어떻게 된 거야?”

“일단 들어가!”

여당이고 야당이고 일단 우르르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최학인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성윤의 행동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 안으로 들어가는 게 꼭 불꽃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알면서도 당하는 게 세상이다.

살기로 빛나는 눈을 부릅뜨며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됐어. 좋게 생각해야 해. 표결은 없을 거야. 신상 발언을 시작으로 여섯 명 정도 연속으로 연설을 잡고 시간을 끌면 끝이야.’

최학인 대표가 자리에 앉아 앞을 향했다.

가장 앞에 성윤이 서 있는 게 보인다.

성윤이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연다.

“존경하는 선배, 동료 의원님들. 오늘은 대한민국 국회의 치욕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오십 명이 넘는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안 투표……..”

먼 곳에서 명단에 적힌 의원의 노성일갈이 울린다.

“닥쳐! 이게 정치 탄압이지 뭐야!”

“씨발, 오십 명을 보내겠다고?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야!”

필요할 때만 민주주의…….

하지만 성윤의 눈빛은 침착하다.

품에서 정우에게 받았던 봉투를 꺼낸다.

안에는 USB가 들어 있다.

물끄러미 USB를 보던 성윤이 다시 마이크에 입을 댔다.

“타국의 돈을 받고 나라를 팔아먹던 오십여 명의 사람들은 조용히 하세요. 저 사람들의 말에 속아 최학인 대표의 옆에 섰던 분들은 제 말을 들어 주세요.”

“…….”

“최학인 대표는 살인 청부를 했습니다.”

앉아 있던 최학인 대표가 벌떡 일어섰다.

“뭐?”

성윤은 지체 없이 USB를 노트북에 연결한다.

그러자 스크린에 노트북 화면이 떠올랐다.

한 외국인의 동영상…….

-돈 준다고 했어요. 구치소에 가서 이준대를 죽이라고 했어요.

이어서 구치소 교도관의 얼굴이 보인다.

-구치소장의 지시였습니다. CCTV의 전원을 내리고 모른 척하면 고향으로 발령 내 주겠다고…….

마지막으로 최학인 대표의 목소리가 들린다.

-구치소장…… 이번에 진급 들어가지 않나? 내가 힘써 준다고 해. 이준대 그 새끼는 어차피 고아야, 고아. 신경 쓸 사람 하나도 없어.

스크린을 보던 성윤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이준대의 죽음이 확실히 실감된다.

꿈속의 악귀도 현실의 권력 앞에서는 무력했다.

단지 돈 때문에, 단지 권력 때문에 어떤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잘 가라.’

성윤이 몸을 틀어 앞을 바라본다.

마이크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이곳에 참석한 여러분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될 겁니다. 선택은 자유지만 국민은 오늘을 기억할 겁니다.”

의원들이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방송국 카메라가 이 상황을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다.

단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젠장,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조금 있으면 총선이다.

여기서 죄인을 지켜 줬다간 국민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

의원들의 선택은 뻔했다.

그 순간,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최학인 대표가 성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성윤!”

이미 이성은 마비됐고 성윤을 향한 분노만 남았다.

하지만 그의 몸은 성윤에게 닿지 못한다.

민국당 의원들이 뛰쳐나와 최학인 대표의 팔을 잡고 늘어진다.

“대표님!”

“놔, 이 새끼들아! 내가 살인이라니! 살인 청부라니! 아니야! 아니라고!”

최학인 대표가 악을 쓰며 외쳤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를 막기 위해 덮쳐 버린다.

최학인 대표의 머리가 땅에 처박히며 코가 먼저 닿았는지 피가 팍 터졌다.

하지만 그의 몸뚱이는 쉬지 않고 버둥댄다.

“놔! 놔! 제발 놔! 이성윤 저 새끼만 없었어도!”

최학인 대표의 머릿속에 도제성 의원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왜 정치를 시작했고 계속 버티고 있었을까…….

그저 대통령이 된 도제성 의원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도제성 의원이 대한민국을 멋지게 만들기를 바란 게 전부였다.

그래서 시작한 정치였는데…….

“놓으라고, 이 새끼들아!”

< 발악. - (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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